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by.정지돈(작가) 2021-05-07조회 7,802

20대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의 매니저는 <타짜>의 모든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디자이너로 일하다 카페 창업의 꿈을 품고 매니저가 된 지 1년, 쥐콩만한 월급을 받으며 하루 12시간씩 일했고 마감 후에는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컵라면을 먹었다. 나도 종종 그와 함께 했다. 그는 스니커즈 수집이 취미였고 옷을 잘 입었으며 한번도 험한 말을 하거나 알바생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가 험한 말을 할 때는 오로지 <타짜>의 대사를 따라 할 때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고.. 안경잽이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였다... 고니야? 담배하나 찔러봐라. 한창 유럽산 예술 영화에 빠져 있던 나에게 <타짜>는 그저 그런 영화였다. 영화계는 <범죄의 재구성>이 개봉했을 때 이미 천만감독이 될 최동훈의 잠재력을 알아봤지만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고 간혹 <리피피> 같은 영화가 레퍼런스로 언급되면 줄스 다신의 영화를 찾아봐야겠군! 하고 중얼거리며 서치를 했다. 그러다 줄스 다신이 훗날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이 되는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와 결혼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그리스의 파시스트들과 싸운 용기 있는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결국 줄스 다신과 멜리나 메르쿠리가 함께한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에 이르게 되는 이상한 경로를 밟을 뿐이었다.

매니저가 <타짜>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호구”로 간혹 예림이! 예림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나쁜놈이야 같은 대사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나는 “호구” 캐릭터에 대한 그의 애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20대 내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만나본 최고의 매니저였고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남아있지만(그가 어디선가 이 글을 읽기를) 당시에는 왜 이렇게 <타짜>를 좋아할까?? 뭐가 그리 좋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타짜>는 개봉 당시의 히트를 넘어 21세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고전으로 등극했고 수많은 밈을 낳았으며 거의 모든 캐릭터가 재생산됐다.

그러니까 금정연이 박무석이 어쩌고 저쩌고 했을 때 나는 매니저가 떠올랐고 2008년 즈음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컵라면을 먹던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비록 우리는 망원동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아메리카노와 휘낭시에를 먹고 있지만 말이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박무석이 누군지 몰랐다. 아마 박무석을 아느냐 알지 못하냐에 따라 한국 영화-문화에 대한 친숙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를 K-man지수K-man factor라고 부르자. 당신이 만약 박무석을 알고 박무석이 부른 노래 제목까지 안다면 당신은…).   
 그렇죠, 지돈씨. 
 금정연은 이주 전 일산으로 이사했고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육아와 집필을 하게 되었다며, 결국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네마의 실행Exercise”라고 했다. 크리스티앙 메츠는 말했죠. 나의 목표는 시네마의 실행이 폭넓은 인류학적 형상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통과하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일련의 경로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오…..
메츠의 이론적 논의에서는 시네마 장치의 정신분석학적 구성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 부분은 우선 제쳐두기로 했다(어쩌면 영원히 제쳐둘지도…). 우리가 만들 오버디터미네이션 에세이 필름overdetermination essay film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에서 중요한 건 “인류학적 형상들”이라는 말이며 우리의 목적은 21세기 한국 영화가 포착하고 실행되어 루핑 작용을 일으킨 계기들을 탐색하여 상상적 테크닉으로서의 인류학 장치인 한국 영화를 수행하는 거라고, 금정연은 말했다. 
 뭐라고요?
 이제부터 저를 K정연이라고 불러주세요.
 금정연은 Keum정연이고, 그러니까 K정연… 나는 정연 K.가 맞는 거 아닌가 잠깐 생각했지만 나름 생각이 있겠지.. YS나 DJ처럼 JY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는 게 어디냐고 생각했다. 동시에 20대 중반 일했던 (또 다른) 카페의 사장이 나를 JD라고 불렀던 게 떠올랐고 최근에 지인과 나눴던 대화도 떠올랐다. 지인은 봉준호의 이름이 준호라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냐고 말했다. 친구들은 준호라고 부르겠지? 아니, 친구들도 봉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근데 그게 중요해? 이게 무슨 대화야? 우리는 잠시 의문에 빠졌지만 지인은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번 씨네21에서 뽑은 2010년에서 2020년 영화 베스트10에서 통합 1위를 먹은 영화가 <기생충>이야. 그 사실을 기억해. 
음……(무슨 상관?)

하지만 호칭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다. 특히 영화의 이름에 관한 문제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왜 영화를 무비라고 했다가 시네마라고 했다가 픽쳐라고 했다가 필름이라고 하는가. 하물며 지금은 필름으로 찍지도 않는데!
넷플릭스의 토크 프로그램 <사인펠드와 함께 커피 드라이브>에서 사인펠드와 윌 패럴은 이 문제에 대해 간단히 정의 내린다. (<커피 드라이브>는 억만장자 코미디언인 사인펠드가 고급 클래식카를 타고 명사들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으로 버락 오바마도 출연했다. 심지어 재임 중에. 세계에는 제정신이 아닌 지도자가 너무 많다: 미국의 지도자 오바마 왈).
 
사인펠드 : 이 단어들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순위를 매겨봐요. ‘필름’, ‘픽쳐’, ‘무비’
패럴 : 가장 가식적인 단어는 픽쳐예요. It’s a wonderful Picture.
사인펠드 : 아주 의식적으로 멋있는 척 하는 것 같아요.
패럴 : 두 번째는 필름이요. 무비가 확실히 덜 가식적이에요.
사인펠드 : 무비, 필름, 픽쳐에 나오는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할까요?
패럴 : 몰라요… 그래도 저는 영화가 너무 좋아요….

 존 포드는 자신의 영화를 절대 film이나 movie라고 하지 않았어요. K정연이 말했다. 항상 picture라고 했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사람들이 cinema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K정연이 콩고물 휘낭시에를 한입 잘라먹으며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네마를 해야합니다. 비록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10 중에 <스탭 브라더스>가 있지만 말이에요. * 참고. 윌 패럴이 주인공을 맡은 <스탭 브라더스>는 이혼 가정의 두 백인 극우파 망나니가 중산층 속물 좌파로 개종하는 과정을 그린 유사 가족 로맨스로 지금은 주류 좌파 감독으로 변신한 아담 맥케이가 연출했다. 혹시 영화가 궁금한 사람은 보지 마시길…
      
시네마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시네마는 극장과 영화 산업 전반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로 정의된다. 가끔 무비와 차별되는 예술 영화를 지칭하는 어휘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시네마는 그게 아니었고 특히 21세기 한국 영화로 시네마를 수행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전후 일본에서 활동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하시모토 시노부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복안의 영상> 시작을 일본 최초의 영화주제가 “도쿄행진곡”(1929)으로 시작한다.
 
시네마를 보시겠습니까, 차를 마시겠습니까.
 차라리 오다큐선을 타고 도망가시겠습니까. 
변해 가는 신주쿠…

<도쿄행진곡>은 기쿠치 간의 장편 소설을 미조구치 겐지가 감독한 것으로(기쿠치 간은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을 제정한 사람이다), 주제곡의 가사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상징 시인 사이조 야소가 작사했다. 시네마가 나오는 구절의 가사는 원래 “장발의 마르크스 보이 / 오늘도 붉은 사랑을 안고”였으나 검열을 두려워한 레코드 회사의 요청으로 바꿨다고 한다. 마르크스를 시네마가 대체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약하자면) 시네마는 단순히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삶의 문제다. 시네마를 하는 것, 시네마를 하지 않는 것 모두 생활을 새롭게 조직한다. 정연씨가 <나랏말싸미> 대본을 쓴 것처럼요? K정연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지돈씨, 지돈씨는 그 영화 안 봤잖아요. 어떻게 안 볼 수가 있죠?

내가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건 사실이다. 정연씨에게 여러 번 얘기했지만 마음이 아파 볼 수가 없었다. 왜 마음이 아프냐고? 그건 <나랏말싸미> 네이버 평점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얼마 전 왓챠로 <나랏말싸미>를 봤고 정연씨에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다. <나랏말싸미>는… 한국 영화입니다. 조선 시대가 배경이지만 노래하는 장면도 있고 목욕 장면도 있고. K정연은 잊고 있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송강호가 말하죠.. 아픕니다. 아파요… 그 씬 쓰면서 아저씨들이 참 좋아했는데…

우리는 성산초등학교에서 망원 유수지에 이르는 골목을 산책하며 한국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의 곤혹스러움에 대해 대화했고 - K정연은 익명의 트윗을 인용했다 “모든 씨네필은 자국 영화를 싫어한다, 미국의 씨네필만 빼고” – 제3세계의 씨네필들은 결국 자국 영화를 발견할 유무형의 의무 또는 압박을 느낀다, 문학이나 미술이 그렇듯 로컬의 역사와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먹힐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기반이 사라진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 따위의 이야기를 나눴다. 

산책이 마지막에 이르렀을즈음, 우리는 우연히 ㅁㅈ출판사의 편집자 h와 마주쳤다.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 분으로 감동을 주는 책의 편집자이자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거리에 서서 출간될 책들과 – 알렉산더 클루게, 스베틀라나 보임,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등등 두근거리는 이름들이 언급됐고 – 사소한 근황을 주고받았다. 두 분은 요즘 뭐하세요? 영상자료원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아, 그러고보니.. 편집자 h가 말했다. 영화평론가 임재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순간 K정연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말씀을?  

편집자 h에 따르면 최근 임재철 선생님은 서교동과 망원동 일대에 출몰하며 지식을 전파 중이었고 K정연도 잠시나마 숙주가 된 적이 있었다. 나도 한번에 불과하지만 임선생님이 주관한 영화 상영회에서 K정연과 함께 장 피에르 고랭의 <Routine Pleasures>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임선생님은 고랭과 아녜스 바르다, 자크 드미에 대한 차마 여기 적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임 선생님이 언젠가 정연씨를 만난 다음 날 저한테 전화를 걸어 정연씨 얘기를 했어요. 편집자 h가 말했다. 같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금정연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어쩌면 금정연이 자기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던가…아닌가…
편집자 h와 헤어지고 난 뒤 나는 K정연에게 물었다. 정연씨 대체 임재철 쌤과 무슨 얘기를 나눈 거예요?
K정연이 말했다. 지돈씨.. 그건…     

 (다음회에 어쩌면 계속…)



*참고도서
『복안의 영상』(하시모토 시노부, 강태웅 옮김, 소화, 2012)
『존 포드』(태그 갤러거, 안건형, 신범식 옮김, 이모션북스, 2018)
『영화에 관한 질문들』(스티븐 히스, 김소연 옮김, 울력, 2003)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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