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금련 김기영, 1981

by.정지연(영화평론가) 2020-08-14조회 1027
반금련 스틸
“<반금련>에 인육을 먹는 장면이 있지만 30분이 넘게 검열로 삭제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이어도>도 검열의 희생양인데 클라이맥스 부분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영화사에서 종종 덧붙여지는 수식어인 ‘저주받은’ 감독 혹은 걸작이라는 단어와 김기영은 잘 어울린다. 1919년생인 그는 비록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까지 엘리트 교육의 수혜를 받았으나 그가 영화인으로서 통과한 한국 근현대사는 처절하고 가혹했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 특히 그의 영화적 기량이 절정에 올랐던 1960년대부터 자행된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한국영화사에 돌이킬 수 없는 상흔과 수치를 남겼다.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김기영은 자칭 영화 기술자이자, 스타일리스트로서 한국영화사에 유례없는 괴작들 혹은 저주받은 걸작들을 만들어냈고, 이후 비평계에서는 그를 ‘검은 마성의 감독’이라고 상찬했다.
 

한국 영화사의 대표 걸작으로 손꼽히는 <하녀>(1960) 이후 김기영은 1960-70년대에 걸쳐 제법 상업적인 성공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1974년 그는 중국 장편소설 [금병매]를 바탕에 둔 영화 <반금련>을 1974년에 연출한다. 김포 일대에 세워진 거대한 오픈 세트장은 물론이고 정일성 촬영감독,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신성일, 김영애, 박암, 박정자 그리고 과감하게 기용된 신인 이화시까지 이 영화는 상업적 기획력(동아수출공사 제작)과 원작 [금병매]의 주요 캐릭터와 모티브를 과감하게 차용하고 비틀면서 김기영 감독 특유의 에로티시즘과 죽음, 멜로와 인간사에 대한 냉혹한 해부도를 펼쳐낼 작품이었다. 

그러나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위에 인용한 김기영 감독의 회고처럼, 영화 <반금련>은 외설과 폭력 등의 이유로 수차례 검열당국으로부터 반려되었고, 결국 영화는 7년이 지난 1981년에야 공개된다. 그러나 이때 공개된 버전은 무려 30분 이상 잘려나가며 훼손되었고, 심지어 오리지널 버전은 완전히 소실돼 버렸다. 비운은 김기영 감독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반금련>에서 주인공 금련으로 데뷔했던 배우 이화시는 김기영의 다른 작품인 <파계>(1974), <이어도>(1977), <수녀>(1979) 등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선보이지만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뇌쇄적이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영화사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반금련>은 그녀의 첫 데뷔작이자, 권력에 의해 좌절당한 이후 마지막으로 개봉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 <반금련>은 수년 전, 황무대 일족에 의해 멸문당했던 서문경(신성일)이 지방 현감의 권력을 등에 업고 소금전매업으로 부를 쌓아 복수에 성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복수극으로 그는 황무대의 재산은 물론이고 그의 두 아내인 반금련(이화시)과 이병아(염복순)까지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병아는 달아나버리고, 늙은 황무대에 성적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반금련만이 서문경의 애첩으로 들어가게 된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않는 금련은 갖은 계략과 성적 도발로 서문경의 사랑을 독차지하지만, 얼마 후 붙들려온 이병아에게 서문경이 마음을 빼앗기며 위기가 시작된다. 질투와 탐욕, 파괴적인 성적 에너지와 암투로 일관하던 반금련은 결국 음모와 계략, 권력과 사회적 제도의 칼날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으로 치닫게 된다.
 

김기영의 <반금련>은 원작인 중국 소설 [금병매]와는 확연히 다른 이야기구조와 캐릭터를 구축해간다. 원작은 오직 모티브로만 작동하며 김기영은 그 자신 특유의 영화적 세계를 펼쳐낸 것이다. 세트 안에 직조된 세계는 인간 세태를 응축하는 권력과 탐욕, 욕구와 공포, 삶과 죽음이 기묘하게 또아리를 튼 미궁과도 같으며, 그 안에 감금된 캐릭터들은 인간 본성의 동물적 에너지와 야만적 이성이 기묘하게 결합된 존재들이다. 남성들은 여느 김기영 영화 속 그들처럼 유약하고 기만적이며, 여성들은 성적 에너지를 자기 생존의 마지막 동아줄인양 처절하게 붙들고 있다. 김기영 감독이 일일이 디자인하고 배치했다는 중국 저택 공간의 복도와 밀실들, 그 공간들을 가로막는 무수한 격자 문양의 문들과 강력한 대비의 조명과 실루엣. 그 속에서 인물들은 경극 배우 혹은 중국 그림자극의 종이 인형처럼 인위적인 제스처의 연기들을 펼쳐 보인다. 특히 이화시가 연기하는 반금련은 남성들을 유혹할 때마다 기이한 손동작을 취하곤 하는데, 이러한 ‘제스처들’은 과히 김기영 모드라고 할만한 영화적 세계의 서명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배우들의 연기와 움직임들은 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쉬이 발견된다. 가령 이 영화가 제작된 1974년에 공개된 그의 또 다른 작품 <파계>에서 배우 임예진이 연기하는 비구니 ‘묘향’ 역시 매혹적인 외모로 법통을 이어갈 수행 스님 침애를 유혹하게 되는데, 그녀 역시 손의 제스쳐를 통해 성적 욕구를 암시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압권은 금련의 집착과 성욕을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으로 완성하는 김기영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마지막 시퀀스이다. <양산도>(1955), <이어도>(1977)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등에서도 강력하게 드러나는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증)는 이 영화에서도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충동)를 넘나드는 멜로적 사랑으로 승화된다. 본처(박정자)의 계략에 의해 목이 잘린 채 살해된 서문경은 훼손된 시신 상태로 석굴묘에 안치되는데, 이때 반금련은 본처의 지위를 그녀가 계승한다는 약속 하에 함께 매장되길 선택한다. 암굴에 시신과 함께 매장된 그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서문경에 대한 사랑의 광기 속에서 극기야 목 잘린 시신의 유령과 괴이한 정사를 나눈다.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김기영의 영화적 세계와 스타일은 동시대 일본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와 비견할만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가 유기적인 서사구조와 플롯 배치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성에너지와 욕정을 날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라면, 김기영의 성적 욕구는 타나토스와 마주하는 심리적 궤적이자 동시에 억압적인 사회에 짓눌린 남성성, 혹은 여성성의 권력과 쟁투를 암시하는 은유로서 작동한다. 김기영은 영화를 마치 인간을 해부하듯 세상의 표면을 가르고 그 안에 감추어진 복잡하고 소름끼치는 내면을 조명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또한 한 번도 영화를 배워본 적 없고, 오직 나만의 방법으로 만든다는 그의 주장처럼 그의 영화는 때로는 모순과 비약, 불균질과 부조화, ‘언캐니(uncanny, 두려운 낯섬)한 불쾌’와 그 이면에 공존하는 ‘낯선 것의 쾌감’이 공존한다. 표현주의적 스타일의 자의식과 인간 사회에 대한 해부학적 묘사, 에로스와 타나토스처럼 공존하는 양면성을 폭로하는데 가장 탁월했던 김기영의 작품은 그래서 한 쇼트 혹은 시퀀스 또는 캐릭터만으로도 영화 전체를 사로잡는 검은 마성이 매혹을 발산한다.  

“나는 철두철미한 기술자이지 작가 감독이 아니다. 작가 감독은 유현목이다. 난 영화 만드는 것을 사랑했고, 때로는 작품성이 있든 없든 간에 영화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자이다.” 한 인터뷰에서 김기영 감독은 자신을 ‘기술자’라 불렀다. 영화에 관한 애정으로 스스로 모든 것을 터득하고 발명하고, 완성해야만 했던 그러나 끝내 자신의 영화처럼 비극에 삶을 마감해야만 했던 한국 영화계의 독보적 거장의 인상적인 자기소개이자 비애이다.  

(* 인용된 김기영 감독의 인터뷰는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2007년에 개최한 ‘김기영 특별전’ 카탈로그에 수록된 내용에서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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