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4월의 영화: 육체의 약속 by.이다혜(작가, 씨네21 기자)
“어쩌면 세상은 자기가 바라는 남자는 멀어져만 가고 대수롭게 생각 않는 남자는 눈앞에 귀찮게 서성거릴까. 여자는 자기 배우자를 찾는 거로 인생이 정해진다. 정해진 남자에게 육체를 제공하고 동화돼서 그 사람의 자손을 이어주는 일로, 여자의 전부가 끝나니까 말이다. 그러나 젊은 여자에게 남자의 선택의 자유가 있었던가. 또는 그런 긴 안목이 구비되어 있단 말인가. 어느 시대건 여자는 장님처럼 눈을 못 보고 남자를 골라 왔다.” 

젊은 여자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기로는 남자를 고를 때만은 아니었다. 직업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다. 권유받는 일자리는 다방 레지. 막무가내로 선물을 안겨주고 그녀를 호텔로 끌고 가려는 남자에게 “싫어, 싫어, 나 안 갈래, 싫단 말이야” 라고 분명하게 거절해도, “내 육체를 들뜨게 했으면 가라앉혀줘야지, 이 도둑년아”라는 말과 함께 따귀를 맞는다. 이후 이어지는 강간 장면에서 그녀의 몸을 손에 넣고자 하는 남자들 사이에 거래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기차에 앉아 고통뿐인 과거를 회상하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 그녀는 왜 여수로 향하는가.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거의 플래시백뿐인 이 영화에서, 여러 시간대의 과거를 액자처럼 늘어놓는 기억의 주체는 숙영(김지미)으로 보인다. 그녀가 열차에 타 과거를 회상하고 있기 때문이며, 내레이션 역시 그녀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숙영이 알 도리가 없는 사건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긴 플래시백으로 거의 영화 본편이라 해도 좋을 3년 전 상황이 중요한 것은 현재의 숙영이 기다리는 사람과의 사연이 거기 있으며, 그녀가 살고자 하는 현재의 선체험과도 같은 시간여서다. 3년 전, 숙영은 다른 여성(박정자)과 함께 기차를 타고 여수로 가고 있다. 옆자리의 여성은 숙영에게 사탕을 먹이고 그녀는 그것을 무력하게 받아먹는다. 맞은편 자리에는 훈(이정길)이 타고 있는데 그는 숙영에게 수작을 부린다. 숙영과 그 옆 여성의 관계는 곧 밝혀지는데, 옆자리의 여성이 훈을 따로 불러내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은 교도관이며, 숙영은 죄수라는 것이다. 교도관이 훈을 설득하기를, 숙영이 자꾸 자살하고자 하니 내일 교도소로 돌아갈 때까지 “남은 시간 내에 여자는 남자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세상에 믿음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세요.” 이 말은 숙영이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왜 훈이 숙영에게 애초에 접근했는지를 숙영이 추측한 것에 가까워 보이는데, 그런 장면은 또 있다. 
 

여수에 가서 그녀는 묘비도 없는 무덤에서 울부짖고, 그런 그녀에게 훈이 다시 접근해 다짜고짜 혼인을 올리자고 한다. 그러고는 남은 시간 동안 관광이라도 하자며 저녁에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데 여기서 숙영이 알 수 없는 사건이 하나 더 등장한다. 훈은 친구를 만나 빌려준 돈을 돌려받고자 한다. 그의 친구는 택시 강도로 그 빚을 갚으려 하고, 훈이 기겁하자 자살해버린다. 칼에 찔린 택시기사도 도망친 상황, 약속시간으로부터 5시간이나 늦게 나타난 훈은 이전의 여유 많고 껄렁하던 태도와 달리 뭔가에 쫓기고 좌절한 모습이다. 왜 훈의 태도가 바뀌었는지, 숙영이 그 공백을 채워 넣고 있다. 

숙영은 본 적 없으나 이 긴 플래시백에 등장하는 장면 마지막은, 결국 세 사람이 다시 서울역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 있다. 교도관은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비우는데, 그때 세 남자가 숙영을 따라붙는다. 자신들은 형사이며 훈을 잡으러 왔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서 교도관은 그들을 설득한다. 서울에 갈 때까지 시간을 달라고. 이 설득하는 내용은 이후 교도관의 말을 듣고 숙영이 상상한 것에 가깝다. 본 적 없는 이 세 장면은 결국 그녀가 끊임없이 시도하던 자살을 포기하고 삶의 의지를 갖기까지, 타인들의 선의를 상상해낸 것들이다. 그녀의 수난이 다른 남성들로 인한 것이었다면 그녀의 남은 삶 역시 다른 남성의 희생(훈이 붙잡혀갈 것을 알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숙영의 교도소 앞까지 동행한)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그의 희생을 알고 나서야 숙영은 그를 “여보”라고 부르며, 사기당해도 매 맞고 그래도 믿음을 다시 가져보겠다며 “여보, 당신 이름 뭐야. 이름 말이야. 내 이름은 효순이, 효순이란 말이야.”라고 울부짖는다. 매년 그 날짜 여수의 그 벤치에서 기다릴 테니 그곳에서 만나자고. 교도소 문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절박한 마지막 만남 이후 훈은 사복형사들에게 끌려가는데 정작 그는 “저렇게 사느니 차라리 자살을 해버리겠어.”라며 반항한다. 훈 앞에서 자살한 친구가 “넌 감상적인 것이 실수야”라고 그를 비난했던 것을 떠올려보라. 
 

플래시백이 전부 마무리되면 영화의 첫 대목, 특징 없는 한 남자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숙영을 서울역에 데려다주는 부분에서 이어지는 현재 그녀의 삶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숙영은 이제 새 출발을 하려 한다. 첫 대목에 잠시 등장한 남자는 이제 그녀가 신뢰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이 기나긴 플래시백은 마지막으로 훈을 기다려보기 위해 여수로 향하는 그녀가 떠올리는 마지막 작별 의식이었다. 자살을 몇 번이고 기도한 그녀가 살아보기로 마음먹기까지, 훈이 그녀에게 직접 보여준 행동은 사려 깊다기 보다는 그간 그녀를 착취해 온 다른 남성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앙탈을 부리는 건 봐줄 수 있지만 남자를 조롱하는 것은 못 참아!” 성관계가 강간의 형태로만 존재하며, 성욕과 고통을 구분하기 어려운 그녀의 세계에서, 그녀가 훈을 믿는 결정적 이유는 교도소 입소의 마지막 순간에 교도관이 하는 설득(그 젊은 남자가 이제 사형대로 끌려갈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과 숙영이 직접 기억의 빈틈을 상상으로 채워 넣은 훈과 관련된 사연이다. 숙영은 이제 자신의 서사를 완성한다. 플래시백의 시간은 이제 끝났다. 그녀는 여수에 왜 갔을까. 재회하기 위해 갔을까, 완전히 이별하기 위해 갔을까. <육체의 약속>은 후자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숙영을 품평하고 학대하는 남성들의 언어가 전시되는 방식은 조롱에 가깝다. 그들의 권력은 이제 그 플래시백 안에 봉인되었으며, 이제 그녀는 그 시간에 이별을 고한다.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1975)은 이만희의 <만추>(1966)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만추>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지금 <육체의 약속>은 <만추>가 (실물 없이) 상징적으로 갖고 있는 오리지널의 위치를 영화라는 육체로 대신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같은 작품을 원작으로 한 김태용 감독의 <만추>(2011)와 비교해보면 인물과 감정을 설명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다. 스산한 풍경으로 애나(탕웨이)의 내면을 외부에 전시하며 많은 부분을 상상에 맡기는 김태용의 <만추>와 달리, 김기영의 <육체의 약속>은 상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흔히 <만추>와 그 리메이크 영화들의 여자 주인공을 설명할 때 ‘남성 혐오에 빠진’이라는 설명이 이어지곤 하는데, 김기영 감독은 그러지 않는 게 이상해 보일 정도의 과정을 전부 펼쳐 보인다. 쥐어뜯듯 선물의 포장을 벗겨내고 한번 가지고 놀면 흥미를 잃는 아이처럼, 남자들은 그녀를 갖고 버린다. 그녀는 그렇게 여러 남자에게 이용당했고, 낙태도 여러 번 경험한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살인을 저질러 교도소에 가게 되었고, 죄인의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교도관은 그녀의 입에 계속 사탕을 물린다. 입에 넣어주는 사탕을 수동적으로 받아먹던 퇴행적인 모습의 숙영이 마지막 순간, 훈의 희생을 알고 나서 스스로 사탕을 뱉는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사탕을 뱉으라는 말을 해 준 이가 훈이었음을 떠올려보라. 그녀가 플래시백을 통해 회고하고자 하는 기억은 적나라한 수난사와 훈이 개입된 구원의 순간뿐이다. 그녀가 교도소에 가게 된 살인 장면은 아예 플래시백에 등장하지 않는다. 일인칭 시점의 역사인 플래시백이 갖는 자기 기만성을 잘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 

<만추>와의 연관성 외에도 1970~80년대에 많이 만들어진 호스티스 영화의 계보에서 <육체의 약속>을 살펴보는 일도 가능하다. 그래서 <육체의 약속>의 숙영은 김지미가 그 전에 맡았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남자 때문에 팔자를 망친, 하지만 남자 없이 살 수 없는’ 여성의 전형으로 그려지는 숙영은 남자를 죽이고서야 남자가 없는 곳(여자 교도소)으로 갈 수 있었지만, 결국 남자가 그녀를 살게 한다. 그런 이야기를 숙영은 플래시백을 통해 완성해낸다. 기다리는 이야기가 아닌, 이별하는 이야기. <육체의 약속>의 흥미로운 점이다. 

 
201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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