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성
Jung Il-sung / 鄭一成 / 1929  ~ 
대표분야
촬영, 편집, 음악
데뷔작품
지상의 비극 1957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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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영화판 (허철,정지영, 2011)
시대를 앞서간 여성 시네아스트, 홍은원 (유지은, 2003) 인터뷰
아름다운 인간 유영길 (, 1998)

주요경력

1944년 규슈 고쿠라 지역으로 피란, 그곳 소년단에 편성되어 야타 철공소에서 작업
1945년 12월 해방 후 시모노세키 항으로 옮겨감
1946년 2월 한국 입국
1947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입학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부산으로 피란
1951년 부산 임시 학교에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졸업. 졸업 직후 부산종합육군학교에서 훈련 후 소위로 임관
1952년 의병 제대 후 미 공보원 취직
1954년 공보원 대구 분소에서 정인엽 촬영기사의 제안으로 미 공보원을 퇴직하고 영화계 입문
1957년 <가거라 슬픔이여>로 촬영감독 데뷔
1961년 아시아영화재단의 주선으로 일본 유학.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팀과 함께 작업
1981~82년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1983~84년 서울예전전문대 강사 역임
1983~1984년 서울예술대학 강사
1985년 제8대 자문위원
1985~88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강사 역임
1987년 제9대 자문위원

1988년 올림픽 기록영화 총감독
1994~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1997년 한국영화촬영감독회 회원
1985년 2월 제8대 자문위원
1987년 12월 제9대 자문위원
1993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 수상
1993년 자랑스런 서울시민상
1998년 특별공로상
2007년 제2회 SAC청소년 모바일 영상제 심사위원장

기타정보

기타이름
마쓰무라 가즈나리, 松村一成
영화계 입문배경
어릴때 영화가 꿈이 아니었다. 엔지니어가 꿈이었다. 일제하에 태어나 해방, 분단, 군사, 쿠테타등 불우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 이 공보원 재직 당시 대학 선배였던 정인엽씨가 공군영화'출격명령'을 찍는다며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처음 영화와 접하면서 새로운 영상세계에 눈을 떴다. 김학성 촬영기사 밑에서 3년간 수습기사를 거친뒤 1957년 조긍하 감독의 '가거라 슬픔이여'를 시작으로 촬영감독으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
주요 영화작품
구름이 흩어질 때(1962,이봉래감독)
율곡과 어머니(1963,이종기감독)
순애(1966,박종호감독)
지하실의 칠인(1969,이성구감독)
홍콩의 마도로스(1970,최영철감독)
1971년 화녀
충녀(1972,김기영감독)
엄마결혼식(1973,조문진감독)
국회프락치(1974,권영순감독)
이중섭(1974,곽정환감독)
바보들의 행진(1975,하길종감독)
불꽃(1975,유현목감독)
유정(1976,강대진감독)
이어도(1977,김기영감독)
별들의 고향 속(1978,하길종감독)
과부(1978,조문진감독)
사랑의 조건(1979,김수용감독)
사람의 아들(1980,유현목감독)
만다라(1981,임권택감독)
만추(1981,김수용감독)
오염된 자식들(1982,임권택감독)
안개마을(1982,임권택감독)
길소뜸(1985,임권택감독)
황진이(1986,배창호감독)
감자(1987,변장호감독)
아다다(1987,임권택감독)
젊은 날의 초상(1990,곽지균감독)
장군의 아들(1990,임권택감독)
개벽(1991,임권택감독)
장군의 아들 2(1991,임권택감독)
장군의 아들 3(1992,임권택감독)
서편제(1993,임권택감독)
태백산맥(1994,임권택감독)
본투킬(1996,장현수감독)
아버지(1997,장길수감독)
실락원(1998,장길수감독)
침향(1999,김수용감독)
춘향뎐(2000,임권택감독) 등 다수
애착작품 및 사유
'내가 찍은 작품은 다 애착이 가고 또 다 실패 했다고 행각하는거지' 작품은 자기 자식이나 다름없다. 그 자식들이 다 잘될수는 없다, 잘 안된 자식도 있고, 잘된 자식이 있듯이.. 객관적으로 보았을때 보편성이라고 하는 것은 평가 받았던 작품, 또 화재가 되었던 작품(흥행)을 보통 대표작이라 한다. 젊을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실패작이 잘못된 자식이나 똑같다. 내가 왜 그때 열심히 못했나,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자식이 아니냐, 그래서 실패한 작품이 더 애착이 간다. 반성이 있기 때문에...
영화속 명소
자연 이라는 것은 아름답던 아름답지 않던 몇천년 동안 이어져 왔던 역사를 간직해 왔다. 그러나, 자연은 말이 없다. 말없는 자연을 말을 하게끔 만들수 없을까? 자연은 말을 할수 없지만 아픔을 절묘하게 찍어낼때 자연도 말을 한다. 우리 산천이 다 슬픔과 한이 담겨져 있고 아픔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 아름답다. '아픔을 안고 있는 자연처럼 아름다운게 없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유장한 롱쇼트와 롱테이크 기법의 어떤 작품이 되든 여러가지의 색깔, 앵글, 구도가 달라진다는 격이 있다. 격이란? '나 라는 마음이 대상이라는 마음을 찍어야 한다' 삶의 철학이나 사상이 작품속에 투영되는 것만이 예술로 살아남는게 아니겠나 싶다. 또한 영화의 스토리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굉장히 소중히 여긴다. EX)역사 현재 나타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시나리오구성) 나타나 있지 않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함으로서 작품에 힘을 실어준다.
수상내역(영화)
1970년 제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기술상 (지하실의 7인)/
1971년 제10회 대종상 영화제 촬영상 (화녀)/
1972년 제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기술상 (화녀)/
1974년 제13회 대종상 영화제 촬영상 (국회푸락치)/
1977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기술상 (가위 바위 보)/
1977년 제23회 아시아영화제 촬영상 (문)/
1978년 제17회 대종상 영화제 촬영상 (과부)/
1980년 제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촬영상 (사람의 아들)/
1981년 제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촬영상 (만다라)/
1982년 제21회 대종상 영화제 촬영상 (만추)/
1982년 제1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기술상 (만다라)/
1983년 제22회 대종상 영화제 촬영상 (안개마을)/
1987년 하와이 국제영화제 촬영상 (황진이)/
1988년 한국일보 연극영화상 촬영상 (감자)/
1988년 제2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기술상 (아다다)/
1991년 제29회 대종상 영화제 촬영상 (젊은 날의 초상)/
1991년 제12회 청룡영화상 촬영상 (개벽)/
1992년 제1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촬영상 (개벽)/
1993년 제31회 대종상 영화제 촬영상 (서편제)/
1993년 제14회 청룡영화상 촬영상 (서편제)/
1993년 제1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촬영상 (서편제)/
1993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
1994년 제5회 이천춘사대상영화제 촬영상 (태백산맥)/
1997년 제18회 청룡영화상 특별공로상/
2000년 제8회 이천춘사대상영화제 촬영상 (춘향뎐)/
2000년 제2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촬영상 (춘향뎐)/
2002년 제23회 청룡영화상 촬영상 (취화선)/
2002년 제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촬영상 (취화선)/
2002년 제10회 이천춘사대상영화제 춘사 탄생 100주년 기념 공로상/
2002년 제1회 MBC영화상 공로상/
2002년 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촬영상 (취화선)/
2002년 제1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
수상내역(기타)
1993년 자랑스런 서울시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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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간 마음의 창을 열어둔 촬영의 마스터 2017년 생애사 구술을 통해 만난정일성 촬영감독은 1957년조긍하 감독의 <가거라 슬픔이여>로 데뷔해 2006년임권택 감독의 <천년학>까지 50여 년 동안 영화 현장에서 활동했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1929년 2월 29일 일본 도쿄에서 출생했다. 도쿄 시나가 ... by.이정아(영화사연구소 객원연구원) 2018-03-20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정일성은 1929년 도쿄에서 출생했다. 도쿄 제 2공업학교를 거쳐 1951년 서울대 공대 기계 공학과를 졸업했다(영화평론). 전쟁으로 직업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공보원(USIS)에서 소일 삼아 촬영기사 일을 했다(말). 공보원 재직 당시 대학 선배였던 정인엽 촬영기사의 공군영화 <출격명령>(1954, 다른 제목: <돌격명령>)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6?25 전쟁 다큐멘터리 영화 <정의의 진격>(1951)을 찍었던 저명한 카메라맨인 김학성 촬영기사 밑에서 3년간 조수생활을 거친 뒤 1957년 조긍하 감독의 <가거라 슬픔이여>(1957, 원제: 지상의 비극)로 데뷔했다(영화평론). 두 번째 영화인 이봉래 감독의 <구름이 흩어질때>(1962)를 촬영한 이후 아시아영화재단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유학을 통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붉은 수염>의 제작에 참여(B카메라)하면서 일본의 제작기법을 배웠다(경향신문a, 주간조선).
정일성은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색체를 만들어 나갔다. 1980년 유현목 감독과 <사람의 아들>을 촬영하던 중 직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쉬고 있을 무렵 임권택 감독이 <만다라>(1981)의 촬영을 제안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정일성과 임권택은 평생의 파트너가 되었고 이후 태흥영화사의 이태원을 만나면서 <장군의 아들>, <태백산맥>, <서편제>, <취화선>, <하류인생> 등을 함께 만들며 ‘충무로의 황금트리오’로 불리었다(경향신문b, 세계일보). 정일성은 국내 최초의 촬영감독이기도 하다. 촬영기사란 용어가 일반적이었던 당시 <만다라>에서 국내 최초로 촬영감독이란 자막이 사용되었다(네이버캐스트).
1987년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성명서 발표에 참여했다가 영화계약을 파기당하는 등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88년에는 올림픽 기록영화 총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경향신문c). 영화계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촬영감독으로는 처음으로 1993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정일성은 한국의 서정성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영상미학의 대가로 추앙받고 있다.

* 참고문헌
세계일보 1999년 6월 21일자 15면.
완벽한 빛과 앵글 추구하는 충무로 고집불통 영화판의 영원한 젊은이 정일성 촬영감독,《주간조선》, 1995년 3월 23일 발행, 62~64쪽(KMDS).
경향신문a 1996년 4월 15일자 31면.
경향신문b 1996년 4월 18일자 31면.
경향신문c 1996년 4월 20일자 31면.
《영화평론 12호》, 한국영화평론가협회, 2001, 160쪽.
영화 촬영감독 정일성, 영상미학 우듬지의 열린 세계(대중문화의 대가를 찾아서 2),《말》, 민주운동언론협의회, 1995년 6월 발행, 202~207쪽(KMDS).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72)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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