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두개의 문, 2012

by.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2023-12-28조회 3,681

시커먼 망루의 표면으로 굵은 물줄기가 쏟아지고 크레인으로 운반한 컨테이너를 타고 경찰특공대가 건물 옥상으로 내려온다. 건물의 계단 아래에서는 갑옷을 두른 진압 경찰들이 위압적인 소리를 내면서 치고 올라온다. 물리적으로 대항하기 어려워진 시위대는 망루 안으로 후퇴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망루에 좁게 난 구멍을 뚫고 화염이 솟구치는 광경이 보인다. 처음에 구멍은 두세 개 정도였으나 불길이 번지면서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구멍을 뚫고 분출한다. 사위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면서 불길은 시위대 5명과 경찰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9년 1월 19일 용산 남일당 옥상 망루에서 발생한 참사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2012)의 카메라는 망루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용산은 미군 기지가 있던 서울 중심부 지역으로 술집과 성매매 업소 등이 밀집되어 있고 미군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후 개발업자들이 새로이 입주하여 지역을 재생하고자 한 특별한 내력을 가진 공간이었다. 일부 세입자들이 이주를 거부하면서 활동가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는데, 당국은 철거민 시위대가 기대했던 대로 그들의 요청을 경청하기는커녕 야음을 틈타 무력 진압, 해산에 나섰다. 그제까지 경찰의 진압 작전은 시위대를 화염병 투척으로 격화시키는 데만 기여했다. 이후 건물 내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 중인 시위대를 제거하기 위해 건물을 경찰특공대 병력이 추가 투입되면서 시위대는 남일당 망루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게 된다. 비극적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전조들이 있었으나 중단되지 않은 작전 명령으로 인해 철거민들 중 일부는 망루에 올라간 지 25시간 만에 주검이 되어 내려왔다. 이후 재판에서는 화염병을 제조하여 저항하는 불법적 폭력 시위가 참사의 근본 원인이었다는 검찰의 주장과 이명박 정부의 시위 대응, 공권력의 무리한 진압 작전, 오판이 비극을 낳았다는 대책위를 중심으로 하는 진단이 맞섰다. 상반된 주장이 경합하는 재판정에서 쟁론이 오가는 과정까지를 따라잡은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의 김일란, 홍지유 감독은 경찰의 증언 및 진술조서, 채증 영상 등 발견된 이미지, 말과 글, 소리의 조각들로 플롯을 구성한다.
 

<두 개의 문>의 아젠다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공백’이다. 드러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리라 기대했던 이 영화가 가리키는 곳은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가 아니다. 정확히는 존재와 인지의 부조화, 실재하지만 우리들이 인식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진실이며, 나아가 진실에 다가갈 수 없는 재현의 무력함을 화제 삼는 것이다. 참사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철거민들의 입장만을 넓게 수용하지 않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다양한 자료 화면들은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동반사적으로 택하게 되는 진상의 규명, 책임에 대한 판정, 희생에 대한 위로라는 통과의례를 따르지 않는다. 높아졌다가 잦아지기를 반복하는 불구덩이 안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화재의 원인은 무엇이었고, 문밖으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안녕한지에 대한 자막이나 기술도 뚜렷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날 밤의 타임라인을 따라 참사의 주변부에 있던 경찰 지휘관, 용산철거민사망진상조사단과 용산참사변호인단의 조사와 탐사, 인터넷 저널리스트의 인터뷰, 경찰 발(發) 채증 영상과 재판의 증인 심문 오디오 파일, 과학과 합리의 프레임으로 그날을 해석하는 전문가들의 의견, 질서유지를 명분으로 진압 작전에 가담한 사람들의 기록 등이 번갈아 편집된다. 사지로 내몰린 경찰특공대원들 또한 희생자라는 판단이 들게끔 하는 시청각 이미지의 논리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여도 밝혀질 수 없는 불 속의 일들을 바라보게만 하고, 나아가 여기에 모인 사건 당사자들 가운데 누락된 책임자는 누구인가를 떠올리도록 만든다.

<두 개의 문>을 둘러싼 쟁점은 누군가에게 명백해 보이는 참사의 인과관계에 대한 논평을 이 영화가 쉽게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작진들은 철거민들과 오랜 시간 함께 했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만도 하였으나 한 편에 서는 것을 자제한다. 김일란, 홍지유 감독은 발견 영상들을 편집의 재료로 삼아 영화를 역사의 법정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영화가 제기하는 딜레마는 판관(判官)의 위치에 우리를 앉혀두고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는 일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 망루에서 이루어진 진압작전의 이모저모를 모은 증언과 기록이 동원되는데 끝으로 갈수록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재현 방식, 그 효용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판관의 자리에 관객을 두게 함으로써 또는 투명한 재현의 불가능성을 강변함으로써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가? 법원은 경찰의 작전이 법치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결론으로 재판을 끌고 가면서 살아남은 철거민 4명을 구속수감하는 결정을 하는데 이러한 주장만으로 참사는 납득되지 않는다. 제한된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특별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탄생하는가?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 현실의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현장 기록과 보도, 인터뷰, 재연 영상을 배열한 플롯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려는 노력과 함께 비극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동의가 없는 부검 시도와 연쇄살인사건 보도에 묻히는 참사 등 최근 한국 정치사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억압적인 우익 정권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끔찍한 장면이 오버랩될 수도 있다. 영화는 경찰 집단이 잘못했다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말하며 이를 입증하려는 듯 상부의 명령을 따르는 과정에서 그들의 곤경에 공감하게 되는 순간들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의 행동이 올바르거나 선한 것으로 말해질 수 없지만 어쩌지 못하고 떠밀려 갔던 상황 속으로 우리도 함께 밀려 들어가는 듯한 언짢은 연루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경찰특공대들이 극한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다양한 자료의 뒷받침을 통해 서술되고 있으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으로 저들을 밀어 넣은 상부의 작전 계획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절박하게 서로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철거민과 진압 경찰들. 불 속에서 저들의 막다른 대면은 어떤 지옥을 연출하였을까?
 
  

<두 개의 문>의 스타일 전략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분기점이 되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진실의 탐구가 현상적인 사실에 머물지 않고 보이지 않거나 볼 수 없는 공백을 향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인식이 기초하고 있다. 생사여탈의 현장에서 발췌하여 영화에 삽입된 “모두 입구로 가서 밖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데, ‘다 죽어’하는 목소리가...”라는 말은 둘 이상의 의미로 해석된다. 목소리의 주체가 누구인가, 맥락은 무엇인가에 따라 상반된 해석이 가능한 것처럼 세계의 진실은 모호하고 그것을 승인하는 영화의 수단은 보잘 것 없다는 믿음이 이 영화에는 내재해 있다. 영화를 연출한 공동감독들이 철거민과 진압 경찰의 입장 모두를 공평하게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하나의 입장, 두 개의 입장, 다수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말은 영화의 윤리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진실이 우리가 알 수 없는 곳에 있으며 하나 또는 둘, 그 이상의 증거들을 가지고 승인될 수 없음을 자인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 뼈아픈 자성은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를 이동시킨다. 따라서 <두 개의 문>은 억압적인 정권의 모습과 그 정권을 유지하는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말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진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의 수단, 즉 기록과 인터뷰, 의견과 해석, 재연 등이 모두 말해줄 수 없는 곳에 웅크린 진실을 겨냥한다. 이 부조리하고 무기력한 세계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카메라가 아니다. 사태를 관망하는 자리에 놓이게 되는 관객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명징한 해석보다 왜 문 안의 진실은 이야기될 수 없으며, 그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하나의 결론으로 판정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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