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주목 이 한편의 영화] 심성보 - 감독

by.달시 파켓(영화평론가) 2015-11-02조회 2,199

지난여름 4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군도: 민란의 시대>(윤종빈), <명량>(김한민), <해무>(심성보),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석훈)가 그것이다. <명량>이 17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종 승자가 되었지만, 나머지 세 작품 역시 관객은 물론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2014년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다. <영화천국>이 이번 호에서 주목한 영화는 심성보 감독의 <해무>다. 2014년 산세바스찬 영화제에서 본의 아니게 4박 5일간 동거(?)한 뒤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심성보 감독과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이 말하는 <해무>를 만나보자. 


연극 <해무>와 영화 <해무

달시 파켓(이하 ‘달시’) 영화 <해무>는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먼저 연극을 영화로 옮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와 원작과 어떤 차별성을 갖고 시작했는지 묻고 싶다. 

심성보(이하 ‘심’) 처음 연극 <해무>의 영화화를 제안받았을 때 이미 연극은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연극을 직접 보진 못했고, 캠코더로 찍은 기록용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보고 나니 이야기가 무척 매력적이더라.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한 계기로 범죄에 휘말리게 되고, 그 이야기가 형사나 피해자의 시선이 아닌 그들 자신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더불어 메인 플롯을 사랑으로 끌고 나가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해무>를 만들기로 결심했는데, 연극을 영화화할 경우 등장인물 간에 갈등 관계가 조금 모호하게 보일 수 있다고 느껴졌다. 그대로 옮길 경우 관객들이 원하는 내러티브의 2/3 지점에서 끝날 것 같다랄까. 나머지 1/3을 채우기 위해선 선원들의 갈등이 좀 더 분명해야했다. 그래서 원작에서 무척 강했던 선원들의 공동체 의식을 조금 저하시키고, 개개인의 성격을 부각했다. (‘달시’ 반대로 원작 연극에서 꼭 살리고 싶었던 부분은 어떤 곳이었나?) 연극의 특성상 막이 전환될 때 암전되고 사운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막과 막 사이의 여백이 무척 영화적으로 다가왔다. 영화에서 그 사이를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고 그 장면을 상상으로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들은 우연치 않게 연극의 막과 막 사이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예컨대 밀항자가 넘어오는 장면도 연극에선 암전된 채 발소리와 비명 소리로 처리되었고, 마지막에 배가 침몰하는 장면도 연극에서는 “가자, 가자”라는 대사만 반복되고 실제로 침몰 자체를 보여주진 않았다. 그런 연극에서의 암전을 영화에 차용했다. 

달시 이 영화가 데뷔작이지만, 이전에도 사랑에 대한 시나리오를 꽤 많이 써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감독의 취향으로 봤을 때 <해무>는 결이 다른 영화가 아닐까 한다. 물론 동식(박유천)과 홍매(한예리)의 러브 라인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범죄, 그로 인한 갈등 등 여러 가지 포인트가 있는 영화다. 

동의한다. 물론 그 동안 작업했던 시나리오들은 분명 <해무>와 다르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에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아마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각본에 참여한 이력 때문에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범죄에 관해 잘 다룰 것이라 판단한 것 같다. 그리고 남녀에 관한 시나리오를 계속 써왔다는 것도 봉준호 감독이 잘 알고 있어서 동식과 홍매의 러브 라인도 잘 표현할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남녀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마 많은 여자를 만나보질 못해서 그런 것 같다.(일동 웃음)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우디 앨런 감독의 전성기 작품을 보고부터다. 전성기 그의 작품 대부분이 남녀 이야기지 않나. 거기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달시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어떤 주문을 했나. 

봉준호 감독은 당시 <설국열차>(2013) 제작 때문에 체코에 있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단, 기획 단계에서 봉준호 감독은 <해무>의 큰 원칙을 조언해줬는데, ‘동식과 홍매의 사랑을 끝까지 순수한 감정으로 가져갔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그리고 거의 유일한 원칙이었다. 실제로 캐릭터를 구축할 때 그 원칙을 새기고 시나리오를 썼다. 


항구, 그리고 어선이라는 공간적 배경 

달시 영화는 IMF외환위기 직후를 다루고, 여수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시간과 공간 설정에서 특별히 염두에 둔 점이 있나. 

원작은 시간을 2000년대 초반으로 설정했다. 영화는 그보다 조금 빠른 1990년대 후반 IMF 시절로 바꿨는데, 조사 과정에서 IMF외환위기 당시 어선의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은행 이자가 높았기 때문에 선주들은 어선을 처분하고 보상금을 받은 뒤 그 돈을 은행에 넣어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어선 운영으로 버는 수입보다 은행 이자수익이 더 좋았다더라. 그래서 당시 많은 선주가 배를 처분했다. 하지만 선주가 배를 폐선시키면 선장과 선원들은 순식간에 실직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해무>와 연결했다. 선장이 왜 밀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선장이 왜 그토록 배를 소중히 생각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배경이 된 공간은 여수의 조그만 항구인데 항구의 규모가 너무 크면 관객의 시선이 분산될 것 같아서 크지 않은 항구를 조사하던 중 여수 항구가 적절하다고 판단해 선택했다. 

달시 <해무>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선에서 전개된다. 더불어서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는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한정된 공간과 그 안에 있는 제한적 인물. 이 두 가지는 분명 이야기를 진행하고 표현하는 데 쉽지 않은 장치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우선 전진호라는 배 안에서 이야기의 대부분을 소화해야 하지만 사실 이 배는 세상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다. 그 안의 제한적 인물들 역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군상의 축소판이다. 따라서 배우들에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해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선장은 ‘배’, 동식은 ‘사랑’, 창욱은 ‘여자’ 이런 식으로 키워드를 정리했는데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을 매우 잘 소화해줬다. 


<해무>를 이끄는 또 하나의 힘, 주조연 배우들 

달시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해무>는 소재가 독특하고, 구성이 탄탄해서 개봉 당시 비평가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 바있다. 여기에 더불어 영화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 바로 배우들이었다. 김윤석을 비롯해 문성근, 이희준, 김상호 등 이른바 연기파 배우들이 포진해 있고, 영화 출연은 처음이지만 드라마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박유천과 독립영화로 연기력을 탄탄히 다져온 한예리가 나온다. 누구 하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웃음) 먼저 선장, 김윤석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염두에 둔 배우인가. 

그렇다. 선장 철주 역은 김윤석이 아니면 맡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영화를 안 봤다면 <해무>의 김윤석이 이전에 맡았던 캐릭터와 유사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개봉 당시 관객들로부터 김윤석이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인물들과 다르다는 반응을 많이 받았다. 물론 특정 장면에서 이 배우의 이전 작품들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힘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시나리오 단계에서 김윤석을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기관실에서 기관장 완호(문성근)와 대립하는 신’을 쓸 때였다. 여기서 완호를 죽이고 선장이 눈물을 글썽이는 것으로 표현했는데, 그 장면을 쓰는 순간 김윤석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달시 그 기관실 장면이 극 중에서 가장 에너지가 폭발하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오랜 기간 서로 의지하며 살던 선장과 기관장의 갈등이 최고조가 되는 신인데,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그 장면에 서 관객의 몰입도가 가장 높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김윤석문성근이 가진 힘이 아닐까 한다. 

김윤석문성근의 연기 대결이기도 하다.(웃음)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가 있었다. 사실 문성근이 맡은 완호가 애초 생각했던 캐릭터와 가장 달라진 인물이다. 완호라는 인물을 구축할 때 문성근 선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애초의 시나리오에서 완호는 늙고 불쌍한, 그냥 짐만 되는 인물이었다. 문성근 선배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극 중 성격이 급격히 변하는 캐릭터의 중심을 잘 잡아준 점이다. <해무>에서는 사건이 일어나고 인물의 성격이 모두 변한다. 그중에 가장 확실히, 그리고 빨리 변하는 인물이 바로 완호다. 자칫하면 급작스레 이상 행동을 보이는 완호가 관객에게 이질감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완호가 어느 순간 정신줄을 놓아야 배의 상황이 보다 리얼하게 보일 것 같았다.(일동 웃음) 그리고 그 정상과 비정상을 넘나드는 선을 문성근 선배가 잘 잡아주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이신을 김윤석과 문성근의 힘이라고 표현했는데, 동의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신은 큰 부담이 없었다. 오히려 이들을 지켜보는 동식과 홍매가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에 대해 걱정했다. 

달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웃음) <해무>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것이 동식과 홍매의 사랑이다. 박유천한예리에 대해 말해달라. 

동식의 경우, 연극보다는 어리고 뱃일도 갓 시작한 막내 선원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20대 중.후반 배우를 캐스팅해야 했다. 박유천을 만났을 때 동식 역할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과 열의가 무척 많아 인상 깊었다. 그것이 그가 가진 팬이나 이전 작품을 고려하지 않고 캐스팅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박유천은 가수 출신 연기자 중에서도 꽤 독특한 이미지다. 얼굴에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고. 다만 영화는 처음이고, 첫 주연작이라는 점, 그리고 경험 많은 배우들과 끊임없이 부딪쳐가며 연기해야 하는 것이 걱정되긴 했다. 하지만 그 바쁜 박유천이 영화를 위해 스케줄을 통째로 비워둘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런 성실함 때문에 신인상도 많이 탄 게 아닐까 한다. 뿌듯하다. 
한예리의 경우 이미 유사한 역할을 몇 번 했기 때문에(웃음) 나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배우였다. 개인적으로 배우는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한예리의 중저음 목소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한예리는 갑자기 스타가 된 게 아니고 독립영화부터 차근차근 밟아왔기에 여배우로서 다소 힘들 수 있는 수중촬영도 잘 견뎌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선과 악이 모호한 세상의 축소판, 전진호 

달시 <해무>는 악인이 없는 영화다. 모든 이야기에는 갈등이 있는데, <해무>의 갈등은 선악의 구도가 아니라는 점이 눈여겨 볼 만하다. 심지어 선주도 악인이라기보다 현실에 충분히 있을 법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영화 개봉 후 관객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주 건실하고 평범한 가족이 열심히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세입자를 들인다. 그런데 방세가 올라 전세 보증금을 크게 올리거나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현실적으로 공감은 되지만 세입자 입장에서 집주인은 잔인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나. <해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어떤 관점에선 잔인하고 어떤 관점에선 연민을 느낄 수도 있다. 

달시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연극에는 없던 동식이 등장하는 엔딩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광기에 휩싸인 선원들만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질문했을 때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동식과 홍매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는지 아닌지는 재단할 수 없고, 관객이 판단할 몫이지만 결과적으로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업영화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주인공이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집착한 동식이 살아남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엔딩이 판타지로만 치부될 것 같아 적당히 현실감을 섞었다. 

달시 하와이 국제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현지의 반응은 어땠나. 

신인 감독이라 그런지 특별한 반응을 기대하거나 예상하진 못했다. 하지만 외국 관객 역시 이야기를 따라가고 한국 관객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놀라웠다. 재미있는 것은 스페인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것이다. 유럽 사회에서 밀항은 큰 사회적 이슈라고 한다. 그 사회에선 밀항 사건이 1년마다 한번씩 크게 일어나고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보면 <해무>보다 훨씬 더 잔혹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선원들의 선택에 대해서 한국관객보다 더 깊이 공감하더라. 

달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원래 계획이라는 것은 변하라고 있는 것이다. 두 달 전 인터뷰했을 때도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또 계획이 변했다.(일동 웃음) 현재는 일본 소설에 관심을 갖고 이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계획은 늘 변하지만 <해무>를 만들고 한 가지 확실한 계획이 생겼다. ‘평범한 사람’ ‘범죄’ ‘사랑’. 이것이 내 영화의 키워드가 된 것이다. 큰 틀에서 이러한 맥락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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