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명기 오백화 Obaekhwa 임권택, 1973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13-02-06조회 15,017

“그때는 최고로 안 팔리는 감독이었어요, 그 무렵은 영화가 불황이었고, 하여튼 없었어요, 영화 하자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나도 그 시기에 크게 열을 내서 하고자 하는 의욕도 잃었고, 그래서 영화가 걸리면 그냥 적당히 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러던 때였어요.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고, 그 전에는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데서 안 해본 것도 해보고 했는데,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그 무렵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삶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마 내 삶을 자각하면서 그래서 만든 첫 번째 영화가 <잡초>(1973)일 거예요, 그래서 이 영화가 이전에 만든 영화들 사이에 처음으로 어떤 공백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건 내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단지 영화를 준비한다기보다는 심리적인 시간이라고 할까” 없었다는 말. 그 말에 감도는 차가운 감정. 거의 희미해진 기억. 마치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종종 외면하려는 듯한 제스처, 혹은 그로부터 취하려는 일정한 거리. 할 수만 있다면 더 멀리. 그렇게 그 이전 영화들에 대해서 시종일관 무뚝뚝하게 대답하다가 <잡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치 맑은 정신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씩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반문하듯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50편의 습작을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단연코 습작이었어요” 


1973년 그해 임권택은 50번째 영화 <잡초>를 만들었다. 여기서 만들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 모두이다. 하나는 그 자신이 연출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신이 제작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그 자신이 제작한 첫 번째 영화이다. (그때) 나는 질문을 하다 말고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 그런 다음 그 결정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이미 49편을 만든 영화감독. 1962년에 첫 영화를 만든 다음 12년이 되던 해. 자신의 삶, 그 삶의 진동, 감독으로서의 자신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성찰해보기 시작한 순간과의 대면. 말 그대로 창조의 새로운 도약. 모든 예술가들이 그 자신이 예술가임을 자각하는 필연적인 시간. 말하자면 절대적인 요구. 그런 다음 자기가 만들어낸 창조의 세계가 홀로 서게 만드는 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잡초>를 볼 수 없다. 임권택 감독님 그 자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 영화의 스틸을 볼 때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어디선가, 이를테면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서 동시상영을 보던 중에, <잡초>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 대신 나는 몇 차례이고 이 영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의 절망적인 상황. 비참한 지경. 그때 임권택은 놀랍게도 자기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힘을 끌어당겼다. 영화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대결. 나는 그것이 단번에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영화는 비로소 영화가 되는가, 라는 질문. 임권택은 (그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바닥에 내려앉았다고 판결문을 내린 다음 그 질문을 끌어안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이 질문을 꺼내든 것이 아니다. 반대로 지금 자기의 자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이 질문을 끌어당긴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기로 결심하였다. 공격?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때 그가 공격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까지의 모든 습관. 습관?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종종 집을 세우는 일에 비유된다는 자크 리베뜨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프레임이라는 사각형. 그것 앞에 세워진 네 개의 면. 그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동선. 그때 어디서 어디를 보느냐의 문제. 방향. 그 안에 세워진 수많은 문들. 어느 문이 열릴 것인가. 어느 문으로 들어올 것인가. 그러나 이때 집이 세워지면 그 집은 동시에 연출의 감옥이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여기에 일단 갇히면 그때부터 이 집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예술에서 가장 두려운 말, 안주.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종종 자기 집을 불태우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집을 끊임없이 세웠다는 이야기를 떠올려야 한다. 말하자면 모험. 그러나 대부분 그냥 집에 머물 것이다. 가까스로 세운 집. 자기가 세운 집. 하나의 집이 세워질 때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이때 영화는 그 집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리고 반복은 곧 습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술에서 좋은 습관이란 무엇일까. 그런 건 없다. 오로지 나쁜 습관만이 있을 뿐이다. 나쁜 습관과 더 나쁜 습관. 그때 더 나쁜 습관이란 무엇일까. 그건 자기 집에 살면서 남처럼 살고자 흉내 내면서 자기 집을 남의 집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고치고 부수고 그런 다음 자기의 집 위에 다시 남의 집을 세우면서 그 안에서 남의 집에 사는 시늉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순간 작동하기 시작하는 예속성. 그 무시무시한 힘. 두뇌와 의지 사이의 선을 잘라낸 다음 의지를 복종시키기기 시작하는 구조들. 이미 결정된 방. 임권택은 자기 집에 살면서, 그 집에서 48번, 혹은 49번이나 살면서, 점점 더 지쳐가면서, 이 집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그 자신에게 말했다. 살 수 없다는 말. 그때 그 말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 한 번 1973년 그 해. <잡초>를 만들기로 결심하기 직전. <잡초>앞에 놓여있는, 하지만 같은 해에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 <대추격>, 혹은 <장안명기 오백화>. 나는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인지 알 수 없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임권택이 48번, 혹은 49번째 살았던 그 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가 정말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진 영화, 단지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집이 자기를 잡아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어쩔 수 없이 만든 영화, 하지만 그런 다음 더 이상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영화. 어떤 기쁨도 없이, 심지어 고통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그 어디서도 힘을 끌어낼 수 없을 때, 그런 다음 삶이 무언가에 복종되어버린 자리. 나는 <장안명기 오백화>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대추격>은 지금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라진 임권택의 24편의 영화중의 하나. 


영화의 줄거리는 일제 강점하 경성의 유명한 요정 명월관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1973년 한국영화들 사이에서 아무데서나 시작한다는 뜻이다. 아무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이름 명월관. 1909년 경성 종로구 세종로에 세워진 다음 1918년 5월 24일 화재로 소실된 이후 돈의동 139번지에 다시 세워진 요정. 1919년 기미독립선언 이후 종종 독립운동 지사들의 연락처로도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장소. 하지만 사실상 영화 안에서 의미가 없는 지표. 다소 지루할 지라도 나는 약간의 첨언을 더해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아니, 차라리 한국영화사의 저편에서 불러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임권택 자신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 사라진 기억. 죽어버린 기호들. 몇 차례이고 질문했을 때마다 심지어 내가 그런 영화를 찍었나요, 라고 반문했던 영화. 오로지 그 시간에만 활동했던 이미지들. 기억으로부터 과거로의 추락. 현재와 공존하기를 포기한 영화. 그러나 역설적인 의미로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잡초>를 만들 수 있었을까. 나는 차라리 여기서 그 포기의 배후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힘을 알고 싶다. 그러므로 다시 이야기 안으로. 그저 이 영화가 요구하는 대로 볼 생각이다. 




최칠용과 영국


최칠용과 현주


신운일과 정미


박노운과 기홍

명월관에는 그날 저녁 술시중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안의 한량들에게 자랑거리가 된다는 명기 오백화가 주름잡고 있다. 일제 강점하. 요정, 장안의 다섯 명기. 고백화 기홍, 태백화 정미, 김백화 현주, 최백화, 유백화. 그녀들은 아무나 수청을 들지 않는데 심지어 조선총독부 총독의 부름도 거절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그날, 그러니까 이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의 그날, 사이토 경무국장의 술자리 수청을 들기 위해 그 모습을 보인다. 그런 다음 위기의 시작. 첫 도미노. 김백화 현주의 오빠 영국은 상해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인데 경성에 잠입해 들어왔다가 그만 체포되어 한국인 고등계 형사 최칠용에게 고문을 받는다. 독립군과 조선인 형사. 신념을 따른 희생자들과 배신을 한 앞잡이. 역사로부터 장르에로의 이행. 그 사이에 개입하는 균열. 차라리 드라마의 복선. 그런데 최칠용은 원래 학생시절 경성제대 법대를 다니며 훗날 변호사가 되어 조선인을 위해 일하겠다고 맹세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신의 말을 따르면) “일본인보다 더 악랄하게 조선인을 괴롭히는” 고등계 형사가 되었다. 그래서 김백화 현주는 최칠용의 후배이자 음으로 양으로 조선인의 편에서 오백화를 돕고 있는 청년 신운일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다. 하지만 최칠용은 명월관의 술자리에서 그의 양심에 호소하는 신운일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번에는 신운일의 딜레마. 신운일은 친일파인 중추원 원로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분노하며 부끄럽게 여긴다. 아버지와 아들의 분열. 각자의 자리에서 마치 한 쌍처럼 이루어진 대립적인 인물들. 과도하리만큼 민족주의적 열정에 가득 차 있는 인물들. 결국 대의적 관점 아래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또한 그는 오백화 중의 한명인 태백화 정미와 연인 사이이며 그녀에게 결혼을 청하지만 정미는 자신이 기생의 신분이라 지금의 연인 관계에 만족한다면서 완곡하게 거절한다. 신분의 차이. 이제 막 조선시대가 끝났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근대. 물론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중의 곤란함이 여기에 개입하여 이 가련한 연인들의 결정을 재촉한다. 신운일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집안이 친일의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 여자와의 결혼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정미는 명월관에 드나드는 사이토 경무국장의 잠자리 수청을 종용받고 있다. 갑작스러운 새로운 인물. 이야기의 바깥으로부터, 그런 다음 바깥으로의 새로운 방향.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조선총독부 총독의 생일에 맞춰 창경궁에 모이는 중요인사들과 친일파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띠고 박노훈이 경성에 잠입했다가 총상을 입고 고백화 기홍의 집에 숨어든다. 모든 인물들이 곤궁에 빠져서 거의 빠져나갈 길 없을 것만 같은 일제 강점하의 경성에서 열린 새로운 도주의 선으로서의 상해. 그러자 갑자기 이야기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들 모두에게 상해로 떠날 구실을 만들어주기 시작한다. 장황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우연들의 연속. 우여곡절 끝에 박노훈은 중국인으로부터 폭약을 구해서 신운일과 함께 창경궁에 잠입하고, 그 시간에 정미는 삼엄한 경계를 풀기 위해 책임자인 경무국장 사이토와 함께 온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그를 총으로 사살하고 그녀 자신도 자살을 하고, 최칠용이 사실은 이제까지 그의 고등계 형사 노릇은 조선인의 편에서 돕기 위한 그 자신의 고육지책이었으며 게다가 이 모든 행동이 김백화 현주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지만 그만 (최칠용 자신이 구해준,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한 현주 오빠 영국의 손에 죽고 만다. 거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사건의 사슬들. 암살에 성공한 박노훈과 신운일은 죽은 정미를 제외한 오백화와 함께 상해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일본군의 추격 끝에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신운일이 이들 모두를 위해서 대신해서 죽고 박노훈과 남은 네 명의 오백화가 배를 타고 상해로 떠난다. 한 남자와 네 여자. 멀어져가는 배, 혹은 새벽 강물에 실려 사라져가는 배. 


말 그대로 난처한 입문. 이 줄거리를 몇 번을 다시 읽고 반복해서 영화를 보아도 결국 남은 인상은 기이하리만큼 그 안에서 서로의 인과관계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이 영화의 전술적인 규칙들은 무엇일까. 거기서 무엇이 멈춘 것일까. 아니, 아무 것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고 그런 다음 인물의 위상관계를 달리하여 저기서 여기로 옮겨올 때, 종종 느껴보는 하강과 상승, 추락과 도약 대신, 거의 모험담에 가까운 <장안명기 오백화>를 보는 내내 느끼는 거의 일관된 상태는 이 장면이 다음 장면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자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이 영화를 내려놓는 대신 1969년에 <황야의 독수리>를, 그리고 이듬해 <속눈썹이 긴 여자>, 그런 다음 1971년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와 <둘째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즐거움을 생각한다. 이 영화들이 표준적 관점에서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즐거운 영화들이다. (잠시만 기다리면, 나는 차례로 그 이유를 쓸 것이다) 말하자면 긍정의 힘. 바르뜨라면 누군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며,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종종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장면들이 거기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 표현을 사랑한다. 이때 이 네 편의 영화는 서로 완전히 다른 장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만주) 웨스턴. 스릴러. 다찌마와리. 신파 멜로드라마. 네 개의 장르. 네 개의 꼭짓점. 그들 사이의 교차점. 그런데 그 자리에 서 있는 <장안명기 오백화>는 우리를 단조로운 위치에 데려다 놓는다. 여기에는 그 즐거움이 어느 순간 고갈되어 버렸다. 이때 가장 따분한 설명은 여기에 창작의 열정이 고갈되어버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로 말하고 싶다. 혹시 열정이 가져온 의심이 즐거움을 고갈시켜버린 것이 아닐까. 의심? 그렇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여기서 심리적인 분석의 기법을 빌려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장안명기 오백화>에서 본 것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의심이다. 무엇에 대한 의심? 설명에 대한 의심.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영화적 효과들. 인물들의 대사. 그 대사를 둘러싼 표정. 표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카메라와 연기 사이의 거리. 이때 내가 인물이라고 말하는 대신 연기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임권택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의 수많은 기호들을 연결하고 종종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개념들을 여러 가지의 경로를 빌려 결합시켜왔다. 말하자면 영화의 규칙 안에서의 활동. 이때 임권택은 문득 여기서 멈춘 다음 이 개념들이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영화를 다루기 시작했다. 갑자기 연결과 결합 사이의 영화적 효과들은 일시적으로 작동이 중단되었다. 나는 그것을 <장안명기 오백화> 안에서 기이한 감정을 안고 바라보았다. 도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상한 상황. 그 안의 배치를 성립시키는 모든 요소들 사이의 조화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건드리면 어떤 효과가 생겨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장인이 갑자기 자포자기 하듯이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볼 때 나는 이 행위 자체가 보는 쪽에 고통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사유를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이것은 <장안명기 오백화>를 위해서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 상황을 한편으로는 앞으로 돌아보고, 이를테면 1969년의 영화들, 반대로 저 멀리 1978년 <족보>까지 끌어당겨보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했다. 관성적으로 오던 것은 여전히 빨리 가고 갑자기 어떤 것은 필요 이상으로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임권택은 서둘러 가는 것을 마치 남의 영화를 쳐다보듯이 내버려두고 있다. 반대로 그 안에서 무엇이 느리게 갈 수 있는 지를 건드려본다. 이제까지 접속되었던 방식을 바꾸려 하기 전에 무엇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지를 마치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순간들. 이때 멈춘 것은 다소 불투명하긴 하지만 대부분 장르의 신호들이다. 혹은 그 신호들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신호들은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지만 기이하게도 장르의 기호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반응을 멈추었다고 말하고 싶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 이 중단은 단순하게 멈춘 것이 아니다. 자동적 반응의 중단이라는 문제. 나는 영화를 보기 전 제목만 슬쩍 본 다음 장안명기 오백화를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섯 명의 기생. 다섯 명의 여자. 다섯 개의 운명. 그녀들 사이에 던져진 사건, 혹은 인물. 던져진 돌. (그렇게 된다면) 원형으로 번져나가는 이야기의 선. 나는 틀렸다. 오백화는 이 영화의 중심에 있지도 않으며, 또한 오백화 사이에서 어떤 분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게다가 오백화가 이 영화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어떤 힘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선은 도대체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줄거리가 어떤 법칙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기이하게도 그 선이 자꾸만 제자리에로 돌아온 다음 어떤 새로운 차원에로의 이동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잡아당기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끊어질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어떤 긴장이 생겨나지도 않는다. 줄거리의 경제학으로만 본다면 다섯 명의 장안 명기 오백화는 서로 그녀들의 우정을 나누기는 하지만 사실상 줄거리를 위해서라면 고백화와 태백화, 그리고 김백화 세 명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임권택은 최백화와 유백화를 위해서 거의 어떤 시간도 들이지 않는다. 나는 영화가 끝난 다음 최백화와 유백화의 존재 자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다섯 명의 스타의 얼굴의 순환. <장안명기 오백화>에서 이상한 것은 이 순환 자체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본 다음 고백화 기홍을 연기하는 고은아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잊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임권택은 고은아를 영화 안에서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첫 장면에서 중심에 있었던 고은아는 줄거리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다음 영화가 끝날 때 그녀는 시작할 때와 반대로 단지 오백화 중의 한명이 된다. 사라져가는 무게. 줄어드는 빈도. 스타는 줄거리의 장르이다. 그러나 <장안명기 오백화>에서 고은아는 마치 이 영화에서 사라져가는 메시지처럼 점점 뒤로 물러난 다음 화면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그렇다고 해서 박노식과 신성일이 그 자리를 탈취하거나, 혹은 옮겨오지도 않는다. 그들은 제 역할을 한 다음 재빨리 물러난다. 여기에는 스타들 사이의 균형이 거의 무너져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인물들 사이의 민주주의적 배치에 따른 것도 아니다. 

나는 다소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이들은 마치 공장처럼 작동한다. 기능적으로 배치된 다음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잠시 멈춘 다음 다시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인물들은 상황에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 자기의 존재를 증명할 뿐 그 어떤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상황이 그 존재에 변수를 부과하기 시작한다. 인물들에 대한 억압. 어떤 억압? 줄거리의 억압. 이때 이 억압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임권택은 마치 이 억압에 순응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고도 바람직한 일일까, 라고 반문하는 것만 같다. 나는 여기서 이제부터 시작될 임권택의 영화에 대한, 영화를 향한, 영화에 의한 그 자신의 인정투쟁의 시작을 본다. 그때 줄거리의 무한한 계속으로부터 바깥으로 나오면 거기서 무엇과 만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삶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온, 또 살아가야 하는 삶. 나는 <장안명기 오백화> 다음의 영화, 임권택 자신이 그 ‘이전’의 모든 영화를 ‘습작’이라고 부른 다음 비로소 만든 <잡초>가 한 여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신운일과 아키코


박노훈과 기홍

물론 <장안명기 오백화>를 좀 더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종종 인물들 사이의 자기 자리의 수행은 때때로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때 이 영화의 이상한 점은 그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어딘가에서 부터 이야기의 결말을 소급해서 올라가서 재구성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기괴한 역설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줄거리의 소급이 사실상 이미 예정된 전제 위에서 진행된 결말로부터 나온 자연스러운 연쇄망의 잠재적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서 느끼는 것은 시나리오와 영화 사이의 이상한 분리이다. 시나리오의 잠재적인 감정은 거의 진행되지 않고 그 줄거리의 행위들만이 차례로 나열된다. 시나리오는 세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 그러니까 고백화와 박노훈, 태백화와 신운일, 김백화와 최칠용을 하나의 짝으로 묶은 다음 다시 이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임권택은 거의 고의적으로 그들 사이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어놓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아무리 진행되어도 그것을 잡아당겨서 긴장을 만들어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풀려나가서 느슨해진다. 이 영화는 중심이 없는 영화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몇 가지 단락의 순간들. 

신운일은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기무라 총독의 여식인 아키코와 결혼을 강요받는다. 그런 다음 이어지는 약혼식. 여기서 이상한 방식으로 구부러지는 분배의 방식. 신운일은 아키코에게 둘 만의 데이트를 청한 다음 갑자기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면서 진정 사랑하는 태백화 정미와 결국 결혼할 것이며 당신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동거는 하겠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떠나가겠다고 말한다. 잠재적인 대립의 수행. 그런데 이때 아키코가 예상치 않게도 신운일을 이해하면서 당신이 나와 같은 일본 여자와 결혼하는 조선인 남자였다면 오히려 경멸했을 것이라는 대답을 할 때 여기서 진행되어야 할 어떤 긴장도 사라진다. 말하자면 무효. 그런 다음 아키코는 영화에서 어떤 설명도 없이 사라진다. 도대체 아키코라는 등장인물은 이 줄거리에 무엇을 봉사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일까. 혹은 신운일의 이야기와 평행하면서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에) 상해에서 보낸 독립 운동가들이 체포되고 (영화가 시작된 다음에) 조선총독부 총독 생일에 맞춰 전원 몰살하려 한 폭약을 구입하려던 군자금을 고등계 형사 최칠용에게 빼앗기기까지의 과정을 길게 서술하고 있다. 이제 어떻게 그 돈을 다시 구할 것인가.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돈이라는 역할의 표면 등록. 역할의 수행에 관한 인물들에 대한 기대. 교활한 중국인은 돈을 먼저 내놓으라고 박노훈에게 말한다. 이때 박노훈의 방법은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다. 고백화 기홍을 찾아가 민족에 대한 사랑에 관해 몇 마디 웅변을 한 다음 그 돈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그 돈을 구하기 위한 고백화 기홍의 이야기. 생략된 장면. 그런 다음 (고백화가 아니라) 태백화가 경무국장에게 수청을 약속하면서 그 돈을 빌린다. 물론 돈의 순환과정의 아이러니. 총독을 지켜야 할 경무국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암살할 비자금을 구해준다. 궁금한 질문. 그런데 왜 고백화 기홍은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이 빚을 청산하듯이 어떤 요구나 대가없이, 하다못해 박노훈에 대한 사랑의 감정조차 없이, 그 돈을 구해주려는 것일까. 그런 다음 왜 그 임무를 태백화에게 떠넘긴 것일까. 마치 이 행위는 신운일이 자기의 뜻과 관계없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 여자인 아키코와 약혼을 발표한 다음 그 축하연이 명월관에서, 그것도 태백화 눈앞에서 벌어진 다음 이어지기 때문에 마치 그녀를 완전히 자포자기시키는 요구처럼 보인다. 단지 부조화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 이때 이들 사이의 관계는 오로지 이야기의 골격에 따라 장르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 사이의 교환은 어디선가 흩어진 다음 오로지 기능의 액션만을 남겨놓은 채 감정의 분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사라진 씬들이 에매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이를테면 거의 설명과잉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1960년대 임권택의 사극영화들을 생각해보라. 그때 단지 이것이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장르의 욕망의 경제학에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심층적 구조가 사라진 컨벤션들. 
 




 
그러므로 어떤 불연속. 무엇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없어진 것은 무엇일까. <장안명기 오백화>에서 거의 완전히 붕괴된 것은 이 영화의 경제성이다. 그렇다면 임권택은 교환과 분배 없이 무엇으로 이 규칙을 다시 작동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일까. 임권택은 자기 영화 안에서 목표를 찾아가는 대신 목적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장안명기 오백화>는 목표가 사라진 영화이다. 어떤 목표? 장르에 따라 줄거리가 거두어야 하는 최종 목적지. 이 영화는 그 목적지가 마치 도달할 수 없는 헛된 목표인 것처럼 거기에 갈 수 있는 영화적인 방법의 경제학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목표가 헛된 대상이 될 때 이 영화의 모든 쇼트들은 갑자기 장르의 규칙 안에서 자기의 사용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나는 이상할 정도로 마지막 장면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저 어울리지 않게 작은 배에 저 많은 사람들, 박노훈과 네 명의 백화가 새벽에 몸을 싣고 정말 그 머나먼 서해 바다를 가로 질로 저 멀리 상해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생겨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영화의 어디서도 아니에요, 이건 영화에요, 그러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상상해주세요, 라는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때 상해는 이 영화 전체의 헛된 최종 목적지에 대한 텅 빈 기표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적으로 찍힌 유일한 장면. 그건 마치 어떤 작별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건 지나치게 사후적으로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 잡혀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선언했다. <장안명기 오백화>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를 알고 싶은 대신 <잡초>를 만들기 직전, 그러니까 이제까지의 영화가 모두 습작이라고 단언해야만 했던 그 상황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때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새로운 도약을 향한 어떤 약속의 증거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 모든 것의 조화가 어지럽혀진 채 너무 많은 장면들이 스스로 의미를 포기해버린 얼룩들의 거의 망쳐버린 듯한 카오스였다. 

나는 <장안명기 오백화>의 이상한 마지막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중이다. 일본군의 추적이 마지막까지 뒤따르고 네 명의 오백화와 박노훈, 신운일을 태운 병원 앰뷸런스 구급차는 그들을 태울 배가 있는 강변 가까이 도착한다. 신운일은 그들을 내리라고 한 다음 자신이 이들을 따돌리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살의 제스처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무사히 탈출을 하지만 마치 예정된 것처럼 신운일은 일본군의 추적 끝에 총에 맞아 죽는다. 그가 죽어가면서 보는 것은 마치 대지가 기울듯이 흔들리는 시선이다. 물론 그것은 신운일이 쓰러지면서 보는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다. 그런 다음 일본군들은 마치 자기들의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돌아간다. 눈 덮인 언덕 아래에서 고백화는 물어본다. “아니, 어떻게 된 것일까요?” 박노훈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이 대답한다. “녀석은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아니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군” 멀어져가는 일본군. 그때 앰뷸런스 차 안에서 총에 맞아 구멍 뚫리고 금이 간 창문을 통해서 그들을 바라본다. 이 난처한 두 개의 쇼트 사이의 반복적인 쇼트와 상대 쇼트. 말하자면 성립되지 않는 시선의 교차.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사후적인 설명이 동원되어야 할 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다. 마치 배를 타고 멈춰 서서 바라보는 박노훈처럼. 그때 눈물을 흘리는 박노훈의 얼굴. 눈물. 한 없이 이어지는 무심한 강물. 그들은 무사히 상해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이 길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 인생을 사랑하는 법. 그건 임권택 그 자신이 습작들과 작별하면서 내게 설명한 말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계속) 



1973년 98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우진필림
각본  신봉승, 윤석훈
촬영  변인집
음악  전정근
미술  노인택
편집  현동춘

박노식  박노훈
신성일  신운일
고은아  고백화 기홍
태현실  태백화 정미
독고성  최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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