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황남 - 제작

by.조준형(한국영상자료원 연구부) 2012-10-11조회 2,999

물론 상당한 과장이 포함된 표현이지만, 신필름은 한때 ‘한국영화계의 절반’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60-70년대 한국영화 산업에서 중요한 제작사였다. 신필름은 신상옥이라는 걸출한 감독이자 제작자와 뗄 수 없는 1인회사 시스템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큰 회사가 한 사람만으로 운영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이 거대한 회사를 떠받친 주요 인물 중의 한 명으로 황남을 들 수 있다. 그는 대체로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신상옥의 가장 오래된 사업 파트너이자 신필름의 창업공신이었다.

황남(본명 황의식)은 1921년 7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하시던 식당에서 임선규의 잔심부름을 하며 연예계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1941년 현대극장에 입단하여 유치진 문하에서 단역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해방 이후 최인규가 연출한 <희망의 마을>이라는 단편영화와 <파시>의 주연을 맡았다. 그는 고려영화사의 전속 배우는 아니었으나, 최인규와 상당한 친분을 가졌던 것 같다. 최인규의 문하였던 홍성기의 <여성일기>에서 주연을 맡은 것은 그때의 인연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기간 그의 평생의 영화 동지인 신상옥을 만나게 된다.

데뷔작인 <악야>를 찍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신상옥은 고려영화사에서 1년 남짓의 도제생활과 두어 작품만을 경험한 채 독립한 신인 중의 신인이었다. 그런 신상옥에게 황남은 선배이자 동지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악야>의 원작소설을 추천한 것도 황남이었다고 하는데, 그는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이때 그와 신상옥은 영상예술협회라는 제작 조직을 만들었고, 이후 이는 서울영화사와 신상옥푸로덕슌, 신필름으로 이어지는 신상옥 영화사의 밑거름이 된다. 

1955년 <>과 1956년 <격퇴>의 주연을 맡았으나 신상옥이 점차 성공하면서, 그를 조력하는 기획자로 변신한다. 그는 전무로 활동하며 <로맨스 빠빠>, <성춘향>, <연산군>, <>, <빨간 마후라> 등 초중기 신필름의 거의 모든 주요작들에 기획자로 이름을 올린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영화산업사에서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본격적으로 단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신필름 창작의 산실과 같은 기획실이 회사 내에서 뚜렷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 ‘기획자’였던 황남의 공일지도 모른다. 그는 대외활동을 꺼려하는 신상옥을 대신하여 신인 감독들을 끌어들이고 배우를 픽업하며, 시나리오 작가들을 접촉하고, 영화잡지나 일간지의 기자들을 관리하는 신필름의 대외창구기도 했다. 그는 단순한 신필름의 임원이 아니라 창업공신이었고, 지분 30%를 가진 최대 주주 중 한명이었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1966년 그는 새한필름이라는 새로운 영화사를 차려 신필름으로부터 독립한다. 신필름을 나온 이유에 대해 그는 “넘의 회사에서 주권 없이 부사장이고 전무고 하는 건 소용없는 거야. 주식회사 주권보다도 자기 말이라믄 다 듣는 권리가 있어야 돼”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불만은 신상옥이 자신의 형인 신태선을 대표이사로 영입한 이후 신필름이 점차 신상옥과 최은희 일가를 중심으로 한 가족기업이 되어가는데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한필름의 탄생에는 신상옥의 의도 역시 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국영화 제작계는 신필름을 중심으로 한 메이저기업화 정책의 찬성파와 중소영화사 파로 나뉘어져 있었고, 신상옥은 당시 숫자가 많은 중소영화사로부터 공격을 받아 영화업자협회장을 사임한 시점이었다. 이후 신상옥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영화사들을 만들어 영화업자협회와 분리된 한국영화제작자연협합회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새한필림이 창립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즉 새한필림의 창립은 자신의 회사를 갖고 싶다는 황남의 욕망과 자신에게 우호적인 영화사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하는 신상옥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초기 새한필름은 제작쿼터를 교환하는 등 신필름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이 관계는 이후에도 이어졌는데, 예컨대 1969년 그는 신필름이 소유했던 허리우드 극장의 대표를 맡은 일도 있다. 

황남은 새한필름을 통해 1966년 정소영 감독의 TV드라마를 영화화한 박종호 감독의 <순애>를 창립작으로, <돌아온 왼손잽이>, <열아홉 순정>, <총각선생> 등 70여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한국영화산업이 극심한 불황기로 접어들자 새한필름을 접고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2008년 작고했다.
 
/글: 조준형(한국영상자료원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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