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by.금정연(작가) 2021-06-11조회 6,127

5월 31일 월요일
500미터쯤 걷고 카프성모병원에서 처음으로 멈추었다. 거기서부터 서쪽으로 꺾어 걸어갈 생각이었다. 카카오맵으로 아람누리도서관 방향을 헤아렸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겠다. 오전에 영상자료원 담당자에게 메일이 왔다. 바쁘신 와중에 혹여 (이미 한 번 미룬) 마감일을 잊으셨을까 하여 리마인드 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럴 수 없다, 지금은 안 된다, 이 시점에 한국 영화계가 이런 글을 읽어서는 안 되며 우리는 이 마감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노트북과 기계식 키보드, 그 외에 필요한 책들을 백팩에 챙겼다. 슬리퍼는 새것이고 푹신해서 충분히 믿을 만했다. 걸어서 가면 어리석은 초고를 돌이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거라는 확신을 품고, 나는 아람누리도서관으로 향하는 최단 거리의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전히 혼자이기를 원했다.*

어제까지 내가 쓴 초고는 왜 우리의 비디오 에세이가 박무석이 곽철용 앞에서 ‘불나비’를 부르는 <타짜>의 장면에서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었다.
 
금정연(V.O.) : 저는 늘 최동훈을 한국의 셰익스피어라고 생각해왔어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 배역 대신 배우의 이름을 말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다른 많은 영화들과 달리 고니나 아귀 같은 이름은 제게 이아고나 오셀로처럼 대체할 수 없는 고유명으로 느껴집니다. 둘.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를 즐겨 인용하듯 한국인들은 <타짜>를 인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타짜>가 21세기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은유, 나아가 일종의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흥행=도박이라는 오래된 비유. 두 개의 충무로가 있다. 올드 충무로와 새로운 충무로. 올드 충무로는 충무로에 있다. 새로운 충무로는 강남에 있다. 그런데 왜 충무로지…

최동훈의 영화에서 올드 충무로를 대표하는 건 곽철용이다. 그는 올드 충무로의 큰손으로 박무석 같은 감독들을 고용해서 영화를 찍어내는 제작자다. 새로운 충무로를 대표하는 건 물론 고니다. 그는 신진 제작자 정마담, 동료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고광렬과 손잡고 올드 충무로의 아성에 도전한다. 아귀나 짝귀 같은 타짜들이 올드 충무로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들은 올드 충무로의 대표적인 감독들이다. 다만 지나치게 성공한(성공했던) 아웃라이어일 뿐, 제작자 중심의 시스템 속의 플레이어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고니를 가르친 평경장 역시 타짜지만, 다른 타짜들과 달리 시스템에 한 발만 걸친 일종의 독립영화감독이라고 할까, 상대적으로 인지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결국 <타짜>의 심층 서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고니가 박무석이 만드는 독립영화에 우연히 제작부로 참여하며 영화라는 도박판에 발을 들이고, 독립영화계의 거장인 평경장 밑에서 본격적인 연출을 배우며, 신진 제작자 정마담과 의기투합해 메이저 영화판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지만, 정마담 또한 기존의 제작자들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절-홀로서기 하는 이야기, 다시 말해 충무로가 제작자 주도의 영화판에서 감독 주도의 영화판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영화다…
 
금정연: 박무석이 노래하는 장면의 메시지는 분명해요. 그는 자기 자신이나 관객이 아닌 사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월급 감독입니다. 따라서 박무석은 곽철용에게 망한 흥행은 뒤로 하고,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해주기를 구걸하고 있는 거죠. 노래를 통해서.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것이, 그가 부르는 노래 가사를 들어보세요.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이냐~ 밤마다 불을 찾아 헤매는 사연~" 이는 그가 마음 속에 아직 도박/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무엇보다 그가 노래를 부르는 게 정확히 영화의 중간, 정확히 중간점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영화의 구조에서 주인공의 결심이나 변화, 커다란 고난이나 가짜 희망 같은 중요한 사건에 할애되어야 할 중간점을 박무석에게 주고 노래를 부르게 한다? 이는 박무석 또한 고니와 같은 꿈을 꾸던 감독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박무석이 고니와 손잡고 곽철용의 뒤통수를 칠 거라는 복선이잖아요. 더불어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안 좋으셔도 어쩔 순 없지만, 최동훈이 선배 감독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윙크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이제 최동훈은 감독인 동시에 스스로 거대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최동훈의 윙크를 전유하고 싶은 겁니다.  
정지돈: …… 
금정연: 지돈 씨, 평경장의 죽음을 생각하세요! 정마담의 제작부장인 빨치산에게 하필 ‘오른팔’을 잘려 ‘기차’에서 떨어져서 죽음에 이르렀다는 게 과연 우연일까요?
정지돈: (대체 무슨 말인지?????)

머릿속으로 정지돈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계속 걸었다. 숏/리버스 숏. 그런데 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나. 아까부터 정지돈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모르겠다. 이참에 나는 그를 JD로 부르기로 한다. 불만 있으면 말을 하겠지…
문득 장 루이 뢰트라가 [영화의 환상성]에서 소개한 일화가 떠오른다. 앙토냉 아르토의 장례식에서 알랭 게르브랑은 퍽 기이한 일을 겪는다, 아르토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게르브랑의 앞을 막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영구차의 운전사가 고개를 돌려 게르브랑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 운전사의 얼굴이 다름 아닌 죽은 아르토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마주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대화도 대화가 아닐 리 없다. 그리고 나는 대화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적어도 우리가 도서관에 도착할 때까지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백일 정도 지났을까, 아직 아기 티를 벗지 못한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풀숲에 앉아 울고 있었다. 뭐라도 주고 싶었지만 가진 게 없었다. 르네 도말은 아내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주려고 하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고 썼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한다,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하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한다,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살게 된다.
오늘은 5월의 마지막 날이고, 생일을 맞은 영화인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콜린 파렐, 그리고 JD. 
나는 여전히 피곤한 얼굴의 JD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생일 축하해요, JD. 

6월 1일 화요일
영화 보기를 미루는 건 영화 만들기를 미루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책 읽기를 미루는 건 책 쓰기를 미루는 것이다. 예전에는 읽기=쓰기가 싫어질 때면 영화를 봤다. 그때 내가 보던 것은 농담으로라도 훌륭하다거나 예술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영화들이었다. <나이스 가이즈> <털기 아니면 죽기: 제한시간 30분> <위험한 패밀리> <홀패스> <쥬랜더 리턴즈> <베일리 어게인> <비트윈 투 펀스: 투어 스페셜> <미스터 롱> <22 점프스트리트> <기동순찰대> <젠틀맨> 등등…

도대체 왜 그런 영화를 보면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는 거죠? 모르겠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좋다고 말하는 영화는 안 보고 쓸데없는 영화만 보는 마음에는 약간 판도라의 상자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1)호기심에 이끌려 영화라는 상자를 엶
2)형편없는 영화들의 면면에 화들짝 놀라 상자를 닫음
3)상자 속 깊은 곳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좋은 영화들이 남아 있음
4)세상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좋은 영화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거친 현실을 묵묵히 살아갈 용기를 얻음…

영화를 만들기로 한 다음부터 모든 종류의 영화를 보기가 싫어졌다. 아니, 싫어졌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표현을 빌리면 그리스 선박왕과 그 아내의 관계, 다시 말해 아내를 사랑하는 유부남이지만 아내를 최대한 안 보려는 관계 같다고 할까. 그때 JD가 오만상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그는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무언가를 말했는데, 아마 ‘꼰대’라고 하는 것 같았다. 확신할 순 없다. 코로나 이후로 많은 것들이 종종 흐릿하게 보인다. 심지어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도… 나는 예전에도 볼라뇨의 저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유부남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유부남이라는 것. 유부남이 하는 유부남 농담만큼 소름 끼치는 것도 없다. 군필자가 하는 군대 이야기를 제외하면…

어젯밤에는 아내와 함께 영화 VOD 몇 편을 구매했다. 이사하며 IPTV를 바꾸고 사은품으로 받은 5만원 쿠폰의 사용기한이 어제까지였던 것이다. 우리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영화를 지독히도 증오하는 사람이 만든 게 분명한 IPTV의 영화 메뉴를 탐색한 끝에 7편의 영화를 선정했다. <포드 V 페라리> <더 파더> <스파이의 아내> <노매드 랜드> <테넷> <소울> <자산어보>. 대여 아닌 영구소장으로. 남은 500원은 가볍게 포기하기로 했다. 나도 아내도 딱히 그 영화들을 보고 또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영구소장의 매력은 지금 당장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러니까 일석이조인 셈이다. 쿠폰도 쓰고 영화도 안 보고, 원한다면 영원히 보지 않을 수도 있고…

최근 내가 가장 사고 싶은 책은 크리스티안 키슬리와 제이슨 미텔과 캐더린 그랜트가 함께 쓴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The Videographic Essay]다. 출판사는 이모션북스. [The Films of Bong Joon Ho](Rutgers University Press, 2020)를 쓴 Nam Lee의 트위터에서 표지 사진과 함께 올라온 출간 소식을 본 게 5월 26일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직까지 어느 서점에도 DB가 등록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을 검색했다. 그러면서 당장 책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간절함도 더해졌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1985년 제니 홀저는 뉴욕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에 이렇게 썼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줘(Protect me from what I want). 그럼 나는 내가 읽고 싶은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책을 사려는 걸까(Protect me from what I want to read by buying them)? 그와 함께 기껏 책을 만들어놓고 팔지는 않는 출판사에 대한 의구심도 생겼다. 어쩌면 이건 일종의 복수 같은 게 아닐까? 영화도 출판도 모르는 세상에 대한? 밑도 끝도 없지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모션북스의 대표는 임재철이다.

이사 온 집은 1층, 우리집 베란다 앞 작은 풀밭에 자리를 잡고 아직 눈곱도 제대로 떨어지지 않은 새끼 세 마리를 키우는 고양이 가족에게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집을 나왔다. 작업실에 도착하니 택배 상자가 쌓여 있었다. 일을 할 수 없는 주말에 인터넷 서점을 신경질적으로 뒤지며 헌책 새책 가리지 않고 산 책들이었다. [르 코르뷔지에 - 자연, 기하학 그리고 인간] [보이는 기호학 제3판] [영화음악의 실제] [그림편지]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 [알기 쉬운 현대미술의 개념풀이] [얼트 문화와 록음악 1] [파운드 푸티지] [소외과 가속] [밀수 이야기] [젊음의 코드, 록] [영화 같은 시간] [매체로서의 영화] [영상 미디어와 보도] [하이퍼건축] [영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 [영화 음악의 이해] [예술가로 살아남기] [나의 사랑 씨네마] [할리우드의 영화산업] [데뷔의 순간]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죄수 운동법] 등등. 모두 읽지 않아도 되는 책들이다.

책의 단점은 VOD와 달리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몇 주 전에는 읽지도 않을 책을 쌓아두기만 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서관에서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라는 책을 대출했는데, 아무것도 바뀌진 않고 연체만 되었다. 정작 책은 읽지도 못했어.

6월 2일 수요일
2016년 가을 나는 지금은 사라진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열린 임재철의 6강짜리 강의 ‘스탠리 카벨의 세계’를 들었다. 어느 날의 강의에서 임재철은 이렇게 말했다. 도서관이 없다고 상상해야 한다. 자기 집 책장에 있는 책들을 가지고 해결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할 필요가 있다. 고민하고 준비하고 모으고 계속해서 부족한 부분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끝이 없다. 목숨을 건 도약이 필요하다(비평가들이 이 말을 할 때마다 500원씩 받았다면 나는…). 그는 또 예전에는 외국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책이나 잡지에 소개된 짧은 글만 보고 영화를 상상해야 했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면 십중팔구는 자기가 상상했던 영화가 훨씬 더 재밌었다는 말도 했다.*

그날 임재철과 함께 택시를 타고 돌아오며 나는 충무로 아저씨들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는데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내가 요즘 하고 싶은 일은 비디오 에세이를 만드는 건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유튜브는 곧 시작할 거라는 등의 말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택시가 밤의 도시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불빛들. 그림자들. 사라지는 시간들. 차창에 비친 임재철의 얼굴이 유령처럼 창백하게 보였다. 그는 내게 언제 유튜브를 시작할 거냐고 물었고, 나는 2023년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그게 좋은 대답처럼 느껴졌는데. 모르겠다. 그날 이후 나는 많은 것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했던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오늘도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는 등록되지 않았고, 나는 머릿속에서 나의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를 빠르게 훑어본다. 그리고 JD에게 말한다.

금정연: 그러니까 일종의 '제텔카스텐' 같은 거예요. 인덱스카드와 펜, 그리고 상자만 있으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자, 인덱스카드의 한쪽 면에 영화 정보를 적어요. 제목, 감독, 배우, 몇 분 몇 초에 나오는 씬이다 같은 걸. 그리고 뒷면에는 해당 씬에 대한 짤막한 메모를 남기는 거죠. 그런 다음 이걸 레퍼런스 박스에 넣어두는 거예요. 그리고 얼마가 지난 다음, 상자를 열어 짤막한 메모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을 정리해요. 그리고 새로운 상자를 열고 빈 인덱스카드에 방금 레퍼런스 박스의 메모를 보며 떠오른 아이디어,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서 넣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건 하나의 카드에 하나의 생각만 적는 거예요. 물론 각각의 카드의 한 면엔 레퍼런스가 되는 영화의 씬 정보를 적고요. 그리고 거기에 적절한 흐름대로 번호를 매겨서 새로운 상자(영화 메이킹 박스라고 할게요)에 보관해요. 추가할 카드가 생기면 역시 적절한 위치에, 이를테면 97과 98사이에 넣어야겠다면 97-A라는 식으로 번호를 매겨서, 끼워넣고요. 시간을 들여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상자가 꽉 차게 되고, 그안에서 자기들끼리 상호작용하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죠. 그러다 적당한 시간이 지난 어느날 상자를 열고 인덱스카드를 꺼내서 차례대로 늘어놓으면 짜잔, 한 편의 비디오 에세이가 완성되었습니다! 

JD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쯧쯧, 혀를 차는 것도 같았다. 나는 조금 억울한 기분이 되었다. [제텔카스텐 – 글 쓰는 인간을 위한 두 번째 뇌]는 [죄수운동법]과 함께 다름 아닌 JD가 내게 권해준 책이었기 때문이다. 정연 씨, 새로운 육체에 새로운 정신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책을 추천하며 정지돈이 말했다. 그 책들의 제목을 들으니 문득 조정래가 떠오르네요. 그러자 정지돈이 반문했다. 조정래…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무언가를 말한다는 투였다. 예전에 등단 40주년을 맞아 [황홀한 글감옥]이라는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를 냈거든요. 저도 모르게 황홀한 글감옥에서 죄수운동법으로 운동을 하면서 제텔카스텐으로 글을 쓰는 이미지가 떠올라 버렸네요. 네… 정지돈이 한숨을 내쉬듯 대답하더니 덧붙엿다. 조정래랑 정연 씨랑 두 분이 비슷한 연배신 거죠?

6월 3일 목요일
나는 날씨에 따라 사는 것 같다. 업과 다운을 반복하면서. 맑은 날에는 그늘 찾고 흐린 날이면 짜증난다.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거의 죽어 있다.*
우리는 메세나폴리스에서 만났다. 정지돈과 나 그리고 ㅍ출판사의 편집자 s. 만남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다. 나는 비가 와서 반쯤 죽어 있었고, 정지돈은 마감에 치여 반쯤 죽어 있었다는 것 말고는.
s와 헤어지고 정지돈과 둘이 남아 밥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닭콩국수를 먹으며 글쓰기와 인간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을 쓰는 일은 쓰는 사람을 강퍅하게 만들고 주변을 짜증나게 만든다, 물론 우리가 글을 안 쓴다고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당장의 작은 마감들이나 이런저런 쪽글들을 줄일 필요는 있다, 그렇게 남는 시간과 체력을 큰 기획이나 한 권의 책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쪽글을 안 쓰고 큰 기획이나 한 권의 책에 집중하려면 먼저 큰 기획이나 한 권의 책이 상업적으로 터져줘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쪽글을 안 쓰고 큰 기획이나 한 권의 책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글을 쓸 때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건너뛰거나 비약하거나 반복하거나 스스로의 말을 취소하고 모순된 말을 하는 게 두렵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자꾸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움츠러들게 돼요.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정연 씨, 정연 씨가 올해 몇 살이에요? 
-서른아홉이요, 만으로…
-하, 우리 아빠보다 나이 많아! 
나는 깜짝 놀라 정지돈을 쳐다봤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먼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약이라는 감각은 인식의 너비와 관련되어 있어요. 반복이나 모순도 마찬가지죠. 만약 지적인 거인이 있다면 우리의 어떤 말도 비약이라거나 모순이라고는 느끼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제가 지적인 거인이 아니라는 사실 아닐까요. 뱁새가 황새 쫓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 모르세요? 
정지돈이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도 뭐라도 찢었네요…

그날 저녁 작업실로 돌아온 나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봤다. 얼마 전에 올해로 개봉 20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들었다. 시간 참 빠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볼 수 있는 곳을 검색했는데 온라인에는 서비스하는 곳이 없었다. 어째서?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작업실을 뒤지다 먼지 쌓인 디비디를 발굴한 것이다. 
오프닝. 인천의 만석 부두에서 교복을 입고 깔깔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는 다섯 명의 친구들. 이제는 일종의 유사 아날로그적인 감성마저 느끼게 하는 지글지글한 저화질의 디비디를 통해 그 장면들을 보는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20년 전에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더라? 모르긴 해도 엄청나게 공감하거나 몰입하면서 봤던 것 같지는 않다. 내 이야기라기보다는 여자친구들의 이야기, 서울 아닌 인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겠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순전히 내가 있는 우물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재미있게 봤고, 디비디로도 몇 번 더 봤을 것이며, 특히 모임 별이 작업한 사운드트랙 씨디는 닳도록 들었다.

하지만 중반을 향해가면서 영화는 내게 점점 낯설어졌고,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영화처럼 느껴졌다. 예전에는 그냥 흔들리는 청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친구들의 이야기? 라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계급과 주거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것도 노골적인 계급과 주거에 관한 이야기였어. 특히 지영의 집이 무너지고 경찰의 강압적인 태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선택하며 감옥에 들어가는 부분은 지금-여기의 상황에서도 곱씹어 볼 부분이 많을 것 같았다. 내가 곱씹어 보기에는 너무 큰 조각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집 앞 고양이 가족들에게 써보고 싶었지만 한 번도 쓰지 못했던 고양이 번역기 어플로 조부모의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은 지영의 품에 안겨 야옹야옹 우는 고양이의 말을 번역해보았다.

고양이: 기분이 좋지 않아요. 
고양이: 엄마 아빠는 어디 있어요? 


밤. 아내와 와인 마시며 TV 보다가 예전에 사놓았지만 당연히 읽지 않은 [씨네21]을 충동적으로 펼쳐들었다. ‘영화를 향한 질문들’이라는 기획으로 유운성과 김소영과 정성일의 글들이 두 호에 걸쳐 실려 있었다. 그중 김소영의 '영화의 피는 응고하지 않아 - <기생충>을 중심으로 쓴 영화의 (신)물질론'을 읽다가 번쩍!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액체 근대 사회에서는 “사회 같은 것은 없다”라는 마거릿 대처의 악명 높은 구호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 기정의 발언, “그 누구도 돌보지 마”가 번개 천둥을 불러왔다면”이라는 구절을 읽는데, 머릿속에 순간 번개 천둥이 쳤다. 움찔하며 놀라는 JD를 뒤로하고, 나는 급히 노트북을 열어 정지돈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한다.

금정연(V.O.): 저 역시 가끔은 깜짝 놀랄 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연결되는 걸 느낍니다. 그것들은 순간이지만 놀라운 형태의 연결성을 보여줍니다. 아니면 단지 제가 취했거나요. 그러나 의식은 그 자체로 소통할 수 없습니다. 연결은 내용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핵심을 빼놓는 행위입니다. 텍스트가 매순간 스스로 재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오늘 지돈 씨를 만나고 돌아온 후 제 머릿속에서는 21세기 첫 20년의 한국 영화사가 새롭게 쓰여졌습니다. 결론부터 말할게요. 지돈 씨, 박무석과 '불나비'는 잊으세요. 우리의 비디오 에세이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시작해 <기생충>에서 끝날 것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그렇다면, 나중의 나중은 어떨까요? 이것은 계급과 거주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집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길고양이를 자기보다 조금 형편이 나은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과 모략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리를 차지한 후 "그 누구도 돌보지 마"라고 말하는 것 사이의 거리에 대한 이야기, 김소영이 말하는 <기생충>의 큰 비=도시의 유동성=액체근대와 고양이의 액체성=청춘의 유동성의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이야기, 동시에 그것은 어느 소설가가 일간지의 지면을 통해 “나는 속으로 ‘공각기동대’ 실사 영화를 다시 찍는다면 세트를 만들 필요 없이 그냥 여기서 촬영하면 될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사이버펑크 전사가 아니므로 그 단지에 살면 틀림없이 불행해질 거라고 느꼈다”*라는 문장을 아무런 수치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쓸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크리스티앙 메츠가 말한 시네마의 실행, 적어도 실행의 한 시도가 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여기, 두 영화에서 생각나는 장면을 급히 쓴 인덱스카드를 스캔한 이미지 파일을 동봉합니다. 지돈 씨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두서없는 메일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무척 살고 싶습니다. 당신의 K정연

나는 발송 버튼을 누르고, 그리고 기다린다. 
정지돈의 답장을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가 출간되기를
충동구매한 존 그레이의 [고양이 철학]이 배송되기를
밝은 미래를
아마겟돈을
핵폭탄을
나는 늘 기다린다
come, come, come, nuclear bomb…*



*참고자료
[얼음 속을 걷다](베르너 헤어초크, 안상원 옮김, 밤의책, 2021) 
(*첫 문단 전체는 위 책의 서문과 1974년 11월 23일 일기의 일부를 변형한 것이다)
[영화의 환상성](장 루이 뢰트라, 김경온 긴김, 동문선, 2002)
(*알랭 게르브랑의 일화를 19쪽에서 인용했다)
[마운트 아날로그](르네 도말, 오종은 긴김, 이모션북스, 2014)
[참을 수 없는 가우초](로베르토 볼라뇨, 이경민 옮김, 열린책들, 2013)
[담배와 영화](금정연, 시간의흐름, 2020)  
(*임재철에 관한 일화를 149쪽에서 인용했다) 
[제텔카스텐-글 쓰는 인간을 위한 두 번째 뇌](숀케 아렌스, 김수진 긴김, 인간희극, 2021)
[I Seem to Live: the New York Diaries, 1950-1969: Volume 1](Jonas Mekas, Spector Books, 2020)
(*1950년 1월 1일 일기의 일부를 변형했다) 
'영화의 피는 응고하지 않아' (김소영, [씨네21] 1301호) 
[모든 것은 영원했다](정지돈, 문학과지성사, 2020) 
(*159쪽에서 연결과 재현에 관한 부분을 인용하며 인용자가 일부 변형했다) 
‘지금 무엇이 끝나고 있는 걸까’ (장강명, https://news.joins.com/article/24077719)
Morrissey, 'Everyday Is Like Sunday'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
로그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