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여성에 의한, 여성의 시선을 담은, 소외된 여성을 위한 영화

by.이화정(씨네21 기자) 2019-12-13조회 4,019
우리집 스틸
<우리집>

‘여성이라는 이유로’ 서울메트로의 공개채용 과정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도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수험생 최고은(가명)의 기사에 혈압이 올랐다. 취업 성차별 이야기의 불평등은 과연 언제쯤 정상화 될까. 이 이야기에 몇 해 전 만난, 스웨덴 영화계 양성평등 실천을 위해 헌신해 온 스웨덴영화기관(SFI)의 CEO 안나 세르네르의 말이 떠올랐다. 스웨덴 영화계의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만들어 가는 안나가 들려 준 이야기 중 하나는 남성 비율이 월등이 높은 오케스트라 단원을 뽑을 때 심사위원의 눈을 가리고 심사하자, 여성 남성의 비율이 50대 50이었다고 한다. 그간 많은 분야에서 당락이 ‘실력이 아닌 성별’로 좌지우지 되었다는 걸 점검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국영화계도 이 문제에 잔뜩 민감해져야 할 시기다. 비슷한 이야기를 한국 영화계에서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영화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체감 상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학교를 대표하는 작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남성을 의도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었다는 낯뜨거운 이야기도 들려왔다. 물론 의미있는 변화도 많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이장호, 장미희)에서는 100주년 기념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의 성비를, 남녀 50:50의 조건으로 못 박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모집 과정에서 연출 경력이 있는 여성감독의 수가 남성에 비해 부족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선발의 기회가 적은 수의 여성에게 부당하게 돌아간 것일까. 다양성과 평등을 제재 없이도 확보하기까지는 이런 ‘의도적인’ 조건의 개입, 쿼터의 도입이 당분간 필요하다고 본다. 
 

<메기>

올해 한국영화계는 여성감독의 진입이라는 측면에서는 유의미한 해다. 2003년을 <살인의 추억>(봉준호)과 <올드보이>(박찬욱), <장화, 홍련>(김지운) 등 색깔도 장르도 다른 감독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그때를 한국영화의 뉴웨이브, 르네상스기라고 부른다면, 2019년은 ‘여성감독의 뉴웨이브’라는 말로 설명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윤가은 감독이 <우리들>에 이어 차기작 <우리집>을 발표해 ‘윤가은 동네유니버스’의 세계관을 확장해 보여주어 관객의 호응을 얻었으며, 김보라 감독의 <벌새>가 수상행진을 이어오고 있고, 독립 장편 극영화에서 지난 2008년 <똥파리>(양익준)가 세운 흥행 기록 12만을 넘은 13만 관객을 얼마 전 돌파했다는 것. 이옥섭이라는 펑키하고 재기발랄하면서도 세련된 연출력을 가진 작가의 등장을 확인하는 기회이자,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을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묘사하는 장편 <메기>가 극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 한가람 감독이 <아워 바디>를 통해 여성의 욕망을 기괴해 보이고, 손가락질 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욕망을 과감히 스크린을 통해 전개해 나갔다는 것, 그리고 무수한 범죄액션 장르물에서 피해자로 ‘스쳐지나가고 말았던’ 여성들의 상처를 유은정 감독이 <밤의 문이 열린다>는 판타지 형식으로 어루만져 주었다는 점 또한 이 사회의 절반인 여성에게 감각하게 살아온 우리를 자극하는 강한 촉매제가 되어 주었다. 이처럼 여성감독의 약진을 발견할 수 있는 올해의 시작은 개봉시기로 볼 때 안주영 감독의 <보희와 녹양>이었는데, 엄마의 연애를 두고 혼란에 빠져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성장해 나가는 소년의 성장사의 기술 과정이 얼마나 무해했는지를 돌아본다면, 그래서 극장에서 과도한 폭력이나, 여성을 향한 비뚤어진 묘사로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도 할 말을 하는 영화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즐거운 기회였다. 

확실히 올해는 여성감독의 작품을 꼽자고 해서 꼽았다기보다, 좋은 작품을 손꼽고 보니 그 작품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나 역시 여성 감독의 좋은 작품을 극장에서 저널리스트이자, 관객의 위치에서 꾸준히 ‘수확’하는 풍요를 맛보고 있는데, 아마도 이 성과는 이들이 만들어 곧 도래할 ‘여성 창작자 빅뱅’의 시기의 서막에 불과해 보인다는 점에서 내년이 올해보다 흥미진진하고, 또 그 다음해 역시 더 흥미진진해 보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최다 수상작 2편은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둘 모두 여성 연출자로, 이런 기대를 이미 현실화 하고 있다. 
 

<아워 바디>

물론 ‘남성감독의 영화’라는 말이 따로 언급되어 오지 않은 사회, 남성감독 연출의 영화는 ‘영화’라 명명되는 에서 이들 모두의 각기 다른 색깔의 영화를 모두 ‘여성영화’의 카테고리로 명칭 하는 건, 나 역시 분류법에 우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워 바디>를 여성영화의 카테고리로 분류하는데 대해 한가람 감독이 “얼마나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가 없었으면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이렇게 집중을 하나 싶더라.”는 말을 한 건 그런 ‘부당한’ 시선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의도적으로 명시화 해주어야 하고 호명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껏 여성이 스크린 안에서 피해와 억압 받고, 과소평가 받았던 건 결국 여성을 정당하게 바라보고 기술해 줄 평등한 ‘눈’이 턱없이 부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영화계에 여성 캐릭터가 개발되지 않고 도외시 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더 많은 창작자를 기다리고 있으며, 나 역시 ‘숨은’ 그들을 조명할 것을 다짐한다. 

다행히 이 문제에 관해서 신경을 곤두세울 ‘꺼리’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없이 전투적이 되는 시기다. 대표적으로 여성이 겪어 온 이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 말하는 김도영 감독의 <82년생 김지영>(2019)이 ‘편향된 시선’이라는 이유로, 일부 네티즌들에게 개봉도 전부터 공격을 당해 왔다. 영화 보기 전 낮은 평점과 시사 후 높은 평점을 비교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고, SNS에서는 이 작품의 부제를 ‘전쟁의 서막’이라고 명명하며, 우리를 갈라놓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더 공고해 질 위기에 처해있다. 개봉 첫날 1위로 관객의 호응이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 호응이 유의미한 수치로 집계된다면, 여성에 의한, 여성의 시선을 담은, 소외된 여성을 위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흐름을 더는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한쪽의 성이 아닌, 다양한 성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사회이자, 영화 역시 그 다양한 사회의 형태와 결을 담는데 게으르지도, 주저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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