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섭
Han Chang-seop / 韓昌燮
대표분야
촬영, 제작/기획, 후반작업
활동년대
1920, 19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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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홍차기의 일생 (임운학, 1948)
그들이 가는 길 (임운학, 1947)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5년 이필우의 도제로 촬영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26년에 이경손을 만나 촬영기사로 입문하여, <봉황의 면류관>(1926), <산채왕>(1926), <유랑>(1928) 등을 촬영하였다. 1928년 3월 이경손이 프로덕션을 만들자 여기에 촬영기사로 합류하여 <숙영낭자전>, <춘희> 등을 촬영하였다(영화감독사전; 대중예술인 사전). 1930년에는 이경손과 함께 상하이로 가 활동하였다. 상해 고성영편공사에서 제작한 <양자강>(1931)은 이경손이 감독을 맡고 원작과 각색을 전창근이 맡았던 영화였다. 당시 한창섭은 상해내셔널카메라맨 협회에서 활동하면서 <양자강>에 참여하였다고 한다(동아일보a; 동아일보c). 그런데 이 시기 특이한 기사가 하나 남아 있다. 1931년 4월경에 한창섭이 젊은 두 여성이 철도에서 자살한 사건을 주제로 제작되는 <명일의 여성>이란 작품에 참여한다는 기사가 있다. 홍개명이 감독을 맡고, 김서정이 각색을 담당한 <명일의 여성>은 중국의 상해육합영편공사에 보내져서 상영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실제로 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창섭이 이 때 다시 한국에 돌아왔는지 여부 또한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동아일보b). 이후의 소식은 한창섭이 이경손과 함께 <만리장성>이란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뿐이었다(동아일보d). 언제 다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방 이후 한창섭은 1945년 미군정부 영화실 제작의 문화영화 <자유의 종을 울려라>를 촬영하였고, 1947년에는 대한국민총동원 청년부에서 지방민중을 지도계몽할 목적으로 제작한 <의사 김상옥>의 촬영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임운학 감독의 <그들이 가는 길>(1947)과 <홍차기의 일생>(1948)을 그가 세운 태양영화사에서 제작, 촬영 했다(경향신문; 대중예술인 사전).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1년 3월 14일 4면.
동아일보b 1931년 4월 14일 4면.
동아일보c 1931년 5월 2일 4면.
동아일보d 1933년 2월 5일 4면.
경향신문 1947년 10월 28일 2면.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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