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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독립 극영화의 스타 인큐베이팅 시스템

    2018년 10월 말 개봉해 5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영화 <
    완벽한 타인>(이재규, 2018)은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화제에 오른 작품이다. 유해진, 염정아, 김지수, 조진웅, 이서진, 송하윤, 윤경호 등 <완벽한 타인>의 배우들은 각자의 캐릭터를 한층 맛깔나게 살려내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완벽한 타인>에 출연한 배우들은 팬덤이 강한 배우들은 아니지만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에 관객의 호평이 이어졌고 이는 이 영화의 흥행에 일조했다.

    투자자든 관객이든,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배우’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보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어떤 배우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느냐는 투자자가 영화제작을 위해 비용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이터가 되고, 관객이 낯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관람을 결정하는 조건이 된다. 상업영화 시장은 광고 영역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고, 개봉작의 홍보 역시 그에 수반되는 비용이 독립영화의 전체 제작 및 개봉 관련 비용보다 큰 경우가 많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데 어디에서도 개봉과 관련된 정보를 볼 수 없다’는 잠재 관객의 불만은 바로 그 지점에서 기인한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버스 광고, 극장에 가면 눈을 사로잡는 초대형 포스터 광고, 포털 사이트를 열 때마다 보이는 배너 광고, 모두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광고의 영역이다. 독립영화 배급 및 마케팅 영역이 SNS 채널을 주로 이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돈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유명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수많은 방송 매체와 지면 매체들은 배우의 인지도와 호감도에 따라 콘텐츠를 선택적으로 만들어낸다. 광고라는 돈의 영역에서도, 유명세라는 화제성의 영역에서도 비켜서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주무대인 독립영화는 그래서 관객에게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독립영화의 경우 관객과의 스킨십이 무엇보다 성과가 큰 홍보?마케팅 전략이다. 지금은 스타라이브톡, 시네마톡, 츄잉챗, 메가 토크 등 상업영화와 멀티플렉스 영화관 역시 홍보를 위해 다양한 포맷의 ‘관객과의 대화’ 행사 자리를 마련하고 있지만 관객과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은 독립예술영화관이었다. 영화제에서 진행되는 창작자와 관객과의 질의응답인 GV(Guest Visit)는 관객이 영화 관람 후 창작자인 감독, 배우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제공하며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이와 같이 영화제에서 화제몰이의 중심이던 관객과의 대화 행사는 해당 작품이 개봉에 이르면서 그 영향력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특히 스타성이 있는 감독과 배우의 경우 팬덤을 형성하고 반복 관람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다.

    2011년 상반기 개봉해 한국독립영화 르네상스의 한 축을 담당한 두 편의 독립영화 <파수꾼>(윤성현, 2011)과 <혜화, 동>(민용근, 2011)은 개봉작 GV 붐을 일으킨 작품이다.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한 두 편의 작품은 전국 30개가 채 안 되는 극장 상영관을 통해 관객을 만났고 두 달이 넘는 상영 기간을 통해 각각 2만, 1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2018년 독립영화 흥행작인 <죄 많은 소녀>가 70여 개 상영관에서 개봉, 2만여 관객을 동원하는 데 한 달여의 시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파수꾼>과 <혜화, 동>은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려 관객을 만난 것이다. 9년여라는 물리적인 시간 동안 절대 관객의 모수가 늘어나지 않은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관객과의 대화라는 홍보·마케팅 전략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도 독립영화 시장의 씁쓸한 현실이다.

    <파수꾼>과 <혜화, 동>은 수십 차례가 넘는 관객과의 대화, 무대인사 자리를 마련해 관객과 만난 바 있다. 주연 배우인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은 물론 윤성현 감독까지 팬덤을 만들어냈고, 적은 객석수의 상영관을 가득 채우며 관객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다. <혜화, 동>의 경우는 작품 연출자인 민용근 감독이 발 벗고 나서 관객과 만난 케이스다. 민용근 감독은 상영 이후 개봉관 로비에서 관객을 기다려 만나는 ‘기다리는 GV’를 비롯해 전국의 독립예술영화관을 돌며 50차례 이상 관객들과 지속적이고 밀착된 스킨십을 보여준 바 있다. <파수꾼>과 <혜화, 동>이 개봉한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개봉 방식과 홍보 방식은 그때와 비교해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최근 몇 년간 배우의 힘으로 흥행에 성공한 독립영화의 사례 역시 엇비슷하다. 

    <연애담>(이현주, 2016)의 이상희·류선영(류아벨) 배우의 공고한 팬덤은 작품이 3만여 관객을 동원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었고, <꿈의 제인> 역시 구교환·이민지·이주영 등 개별 배우들의 팬덤이 2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공을 세운 바 있다. 적극적인 관객은 한 편의 영화가 개봉하면 본인이 좋아하고 응원하는 작품의 배우를 지지하기 위해 영화를 수차례 반복 관람한다. 또 개봉 이전 영화제 상영 때부터 여러 차례 이어지는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해 현장의 사진을 찍고 그것을 본인의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업로드하며 홍보 마케터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대개 20대와 30대 젊은 배우들 팬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높은 연령대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극영화의 개봉에서는 이런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상업영화와 마찬가지로 독립영화에서도 배우의 힘은 세다. 그라나 독립영화 진영은 관객과 작품이 만나는 데 실제로 배우를 직접 보는 것 외에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해내지 못했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스타성이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은 작품은 매체나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독립영화가 새로운 창작자들의 얼굴을 발견하는 첫 번째 플랫폼이자 귀중한 텃밭임은 여전한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다양한 연령대와 개성 있는 배우들이 좋은 작품을 통해 관객과 만날 수 있는지는 상업영화 진영과 마찬가지로 독립영화에서도 꼭 필요한 고민이 아닐까. 상업영화가 보여주지 못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영화 산업을 건강하게 지탱해온 독립영화는 코어 관객의 팬덤을 지속시키는 것 외에도 고민해야 할 것이 많은 시기에 있다. 
    by.진명현(.MOVement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