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2010

by.김종철(익스트림무비 편집장) 2013-03-28조회 10,039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한국 장르영화 범주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최상의 작품이다. 이 영화를 액션 스릴러를 벗어나 고어 장르로 분류했을 때, 이 정도의 감독과 배우, 스태프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사례는 해외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악마를 보았다>를 빛나게 만든 요소는 여러 가지다. 김지운 감독의 유려한 연출, 박훈정의 매력적인 시나리오, 이병헌과 최민식의 불꽃 튀는 연기, 파괴적인 액션의 구성, 모그의 음악과 촬영 등 기술적인 완성도 또한 발군이다. 종합하자면 한 장르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던 김지운 감독의 연출 역량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악마를 보았다>는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한 약혼녀의 복수를 행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폭력은 폭력으로 되돌려주는 복수의 서막은 후련하지만, 점점 안타까움이 더해지며, 막바지에 이르면 절망적으로 끝이 난다. 

이병헌이 연기한 김수현은 강하지만 부드러운 남자다. 그는 약혼녀를 잃고, 복수를 위해서 살인마를 쫓는다. 최민식이 열연한 연쇄살인범 장경철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으로 똘똘 뭉친 사이코다. 둘의 만남은 영화 절반이 채 되기도 전에 이루어지고, 수현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경철을 제압한다. 관객은 당혹감과 함께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궁금해한다. 무시무시한 광기를 발산하던 연쇄살인범이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실신을 해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서부터 진짜 악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수현은 경철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버리기엔 분노가 가라앉질 않는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경철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는 것이며, 이것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고 스스로를 헤어날 수 없는 심연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악마를 보았다>의 매력은 쫓고 쫓기는 자의 유혈 낭자한 대결과 복수와 더불어, 선에서 악으로 서서히 변화하는 인물의 내면적 갈등과 고뇌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두 인물의 대립관계를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수현은 경철을 잡았다 풀어주고, 잡았다 풀어주고를 반복한다. 그는 경철을 달아날 수 없는 사냥감으로 취급하며, 고통의 수위를 높여가면서 압박을 가한다. 하지만 경철은 폭력과 고통에 굴복하는 호락호락한 양아치가 아니다. 수현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영화는 선과 악의 단순한 대결을 벗어난다. 지독한 복수를 행하는 자는 자신을 버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수현이 상대하는 자는 순수할 정도로 철저하게 악에 물들었고, 그는 그것을 간파하지 못했다. 결국 복수의 끝자락에 이르면 수현은 악마에게 먹혀버린다. 영화의 결말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복수의 허망함과 안타까움으로 채워진 수현의 눈물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이병헌의 섬세한 연기와 조용하게 흐르는 모그의 음악이 절묘하다. 

<악마를 보았다>의 폭력묘사는 장르영화가 추구하는 극단적 자극을 충족한다. 도입부 납치와 살인, 사체 처리 장면의 임팩트도 크지만, 영화 곳곳에서 광기 서린 경철의 살육의 끊이질 않는다. 특히 택시 강도들과의 싸움은 기술적으로 난이도 높은 씬으로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살육의 미학을 꽃피운다. 여기에 변함없는 김지운 감독의 유머가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훌륭한 감독과 배우의 조합이 아니었다면, 분위기를 깨트릴만한 유머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려 재미를 더한다.

<악마를 보았다>는 성격상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불편하고 기분 나쁜 영화가 될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광적으로 빠져들며 팬이 되기를 자처하게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한국영화계에서 장르 본연의 성격에 지독하게 충실한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특별한 영화의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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