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아
Ko Eun-ah / 高銀兒
본명
이경희 (Lee Kyung-hee)
출생·사망
1946 ~
대표분야
배우, 제작/기획
데뷔작품
난의 비가 1965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필모그래피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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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원로영화인 구술인터뷰] 고은아 (, 2000)
60년대 한국영화의 중흥기를 이끈 영화감독 최훈 (송연희, 2000) 인터뷰
사랑이 꽃피는 나무 (고응호, 1981) (uncredited)
따뜻한 겨울 (김수용, 1979)
영녀 (변장호, 1979)
맨발의 청춘 (김수형, 1979)
어딘가에 엄마가 (정회철, 1978)
율곡과 신사임당 (정진우, 1978)
비둘기의 합창 (최현민, 1978)
과부 (조문진, 1978)

주요경력

1987년 은하극장 대표
1993년 영화사 은하필름 창립 및 대표
1997년 합동영화 서울극장 대표이사 사장
1997년 서울시네마타운 대표
중앙시네마 대표이사 사장
2003년 생명창고 대표
행복한나눔 이사장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현재 서울극장 및 합동영화사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본명보다는 영화배우 고은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실 본명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처음 영화계에 입문하게된 것은 홍익대 미대 재학중이던 65년이다. 당시 극동영화사의 차태진 씨가 보고는 학교로 찾아오고 집으로도 계속 연락을 하면서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애원을 해 딱 1편만 찍고 그만둘 생각을 하고 출연한 작품이 <난의 비가>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반응이 워낙 좋아서 이를 계기로 영화를 계속하게 되었다.
주요 영화작품
란의비가(1965,정진우감독)
갯마을(1965,김수용감독)
소복(1966,전조명감독)
소문난 여자(1966,이형표감독)
소령 강재구(1966,고영남감독)
오늘은 왕(1966,김기덕감독)
물레방아(1966,이만희감독)
청춘극장(1967,강대진감독)
애하(1967,이형표감독)
내몫까지 살아주(1967,정소영감독)
까치소리(1967,김수용감독)
엄마의 일기(1968,이형표감독)
젊은 여인들(1969,조문진감독)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유현목감독)
남편(1969,조문진감독)
며느리(1972,이성구감독)
쥐띠부인(1972,곽정한감독)
수선화(1973,최훈감독)
불꽃(1975,유현목감독)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77,임원식감독)
과부(1978,조문진감독)
율곡과 신사임당(1978,정진우감독)
주요기타작품
TV
1971년 너는 약자(TBC)
1972년 사모곡(TBC)
1972년 즐거운 우리 집(KBS)
1973년 달래(TBC)
1973년 연화(TBC)
1976년 윤진사댁 며느리(MBC)
1976년 사미인곡(MBC)
1976년 재회(MBC)
1976년 꽃사슴(MBC)
1978년 엄마 안녕(TBC)
1979년 철이의 군함(TBC)
1989년 제2공화국(MBC)

연극
1972년 다이알 M을 돌려라
애착작품 및 사유
누구나 첫사랑의 감정이 남다르듯이 데뷔작인 <난의 비가>가 애착이 가고 또한 <갯마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갯마을>은 작품도 좋고 여기에서 맡은 온갖 역경을 이겨 나가는 청상과부의 역할이 무척 힘들면서도 애착이 가는 역할이다. 호현찬씨의 간곡한 부탁으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계속 영화를 하게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하고싶은 말
영화를 하는 동안 경험한 여러형태의 상황들이 간접경험이긴 했지만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인내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졌던 큰 도움이며 큰 열매입니다. 영화는 결코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허상도 아니었습니다.지금은 영화사와 극장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업상 많은 영화를 보게 된다. 개중에는 정말 어쩔수 없이 보아야하는 지겨운 작품들도 많다. 최근에 본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가 무척 인상에 남는 명작이다. 이런 영화가 왜 진작에 소개되지 않았나 할 정도이다.영상자료원에 대해 바라는 바는 좀더 옛자료들의 수집,보관에 애를 써서 소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6,70년대 작품들마저도 프린트가 남아 있지 않는 것이 많고 남아있는 작품마저도 어떤것은 중간부분이 유실되고 어떤 것은 화면은 멀쩡한데 소리가 안 나오고 이런식으로 과거의 작품들의 보관 상태가 엉망인 점이 안타깝다.
영화속 명소
<갯마을>에 등장하는 부산쪽에 있는 갯가가 참 아름다운 장소다. 이 작품에서 한마을의 떼과부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물질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참 아름다운 영상이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추구했던 연기스타일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전반적인 분위기가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을 대변했던 시기여서 "한국적인 여인상"의 스타일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자기소개 및 취미
1965년 데뷔 후 1980년 이후 모든 출연을 중단하고, 1995년 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선교방송에 주력하면서 해외동포와 국내 여러곳을 다니며 선교활동을 했다. 현재는 서울극장,합동영화사, 대구 중앙시네마, 부산은아극장의 대표로서 일하고 있다.
저술내역
1988년 새롭게 하소서 싸매시는 하나님
수상내역(영화)
▣기타 영화관련 수상내역/
제9회 부일영화상 신인상 (갯마을)/

1966년 제1회 대일영화상 신인여우상/
1966년 제4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72년 제11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며느리)/
1972년 제9회 청룡영화상 여우인기상/
1972년 제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연기상(고백)/
1972년 제7회 중도영화제 영화부문 여우주연상/
1973년 제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1973년 제10회 청룡영화상 인기상/
1974년 제1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1974년 제20회 아시아영화제 주연상(수선화)/
1977년 MBC 연예대상/
1978년 제17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과부)/

2013 여성영화인축제 공로상 부문
수상내역(기타)
1972년 TBC 연기대상 특별상(사모곡)/
1973년 TBC 탤런트 주연상(달래)/
1987년 기독교문화상 방송상(새롭게 하소서)/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고은아는 홍익대 공예과 2학년 재학 중 학교를 찾아 온 정진우 감독의 조감독에게 발탁되어 <란의 비가>(1965)로 데뷔했다(여성영화인사전). 고은아는 같은 시기 데뷔한 남정임, 문희, 윤정희와 함께 기성 스타인 엄앵란과 태현실의 자리를 대체할 신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고은아는 1966년 한해에만 24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는데 이는 김지미, 신성일 다음으로 많은 출연횟수여서 당시 그녀의 인기를 짐작하게 해준다(동아일보a). 고은아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67년에 합동영화사 사장 곽정환과 결혼하였으며, 결혼 후에는 주로 남편의 영화사인 합동영화사 작품에 출연하였다. 1970년대에는 브라운관으로 진출하여 <사모곡>(1972), <달래>(1973), <사미인곡>(1976) 등의 TV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가정주부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야외촬영이 많은 영화보다는 스튜디오 촬영위주인 TV드라마에 주로 출연했다고 한다(여성영화인사전).
TV드라마 활동에 전념하면서 영화계와 거리를 두었던 그녀는 1971년 곽정환의 감독데뷔작 <애>(1971)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복귀하여, 1972년 <며느리>(1972)로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경향신문a). 1977년에는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배우로 꼽힐 만큼 전성기를 누렸다(동아일보d). 1978년에는 국내 최초의 동시녹음 영화 <율곡과 신사임당>에 출연해 동시녹음 연기도 선보였다(동아일보c). 배우, 탤런트 뿐 아니라<신혼만세>(KBS), <뉴스타쇼>(TBS) 등의 TV프로그램에서 사회자로도 활동했다(동아일보b, 경향신문b).
1970년대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녀는 1980년대 들어서 연예계활동을 접고 기독교인으로 선교활동과 기독교 방송활동에만 전념했다(동아일보e). 1987년 남편 곽정환으로부터 그녀의 이름을 딴 은하극장을 선물 받으면서 극장주가 되었다(경향신문c). 1993년에는 영화사 은하필름을 설립하여 종교영화 <무거운 새>(1994)를 제작했다(경향신문d).

* 참고문헌
여성영화인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0049&keyword=고은아)
동아일보a 1967년 1월 19일자 5면.
경향신문a 1971년 11월 15일자 8면.
동아일보b 1972년 7월 22일자 8면.
경향신문b 1973년 1월 11일자 8면.
동아일보c 1977년 6월 18일자 5면.
동아일보d 1977년 8월 15일자 5면.
동아일보e 1980년 9월 6일자 5면.
경향신문c 1987년 1월 15일자 11면.
경향신문d 1994년 5월 17일자 17면.

* 최종학력-네이버 인물검색
* 1966년 부일영화상 우수신인상(갯마을)-경향신문 1966년 3월 5일자 5면.
* 1966년 제1회 대일영화상 신인여우상-경향신문 1966년 3월 12일자 5면.
* 1972년 중도영화상 영화부문 여우주연상-경향신문 1972년 10월 23일자 8면.
* 1972년 TBC 연기대상 특별상(사모곡)-경향신문 1972년 12월 28일자 8면.
* 1973년 TBC 탤런트 주연상(달래)-경향신문 1973년 12월 25일자 8면.
* 1974년 제20회 아시아영화제 주연상(수선화)-경향신문 1974년 6월 17일자 8면.
* 1977년 연예대상-동아일보 1977년 12월 23일자 8면.
* 1988년 새롭게 하소서 싸매시는 하나님-경향신문 1988년 4월 12일자 3면.
* 주소-동아일보 1990년 11월 2일자 31면 참조

[작성: 김성희]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고은아 高銀兒

-배우, 제작자, 극장주. 1946년 2월 16일 부산 출생. 본명 이경희(李京姬). 홍익대 공예과 중퇴.

홍익대 재학시절 학교를 찾아 온 정진우 감독의 조감독에게 발탁되어 65년 정진우 감독의 <난의 비가>로 데뷔했다. 당시 잡지에는 이 신인여배우를 “소녀의 가슴 속에 한없이 부풀어오른 사랑의 꽃봉오리. 미쳐 피기도 저에 숨져간 애절한 인연이 아로새겨진 <난의 비가>로 일약 비련의 히로인으로 성장한 고 양의 청초한 마스크는 그대로의 이미지임에 틀림없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연골육종(軟滑肉腫)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시한부인생을 사는 여인 역을 맡아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 그는 같은 해 김수용 감독의 <갯마을>에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 과부 역을 연기하면서 진정한 배우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황정순, 전계현, 전옥, 이민자 등의 연기파 배우들 사이에서 연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연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인이었던 그의 연기지도를 위해 특별히 여성 조감독 나소원씨를 두기도 했던 김수용 감독의 배려도 한 몫을 했다. 이후 <친정어머니>(66, 김기덕) <소문난 여자>(66, 이형표) <물레방아>(66, 이만희) <까치소리>(67, 김수용) 등에서 “화면은 이쁘게 나왔지만 꼭두각시처럼 정감을 못 느끼게 하는 연기”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한국 재래의 유순하고 소박한 여성상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인기 절정에 있던 무렵인 67년, 그는 돌연 합동영화사 사장 곽정환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당시 “37세 노총각이었던 제작자 곽정환 군과 방년 22세의 스타 고은아 양의 결혼”은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결혼 후 주로 남편의 영화사인 합동영화사 작품에 출연하면서 연기활동을 계속하던 그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모곡> <달래> <추풍령>(TBC), <즐거운 우리집> <은하의 계절>(KBS), <제2공화국>(MBC)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는 주부이자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연기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당시 스튜디오 촬영만으로 이루어지던 TV 드라마에 출연했다고 한다. <며느리>(72, 이성구) <불꽃>(75, 유현목) <과부>(79. 조문진) 등에서 보여준 자애로운 어머니상은 연기라기보다는 그의 본성 그 자체로 보인다. “잘 익은 과일같은 농축된 볼륨으로 시선을 끈 것이 <과부>에서 보인 고은아의 연기였다. …그녀가 부각한 인종하는 한국적 여인상의 재현은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초기작 <갯마을>의 혜순역과 함께 평가되어야 할 수확 …. 65년 데뷔한 이래 200여 편에 출연한 고은아는 이 영화에서 보인 잠재력을 계기로 보다 밀도있는 내면연기의 바탕을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이후 80년부터 15년 동안 CBS 라디오의 ‘새롭게 하소서’ ‘영으로 찬양, 소리 높여 찬양’ 등을 진행했으며 94년에는 종교영화 전문 제작사인 ‘은아필름’을 설립해 <무거운 새>(곽정환)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87년 부산의 은아극장을 시작으로 97년부터는 서울극장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경영인으로 변신했으며 99년에는 부산에 대영시네마를 개관하기도 했다.(안재석)

출연
-65 갯마을, 난의 비가. -66 간첩작전, 딸이면 어때, 물레방아, 백발백중, 불사조, 불타는 청춘, 사랑보다 강한 것, 산유화, 소령 강재구, 소문난 여자, 순애, 악인가, 오인의 건달, 오늘은 왕, 종점, 친정어머니, 태양은 다시 뜬다, 회전의자, 흑발의 청춘. -67 가고파, 고별, 고향, 공처가 삼대, 길을 묻는 여대생, 까치소리, 남남북녀, 남매, 내 멋에 산다, 내 몫까지 살아주, 네 자매, 돌지 않는 풍차, 비련, 비서실, 사월이 가면, 상처뿐인 청춘, 새벽길, 수라문의 혈투, 소복, 숙명, 안개 낀 초원, 애인, 애하, 연합전선, 열정, 육체의 길, 제삼의 청춘, 종야, 청춘극장, 팔도강산, 형수, 환영. -68 귀부인, 내 것이 더 좋아, 다시 만날 때까지, 복수, 비정의 항구, 사랑했는데, 속 팔도강산, 순정, 어머니는 강하다, 엄마의 일기, 재혼, 청등 홍등, 청춘고백, 춘풍. -69 나도 인간이 되련다, 남의 속도 모르고, 남편, 당신의 뜻이라면, 독신녀,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밤나비, 사나이 세계, 성녀와 마녀, 식모 삼형제, 애수의 언덕, 잠바 Q, 젊은 여인들, 정과 애, 하늘을 보고 별을 따고, 한번 준 마음인데. -70 울고 간 여인, 팔도검객. -71 고백, 내일의 팔도강산, 세 남매, 애, 어느 부부, 여고생의 첫사랑,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지금은 남이지만. -72 며느리, 우리의 팔도강산, 인생은 나그네길, 쥐띠부인. -73 야간비행, 장안명기 오백화, 천사의 메아리, 홍의 장군. -74 달래, 수선화, 작은 새, 황비. -75 내일은 진실, 동거인, 불꽃, 새벽에 온 방문객, 실록 김두한, 연화, 흑야. -76 캘리포니아 90006. -77 우리들 세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78 율곡과 신사임당, 어딘가에 엄마가, 비둘기의 합창. -79 과부, 영녀.
제작
-94 무거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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