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촬영장소의 컷장면 칼럼 태권도 영화 -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by.이영재(영화연구가)
1. 카트린느 드뇌브와 ‘태권도’
1974년 한국의 한 신문기사는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트 드뇌브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액션영화가 하도 판을 쳐서 태권도를 하지 못하는 우리 같은 여배우는 발 붙일 곳이 없어요.” 카트린느 드뇌브의 이 한탄은 ‘이소룡 붐’이라는 해외영화계의 기현상을 언급하는 기사가 인용해오고 있는 발언이다. 이 언급을 곧이곧대로 믿어보자면 이소룡 영화 혹은 그와 같은 류의 영화들은 ‘태권도를 하는’ 남성 배우들의 영화이다. 그런데 과연 1974년의 시점에 카트린느 드뇌브는 태권도라는 말을 알고 있었을까? 그녀가 이소룡 식의 액션영화를 ‘태권도 영화’라고 인식했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적어도 어느 시기 한국 영화시장 내에서 이 명칭은 꽤나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것 같다.

1973년 3월 쇼브라더스 소속의 정창화가 감독한 영화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 홍콩영화 최초로 미국 박스오피스에 올랐을 때(이 시점은 이소룡 영화가 미국 시장을 강타하기 직전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성공한 ‘태권도 영화’, 한홍합작영화로 한국에서 개봉하였다. 같은 해 출범한 정부 조직 한국영화진흥공사는 한국영화의 해외시장개척을 위한 중장기 전략으로 한국산 태권도 영화를 적극 장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이소룡의 죽음 직후 <정무문>이 한국 시장에 도착했다. 이 영화는 당시 표현에 따르면 ‘이상과열’이라고 할만한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이소룡의 영화 중 가장 노골적인 반일 텍스트인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저 적의 익숙함은 한국 관객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며, 또 1960년대 후반 무협영화 붐부터 시작된 한국영화와 홍콩영화의 긴밀한 연결이라는 흐름 안에서 보자면 거의 절반쯤 자국영화로 보이게 할만큼 익숙한 것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스승의 복수를 완수한 이소룡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경찰들을 향해 뛰어오르는 프리즈 프레임을 한번 상기해보라. 요절한 스타가 정지된 화면 내에서 영원히 도약하는 모습을 목격한 당대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정서적 감응을 불러일으켰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무문>을 시작으로 1973년과 74년 이소룡의 네 편의 영화, <맹룡과강>, <당산대형>, <용쟁호투>가 모두 개봉하며 이 열기를 지속시켜나갔다. 전세계적인 이소룡 붐과 접속한 자국 관객의 열광은 곧 “홍콩 제작의 얼치기 태권도 영화가 세계를 휩쓴 데 자극받은......참다운 태권도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와 겹쳐진 시장의 요구로 이어졌다. 그리고 불현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소룡-브루스 리가 그러한 것처럼 미국식 이름을 붙이고 나타난 이들은 한결같이 미국에서 온 태권도 유단자임이 강조되었다.


2. 아마도 ‘태권도 영화’라고 할만한 것의 절정은 1974년이 될 것이다. 이해 이두용은 재미교포 출신의 신인배우 챠리 셀(한용철)을 기용하여 무려 6편의 태권도 영화를 만들었다. <용호대련>, <죽음의 다리>, <돌아온 외다리>, <분노의 왼발>, <속 돌아온 외다리>, <배신자>(이두용에 따르면 이 영화는 앞의 영화들의 ‘재편집’으로 완성되었다)에 이르기까지 이 놀라운 다작은 유행 장르를 자국화하고자 하는 한국 영화산업의 탄력적 대응의 실례라 할만하다. 일단 이 영화들은 1960년대의 인기 장르인 만주물의 서사를 고스란히 끌어온다. 배경은 식민지 시대의 만주 혹은 대륙, 적은 일본군이거나 일본군과 결탁한 야쿠자. 여기에 몇몇 제목들이 이미 노골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바 장철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獨臂刀>가 불러일으킨 신체적 핸디캡의 영웅이라는 표상과 이 표상이 내포하는 상실, 극복, 귀환이라는 구조가 가미된다. 발차기의 명수인 주인공은 적들의 농간으로 한쪽 다리를 잃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극복하고, 돌아와서 적들을 물리친다. 어쨌건 주인공은 단독으로 혹은 독립군과 힘을 합쳐 악독한 일본군 또는 일본 야쿠자를 물리친다. 그렇다면 이 영화들은 만주물의 재출현인가?

만주물은 1960년대라는 국민국가 만들기의 시간에 이를 형성해낼 강력한 표상자원으로서 한국영화가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식민지 시기 만주라는 실제의 시공간, 동시에 1960년대의 시점에서 가상적으로 재현될 수밖에 없는 이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항일독립투쟁의 이 액션활극은 포스트콜로니얼 분단국가가 상상해낼 수 있었던 가장 유력한 국가창생기일 것이다. 아직 남과 북은 분단되기 이전이며, 하나의 ‘민족’은 미래에 반드시 당도할 독립국가를 위해 싸운다. 그리하여 이 독립국가-대한민국은 저 전쟁에서 죽어간 수많은 ‘애국선열’들에 의해 여기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 만주 웨스턴이라는 형태로 전화되어간 만주물은 이 전화의 마지막, 이만희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에 이르러 완전히 끝장나버렸다. 만주물의 초창기 비전이 국가 만들기와 관련있는 것이라면 국가 바깥의 인간들, 국가에 무심한 인간들이라는 한국영화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희유한 순간을 만들어낸 <쇠사슬을 끊어라>는 말 그대로 장르에 대한 탈구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이 이야기는 1960년대적인 내셔널 시네마적 열정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두용의 태권도 영화가 만주물 서사를 새삼스럽게 반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서사들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 영화들은 서사에 공을 들이고 있지 않다. 공간은 극히 단조롭고 서사를 믿을만하게 만들어줄 캐릭터의 구축이랄 것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이 영화들이 졸속 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들은 오로지 하나의 볼거리, 하나의 스펙터클, 하나의 동작에 집중한다. 챠리 셀의 발차기. 길고 곧게 뻗은 다리가 화면을 횡으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가로지른다. 종종 웃통을 벗는 남자는 기름을 발라 반짝반짝 빛나는 근육질의 몸을 과시하며 괴성을 지르면서 전광석화처럼 날아올라 발차기로 상대를 제압한다. 벗은 몸의 발차기. 이 형상은 이중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것은 자국 관객들을 위해서 태권도라는 지역적 귀속을 충족시켜주는 기표로 이해되는 한편 이제 곧 형성될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의 카테고리 안에서 싸우는, 맨몸의, 아시안 남성의 기표로서 기입될 것이다.
 

3. 챠리 셀에 이어 미국에서 온 또 한 명의 스타는 바비 김(김웅경)이다. 당시의 신문보도에 따르면 ‘이소룡과 함께 태권도 보급에 힘써 온’ 바비 김은 이소룡 사망 후 “미국 쪽에서 그를 이소룡의 후계자로 내세우려 들자 기왕 태권도 영화에 출연할 바에야 한국영화에서 활약할 생각으로 귀국하였다.” 챠리 셀의 인기에 대적하기 위해서 바비 김은 변별될 필요가 있었다. 그 역시 발차기가 특기이지만, 콧수염과 가죽점퍼를 트레이드마크로 강한 아메리칸 남성성을 번안해오고 있는 바비 김의 영화는 이두용의 태권도 영화보다 현대적 의장을 선호하였다. 찰스 브론슨을 노골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이 ‘터프한’ 남자는 사악한 일본인과 맞서 싸우거나(<사대독자> <흑룡표>) 홍콩과 동남아의 주요 도시들을 배경으로 국제적으로 암약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를 분쇄하는데(<국제경찰>), 알고 보면 이 적들은 서로 결탁해 있곤 한다(<죽음의 승부>). 이 영화들이 설정하고 있는 적은 지극히 자국적으로 보이나(일본인과 공산주의자) 실상 현대적 의장 속에서 적의 고전적 표식은 사라지기 일쑤다.

이를테면 식민지 시대 홋카이도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귀문의 왼발잽이>(박우상, 1977)를 보자. 다케지로와 센노스케라는 대립하는 두 일본인 집단과 이들에게 착취당하는 조선인 광부들. 어느날 이 마을에 정체불명의 사나이 바비 김이 나타나 우여곡절 끝에 고통받는 광부들을 구해낸다. <귀문의 왼발잽이>가 지극히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영화가 시대적 배경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그 어떤 장치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 설정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탄광의 소유주인 다케지로는 수트 차림의 성공한 중년 사업가의 모습이다. 가죽 재킷에 헬멧을 쓰고 일당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나는 센노스케는 폭주족에 가깝다. 영화의 실제 배경은 강원도 남부의 탄광도시 태백이다. 이 이미지들 속에서 <귀문의 왼발잽이>는 탄광 노동자를 착취하고 괴롭히는 악덕 자본가와 폭력배, 이에 맞서 노동자를 구하는 히어로의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은 마치 1970년대 후반의 탄광도시 태백의 지역성만큼이나 당대적이고 구체적이며 로컬한 정치적 의제를 상기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구하는 히어로라는 오래되고 광범위하며 글로벌한 소망과 맞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4. 이소룡의 열풍이 불러일으킨 이국적 이름의 행렬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챠리 셀과 바비 김에 이어 엇비슷한 이름을 가진 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나왔다. Tang Lung, Bruce Li(何宗道), Bruce Le(呂小龍), Bruce Leung(梁小龍) Dragon Lee (혹은 Bruce Lei, 巨龍) 기타등등. 이 이름들 중 누군가는 한국인이고 누군가는 이미 한국인이 아닌데, 사실 이 영화들에 있어서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한국과 홍콩, 대만, 필리핀, 타이 등지의 영세 영화업자들이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낸 이 영화들은 이제 국가적 귀속이라는 문제로부터 더 없이 자유로워진 채 국경을 넘어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의 한 부류로 통칭될 터이니.

ps. 현재 영상자료원에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 <귀문의 왼발잽이>는 ‘불타는 주먹(les poings enflammes)’이라는 프랑스어 더빙 버전으로 찾아볼 수 있다. 당신은 유창하게 불어를 구사하는 바비 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귀문의 왼발잽이>를 이런 상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런 영화들이 어떠한 유통경로를 거쳐갔는지를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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