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의 여성>과 시간의 구속

by.조혜영(영화평론가) 2024-02-29조회 1,419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1931년 《동아일보》(4.14.)와 《조선일보》(4.15.)에 조선영화제작연맹의 제작발표회 기사가 실렸다. 당해 4월 8일에 일어난 홍옥임과 김용주의 철도동반자살 사건을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소식이었다. 기사에는 <명일의 여성>이라는 제목뿐 아니라 출연과 제작진도 함께 발표되었다. 감독 및 각본 홍개명, 각색 김서정, 촬영 한창섭, 진행 홍찬, 출연 나웅·윤봉춘·김연실·임운학 등이 제작 동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두 젊은 여성이 자살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지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음에도 한두 달 내에 제작에 착수할 것이며 야심 차게 상해로 수출할 것이라는 계획까지 세웠으나 관련된 후속 보도는 이어지지 않았다. 
 
홍옥임, 김용주 철도동반자살 사건 관련 《조선일보》 기사(1931.4.10.)

당시 식민지 조선의 영화계를 보면 1923년 윤백남의 <월하의 맹서>가 개봉된 이후 본격화된 조선의 영화제작이 점차 그 수를 늘려가고 있던 중이었다. 특히 1926년 <아리랑>(나운규, 1926)의 전국적인 흥행으로 1927년에는 무려 14편의 영화가 제작되었고, MGM이나 파라마운트와의 특약 계약을 통해 영화를 수입하는 회사도 세워져 외화배급이 원활해졌다. 영화와 관련된 담론 역시 활발해져 농민과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을 구현한 영화를 옹호한 카프와 작품성이나 상업성에 주안을 둔 그룹이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무식한 광견(狂犬)’, ‘무지한 필님충(film蟲))’으로 날선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리고 1930년대에 이르면 세계 영화계는 발성영화의 시대에 진입하고 극장은 신기술을 도입할 새로운 자본과 혁신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명일의 여성> 제작발표 기사가 났던 1931년에는 조선 총독부의 검열이 체계화되고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31』) 개봉되고 제작된 조선영화는 그 수가 대폭 줄었다. 영화창작을 향한 열망은 여전해서 <명일의 여성>처럼 제작발표를 했지만 실제로는 아예 제작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완성되지 못한 영화 목록이 꽤 길었다.

한국 퀴어 영화의 역사 쓰기를 고려할 때 <명일의 여성>은 흥미로운 위치에 있다. 이 영화는 아마도 제작조차 들어가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만들어진 적 없는 ‘허구의 영화’다. 하지만 제작되었다면 첫 번째 레즈비언 영화로 불렸을 수도 있는 영화다. <명일의 여성>은 그런 면에서 허구의 기원, 기원 없는 기원이다. 그러나 이 허구야말로 늘 퀴어 역사와 존재에게는 실재의 또 다른 말이 아닌가? 존재하면서도 부정당하거나 가짜와 위장으로 의심받는 섹슈얼리티, 정체성 그리고 수행. 심지어 스크린 위에 가시화될 때도 마치 없는 것이나 오점처럼 지워지는 역사들. <명일의 여성>은 시간을 특정할 수 없다. 백퍼센트 제작이 안 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영화, 그래서 영원히 제작 ‘중’인 영화. 과거의 사건이지만 지속적으로 현재일 수밖에 없으며 어딘가에서 비틀어지고 왜곡된(pervert) 씨를 뿌리는 시간 속에 있는 영화. 어제의 시간 속에 있으면서 오늘일 수밖에 없는 영화다. 과거라는 시간(1931년)에 단단히 묶여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현재와 미래로 열려 있을 수밖에 없는 기이한 시간의 모양을 갖는다(“시간의 구속Time Binds”이란 용어는 엘리자베스 프리먼[2010]의 저작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과거는 희뿌옇고 부실하고 오염되어 있으며, 현재와 미래는 부재 중이다. 어쩌면 우리는 <명일의 여성>에서 허구의 세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어디에도 없는 곳이자 결코 규정되지 않아 끊임없이 규정이 필요한)유토피아’를 조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허구’라는 방법론으로 퀴어의 역사를 쓴다면 어떤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먼저 ‘허구’는 그저 공상이 아니라 공통세계에 공존하는 틀을 만들 수 있는 도구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흥미로운 영화의 ‘허구’에 어떤 현실감, 수용가능성, 개연성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까? 먼저 두 범주로 나눠 질문들을 던져 보자. 조건의 질문들과 상상의 질문들.

- 조건의 질문들
: 당시 비극적인 자살사건이 일어난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어떻게 이렇게나 빠르게 동인을 모아 제작발표를 할 수 있었을까? 더불어 영화가 (아마도) 제작을 할 수 없거나 완료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젊은 여성의 동성애 소재는 신선함, 대중성, 이국성을 갖는 매혹적인 영화 소재였을 것이다. 당시 엘리트들에게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들 간의 동성애는 이질적이고 새롭지만 거부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신문칼럼이나 잡지는 여성 동성애 ‘유행’을 자세히 소개하면서도(1930년대 잡지 <별건곤>의 ‘여류명사’들의 동성연애기 투고기사) 제대로 된 남성을 만나기 이전의 소녀들의 일시적 실험이나 정사 없는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가부장제 이성애에 위협을 주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남성 엘리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항문성교를 한다고 알려진 남성 동성애자들이었다(《동아일보》 1932.3.17.). 더군다나 이 영화는 당시 젊은 세대의 연애관과 결혼관을 비판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볼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반드시 두 여성의 시점에서 서사가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홍옥임(21세)은 당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 홍석후의 딸이자 음악가 홍난파의 조카였으며, 김용주(17세)는 종로 덕흥서림 사장 김동진의 딸이자 비행사 심종익의 아내였다. 스스로도 엘리트 교육을 받은 신여성인 동시에 조선 최고 엘리트 집안이었기 때문에 세간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연인관계에 있던 노동계급의 젊은 여성들의 철도동반자살 사건이 있었지만 해당 사건은 워낙 유명한 집안이었던 만큼 더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박차민정의 『조선의 퀴어』(2018) 참고). 또한 상해 수출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이 주제가 그만큼 해외에서도 수용될 만한 소재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소재의 대중적 매력만으로 영화를 완성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자본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혹은 동인들 간에 이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복의 처녀Mädchen in Uniform>(1931) 중

한편 독일의 유명 레즈비언 영화 <제복의 처녀Mädchen in Uniform>(1931)가 같은 해 독일에서 개봉되었다는 것은 우연이지만 조선영화가 세계적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성작가인 크리스타 윈슬로가 쓴 극본 <어제와 오늘>을 여성 감독 레티오네 사강이 연출한 <제복의 처녀>는 1933년 3월에 조선에도 개봉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변사 박창원의 녹음으로 1936년 12월 영화해설 음반이 발매되었으며, 일본에서는 1934년 《키네마 준보》에서 최고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언론은 영화의 인기에 여학교 학생들을 ‘제복의 처녀’라 부르기도 했다. 

- 상상의 질문들
: 실제로 이 영화가 모종의 이유로 제목을 바꿔 해당 영화인지 알 수 없게 제작되었는데 개봉을 할 수 없어 프린트의 일부가 상해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은 없을까?
: 당시 <명일의 여성>의 출연 및 제작 동인(이름을 올리지 않은 이들을 포함)에 퀴어는 없었을까? 퀴어적 관계나 정체성을 가진 제작진이 포함되었다는 상상 속에서 <명일의 여성>을 갖고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영화가 실종되었거나 완료되지 못한 이유를 추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반도의 봄>(이병일, 1941)의 1930년대 버전이 될 것이다. 조선의 영화현실 뿐 아니라 당시 젊은 여성 동성애자들에 대한 성적 억압과 다른 여러 불만들(가부장제, 교육, 계급, 식민지적 억압 등)을 교차해 서사화할 수 있다.
: 조선영화가 1930년대 이미 여성 동성애 소재로 트랜스내셔널하게 연결되었던 역사와 현재 식민지 조선 혹은 경성이라는 시공간이 종종 퀴어화 되는 것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청연>(윤종찬, 2005),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해영, 2014), <아가씨>(박찬욱, 2016), <유령>(이해영, 2022). <명일의 여성>처럼 시간의 구속을 가진 퀴어화된 영화들을 어떻게 봐야할까? 

나는 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도, 답하려는 욕망도 없다. 단지, 시간의 구속에 얽혀 실종되고 왜곡되고 흐릿한 퀴어 영화들의 파편 더미들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경성 퀴어로 시작해보고자 한다.

(계속)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해영, 2014) 중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2024) 등 공동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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