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초우 : 12월의 영화 Ⅰ by.한창호(영화평론가)

정진우 감독의 <초우>(1966)는 ‘청춘 영화’다. 1960년대 초중반, 청년들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활발하게 제작될 때 소개됐다. 사실 청춘 영화는 전후 세계 영화계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전쟁이 끝난 뒤, 새로운 세대가 구질서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영국(브리티시 뉴 웨이브), 독일(뉴 저먼 시네마), 미국(뉴 할리우드), 일본(일본 뉴 웨이브) 등 청년 영화인들의 세대교체에 대한 열망은 대단히 뜨거웠다. 그 정점에 프랑스의 누벨바그가 있다. 이런 세계적 변화의 충무로 현상이 ‘청춘 영화’다. 김기덕, 정진우 같은 젊은 감독들이 적극적이었고, ‘반항적’인 신성일, ‘자유로운’ 엄앵란은 청춘 영화의 아이콘이 됐다. 

<초우>는 청춘 영화가 정점에 이른 1966년에 발표됐다. 신성일은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으로 이미 스타가 됐고, 당시 19살이던 문희는 이 영화를 통해 스타로 등극한다. 자동차 정비공 철수(신성일)와 주프랑스대사 집 가정부 영희(문희) 사이의 이야기다. 철수는 지금은 정비공으로 일하지만, 언젠가는 한몫 잡아 부자가 되는 게 꿈이다. 그는 자신의 외모와 젊음을 이용하여, 부잣집 여성들로부터 용돈을 받아쓰기도 한다. 철수는 프랑스제 레인코트를 입고 있는 영희를 대사 집 딸로 오인했고, 욕심에 자신을 유명 기업가의 아들이라고 속인다. 철수에게 반한 영희도 자신의 신분을 속인다. 레인코트는 주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 영희는 신분 노출이 두려워, 레인코트를 입을 수 있는 ‘비 오는 날’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짐작하듯 영화는 비 오는 날의 데이트로 이어진다.

초우 스틸

1960년대 신세대의 갈등은 부모세대로 상징되는 구질서에 대한 철저한 거부, 혹은 반항일 테다. 부모세대는 전쟁에서 승리한 자부심에 옛 가치를 강요하거나(미국 혹은 영국), 혹은 패전국의 그들처럼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다시 권력에의 복귀를 노린다(독일 혹은 일본). 두 경우 모두 권위적이든 위선적이든 ‘강력한’ 지위를 가진 가부장적 질서가 작동한다. 그래서 1960년대 ‘새로운 물결’의 영화에는 직설적이든 비유적이든 ‘부친살해’의 갈등이 늘 내재해 있다. 장-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1960)에서 주인공 미셀(장-폴 벨몽도)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경찰을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 같은 경우다.    

철수와 영희에겐 그런 강력한 부권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변엔 반항할만한 권위 자체가 아예 없다. 주프랑스 대사는 홀로 임지로 떠났고, 철수의 정비공장 사장은 직원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 청춘들은 자기들끼리 클럽에서 춤추거나 술 마시며 현재를 즐긴다. 그 어디에도 억압의 질서, 혹은 추월의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 철수는 부자가 되려는 욕망에 가득 찬 인물로 설정돼 있는데, 이런 신분 상승의 욕구를 투사할 어른이 주위에는 없는 것이다. 역사의 단절을 딛고 다시 태어난 신생국 한국의 실상이 아마 이랬을 것이다. 

초우 스틸

철수는 대사 집 딸과 결혼하면 신분 상승의 욕망이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사랑이 아니라 ‘결혼’에 철수의 욕망이 집중돼 있는데, 정비공이 신분을 속여 대사의 딸과 결혼하려 한다는 설정이 관객의 설득을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철수는 영희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료들에게서 무리하게 돈을 빌려 보석 선물을 사고, 결국에는 돈을 훔치기까지 한다. 그렇게 해서 철수는 영희의 부모라고 믿고 있는 대사 집안의 결혼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까? 이런 설정의 비논리성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냥 어리석은 청년의 좌충우돌을 볼 뿐이다. 그래서 <초우>에선 청년영화 특유의 도전 같은 건 잘 감지되지 않는다. 

초우

<초우>는 이런 내용보다 색다른 표현방식 덕분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초우>는 당시에 유행하던 프랑스 누벨바그의 현대적인 표현법을 대거 끌어쓰고 있다. 현지 촬영, 빠른 편집, 경사진 카메라 등의 새로운 시도는 과거의 영화와는 다른 젊은 감각이다. 프랑스 인기 영화의 흔적도 자주 보인다. 자동차 정비공인 청년, 레인코트를 주로 입는 여성, 비 오는 날, 우산 등은 <초우>보다 2년 전 발표돼 전 세계에 히트했던 <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자크 드미, 1964)을 떠오르게 한다. 또 루이 말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echafaud>(1957)처럼 <초우>는 영화 내내 비 오는 날을 배경으로 감상적인 음악을 이용하고 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장-폴 벨몽도가 그랬듯 철수는 남의 차를 ‘제멋대로’ 몰고 나와 마치 자기 차인 듯 자랑한다. 건달, 미제 승용차, 돈에의 집착은 두 영화에 공통되는 테마다.  ‘프랑스’ 대사의 집에서 영화는 시작했는데, 영화 내내 프랑스라는 단어는 두 청춘의 미래와 연결된 꿈의 이미지로 작동한다. 철수는 “프랑스에 가서 살자”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초우>는 프랑스라는 말에서 전해지는 자유, 멋, 풍요의 이미지를 꽉 막힌 청춘의 출구로 이용하고 있다. 그런 서구적 감각이 당대 청년 관객의 환영을 받은 것이다.   
2018-12-03조회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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