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산불: 6월의 영화 II by.김영진(영화평론가)

김수용의 <산불>(1967)은 지리산 어느 마을 대나무 숲에서 국군인지 빨치산인지 모를 이들에게 식량을 갖다 바치는 일군의 아낙네들 모습으로 시작한다. 보자 하니 그들 아낙네들 사이에 연배가 높은 두 여자는 사이가 아주 나빠서 서로 할당량을 채웠느니 못 채웠느니 하고 시비를 가른다. 갑자기 그들 두 사람이 카메라 앞으로 다가와 자기 사정을 하소연하는 뜻밖의 숏이 이어진다. 온전히 관객의 시점을 점유한 이 화면의 주인공, 아낙네들이 하소연하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관객을 구경꾼에서 연루자로 만들어놓는 이 대담한 도입부는 김수용이 당대의 한국영화계에서 흔치 않은 자의식으로 영화언어를 벼리는 스타일리스트였음을 드러낸다.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빨치산이 지배하는 영화 속 마을에는 아녀자들과 늙은이만이 살고 있고 남자들을 국군 아니면 빨치산으로 징발당한 여자들은 남편의 생사를 모르는 채 당장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에 이골이 나 먹이를 찾아 이빨을 드러낸 짐승처럼 곧잘 서로 으르렁댄다. 이 마을에 숨어든 규복은 빨치산 진영에서 탈영한 전직 선생으로 시어머니와 시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과부 점례를 협박해 대나무 숲에 은거한다. 남자 없는 마을에 살던 점례는 인텔리 분위기가 밴 규복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며 그의 사정을 듣다가 호감을 품고 급기야 정을 통한다. 마을의 또 다른 과부 사월이 이 상황을 눈치 챈다. 그는 규복을 밀고하겠다고 어르며 규복의 육체를 점례와 공유한다. 
 

한창 기운이 왕성한 젊은 과부 두 사람과 남자 한 사람이 전쟁의 복판에서 몸을 나눈다는 이 영화의 설정은 생존에의 욕구와 애욕이 비례하는 상태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마을 사람들은 동네 바깥의 전황을 풍문으로만 들을 수 있을 뿐이고 마을 상공을 선회하는 국군 비행기를 보며 허둥대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먹고 살기 위한 끼니를 겨우 해결하는 극빈 상태에서 그들은 문명사회의 기초적인 관례를 유지할 여력이 없다. 주인공 점례를 제외한 마을의 대다수 사람들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인간적인 염치가 없다. 점례의 시할아버지는 자나 깨나 먹을 것 타령이고 살짝 지능이 모자란 점례의 시누이 역시 일하는 것과 담을 쌓고 어린애처럼 천방지축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사월은 남자를 향한 욕구불만으로 히스테리에 차있다. 아낙네들은 동네 개울가에 모여 빨래를 하며 음담패설 아니면 생존에 대한 불안을 토로하는 농지거리로 일관한다.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규복과 점례의 시할아버지 외엔 남자들이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에서 평상시의 남자와 여자의 권력관계는 뒤바뀌어 있다. 점례 집안의 가장인 시할아버지는 숨 쉬는 것 빼면 헛소리만 내뱉는 치매 노인으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며 규복은 자신의 몸을 탐하는 사월이의 공세에 굴종하며 스스로 짐승에 불과한 존재라고 탄식한다. 전쟁 도중의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등장인물들의 애욕의 민낯을 생생하게 드러내지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냉소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에너지의 역설로 다가온다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극작가 차범석이 1963년 <현대문학>에 게재한 대표적 동명희곡을 영화화면서 김수용은 1: 2.35 화면비의 스코프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인물과 사물의 수평 배치를 활용한 시원한 구도와 움직임으로 화면을 힘 있게 추진시킨다. 특히 영화의 주배경인 대나무 숲의 풍경이 압도적인데 흑백 화면의 질감 속에 햇빛이 차단된 대나무 숲에 부분적으로 빛이 떨어지고 그 빛의 줄기들과 그림자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남자 사람과 여자사람들의 애욕과 생존에의 갈구가 펼쳐진다.  

영화의 말미에 마을에 등장한 국군 토벌대가 빨치산을 색출하기 위해 대나무 숲을 태울 때 규복은 그 숲 안에서 절규하며 죽어가고 마을에서는 규복의 아이를 임신한 사월이 자결을 택한다. 점례는 까맣게 그을린 채로 개울가에 나와 죽은 규복의 시체를 보듬으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의 불우와 직면한다. 국군과 빨치산 편으로 나뉘어 반목과 질시를 거듭하던 마을 사람들 역시 잿더미만 남은 숲의 잔해를 보며 자신들의 삶의 실체를 깨닫는다. 알맹이가 없는 적대와 살육의 악순환 속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갇혀 버둥거리던 삶의 슬픔과 허무를 보는 것이다.  
 
2019-06-14조회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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