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by.정지돈(작가) 2022-10-14조회 4,739
 
사랑과 영혼 
영화감독 H와 김희천의 전시가 있는 북촌의 갤러리에 가기로 했다. 바쁜 일정에 쫓기는 중에 겨우 시간을 내고 약속을 잡았다. 김희천의 2021년 VR 작품 <사랑과 영혼>도 보고 신작도 본다는 생각에 H는 신이 났다. 일전에 그는 김희천의 작품을 보고 “영화는 끝났네요”라고 말했다. 물론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나도 그도 그 사실을 알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뱉는 걸 좋아한다. 소설은 끝났네요, 문학은 죽었네요, 종이책은 없어질 거예요, 민주주의는 끝났어요, 지구는 30년 내로 사라질 거예요,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사실 줄여도 이미 늦음. 마찬가지로 당신들이 이제부터 열심히 책을 읽고 극장에 가도 문학과 영화의 필연적인 소멸을 막을 순 없음.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는 절박하게 믿거나 행동하지도 않으면서 최후를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걸까. 단지 수사라고 하기엔 최후가 너무 많고 임박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최후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무뎌진다. 이성복이 어느 인터뷰에선가 말한 것처럼 시가 사라진다면 사라지라지, 사라질만하니까 사라지는 것 아닌가, 같은 생각도 들고 무력감도 들고. 때로는 영화는 죽지 않았으며 이제야 진짜로 살기 시작했다! 는 식의 객기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최후를 믿는 사람도 있다. 베를린에서 공부하는 친구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세포배양육에 투자하고 비행기를 타지 않는 동료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의 고향은 텍사스 오스틴으로 대서양을 건너기 위해 뗏목을 제작하고 있단다. 내가 들은 바로 오스틴은 텍사스에서 유일하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도시다. 친구의 동료가 기후 정의를 외치는 건 그 때문일까. 동기는 다르지만 네덜란드의 미술가 바스 얀 아더가 떠오른다. 그는 “Ocean wave”라는 13피트짜리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던 중 길을 잃었다. 삼부작 퍼포먼스의 두번째 작업이었고 제목은 “In search of the miraculous”.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철학자 페테르 우스펜스키의 「기적을 찾아서: 알려지지 않은 가르침들의 파편」이라는 책에서 가져온 제목으로, 이 책에서 우스펜스키는 유물론적 오컬트를 창시한 신비주의 사상가 구르지예프의 교리를 해설한다. 구르지예프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과 함께 인육을 먹었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것이 사후에 도달한 우주와 현생의 우리를 연결하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한 아마존 독자는 다음과 같은 리뷰를 남겼다.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사랑해.”

바스 얀 아더의 범선은 1976년 4월 18일 아일랜드 해안에서 발견됐다. 포르투갈의 아조레스 제도에서 그를봤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확인된 바 없으며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비극적인 최후로 미술계의 전설이 되었지만 이는 여러 측면에서 역설적인 일이다. 작품의 제목처럼 기적이 있었다면 최후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날까? 지구의 온도가 상승해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H와 전시를 보기로 한 날은 일요일이었고 우리는 3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갤러리는 휴관이었다. 나는 당일 점심에 지도 앱을 검색하다 그 사실을 알았다. H가 물었다. 휴무일 확인 안 했어요?(참고로 일정은 내가 잡았다) 내가 대답했다. 이상하네요. 제가 확인했을 때까지만해도 월요일이 휴무였는데. 
 언제 확인했는데요? 
 이틀 전에요. 
 H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쯤에서 화를 내거나 내게 깊은 실망을 했을 것이다. 휴무일을 체크 안했다고 솔직히 말하면 될 것을 뻔한 거짓말을 하다니.
 그러나 H는 된 사람이었고 타인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드문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그렇죠?
 제가 미술관에 전화해서 물어볼까요? 왜 갑자기 휴무일을 바꿨는지? H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H는 된 사람이지만 가끔 내버려둬야할 문제를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나는 모든 문제를 그냥 두는 편이다. 내가 일으킨 문제라면 더욱….
 우리는 전시를 보는 대신 카페에 가기로 했다. 마침 나는 소설가 W와 점심을 먹었고 그에게 H를 만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W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참고로 그는 영화인보다 영화를 더 보는 사람이다. W가 내게 말했다. 
 고다르 살아있다는 소식 들었어요?
 네?
 죽은 걸로 위장하고 잠적한 거래요.
 왜요?
 안락사 문제를 이슈화 하려구요.
 헐. 미친. 
 그러나 말을 마친 W는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H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W는 세계를 역설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냥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W의 픽션적 재능은 훨씬 복합적이다. 그의 거짓말은 특정 이익이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세계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다.

편의상 H의 방식을 세계-자체world-in-itself 라고 부르고 W의 방식을 세계-역설 world-in-paradox 이라고 부르자. 반면 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역설로 만들지도 못하는 종류의 사람으로 전형적인 해석만 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세계-바보world-idiot라고 부르자.

갑자기 무슨 세계 타령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는 미국의 철학자 유진 새커가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라는 책에서 도입한 틀을 가지고 온 것이다. 유진 새커는 철학이 더 이상 사유할 수 없는 가능성의 지평에 부딪히는 순간을 말하기 위해 이와 같은 틀을 도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리에-대한-세계world-for-us이다. 이는 인간에 의해 해석되고 의미부여 된 세계다. 그러나 실재 세계는 인간의 시도에 맞서 종종 반격하고 저항한다.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는 실재의 균열. 이런 세계를 세계-자체라고 부른다. 이때 세계-자체는 가능성의 지평을 구성한다. 가능성의 지평은 사유의 한계 지점,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다. 그러나 유진 새커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길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없는-세계world-without-us로 이 세계는 세계로부터 인간을 뺀 것이다. 한계 이후, 우리의 사유와 해석, 의미 너머의 세계.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사유할 수 있을까? 그것 자체가 역설 아닌가.

내가 갑자기 유진 새커의 구분을 도입한 이유는, H와 W, 내가 그날 카페에서 한국 영화와 한국 영화의 종말,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없는-영화cinema-without-Kmovie 또는 영화-없는-한국영화Kmovie-without-cinema. 한국 영화는 세계처럼 우리에 의해 해석되고 의미부여되지만 종종 예상을 뛰어넘어 우리를 습격한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습격이 “영화” 또는 “한국” 둘 중 하나를 없애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어떨까? 2022년 여름 한국 영화 시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서교동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W와 H는 초면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엔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므로 대화는 막힘없이 이어졌다. <비상선언> 봤어요? 아니요. <외계+인>봤어요? 아니요. <헤어질 결심> 봤어요? 네. 2시간짜리 CF 같더라구요. 저는 좋았는데… <헌트> 봤어요? 저는 이번 여름 시장에서 <헌트>가 제일 잘 한 것 같았어요. 저도 봤어요. 무한도전 같더라구요. 황정민이 나왔죠? 아닌가, 그건 <수리남>인가. <수리남>에는 조우진이 나오지 않아요? 조우진은 <외계+인>에 나오죠. 아… <수리남> 감독이 이정재인가요? 이정재는 <헌트> 감독. 아. <헌트>에 조우진이 나오죠? 그랬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북스토어 리 마빈
나는 정연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우리의 연재는 마지막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고, 그러나 대단원의 막은 대단히 희박한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한국 영화가 먼저 종말을 맞이한다면? 그러나 이것은 산업으로서의 한국 영화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국 영화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사람들은 영화를 제작하고 극장에 갈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건 특정 시네마 체제라고 말할 무언가로, 2000년대 초반 즈음 시작되어 2022년에 끝난 무언가를 뜻합니다. 노무현에서 시작되어 문재인에서 끝났달까요. 이게 뭘까요, 정연씨. 시네마 자체를 응시하는 영화감독 H는 이런 사변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시네마의 역설을 가지고 노는 W는 이제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신호로 해석합니다. 며칠 전 정연씨와 임재철, 이여로씨를 만난 저녁에서 임재철이 한 얘기가 생각납니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의 한 장면이었죠. 젊은 변호사 제임스 스튜어트는 새롭게 부임된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갱단에 걸려 구타를 당합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갱단의 두목인 리 마빈에게 말하죠.
 

 What kind men of are you? 당신 같은 사람은 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이요? 
 리 마빈은 설명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채찍으로 제임스 스튜어트를 내려칩니다. 
 This Kind! 이런 놈이다, 이 새끼야!
 임재철이 이 장면을 묘사했을 때 정연씨가 행복해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저도 정연씨만큼 박장대소했습니다. 미래의 어느 날 임재철 평론가가 운영하는 서점이 떠올라서였을까요? 
 어느 순수한 씨네필이 서점에 찾아옵니다. 그는 책을 하나 꺼내들고 서점 주인에게 묻겠죠. 
 이 책은 어떤 종류의 책인가요? 
 서점 주인은 책을 받아들고 한숨을 쉬더니 책으로 씨네필의 머리를 내려칩니다. 
 이런 책이다, 이 새끼야! 

하지만 실제 영화의 장면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영화에서 리 마빈은 채찍이 아니라 손등으로 제임스 스튜어트를 싸대기를 때립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은 다음에 일어나죠. 바닥에 쓰러진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리 마빈이 묻습니다. 그러는 너는 어떤 종류의 인간이냐? 제임스 스튜어트는 말합니다. 나는 정식으로 허가받은 변호사요. 당신이 총으로 나를 위협한다면 나는 법으로 당신을 감방에 집어넣겠소! 결과적으로 제임스 스튜어트는 이 말 덕분에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습니다. 리 마빈은 채찍으로 후려치면서 말합니다. 법? 하! 내가 진짜 법을 알려주마.

리 마빈은 사회의 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인물입니다. 유진 새커가 말한 우리-없는-세계의 핵심은 무관심이죠. 인간에 대한 전적인 무관심.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영화는 또는 한국 영화는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시네마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아닐까. 시네마의 종말이니 인류의 멸종이니 하는 건 우리에게나 심각한 문제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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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금정연, 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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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금정연,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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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정지돈,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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