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by.이영재(영화연구가) 2022-03-22조회 5,500

1. 1973년 싱가폴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영화제를 참관하고 돌아온 신상옥은 위기의 한국영화가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하지 못하면 재생할 길이 없다”고 일갈한다.1) 그에 따르면 “몇 년 전만해도 일본영화와 함께 정상을 달렸던 한국영화”가 “전근대적인 작품으로 관객으로부터 유리되는 인상은 참으로 영화산업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한국을 제외한 9개 출품국의 영화들이 한결같이 “액션과 섹스물로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제작된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 좋다고 출품한 작품은 기복이 없는 너무나 평범한 작품”이라는 데에 있다. 그는 “오늘의 관객은 평범하고 짜증이 나는 영화를 보려는 것이 아니고 액션이나 청춘이 불타오르는 충족 표현을 보려는데 있는데 우리 여건은 이러한 것들을 제작하는데 너무나 많은 제약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며, “빠른 시일 내에 해외 진출의 돌파구를 열어줘야 한다”고 강변한다.

신상옥이라는, 1960년대 이후 한국영화 산업의 최전선을 담당했으며, 공인된 국제통이 전하는 이 진단이 흥미로운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액션이나 청춘이 불타오르는 충족표현을 보려”는 “오늘의 관객”이라는 범주.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적어도 이들이 1960년대 신필름의 기틀을 다지는 기폭제가 되었던 영화 <성춘향>(1961)이 구성해냈던 관객들, <연산군> 시리즈(1961-1962)와 쇼브라더스와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달기>(1964), <대폭군>(1966)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터클 시대극이 소구했던 그 관객이 더 이상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한국영화 산업은 주지하다시피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였다. 여러 위기의 원인 중 가장 먼저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은 다른 지역들에서 그러한 것처럼 TV의 급격한 보급에 따른 절대 관객수의 감소였다. 1969년 절정에 달했던 영화관객수는 1972년에 이르면 2/3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1975년에는 전성기의 1/10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신상옥의 언급이 있던 1973년 TV 수상기 보급대수는 100만대를 돌파했다. 이와 같은 수치가 보여주는 것은 단지 영화관객의 감소라는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관객구성체라고 할만한 것이 완전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에 따라 영화의 위상 또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장년 관객이 TV로 대거 이동한 이후 이 자리를 채운 것은 젊은 관객들이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여파는 도시 저임금 노동자라는 새로운 관객층을 급부상시켰으며, 서울과 같은 도시 내부의 공간 재편은 이 관객들이 점유하는 새로운 공간의 창출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다면 “액션이나 청춘이 불타오르는 충족표현을 보려”는 “오늘의 관객”이란 바로 이러한 관객에 다름 아닐 것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홍콩-일본을 잇는 강력한 커넥션의 구축자이자(아시아영화제는 바로 신상옥이 이 국제적 커넥션을 만들어냈던 중요한 장이었다), 동시대 누구보다 민감한 국제적 감각의 소유자였던 신상옥은 영화의 위상 변화를 절감하고 있었다.

두 번째, 그런데 이 위상의 변화, 더 정확히 말하면 관객의 변화에 따른 이 위상 변화란 일국 레벨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의 영화는 액션과 섹스물로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전언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한국영화가 얼마나 시대에 뒤처져 있는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액션과 섹스’라는 취향을 공유하는 국경을 넘어선 공통의 관객이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경을 넘어선 공통의 관객. 유신시대 한국이라는 이 극도로 폐쇄적인 장소에서조차도 이 공통 관객의 형상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이 연재에서도 다룬 적 있는 196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무협영화, 쿵푸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1973년의 이소룡 붐을 극적인 전기로 삼아 지역을 막론한 장사치들의 이합집산으로 만들어진 소위 홍콩식 권격영화들의 광범위한 유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례, 어떻게 여기에 섹스가 결합되는가.

신상옥의 1976년 영화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는 한 시기의 가장 마이너하지만 동시에 ‘초국적’으로 소비되었던 한 장르의 ‘지역적’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 장르는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하위 장르 중 하나인 여감방 영화, WiP(Women in Prison)로 불리웠던 영화인데, 간단히 말해 남자 간수들과 여자 죄수들로 구성된 감옥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들의 ‘진정한’ 볼거리는 (문자 그대로) 헐벗은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라고 할만한 것이다. 감옥이라는 이 절대적 위계의 공간은 집단 누드, SM, 윤간, 레즈비언 성애까지 ‘자유자재’의 성적 표현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효율적인 공간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제스 프랑코, 잭 힐, 게리 드 레온 같은 이름들이 ‘악명’을 떨치고 있던 이 장르를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처음으로, 가장 창조적인 방식으로 흡수해온 것은 일본이었다. 1972년 일본에서 <The Big Doll House>(잭 힐)가 <잔혹여형무소>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어 인기를 모았다. 이미 포르노액션이라는 섹스와 폭력이 결합된 장르를 열정적으로 실험중이던 도에이는 재빨리 시노하라 토오루의 만화 『사소리』의 영화화를 서둘렀고, 그 결과 만들어진 <여수 701호-사소리>(이토 슌야)는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이 영화는 곧 시리즈로 이어졌으며(<여수 사소리-제41잡거방>(1972), <여수 사소리-짐승의 방>(1973)), 주인공 카지 메이코(梶芽衣子)는 일약 도에이의 간판 여성스타로 등극하였다. 이 영화는 남자의 배신, 강간, 감옥 수용, 탈출, 복수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여감방 영화 스토리를 변주하지만 또한 남자로부터의 배신이라는 사적인 원념으로부터 시작하여 체제에 대한 원념으로 나아가며(이 남자는 경시청 간부이고 여타의 ‘남자들’ 또한 모두 국가 권력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맺고 있는 자들이다) 격렬한 젠더대립과 체제 전복에의 의지로 충만해 있다. 그럼으로 <사소리>는 여감방영화라는 공통 장르에 기대는 동시에 우먼 리브(women’s liberation)와 국가 폭력에 대한 대항 폭력이라는 일본의 포스트 68적 주제를 정확히 반영해낸다.

두 번째로 이 지역에서 등장한 WiP 영화는 1973년 홍콩 쇼브라더스가 제작한 <여집중영 女集中營>(퀘이치훙)이었다. 일본군 수용소에서 ‘다채로운’ 인종의 여성 수감자들이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성적, 육체적 착취에 신음하는 이 영화는 곧 아시안 WiP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한국에서 역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2. 1973년, 신상옥이 세계적 동시성을 호소했던 그해 말 신프로덕션은 ‘합작’ 타이틀을 내걸고 가장 뻔뻔스럽고, 가장 노골적이며,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갖게 될 한 편의 영화를 시장에 내놓았다. <여감방>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한 <여집중영>은 1974년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네 편의 영화 중 한편으로 기록되었다.(참고로 말하자면 1974년의 최대 히트작은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은 갱신한 <별들의 고향>(50만)이었으며, 나머지 두 편은 영화진흥공사가 제작한 <증언>과 <아내들의 행진>이었다. 당시의 한 신문기사는 국책영화 <증언>과 <아내들의 행진>을 제외한다면 10만을 넘은 한국영화는 <별들의 고향>과 <여감방>에 불과하다고 한탄하고 있다.)

한국어 더빙을 거친 <여집중영>은 정말로 극적으로 ‘한국영화’ <여감방>으로 탈바꿈하였다. 당시 한국 개봉 버전을 유추할 수 있는 심의대본(영상자료원 소장)에 따르면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인’ 독립군 김대만은 죽기 직전 ‘조선인’ 아내 정숙에게 군자금의 은닉장소를 알려준다. 정숙은 기독교 병원의 백인 여간호사들과 함께 일본군이 세운 여자 수용소로 끌려가는데, 이곳은 상시적인 능욕과 때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문, 잔학한 일본인 여장교에 의한 레즈비언 강간을 포함한 집단윤간이 횡행하는 장소이다.(이 장면들이야말로 이 영화가, 이 영화를 포함한 여감방 영화들이 진정 보여주고 싶어하는 볼거리라는 점에 주의하자.) 여자들은 살기 위해 탈출을 꿈꾸고, 위장 일본군 장교로서 은밀히 작전을 수행중인 ‘박대령’이 그녀들을 돕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가 위의 설정을 믿을만하게 만들어줄 어떤 장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집중영>→<여감방>으로의 이동이 진정 흥미로워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먼저 이 영화의 ‘조선인’ 등장인물이라고 설정된 자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중국인’으로서의 그들의 표식을 전혀 감추지 않는다. 중국 복장의 이들은 중국 가옥에서 살고 있다. 한국-홍콩 합작 프로젝트를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얼마나 ‘한국영화’로의 전이에 무심했는가는 배우 로례의 존재로부터도 확인가능하다. 일단 ‘박대령’으로 기술되어 있는 그는 이미 한국 영화시장에 <금연자>(한국 개봉제목: 심야의 결투)와 <용호투>(한국 개봉제목: 용호의 결투), 그리고 <철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죽음의 다섯 손가락>으로 익히 알려진 홍콩배우였다. 이 이야기는 이 영화의 표면으로부터 그 어떤 ‘한국성’ 혹은 ‘한국성’의 위장 따위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당시 본격화되기 시작한 소위 ‘위장합작’ 영화들의 거개가 그러한 것처럼 이 영화 또한 몇몇 한국인 배우들의 존재로 아슬아슬한 합작의 암묵적인 최저 조건에 부합하려고 한다.(이 영화에는 고상미, 나하영 등의 한국인 여배우들이 출연한다.) 그러나 반라의 학대받는 여성들의 육체 중 하나로 기입되어 있을 뿐인 그녀들의 국적이 한국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여집중영>→<여감방>이 한국영화로의 전이에 이토록 무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명하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여기에 무심하기 때문이다. 중국인인가, 한국인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간악한 일본군이라는 적이며, 이 공동의 적 앞에서 벌거벗은 채 학대받는 여성들은 하나로 묶인다. 심지어 백인 여성들 또한 오로지 벌거벗은 육체로 다채로운 육체적, 성적 학대를 견디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인종적 위계 혹은 차이도 없이 학대받는 ‘아시안’ 여성들과 하나가 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간악한 일본군이라는 적또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설정을 믿을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한국과 홍콩 양쪽의 공통된 민족적 공분일 터이지만, 생사여탈권을 쥔 이 절대악의 형상은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익숙한 것이다. 이를테면 70년대식 WiP 영화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러브 캠프 7 Love Camp 7>(1969)은 나치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사 Ilsa> 시리즈로 대표되는 1970년대 내내 이어질 나치 수용소 배경의 WiP 영화, 이름하여 나치 익스플로이테이션의 효시가 될 이 영화는 나치 수용소에 끌려간 여성 유태인 박사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잠입한 연합군 여성요원을 중심으로 수용소의 여성 수감자들이 겪는 능욕과 고문, 집단윤간, 새디스틱한 레즈비언 섹스를 그리고 있다. 요컨대, 이 영화들에서 배경이란 다채로운 방식으로 학대받는 여성들이라는 진정한 볼거리를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물론 이 볼거리는 국제적으로 순환하는 동시에 각각의 지역적 맥락이 부여하는 노골적인 성적 판타지와 결합한다. <여집중영>→<여감방>의 최대 볼거리가 기독교 병원의 간호사들로 설정된 백인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능욕이라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이에 대한 가장 뻔뻔스러운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채로운 육체적, 성적 학대의 대상이 된 이 벌거벗은 백인 여성들의 존재가 아시안 남성들에게 가져다주었을 노골적인 인종적, 젠더적 쾌감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3. 어쨌든 <여감방>의 성공은 아마도 이 시기 신상옥을 가장 고무시켰던 사건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기에서 홍콩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공통 관객’에 대한 확신을 얻은 것 같다. <여감방>의 히트 이후 신상옥은 곧바로 신프로덕션 제작의 <혼혈아 쥬리>를 일본인 감독을 초청해서 완성, ‘여감방 시리즈 제2탄’으로 개봉했으며, 그 스스로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를 만들었다. <여수 407호> 시리즈는 ‘액션과 섹스’라는 공유 트랜드에 대한 신상옥의 확신이 어떤 형태를 얻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만주국의 수도 신경. 간호사 강희는 의사 하윤과 약혼한 사이이다. 어느날 밤 그들의 병원에 강희의 오빠 동민이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실려온다. 마침 강희가 일본군을 따돌리기 위해 나간 사이 유격대원인 동민은 금궤가 묻힌 장소를 하윤에게 알려주고 죽는다. 강희와 하윤은 부상당한 다른 유격대원들을 치료하기 위해 산에 오르고, 하윤은 강희에게 관동군 군의에게 가서 약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약을 구해 돌아오자 유격대는 일본군에게 일망타진당한 상태. 강희 또한 어느날 밤 쳐들어온 네 명의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 중 한명을 가위로 내리꽂은 강희는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강제노역과 여자들에 대한 학대가(왜인지 이 학대받는 여죄수들 중에는 금발의 백인 여죄수도 끼어 있다) 만연한 이곳에서 유일하게 조선인 소장만이 여죄수들에게 온정적이지만, 이곳의 실권은 일본인 부소장 가토가 쥐고 있다. 가토의 노골적인 성적 착취를 견뎌내는 강희에게는 이곳에 같이 들어온 춘자만이 유일하게 마음을 열 상대이다. 그러던 어느날 옛 동료 하연이 이곳에 새로 수감된다. 강희는 하연으로부터 하윤이 오빠를 죽이고, 혼자 금궤를 독차지하기 위해 일본군과 밀통하여 유격대를 몰살시켰으며, 이제 그 모든 일을 도왔던 하연마저 만철 총재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버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복수를 결심한 강희는 호시탐탐 감옥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남자의 배신-강간-감금-탈출-복수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구조는 WiP 영화의 한 전형이기도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사소리> 시리즈의 반복이다.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가(이 두 영화는 주인공 강희 역을 맡은 홍콩배우 엽영지와 가토 부소장 역의 장패산의 스케쥴 때문에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 신상옥이 <사소리>를 강력하게 참조하고 있음은 <속 여수 407호>에서 <사소리>의 화재 장면이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는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적극적인 참조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여수 407호>에서는 <사소리> 시리즈의 저 격렬한 젠더 대립과 체제전복적인 폭력이 거의, 전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영화의 배경이 식민지 시기이며, 그럼으로써 <여집중영>이 그러한 것처럼 절대악으로서의 일본, 일본인이라는 설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설정의 결과 적은 민족적으로 ‘외재화’되고, 체제전복의 폭력적 열망은 사라진다. 아직 오지도 않은 ‘국가’를 어떻게 ‘전복’할 수 있겠는가. 여자를 배신한 남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과 내통한 자, 독립군을 밀고한 자, ‘밀정’이며 이것이야말로 그가 악당인 이유이다. 이 악당을 제외한다면 ‘한국인’ 남성들은 정말로 세심하게 그들의 윤리적 지위를 보호받는다. 그들은 정의로운 독립군이거나, 나라가 없음을 통탄하는 인정많은 조선인 소장이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이 조선인 소장일 것이다.(의미심장하게도 그를 따르는 유일한 부하는 중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캐릭터가 흥미로운 이유는 내러티브의 전개 속에서 그가 전혀 ‘무능’하기 때문이다. 이 조선인 소장은 공정한 ‘법’에 기대어 이 여감방을 정의롭게 운영하고 싶어하나 법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악독한 일본인 가토 때문에 빈번히 좌절에 이른다. 그는 내러티브의 전개상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캐릭터의 존재 이유를 내러티브 내에서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 이유는 1976년 한국이라는 영화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 긴급조치의 시대에 등장한 이 공정한 공권력에 대한 기대, 그러나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이 형상은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1970년대의 한국이라는 ‘리얼리티’를 담보하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이 존재는 마치 동시대의 한국 액션영화가 태권도라는 애매한 기표로 위장하고, 반일/반공의 서사들로 최소한의 정당화 기제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이런 류의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최소한의 장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는 곧 홍콩에서 <老虎嶺女子監獄 1, 2>로 공개되었으며, <Girls in the Tiger Cage>/<Revenge in the Tiger Cage>라는 제목의 ‘언컷’ 버전으로 전세계에 유통되었다. 이 유통과정까지를 포함한다면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는 섹스와 폭력(종종 이 둘의 결합)이 낳은 전지구적인 영화 네트워크 속에 어떻게 한국산 영화가 개입해들어갔는지는 보여주는 유감없는 사례이다.

4. 1970년대 한국에서 만들어진 <여수 407호>가, <사소리> 시리즈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준 성정치와 전혀 무관한 지점에서 성립되고 있었다면, 30년 만에 한국에서(즉, 1990년대를 통과한 이후의 한국에서) <사소리> 시리즈에 대한 어떤 응답과 마주하는 것은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2005)는 아마도 WiP 영화라는 관점에서만 보자면 여기에 대한 가장 진지한 장르적 성찰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시네필’ 박찬욱은 <사소리> 시리즈를 경유함으로써, 이 장르가 보여준 성정치를 말 그대로 동시대적 차원에서 구현해내었다. 동시에 공통장르로서의 WiP를 창조적으로 전유해온 이 사례는 한국영화가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해나갔는가에 관한 하나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
1) 「亞洲영화제를 보고, “邦畵제작에 새 돌파구를”」, 『경향신문』, 197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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