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춘천, 춘천, 2016

by.장병원(영화평론가) 2022-01-07조회 3,018

<춘천, 춘천>은 겹쳐진 표제어의 꼴이 말해주는 것처럼 두 개의 춘천에 관한 이중구조의 영화이다. 장우진이 묘사한 미시 우주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과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의 교차를 매개하여 우연과 시간의 관계를 묵상하면서 인간 상호작용의 저류(低流)를 지도 그린다. 플롯은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는 사람들에 관한 두 갈래 내러티브를 따라 평행하게 진행한다. 느릿한 페이드(fade)로 화면이 열리면 기차 안에서 한 청년(우지현)이 옆에 앉은 중년의 남녀(양흥주, 이세랑)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있다. 그들의 목적지는 서울 동쪽에 있는 도시 춘천이다. 여행자의 행색이 완연한 중년 커플에 비해 청년의 차림새는 어딘지 헐거워 보인다. 비좁은 의자를 나눠 앉은 청년과 중년 커플 사이를 쇠기둥이 단호하게 가르고 서 있다. 프레임을 양분하는 쇠기둥이 접는 면을 이루듯 플롯의 전반부는 지현, 후반부는 흥주의 세랑을 따라 두 개의 여로를 제시한다. 나란한 서사 라인을 연결하는 이박삼일 동안의 두 조각 모음은 캐릭터의 병렬 경험을 따라서 흘러간다. 그렇다면 이 둘은 어느 지점에서 서로 엮이는가?
 

<춘천, 춘천>의 시각 스타일은 미니멀리스트의 방식이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간헐적으로만 패닝하며 움직이는 캐릭터들을 따라 트래킹하지 않는다. 단순한 구도의 1인 또는 2인 쇼트에 의존하는 이러한 스타일은 디테일에 집중하게 하고 캐릭터 행위의 미세한 변화를 새기게 하며 이런 진부한 스토리를 보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계속 사고하게 한다. 서사적으로는 두 개의 시간 층위를 겹치면서 이야기의 주름을 만든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지현이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방랑하는 행장기 다음에 흥주와 세랑의 여정이 포개진다. 두 경로는 모두 고요한 휴양 도시의 지형도 위에서 펼쳐지는데 단지 그것만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저들의 우주는 근거리의 좌표 상에 그려진다. 일자리를 얻어 서울로 향하는 동향(同鄕) 친구와 춘천역 에스컬레이터에서 교차한 지현은 그날 밤 구직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통보을 받고 크게 낙담한다. 다음 날 이 도시를 대표하는 마라톤 경기의 출발선에 서 비틀거리던 지현은 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너 청평사에서 기원을 추정하기 힘든 기도를 올린다. 정처 없이 떠돌던 청년의 발걸음은 친구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 평상에서의 넋두리를 지나 다음 날 아침 페리호 위에서 종료된다. 흥주와 세랑의 이동 경로는 지현의 꼬리를 밟는다. 저렴한 모텔 방이 모두 소진되어 비싼 숙소에 든 두 사람은 한 방에 묵게 된다. 다음 날 아침, 이번에는 마라톤 경기의 결승점에서 북적대는 인파들 사이를 빠져나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다. 어색하고 썰렁한 식사를 마친 세랑은 23년 전에도 이곳에 들러 산채비빔밤을 먹었는데 그때도 맛은 별로였다고 회고한다. 페리를 타고 청평사에 들어가 세랑은 절을 하고 흥주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늦은 오후 절에서 나온 두 사람은 소박한 식당에 앉아 낮술을 마신다. 다음 날 아침 안개 낀 호수 기슭의 잿빛 풍경을 보고 상념에 빠진 그들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점진적으로 분리된다.

캐릭터의 묘사는 섬세하고 상황의 전개는 느슨한 <춘천, 춘천>은 진정한 삶이 어떻게 경험되는지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항상 사이에 끼인 과정임을 깨닫도록 한다. 이 일상의 휴먼 드라마는 모든 영화적 감각이 시간의 흐름과 사소한 제스처, 빛의 변화에 맞춰져 있다. 영화의 진가는 시각적 표현, 소리, 우연한 마주침에 있으므로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훼손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들이 상호작용하는 장소로서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는 두 개의 롱테이크 신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먼저 취업에 실패하여 한껏 울적해진 지현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스친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노래를 불러 달라고 조르는 밤의 정경을 묘사한 신이다. 후회와 자책, 망연함이 뒤섞이는 10분의 지속 시간 동안 우리는 천천히 무너지는 청년을 지켜본다. 음악을 그만두고 서울에 취직자리를 얻은 친구가 불러주는 애절한 노래의 마지막 음이 밤공기를 가르고 떠오를 때까지 지현은 숨을 참는 것 같다.
 
 

두 번째 롱테이크 신은 아마도 지현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식당에서 막걸리와 파전, 전골을 놓고 나누는 흥주와 세랑의 대화이다. 카메라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까닭에 우리는 머뭇거리는 저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진부해 보이는 시간의 길고 유동적인 흐름은 얇은 비닐 가림막 뒤에서의 조용한 대화를 보여줄 뿐이다. 비닐 가림막 너머에 있는 태양이 구름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는 동안 카메라는 두 사람의 과거를 회고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서툴고 더듬거리는 말들을 수록한다. 주변에 떨어지는 빛의 명암은 그들의 변화하는 감정에 따라 황금빛에서 어두운 그늘로 수시로 바뀐다. 변화하는 빛과 서늘한 바람 소리,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기록된 이 신의 도입부에는 사마귀도 등장한다. 흥주는 사마귀와 방아깨비의 차이를 설명하고, 가을이 더 깊어지면 사마귀도 색깔이 낙엽 색깔처럼 변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고 이야기한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세랑은 어린 시절 몸에 사마귀가 났을 때 사마귀가 그걸 먹어주면 없어진다고 했던 속설이 진짜인지를 흥주에게 묻는다. 흥주는 사마귀는 몰라도 잠자리를 사마귀에 갖다 대면 그걸 물어뜯기는 했었노라고 경험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이런 식의 한담과 그들 각자가 과거에 다른 연인과 춘천을 방문했던 기억을 나누는 동안 사마귀는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던 흥주는 세랑이 앉은 쪽으로 자리를 옮겨 그녀의 옷에 붙어있던 사마귀를 쫓고, 어색한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나란히 앉도록 한 사마귀는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진다. 이 기우뚱한 구도 안에 세랑-흥주-사마귀가 나란히 놓인 형상은 춘천행 기차 안에서 쇠기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던 세 여행자를 떠올리게 한다. 무려 12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인물들이 자신을 발견하는 무성한 풍경들을 천천히 축적하는 과정은 시간에 대한 감각과 미물(微物)에 투영된 복잡한 감정의 흐름을 전달한다. 평행 우주의 다른 좌표에서 지현은 청평사를 내려오는 길바닥 위에 죽어 있는 사마귀를 본 적이 있다. 사마귀는 어떻게 거기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가 장면의 비밀에 대해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 시간의 무게를 탑재한 이 장면들은 빛의 소멸, 미묘하게 반향하는 두 쌍, 투명함의 감각을 위해 시간의 드라마를 변환한다. 과거의 유령, 잃어버린 연결과 놓친 기회가 두 부분을 맴돌며 애잔한 사슬로 청년과 중년을 엮는다.

<춘천, 춘천>은 일상적인 장소와 날씨, 빛의 기록이자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그 시간을 통과한 인간과 자연에 관한 유려한 미니어처이다. 장우진은 풍부한 특성화와 미적 감성을 통해 세계의 복잡성을 추론하게 한다. 우리의 삶이 곧게 뻗은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곡선이며 때로는 이미 지나갔던 길의 되밟기라는 것을 이 영화는 이야기한다.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반복된 말과 사물, 우연한 만남, 이상한 재조합, 전화 통화, 절, 마라톤, 사마귀는 내러티브의 체계 위에서 진동한다.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장우진의 기하학적 플롯은 이중구조와 심리적 묵시라는 수단을 흡수하여 스토리텔링을 해석하는 관객들에게 복합적인 층위를 상상하도록 한다. 정보를 많이 제공하지 않으면서 한 번의 몸짓이나 이미지에 평생의 후회를 담는 이 캐릭터들은 과거를 몇 번이나 회상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완전히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생생한 계절의 톤에서 안개 낀 회색으로 반복적으로 흔들리는 이야기는 화장실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대는 카메라로 모호한 이중 결말을 이룬다. 표면적으로는 겸손하면서도 은근하게 야심에 찬 장우진의 연출은 세부 사항, 반복 및 후속 보기를 의미 있게 만드는 내적 운율을 통제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작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제시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덜어냄으로써 남아있는 것들 안에 뉘앙스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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