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운학
Yim Woon-hak / 林雲鶴 / 1906  ~  1987
본명
정학종 (Jeong Hak-jong)
대표분야
배우, 감독
활동년대
1920, 1930, 1940,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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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충남만유기 (임운학, 1954)
진격만리 (임운학, 1953)
고구려의 혼 (임운학, 1949)
홍차기의 일생 (임운학, 1948)
그들이 가는 길 (임운학, 1947)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임운학은 영화 <산채왕>(1925)에 강홍식을 대신하여 출연하면서 배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김종원). 이후 나운규의 <아리랑>(1926)을 비롯하여, <풍운아>(1926), 황운 감독의 <낙원을 찾는 무리>(1927), <춘희>(1928), <개화당이문>(1932), <임자 없는 나룻배>(1932), <춘향전>(1935), <아리랑고개>(1935), <미몽>(1935), <집 없는 천사>(1941)등에 출연했다(매일신보; 조선일보a; 조선일보b; 동아일보). 이 영화들에서 임운학의 배역은 주로 단역이었다. 해방이후 태양영화사의 <그들이 가는 길>(1947)을 통해 감독을 맡게 되었다. 이것이 그의 감독 데뷔작이었다. 이후 <홍차기의 일생>(1948), <고구려의 혼>(1949), <총검은 살아있다>(1953)를 만들고, <황혼열차>(1957), <영원한 내사랑>(1958) 등에 출연하였다(김종원). 1987년 4월 20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경향신문).

* 참고문헌
매일신보 1935년 12월 29일 4면.
조선일보a 1935년 8월 16일 석간 3면.
조선일보b 1935년 10월 13일 석간 5면.
동아일보 1936년 7월 3일 3면.
경향신문 1987년 4월 22일 2면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본명 정학종. 1906년 1월 21일 경상남도 하동 사람인 정기성의 2남 2녀 중 셋째로 출생. 부친은 종로 뒷거리 모전에서 유기(놋그릇)와 혼례식 등 관혼상제 때 쓰이는 물건들을 사다가 파는 상인이었다. 크게 재미를 못본 아버지는 이를 그만 두고 광산에 손을 댔으나 실패. 아버지 따라 평안남도 순안광산에 간 어머니마저 1918년 13세 때 여의고 만다. 8세 때부터 글방에 들어가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익히고 11세 때 지금의 중구 수하보통학교에 진학했으나 1년만에 낙원동의 초등학교로 옮겼다. 이후 간도 용정중학교를 졸업했다.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소꼽친구의 소개로 계림영화협회의 촬영현장을 따라 다니다가 이경손 감독의 <산채왕>(1925)에 도중하차한 강홍식을 대신하여 출연하면서 부터 였다. 이 영화는 산채의 두목이 딸을 납치하려는 일당과 싸우는 이야기. 그는 싸우다가 죽는 강홍식의 대역을 맡아 하다가 산적의 무리 가운데 하나로 나오는 두 가지 역을 맡았다. 이듬해에 조선키네마 프로덕션으로 옮겨 나운규의 <아리랑?(1926)에 마부로 출연. 여세를 몰아 같은 해 <풍운아>의 성격이 급한 '급행열차'라는 대학생 역과 1927년 황운 감독의 <낙원을 찾는 무리>들을 위시하여 <춘희>(1928),<개화당이문>(1932),<임자 없는 나룻배>(1932),<춘향전>(1935),<집 없는 천사>(1941)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나 대부분 단역이었다. 일제말기 징용을 피해 신의주로 가 극단 생활을 하다가 해방이 되자 귀국. 첫 감독의 기회를 잡은 것은 1947년 촬영기사 출신인 한창섭이 제작한 태양영화사의 <그들이 가는 길>(1947.이집길,채숙희 주연)이었다.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친구의 아들을 데려다 길렀으나 그 아들이 오히려 아버지를 박대하자 참다못해 대동강 물에 빠져 자살하려는 것을 암행어사가 구해준다는 통속 시대극. 그는 이 영화에서 암행어사 역을 맡았다. 잇따라 <홍차기의 일생>(1948.윤백남 각본)과 여주 신방사에서 촬영중 6.25발발. 삼국통일 시대에 고구려 군사들이 신라 군사들과 싸워 패하기도 하지만 고구려의 혼은 그 후예들의 머리속에 영원히 살아 남는다는 사극영화 <고구려의 혼>(1949),그리고 6.25전쟁 중에 만든 기록영화로 6.25전쟁에 참전한 장병들의 활약상을 담은 <총검은 살아있다>(1953)를 감독했다. 1960년 푸대접 받는 단역 연기자의 친목과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영우회를 조직하여, 초대회장을 지냈다. 1987년 82세의 나이로 4월 2일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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