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한국 영화감독들의 이름을 검색창에 차례로 입력했다. 박XX, 김XX, 이XX ….
차이를 모르겠어?
무슨 차이?
금정연과 한국 영화 감독들의 관상 차이.
…….
나는 금정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 정연씨, 정연씨는 영화감독 관상이 아니래요.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정연씨는 그 말을 듣고 심각해졌다. 그러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어쩌죠? 제 남은 인생은 어떡하구요. 우리 나윤이의 앞날은…?
나 역시 심각해진 건 마찬가지였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금정연의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관상 문제가 터진 것이다. 관상이라니, 21세기 메타버스 시대에 무슨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와 정연씨는 우리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관상의 문제는 얼굴의 문제이며 얼굴은 언어와 함께 영화의 핵심이자 동시에 제거되어야 할 형상,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스펙타클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옵시스!
정연씨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예요?
미메시스!!
그건 또 왜…?
지돈씨,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롤랑 바르트, 고든 크레이머의 위버 마리오네트와 로베르 브레송의 모델론을 거쳐 영화의 형상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무슨 말인지??
인간의 뇌에서 얼굴 인식 매커니즘은 가장 고등한 기능 중 하나예요. 영장류의 뇌 하측두엽에는 얼굴에만 반응하는 영역 여섯 곳이 있습니다. 이를 페이스 패치Face Patch라고 해요. 각 패치들은 부분 기반 관점과 전체론적인 게슈탈트 원리를 결합해서 얼굴을 검출하고 구성하고 식별합니다. 어떤 패치는 얼굴의 방향에 반응하고 어떤 패치는 모양에 반응해요. 더 흥미로운 건 내측두엽에는 사람의 이미지에만 반응하는 신경세포 집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중 한 세포는 유명 인사의 얼굴에만 반응해요!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 중요한 건 영화가 일종의 얼굴 패치라는 사실입니다. 재현이 중심이 된 영화 속의 얼굴은 특정 문화권의 얼굴을 뇌에 업데이트한다는 거죠. 패치를 설치한 것처럼요. 연재 초기에 했던 이야기 기억나세요? 모든 씨네필은 자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자국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어는 영화에 이질적인 요소니까, 모든 감독들이 무성 영화를 그리워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화라는 예술의 핵심처럼 여겨진 얼굴 역시 사실은 영화에 이질적인 요소예요. 특히 스펙타클로서 재현된 얼굴은 더욱 그렇죠. 제가 라쿠 라바르트와 롤랑 바르트, 고든 크레이그와 브레송을 말한 이유를 이제 알겠죠?
필립 라쿠 라바르트의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연극에서 무대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스펙타클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은 오직 목소리, 낭독만으로 전달할 수 있다. 라쿠 라바르트에게 미메시스란 어떤 장면의 모사 또는 재현이 아니라 현시다.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만드는 것. 이러한 실천을 위해서 형상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현이란 욕망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들로 붐비는 거추장스러운 형상화이다. 즉 그것은 알리바이의 공간이다.” 형상화가 재현이 아닌 즐거움으로서의 욕망이 되기 위해서는 “모방적 구조가 아닌 도표적 구조”로 드러나야 한다. 영화는 그럴 때에 진정 형상적인 것이 된다. 20세기 영국의 배우이자 연극연출가 고든 크레이그는 연극이 사회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창조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천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배우의 움직임은 상징적인 동작만으로 제한되고 2) 얼굴에 가면을 씌우며 3) 종국에는 배우를 인형으로 대체할 것. 로베르 브레송 “모델들. 그들은 겉으로는 기계적이 되었지만, 내적으로는 변한 것 하나 없이 순진무구하다.”
그러므로 비약하면, 정연씨가 말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영원히 지금 여기서 씌어져야 합니다. 기록, 확인, 재현, 묘사의 조작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이 수행동사라고 부르는 것, 정확히 말해 발화하는 행위 외에 어떤 언표도 가지지 아니하는 그런 진귀한 언술적인 형태. 삶은 영화를 모방할 뿐이며, 그리고 이 영화 자체도 기호들의 짜임, 상실되고 무한히 지연된 모방일 뿐입니다. 이른바 포스트-얼굴Post-Ulgul!
응?
지돈씨 대략 이런 내용으로 이번 연재는 마무리 해주세요.
음… 더 자세히 설명해야 되지 않을까요?
모르겠어요?
알듯말듯…
그럼 제가 다음 연재 때 보충할게요.
정말요?
어쩌면…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로저 코먼, 김경식 옮김, 2000, 열린책들)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로버트 쉬네이큰버그, 정미우 옮김, 시그마북스, 2010)
『텍스트의 즐거움』(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 동문선, 1997)
『무대』(필립 라쿠-라바르트, 장 뤽 낭시, 조만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통찰의 시대』(에릭 캔델, 이한음 옮김, 알에치코리아, 2014)
<고든 크레이그의 연극예술론>(정하니, 2018)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로베르 브레송, 오일환, 김경온 옮김, 동문선, 2003)
“Movements of Counter-Speculation: A Conversation with Michel Feher”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movements-of-counter-speculation-a-conversation-with-michel-feher/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금정연, 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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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정지돈, 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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