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Lee Man-hee / 李晩熙
출생·사망
1931 ~ 1975
대표분야
감독, 배우, 시나리오
데뷔작품
주마등(1961) 1961
활동년대
1950, 1960, 1970

필모그래피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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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삼포가는 길 (이만희, 1975)
태양닮은 소녀 (이만희, 1974)
청녀 (이만희, 1974)
삼각의 함정 (이만희, 1974)
들국화는 피었는데 (이만희, 1974)
일본해적 (이만희, 1972)
0시(영시) (이만희, 1972)
04:00 -1950- (이만희, 1972)
쇠사슬을 끊어라 (이만희, 1971)
고보이 강의 다리 (이만희, 1970)

기타정보

수상내역(영화)
▣기타 영화관련 수상내역/
1967년 제10회 부일영화상 최우수 감독상 (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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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집 없는 천사>(1941), <복지만리>(1941), <자유만세>(1946) 등을 보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고, 한국 전쟁 때 육군통신학교에서 암호병으로 4년간 복무한 뒤 전역한다(서울특별시 중구문화원). 전역 뒤인 1955년 연극 연출가 이진순이 있던 드라마센터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하다가(무비위크), 그 이듬 해, 이웃에 살던 당시 안종화 감독의 조연출이던 황학봉에게 보여준 습작 시나리오가 계기가 되어 1956년작 안종화 감독의 <천추의 한>에서 연출부로 일하고(한국영화감독사전), 몇 년 간의 조감독 생활을 거쳐 1961년 <주마등>을 연출하며 감독 데뷔한다. 감독 데뷔 후, 1975년 사망할 때까지 50여 편의 영화를 연출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1960년대 중반은 연출 경력 중 최절정기로서 1967년의 부산영화평론가협회에서 선정한 1966년 최고의 한국영화 10편 가운데 1, 2, 3위를 <만추>(1966), <시장>(1966), <물레방아>(1966) 등의 영화로 차지하기도 한다(서울신문). 50여 편의 연출작 가운데는 개인적인 대표작일 뿐 아니라, 한국영화사의 전체를 통틀어 대표작으로 꼽힐 수 있는 작품들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검은 머리>(1964), <마의 계단>(1964), <시장>(1965), <만추>(1966), <귀로>(1967), <휴일>(1968), <04:00 - 1950>(1972), <삼포 가는 길>(1975) 등이 있다. 전박적인 작품 스타일은 크게 보아 전쟁 영화들과, 유럽 모더니즘 영화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 느와르와 스릴러 스타일의 장르 영화들 등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전쟁영화들로는 초기 연출 경력 가운데 가장 큰 흥행 성공을 거두었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을 시작으로 (1963), <7인의 여포로>(1965), <군번 없는 용사>(1966), <얼룩무늬의 사나이>(1967), <창공에 산다>(1968), <고보이 강의 다리>(1970), <04:00 - 1950>(1972),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등이 있으며, 그 소재와 주제의 톤의 폭이 넓어서, 한국 전쟁 당시, 혹은 이후를 다루거나, 국군이 아닌 인민군의 입장에서 전쟁을 그리고(<7인의 여포로>는 그 때문에 반공법 위반으로 투옥되기에 이른다), 한국 전쟁이 아닌 베트남전으로 그 무대를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도 전쟁영화로서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나 <들국화는 피었는데>부터, 한국 전쟁을 피아의 대립보다는 고립의 조건으로 활용하여 벙커 속의 병사들을 통해 미니멀한 무대극처럼 만들어낸 <04:00 - 1950>에까지 이른다. 두 번째 스타일인 유럽 모더니즘 영화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로는 <만추>(1966), <귀로>(1967), <휴일>(1968), <삼포가는 길>(1975) 등의 작품이 있고, 전후의, 혹은 전쟁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모던한 도시 풍경과 그 도시 풍경을 배회하는 주인공들의 우연한 관계 맺음에 관심을 기울이는 영화들이다. 마지막 느와르, 스릴러 풍의 영화들로는 <다이알 112를 돌려라>(1962)를 시작으로 <검은 머리>(1964), <마의 계단>(1964), <기적>(1967), <여섯 개의 그림자>(1969) 등의 영화들이 있고, 이 영화들은 미국의 느와르 영화 스타일과, 프랑스의 하이스트(heist) 영화(범죄의 과정을 세밀히 묘사하여 그리는 프랑스의 영화 장르로 줄스 다신 감독의 <리피피>(1955)가 그 대표작) 스타일의 교점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 참고문헌
서울신문 1967년 1월 19일 8면
양택조에게 듣는 이만희 감독 그리고 '만추'-2, 『무비위크』 467호 (2011년 2월 25일)
서울특별시 중구문화원 편, 『영화의 메카 충무로』, 서울특별시 중구문화원, 2005, 279쪽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황미요조]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1년 10월 6일 서울 하왕십리 출생. 서울 토박이인 부친은 민간요법으로 동네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일을 하다가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홀어머니 밑에서 4남매 가운데 아들로 자라나 5년제 경신중학을 졸업. 1950년 육군에 입대하여 암호병으로 복무했다. 그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집과 가까운 광무극장이나 그밖의 동화극장,동도극장등에서 많은 영화를 보게 되면서 부터였다. 이 무렵에 본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1946)는 감수성이 풍부한 이 청소년에게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1955년 이둥중사로 제대한 후 한동안 연극공연에 참여하여 영화계 진출의 기회를 엿보았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배우학원에서 만난 연기 지망생인 한 여성과 연애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오늘의 영화배우로 성장한 이혜영의 어머니인 오씨이다. 그런데 그에게 영화계와 인연을 맺게 한 것은 이웃에 사는 황학봉이었다. 그는 초창기의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안종화의 조감독으로 이만희가 쓴 시나리오를 보자 스승을 소개시켜 주었다. 마침 촬영을 준비중이던 <천추의 한>(1956)에 조감독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같은 해 안종화 감독의 <사도세자>에는 스탭이 아닌 자객으로 출연했다. 그후 5년 가까이 안종화,박구,김명제 문하에서 연출수업을 쌓고 30살이 되던 1961년 <주마등>을 통해 기다리던 영화감독으로 진출하게 된다. 이 영화는 지식을 얻기 위해 소실을 둔 사나이와 소실 몸에서 낳은 남매를 학대하다가 가산을 탕진한 본처의 순탄치 않은 인생행로를 그린 멜로드라마로 최은희,김진규가 주연을 맡았다. 계속해서 무직자를 사랑하는 딸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아버지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조미령,최무룡 주연의 <불효자>(1961)를 비롯하여 <살아있는 그날까지>,<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를 단숨에 내놓게 된다. 특히 여자의 유산을 탐낸 전 남편 일당의 음모와 위기에서 벗어나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긴장된 흑백화면으로 이끌어낸 최무룡,문정숙 주연의 방법영화 <다이얼 112를 돌려라>는 앞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주목케하는 만만찮은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저력은 여섯 번째 연출작인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을 통해 지체없이 확인된다. 장동휘,최무룡,구봉서등 출연진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인천상륙 작전에 참가하여 북진을 거듭하던 해병대의 한 부대가 중공군의 반격에 부딪쳐 거의 전멸해가는 극한 상황속에서 표출되는 본능적인 인간의 모습과 눈물겨운 전우애를 그렸다. 흔히 회자되듯이 잘 싸워 이기는 '불패의 해병용사'가 아니라 '인정도 있는 보통 사람'이라는 휴머니즘의 측면을 강조한 가작이다. 서울 개봉에서만 22만 8천 여명의 관객을 끌어들일 만큼 흥행에도 성공하였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이뤄낸 관객의 호응와 작품성은 당장 다음 영화의 연출료 인상으로 반영되었다. 보통 감독료 20만원 내지 30만원일때 그는 <열 두냥짜리 인생>(1963)을 맡으면서 50만원을 받았다. 여세를 몰아 이듬해 <내가 설 땅은 어디냐>,<마의 계단>,<검은 머리>(이상 1964)등 6편을 소화하고, 2년 동안 <7인의 여포로>,<흑맥>,<시장>(이상 1965),<만추>,<군번 없는 용사>(이상 1966)등 8편을 내놓기에 이른다. 이 시기에 이만희는 법정으로까지 비화된 <7인의 여포로>와 생애 최고의 업적인 <만추>를 만들었다. 문정숙,유계선등이 출연한 <7인의 여포로>는 국군과 인민군을 적대관계가 아닌 민족동질성 회복이라는 시각에서 다룬, 당시로서는 매우 진취적인 소재였다. 인민군의 포로가 돼 호송 중이던 국군 간초장교들이 도중에 만난 중공군에게 겁탈당하려 하자 이를 지켜보던 인민군 인솔장교가 부하 사병과 함께 총격을 가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지만 무의식중에 큰 일을 저지르게 된 그 장교는 앞으로 받게 될 처벌이 두려운 나머지 부하들을 설득하여 국군에게 자수하고 포로들을 인계한다. 즉 '반국가 단체나 그 구성원 도는 국외의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고무 또는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해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소장에는 "공산계열인 북괴와 중공은 공산주의 이념이 동일하고 대한민국을 침해함으로써 상호간 무력군 수색대장으로 하여금 제거케 한 것은 결과적으로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고무 동조 찬양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기술돼있다. 인민군이 귀순하는 결말의 숲은 외면하고 국군 간호장교를 중공군이 구해주는 과정의 나무만 본 셈이었다. 이감독은 불구속된지 40여일 만인 1965년 12월 하순 전격적으로 구속 기소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수한 뒤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호현찬 프로덕션이 제작한 <만추>는 한 여죄수와 떠돌이 위조 지폐범의 덧없는 3일간의 사랑이 뼈대이다. 특별 휴가를 얻어 귀향열차에 오른 모범수 혜림(문정숙)은 같은 자리에 앉은 위조지폐범인 청년(신성일)과 알게 되고 차가 잠시 머문 사이 억눌려 온 욕정을 불태운다. 그녀는 다음 날 약손한 창경원으로 찾아가나 청년은 나타나지 않는다. 실망을 안고 휴가 마지막날 교도소로 발길을 돌리는데 기다리고 있던 청년이 그녀에게 내복 한 벌을 건네준 뒤 경찰의 수갑에 손을 맡긴 채 쓸쓸히 멀어져 간다. 이처럼 <만추>는 특별한 사건이나 기복없이 이루어져 단순한 느낌마저 주지만 오히려 그런 요소들이 정감을 살리고 심리의 미세한 부분까지 파들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김지현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서정민이 촬영한 영화로서 국내의 경우만 해도 김기영(육체의 약속,1975),김수용(만추,1981)감독에 의해 두 번이나 리메이크 되었다. 신영균,문정숙 주연의 <시장>은 어물을 거래하는 시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한 여자를 둘러싼 여러 남성들의 애욕과 관계를 통해 저변 인생의 애환을 부각시켰고, <군번 없는 용사>는 반공 유격대 대장인 큰 아들과 인민군 보위성 고급 간부인 작은 아들 사이에 끼어 입장이 난처했던 아버지가 인민군인 작은 아들에게 반동분자로 몰려 처단되는 비극을 그렸다. 신성일 문정숙 주연의 이 영화는 치밀한 드라마 트르시가 돋보이는 반공 군사물로 대종상과 청룡상 두 군데서 수상할 만큼 각본(한우정)의 구성력이 단단했다. 1967년은 양적으로 가장 풍성한 해였다. 그는 1년 사이에 <방콕의 하리마오>를 비롯하여 <기적>,<삼각의 공포>,<귀로>,<얼룩무늬 사나이>,<싸리골의 신화>,<망각>등 무려 11편이나 내놓았다. 한 달에 거의 한 편씩 쏟아낸 셈이었다. 이 가운데서 관심을 끈 것은 <기적>과 <귀로>,<싸리골의 신화>등 세 편. <기적>은 경찰의 추적을 받는 살인범이 열차에 숨어 들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로 액션보다 심리드라마적 요소가 강했다. <귀로>는 6.25전쟁때 척추 불구가 된 군출신 작가를 내세워 가정적으로 갈등을 빚는 전후의 상흔을 엮었으며, <싸리골의 신화>는 전쟁 중에 낙오가 된 7인의 국군 낙오병을 숨겨준 장노인(최남현)이 인민군의 그 어떤 압력에도 굽히지 않고 국군 낙오병을 보호하여 마을에 평화를 맞게 하는 카리스마를 담았다. 그러나 이후부터 질과 양 면에서 뚜렷한 성과없이 하향 곡선을 그렸다. 1968년 범죄단체의 주모자가 자폭을 가장해 살인을 저지르는 액션 추리물 <외출>, 교육 과정을 거친 공군비행학교 생도들의 출격과 전우애를 그린 <창공에 산다> 두 편을 만들고 이듬해에는 전향한 남파 간첩을 처치하라는 지령을 받고 남파된 북한 첩자의 회의를 다룬 <암살자>(1969),난반 사고로 갱속에 묻혀있다가 16일만에 구출된 광부 김창선의 초인적인 생환기 <생명>(1969)등 4편을 내놓았다. 첫 해를 넘긴 1970년대의 자취는 <쇠사슬을 끊어라>(1971)를 출발점으로 유작이 되어버린 <삼포 가는 길>(1975)까지 <0시>(1972),<태양을 닮은 소녀>(1974),<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등 모두 9편으로 기록된다. 이 시기에 특기할 만한 영화라면 신성일,김남일 주연의 <들국화는 피었는데>와 <삼포 가는 길>을 들 수 있다. <들국화는 피었는데>는 임권택의 <증언>(1973)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화진흥공사가 국채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은 한 어린이의 증언을 토대로 그가 겪은 민족분단의 비극,전쟁의 참상을 부각시켰다. 황석영 원작,유동훈 각색,김진규 백일섭 문숙 공연의 <삼포 가는 길>은 개봉 당시 일주일만에 극장 간판을 내릴 만큼 흥행에서는 참패했으나 작품성은 인정받았다. 인생이 밑바닥을 걷는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나 동향하는 동안 서로 공유하게 되는 삶의 애환과 인간적인 유대,일화들을 감옥에서 나와 공사판을 돌아다니다가 고향을 찾아가는 중년의 사나이 정씨(김진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로드무비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눈보라 치는 산길, 얼어붙은 시냇물 따위의 황량한 설원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마치 황폐한 사회를 암시한 듯한 눈보라 속에 고목처럼 박혀 있는 허수아비들,그리고 눈 속에 떠오르는 주막,상가 등 생명력을 부지하는 것들이 후반부에 이르면서 스물스물 살아난다. 하지만 이만희는 <만추>의 라스트신처럼 <삼포 가는 길>의 결말도 절박한 행복의 갈망 앞에서 쓸쓸히 비껴간다. 그는 데뷔 초기에 보여줬더 상황집약적인 서스펜스의 취향에서 탈피하여 말년에 이를수록 이념의 경계를 넘어 인생을 돌아보는 관조와 폭의 세계를 제시해 보았다. 그는 부정적인 인간을 즐겨 다루어 왔으나 이들을 심판하려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콘티뉴이티에 철저했던 그는 1975년 4월 15일 오후 6시 30분 마흔 다섯 살을 못 넘기고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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