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수프와 이데올로기, 2021

by.조혜영(영화평론가) 2023-02-07조회 6,402

재일 교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이 <디어 평양>(2005)과 <굿바이 평양>(2011)에 이어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개봉하면서 가족 3부작을 완성했다. <디어 평양>이 조총련계 간부로 일한 부모님, 특히 일제식민지, 한국전쟁, 냉전이라는 탈식민적 역사를 통과하며 자신의 신념을 형성해온 아버지와 그의 행보를 향한 양가적 감정을 다뤘다면, <굿바이 평양>은 평양에 사는 조카 선화를 중심으로 그들 가족의 일상을 친밀하게 보여준다. 최근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어머니의 사적 역사를 다룬다. 세 영화는 양영희 감독이 그의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사적 영화인 동시에 남북한과 일본을 둘러싼 탈식민적 역사에 대한 정치적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영화는 다채로운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양영희 감독은 고집스럽고 냉철한 카메라로 거침없이 가족의 친밀한 초상을 그려낸다. 그의 카메라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가족들을 역사 속 한명의 주체로 인정하며 그 선택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양영희 감독의 부모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일본에 와 결혼하고 오사카에 정착했다. 양 감독의 아버지는 일본의 차별을 온 몸으로 체감했고, 그때 재일 조선인들에게 관심 갖고 지원을 해준 북한의 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조청련 간부로서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더 나았던 북한으로 세 아들을 보낸다. 양영희 감독도 어린 시절 조총련계 학교에서 조국 북한에 충성해야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양영희 감독은 성인으로 성장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면서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오빠들을 북한에 보낸 아버지를 원망한다. 오빠들이 북한에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어 평양>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적응에 힘들어하는 오빠들에 대한 애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양영희 감독은 끈질기게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버지는 비극적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고 그때마다 자신과 가족에게 최선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해왔다. 평양은 이전에는 자신의 신념의 기반이 있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가족들이 사는 장소로 고향 같은 곳이다. 양영희 감독은 어쩌면 카메라를 매개해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한다. 아버지도 카메라가 있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마음으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표현한다. 카메라의 매개는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장치가 되며, 여러 감정이 실린 가족들의 얼굴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굿바이 평양> 역시 북한을 다룬 어떤 영화보다도 더 친밀하고 애틋하며 솔직한 카메라를 매개해 교육받고 공인된 얼굴 이면의 다른 북한 주민들의 얼굴을 포착한다. 관객들은 모두 선화가 자신의 꿈을 이루길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 작품인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고집스러운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서 그리고 일본과 평양의 가족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어머니는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데 몰두했던 아버지 대신 가족 경제를 도맡아 오다시피 했다. 양영희 감독은 제주 출신인 어머니가 일본에 건너오게 되고 조선국적을 택하게 된 이유를 듣게 된다. 어머니가 조선국적을 택한 건 단순히 아버지를 따른 것이 아닌 그의 선택이었다. 어머니는 십대 시절 제주 4.3사건을 겪게 된다. 그녀의 약혼자를 포함해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어머니가 살던 일본으로 동생들을 데리고 목숨을 걸고 밀입국해 오사카로 넘어오게 된다.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라면 치가 떨렸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체에 각인된 분노와 불안이다. 그래서 딸인 양영희 감독에게도 4.3 사건에 대해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양영희 감독은 그제야 어머니가 자신의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내고 조총련 간부로 오래 일하고 나이 들어서까지 자신의 생활비를 쪼개 돈과 선물을 평양에 있는 가족으로 보내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들과 조카 선화 모두 한국 근대사의 비극 속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며 용감하게 생존해온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이해는 곧바로 역사에 대한 이해가 된다. 영화는 어머니가 4.3 사건을 기억해 내고 구술하는 상황과 양영희 감독이 결혼하게 될 일본인 남편 카오루를 맞이하고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병행해 보여준다. 가족이 되고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딸이 결혼하길 바랐지만 일본인 사위는 안 된다고 했던 어머니는 어떤 거부감도 없이 카오루를 친절하게 받아들이고 카오루는 그런 어머니를 알뜰히 보살핀다. 엄청난 양의 마늘이 들어간 어머니의 삼계탕에 반한 카오루는 그 비법을 전수받는다. 어색함과 이념적 차이, 역사적 장벽은 깊고 따뜻한 국물 속에서 녹아내린다.

양영희 감독은 3부작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가족 사이의 갈등과 차이를 어떻게 대면할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어머니가 사위 카오루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일본의 차별을 다 이해하고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4.3 재단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해서 자신의 애인과 친척들을 위협하고 죽였던 한국을 모두 용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야 자신이 4.3사건 2세대라는 것을 알게 된 양영희 감독도 어머니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심지어 어머니는 얼마 후 노환으로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간다. 그 옆에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어머니의 슬픔과 분노, 불안을 포착하려는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가 있다. 제주 4.3 기념관을 방문해서도 어머니는 제주에서의 기억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그의 얼굴은 피곤하고 때때로 무표정하다. 그러나 양영희 감독은 어머니에게 말 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기록하는 것이 그의 시선이라는 것도 숨기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카메라가 지나치게 밀어붙이고 집요해 고독하다는 느낌도 든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개봉한 후 양영희 감독이 방북금지를 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실제로 타자를, 특히 가족을 이해하려는 카메라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해하려는 노력에 있어서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것이 아무리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외면당한다 해도 말이다. 그렇게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는 영웅적인 면모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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