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촬영장소의 컷장면 칼럼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by.조혜영(영화평론가)
<남매의 여름밤>(윤단비, 2019)은 이젠 거의 멸종위기라고 전해지는 ‘시네필’의 영화다. 시네필은 영화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순간, 장소, 인물, 움직임, 빛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에 빠질 만한 영화적 이미지와 조우하면 흘러가는 그것을 소유하고자 절박한 몸짓으로 반복적으로 관람하는 물신주의자다. 실제로 영화를 재생해볼 뿐만 아니라 기억에 각인된 강렬한 이미지를 꺼내 가상적으로 돌려보기도 한다. 시네필의 반복강박을 야기하는 영화적 이미지들은 파편적이고 비인과적이며 그래서 자주 서사와는 상관없이 떠오른다. 영화학자 로라 멀비는 그의 저서 『1초에/24번의 죽음』에서 이러한 시네필을 ‘소유적 관객(possessive spectator)’이라 칭한다. 필름 시대를 지나 디지털 환경에서도 시네필은 돌려보고, 뜯어보고, 반복해 보는 매체의 특징을 맘껏 누리며 “텍스트 본래의 응집력을 공격하면서 예상치 못한 감정으로 열리는 즐거운 회상을”(35) 가져오고 그 과정에서 사색의 여지를 마련한다.
 

<남매의 여름밤> 역시 인과적이고 극적인 서사보다는 여름밤의 빛과 공기, 냄새와 소리를 감각하게 하는 것에 집중한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아빠(양흥주)는 살던 집을 빼고 옥주(최정운), 동주(박승준) 남매와 함께 할아버지의 오래된 이층 양옥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곧이어 부부 갈등 때문에 집을 나온 고모가 이들에 합류한다. 옥주와 동주, 아빠와 고모,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는 그렇게 여름 한 계절을 함께 보내게 된다. <남매의 여름밤>은 캐릭터에 대한 서사적 정보를 거의 주지 않는다. 아빠와 고모가 겪고 있는 경제적 곤란과 부부 갈등이 무엇인지, 왜 옥주는 엄마를 미워하는지, 할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옥주는 남자친구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의 사연은 극도로 절제된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공감각적이고 중첩적인 감각과 단편적 기억의 환기를 통한 다중적 시간성이다. 관객들은 여러 겹으로 이뤄진 감각과 시간의 미장아빔(mise en abym)에 포획된다. 그러면서 감각과 시간은 공간화 되고 관객은 남매와 함께 ‘영화-집’에 머물게 된다.

<남매의 여름밤>에서 빛은 소리가 되고, 소리는 빛이 된다. 한낮의 뜨거운 빛은 끈적이는 장판에서 맨발이 떨어지는 소리가 되고, 서서히 열기가 식어가는 밤공기는 오래된 이층 양옥집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냄새가 되며, 환하게 열어젖힌 창으로 흘러나오는 저녁밥 냄새는 안팎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와 섞이고, 마당의 풀벌레 소리는 어두운 밤 잠 못 드는 할아버지가 켜놓은 낡은 전축 스위치의 초록색 전구불빛이 되고,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 소리는 할아버지의 삶과 그 삶이 가꾸고 거주해온 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