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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걸작의 마법 속으로

    매년 5월 시네마테크KOFA에선 마법과 같은 시간이 펼쳐진다. 전설 속에 존재하던 영화를 기적처럼 마주하는 순간과 상처를 말끔히 지우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영화와 재회하고, 영화가 처음 시작되던 과거로 관객을 초대하는 꿈같은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는 영화의 과거를 만나고, 다시 현재와 다리를 이어주는 특별한 시간이다. 벌써 11번째 관객과 만나고 있는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를 수놓을 올해의 영화는 과연 어떤 작품일까. 상영작 리스트를 자세히 소개한다.

    섹션 1 | 걸작의 재발견

    한국영상자료원이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저널 「영화천국」 발간 10주년을 기념해, 「영화천국」의 대표 코너 ‘걸작의 재발견’에서 다룬 작품들을 상영한다. 오랜 세월 걸작으로 평가되어온 작품부터 평단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한 번쯤은 주목해주었으면 한 작품 목록이 쌓이고 쌓여 총 62편에 이르렀다. 여기에 더해 한국영상자료원은 「영화천국」 발간 10주년을 맞아 감독, 배우, 제작자와 평론가, 영화 전문 기자, 극장 관계자, 기타 문화계 인사들을 포함해 150명에게 ‘걸작’을 추천받는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120여 편에 달하는 ‘걸작’ 목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이 같은 목록을 토대로, 시기별 일부 작품들을 뽑아 ‘걸작의 재발견’ 섹션에서 13편을 상영한다.

    1930년대 경성의 신여성을 그린 <미몽>(양주남, 1936)과 1950년대 아프레걸을 그린 <지옥화>(신상옥, 1958)부터 2000년대 초반 작품인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과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2003)까지. ‘걸작의 재발견’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가로지르며 우리가 사랑한 한국영화들을 다시 만나보는 시간이 마련된다.

    섹션 2 | KOFA 수집, 복원작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 한 해 동안 수집하고 복원한 작품 12편과 특별 작품 2편을 상영하는 섹션. 이 섹션에서는 그동안 유실 필름으로 분류되었다가 해외 아카이브에서 극적으로 찾아내 우리 품으로 돌아온 ‘KOFA 수집 작품’ 3편과 디지털 작업을 통해 복원된 ‘KOFA 복원 작품’ 9편이 소개된다.

    ‘KOFA 수집 작품’으로는 <미워도 다시 한 번>(1968)을 연출한 정소영 감독의 데뷔작 <내 몫까지 살아주>(1967)와 1960년대 신필름과 쇼브라더스가 함께 제작한 <달기>(최인현/악풍, 1964), <대폭군>(임원식/하몽화, 1966)이 상영된다. 홍콩필름아카이브에서 찾아낸 <내 몫까지 살아주>는 당시 홍콩으로 수출된 필름을 수집해 온 것으로 만다린어 더빙판이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6?25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이별과 재회, 그로 인한 비극을 그린 수작이다. 특히 정소영 감독의 멜로드라마적 연출력이 데뷔작에서부터 빛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필름과 쇼브라더스가 합작한 <달기>와 <대폭군>은 국내 개봉 버전(이하 국내 버전)과 홍콩 개봉 버전(이하 홍콩 버전)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영상자료원이 수집, 복원한 것은 <달기>와 <대폭군>의 국내 버전이다. 특히 <달기>는 홍콩 셀레스철 픽처스로부터 홍콩 버전의 영상 필름과 국내 버전의 사운드 필름을 수집하고, 국내에 남아 있던 심의대본을 토대로 디지털 복원한 작품. 이 때문에 영상이 없는 부분이 일부 존재하지만(홍콩 버전에서는 편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국내 버전이 홍콩 버전에 비해 멜로드라마적 요소가 좀 더 강조되었으리라는 추정도 가능해진다. 한편 <대폭군>은 국내 버전에서는 영화배우 최은희가 주연을 맡았으나, 홍콩 버전에서는 리리화(李麗華)가 주연을 맡았다. 이처럼 당시 한·홍 합작 영화들은 국내 시장과 홍콩 시장을 겨냥해 스토리라인을 달리하거나 주연배우를 더블 캐스팅하는 경우들이 있었으며, <달기>와 <대폭군>이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번 섹션에서는 이 같은 비교를 위해 홍콩 버전 역시 특별 상영된다. 두 작품 모두 대형 스케일로 관중을 압도하며, 특히 <대폭군>의 전투 신과 연회 군무 신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그 밖에 ‘KOFA 복원 작품’으로는 8mm 필름을 디지털 복원한 <수리세>(홍기선, 1984)와 <파랑새>(서울영화집단, 1986), 16mm 필름의 디지털 복원작 <파업전야> (장산곶매, 1990)를 비롯해 <초우>(정진우, 1966), <휴일>(이만희, 1968), <서편제>(임권택, 1993) 등의 디지털 4K 복원작들이 상영된다. 숱한 세월과 함께 입은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옷을 입은 디지털 복원 작품들을 통해 그 시절 한국영화들과 조우해보자.

    섹션 3 | 해외 복원작

    한국영상자료원이 고전영화를 수집, 복원하듯이 세계의 많은 필름 아카이브와 스튜디오 역시 잊힌 영화를 발굴하고, 오랜 시간 쌓인 두꺼운 먼지와 얼룩을 벗기는 작업을 쉬지 않고 있다. 올해도 이탈리아 볼로냐 복원영화제(Il Cinema Ritrovato)와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최근 소개된 복원작과 소니픽처스,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카날, 쇼치쿠 등 필름 스튜디오에서 복원한 작품을 포함해 총 13편의 걸작이 시네마테크KOFA를 찾는다.

    베를린의 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다 사랑에 빠진 천사가 있다. 많은 관객에게 ‘구원’이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아름다운 영상미로 전해줘 마치 시와 같은 영화로 기억되는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 Wings of Desire>(1987)가 돌비 5.1 사운드와 4K 디지털이라는 새 옷을 입고 이곳을 찾는다. 2017년 10월 29일은 바로 <베를린 천사의 시> 개봉 30주년 기념일이었다. 빔 벤더스 재단(Wim Wenders Foundation)은 이 기념비적 작품을 복원하기로 하고,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미디어보드와 FFA, 프랑스 CNC의 후원을 받아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흑백과 컬러가 교차하는 이 영화의 백미가 복원 과정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이다. 흑백과 컬러 필름의 경우 포토케미컬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네거티브 현상 시 서로 섞일 수 없는데, 이로 인해 디지털 복원 과정에서 필수적인 하나의 완전한 원본 네거티브 프린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복원팀은 수많은 상자에서 발견한 작게 잘린 네거티브 필름 조각을 찾아 원본 상영 프린트와 일일이 대조해 4K 스캔 작업을 진행해야 했고,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마침내 올해 초 디지털 복원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기, 폴란드에서 온 손님도 있다. 바로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재와 다이아몬드 Ashes and Diamonds>(1958). 폴란드국립필름아카데미(Filmoteka Narodowa)에 보존한 35mm 원본 카메라 프린트와 사운드 마스터를 KADR 영화 스튜디오(Studio Filmowe Kadr)에서 2K 디지털 복원한 버전으로 상영할 예정이다. 특히 본 버전은 안제이 바이다 감독과 제르지 보이식 촬영감독의 감독하에 작업이 진행돼 더욱 뜻깊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이념 갈등이 절정에 달하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시간 안에 탁월한 시각으로 포착해낸 이 작품이 한국 관객에게는 각별할 것이다.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의 단골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감독의 마지막 흑백영화인 <동경의 황혼 Tokyo Twilight>(1957)이 4K 디지털로 복원되었다. 컬러 시대로 접어들기 전 가장 완성도 높은 오즈의 흑백필름이 관객을 매혹한다. 일본 쇼치쿠 영화사가 35mm 듀프 네거티브 필름을 디지털 복원했으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촬영 조수로 함께 작업했던 가와마타 다카시, 지카모리 신지 촬영감독의 조언 아래 색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외에도 장 르누아르 감독과 자크 프레베르 작가가 함께 만든 걸작 <랑주씨의 범죄 The Crime of Monsieur Lange>(1936),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리오 그란데 Rio Grande>(1950),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에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욕망 Blow-Up>(1966), 위트와 풍자 대신 예리한 시선으로 미국 사회를 포착한 코엔 형제의 수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2007), 배우 임청하의 리즈 시절을 감상할 수 있는 <아시일편운 Cloud of Romance>(훙례천, 1977) 등 시네필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걸작이 관객을 만날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섹션 4 | 초기영화로의 초대

    지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무성영화 시대를 그저 상상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 없는 스크린 위로 격정적인 내레이션 혹은 아름다운 라이브 음악이 흐르던 당시 극장의 풍경은 낯설지만 더욱 낭만적이다.

    올해 시네마테크KOFA가 초대하는 초기영화의 세계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코미디부터 SF 요소를 띤 모험극, 그리고 장엄미가 흐르는 대서사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향연이라 할 수 있다.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희극배우 해럴드 로이드가 대학에 입학해 좌충우돌하는 <신입생 The Freshman>(프레드 C. 뉴마이어/샘 테일러, 1925)과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유쾌한 코미디 <인형 The Doll>(1919)은 무성영화가 다소 낯선 관객마저 어느새 그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또한 비행선을 이용해 미스터리한 강도 사건을 벌이는 매혹적인 여성 해적의 활약을 담은 <필리버스 Filibus>(마리오 론코로니, 1915)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더욱 환영받을 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아벨 강스 감독의 서사극 <나는 고발한다 J’accuse>(1919)는 16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마저 잊게 하는 몰입감을 선사할 것이다.

    특히 올해는 런던 BFI 전속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며, 볼로냐 복원영화제, 샌프란시스코 무성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무성영화 연주 상영을 해온 스티븐 혼(Stephen Horne)이 함께한다. 피아노는 물론 아코디언과 플루트까지 소화하는 그의 환상적인 연주가 흐르는 초기영화로의 초대를 빨리 보고 싶지 않으신지. 5월 시네마테크KOFA에서 만날 수 있다.  

      by.정민화, 이지윤(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