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정동 혼자 사는 사람들, 2021

by.조혜영(영화평론가) 2022-03-15조회 5,905

홍성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혼자 사는 사람들>의 제목과 영화 전반부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1인 가구가 많아진 시대의 외로움과 소통의 어려움을 다룬 영화라고 판단했다. 홍보에서도 ‘저마다 짊어진 1인분의 외로움’이라는 문구를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하는 삶이나 진정한 소통을 강조하는 결론으로 향하게 될 것으로 어림짐작 했다. 그러나 나의 섣부른 추정은 들어맞지 않았다. 혼자 살기와 고독사가 주요 소재이긴 하나 이 영화가 보다 중점을 둔 질문과 답은 ‘우리는 어떻게 진실로 혼자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는 각자의 실존을 감당할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가’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인물이 혼자 살고,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고, 심지어는 혼자 죽는다. 그러나 영화는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과 혼자 존재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혼자가 편한 주인공 진아(공승연)는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며 벽을 친다. 그런 그에게 원치 않게 자꾸 말을 거는 이들이 생겨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혼자가 된 아버지는 엄마 휴대폰으로 자꾸 전화를 걸어오고, 옆집 남자는 아파트 복도에서 담배를 피며 쓸데없이 말을 걸어온다. 게다가 1:1 교육을 맡게 된 신입사원 수진(정다은)은 사수인 진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물을 주고 밥까지 같이 먹으려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 영화 장면

진아는 아이러니하게도 하루 종일 전혀 모르는 타인과 소통해야하는 카드회사 콜센터 직원이다. 그는 다양한 진상 고객들을 대응한다.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사람들부터 사용내역을 하나하나 읽어달라는 사람, 시간여행에 필요한 카드 발급을 요청하는 사람까지. 매달 최고의 콜 수를 기록하는 우수사원 진아는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반응을 해주며 매뉴얼대로 고객의 요구를 ‘친절’하게 ‘처리’한다. 감정과 인격까지 모든 것이 평가되고 수치화되는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선 감정을 가진 존재가 되어선 안 된다. 감정은 ‘나’로부터 분리되어있는 통제하고 관리해야할 대상이다. 그건 전화를 건 고객도 마찬가지다. 진아에게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은 감정과 인격을 가진 존재라기보다는 처리해야할 ‘건수’에 불과하다. 존재는 상호적이다. 그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여긴다면 진아 스스로의 존재도 지각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는 순간 고객들의 무례와 폭력이 진아를 상처 입힐 수 있다. 언어 또한 의미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무언가가 오고가고 소통을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말이 정말로 어떤 의미(혹은 의도)를 갖는지 관심을 갖거나 질문하지 않는다. 콜센터 직원들은 고객에게 수도 없이 ‘죄송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으로부터도 거리를 두면서 진아는 아슬아슬하게 혼자의 일상을 버텨낸다. 그러나 옆집 남자가 집에서 혼자 죽은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되면서 자기에게 말을 건 남자가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엄마가 죽은 후에도 자기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아버지에 화가 나고, 신입사원 수진이 그들의 노동에 질문을 던지며 진아의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특히 수진은 진아와 달리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지 묻는다. 수진은 또한 매번 전화를 걸어 시간여행을 위한 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냐고 묻는 고객에게 ‘어느 시점으로 그리고 왜 시간여행을 하려 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타자에 대한 호기심은 그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자신과 타인의 존재를 상실하지 않은 수진은 고객 대응에 능숙해질 수 없다. 사수인 진아와 회사 모두에게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수진은 결국 회사를 그만둔다.
 

진아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그 상태를 극단적으로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진아가 혼자 있었던 적은 없다. 진아는 혼자 있으면서도 늘 다른 이들의 흔적을 옆에 둔다. 길을 걸으면서도 휴대폰 영상을 보고, 밥 먹을 때도 먹방을 틀어 놓고, 텔레비전 소리 없이는 잠들지도 못한다. 고독사한 옆집 남자가 남긴 재떨이 자국과 죽기 직전 CCTV에 기록된 엄마의 영상에도 계속 눈길을 준다. 이런 모습을 보면 진아는 오히려 혼자 있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로 어떤 소음도 없이 혼자 있게 되는 순간 자기의 감정과 상태를 대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진아는 수진이 그만둔 후 환영과 환청이 심해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지만, 영화는 진아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사적인 특별한 관계를 맺는 대안으로 향하지 않는다. 진아는 수진에게 좀 더 신경써줬어야 했다고 타박하는 팀장(김해나)에게 팀장이 사수일 때 자신에게 대했던 태도를 그대로 수진에게 돌려줬을 뿐이라고 한다. 상처받고 손해 보는 일이 싫어 타인의 접근을 꺼리는 것은 진아만이 아니다. 그 조직의 체제와 감정노동의 속성이다. 진아는 의미 없는 공감과 반응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닫는다. 진아는 사람들이 자신을 엄연한 한 존재로 인정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 진실로 사과하기를 바란다. 바림이 나 가족을 버렸다가 나이 들어서 집에 돌아온 무책임한 아버지와 감정을 배제해야한다고 몸소 가르친 팀장에게 감정과 인격을 가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진정한 응답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과를 받아내는 것은 그녀가 거기 단독자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지각하기 위함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 영화 장면

그러나 진아는 역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선 타자의 감정과 인격을 인정하는 것이 수반되어야함을 깨닫는다. 나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선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진아는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 사수로서, 같은 인간으로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자신 역시 외로움을 타는 약한 존재이며 혼자 밥 먹고 혼자 지내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로만 들리던 수진이 그제야 화면에 역쇼트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존재의 역쇼트야말로 이 영화가 목표했던 것이다. 서로가 감정과 인격을 가진 인간임을 인정하고 그들은 모두 당연히 상처받고 약할 수 있음을 수용하고 그럼으로써 각자의 존재를 대면하게 된다. 약함은 존재를 위한 조건이다. 홀로 존재하기 위해선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여한다. 나만 이 세계에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아는 자신의 존재와 끊임없이 거리두기하고 분리해 내면서 스스로가 외로움을 타는 유령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옆집 남자의 유령과 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상처받은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수진을 한 독립된 존재로 지각하며 그에게 사과한 후 진아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이나 온라인 스트리밍 영상을 틀어놓지 않고 잠에 든다. 진아는 드디어 홀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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