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 뉴스, 한미동맹의 기록 (2) (계속)

2023-11-30 ~ 계속
리버티 뉴스, 한미동맹의 기록 (2) (계속)

첫 번째 기획전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하여 <리버티 뉴스>를 개괄하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대한원조의 거시적인 맥락들을 가급적 연도 순으로 짚었다면, 이번 기획전은 대한원조가 긍정적인 결실로 이어진 구체적인 사례들이라든지 과학기술, 영화, 예술, 행사 등 사회 각계의 다채로운 소식들을 짚어 보고자 한다. 특별히 리버티 뉴스를 제작한 주한 미 공보원(USIS-Korea)과 상남 영화제작소는 한국 영화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최신 시설을 갖추고 꾸준히 제작을 진행했으며 국내 영화인들과 활발히 교류, 협력하여 이후 한국 영화를 책임질 신진 기술 인력들을 육성, 배출해 낸 산실로서 도 평가받을 만하다. <리버티 뉴스>의 일부 회차를 통해 이런 맥락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리버티 뉴스>와 같은 뉴스릴이나 여타 기록영상들은 동 시기 극영화 작품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기도 한다. 극영화는 당대 대중의 일반적인 상식과 그들에게 익숙한 시대적 공기를 구태여 설명하지 않지만, 해당 시대에 대한 정보가 없는 오늘날의 관객은 극의 중요한 정서나 맥락을 짚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소식들에서는 함께 비교하면 좋을 극영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번에 공개하는 <리버티 뉴스>영상들도 지난 1차 기획전과 같은 기준으로 준비했다. 다만 이번 공개분은 음향이 유실된 경우가 많으며, 이외에도 아래와 같이 예외적인 기술사항들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소장 영상이 가편집본인 경우 세부 회차 정보라든지 각 소식의 제목이 누락된 가편집 버전인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에는 원활한 감상을 위해 영상의 각 소식 앞에 제목을 삽입했으며, 소식들의 내용을 종합하여 해당 회차 공개 시기를 추정하여 안내했다.
상이한 화면비들의 처리 각 호마다 화면비가 1.33:1, 1.37:1, 1.365:1 세 종류 중 하나중 하나로 들쑥날쑥하다.여러 푸티지를 조합, 재사용해야 했던 상황, 상남영화제작소 스태프들의 숙련도 차이 등의 원인이 있었을 것이나, 필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수집 당시 디지털 변환 작업을 진행했던 작업처에서 일관된 기준이 없이 진행했었으리라고 보는 편이 가장 타당하다. 다만 등장인물이나 배경의 종횡비가 왜곡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되므로, 1.33:1, 1.37:1은 각각 원 소스의 화면비를 유지하고, 특히 정체모를 화면비인 1.365:1은 실수였을 것으로 보고 1.37:1로 변환했다.


⚠ 모든 영상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 근현대 영상자료 수집 및 DB구축 사업'으로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와 한국영상자료원이 공동 수집한 자료에서 공개가 가능한 '국내소식'만을 발췌한 것입니다.

⚠ 리버티 뉴스의 다른 회차에 대한 내용 정보는 한국영상자료원의 KMDb 및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상영작품
  • 01. 리버티 뉴스 제639호 , 1965
    ¶ 1965년 11월 첫째 주 소식
    639-01. 온정의 손길 대구 동산기독병원의 하워드 모펫 원장이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에 호소하여 얻어낸 겨울철 유행성 감기 백신을 경북 교육위원회를 통해 1965년 10월 20일부터 각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접종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워드 모펫 원장은 일제강점기에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국 서북지역 선교에 크게 기여했던 선교사 새뮤얼 모펫(한국 이름은 마포삼열)의 아들로서 해방 이후 대구 동산기독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 교육 선교로 인근 지역의 고아, 무의촌 농민 등의 구제에 힘을 쏟았다. 특히 1950년대에는 고아를 위한 의료가 큰 화두였는데, 하워드 모펫은 선명회(현 월드비전), 유엔한국재건단(UNKRA), 주한미군대한원조프로그램(AFAK)의 원조를 받아 1953년 10월에 아마도 한국 최초로 추정되는 아동병원을 설립하고 인근 고아원을 순회하며 무료진료 활동을 했다.

    두 번째 소식은 마산일보사(현 경남신문)가 마산의 영국아동보호병원 협조로 남해의 작은 섬 갈도 주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실시하고 책과 식량을 나눠주는 한편, 경상남도 남해 군민이 기증한 밀가루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김형윤 사장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 언급되는 ‘영국아동보호병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1950년대부터 국내에서도 계속된 영국아동구호재단(Save the Children Fund)의 고아를 위한 진료기관 설립 지원 활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1953년 마산일보는 경남지역의 유력 일간지로서 상남영화제작소 인근에 소재하여 지역 소식 발굴 등과 관련한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58년에는 배석인 감독이 연출한 리버티프로덕션의 문화영화 <지방신문 편집자>(Korean Editor) 제작을 후원하고 주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근대식 공중 보건 위생관리 체계가 지역사회까지 자리잡는 데에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므로 한국의 경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50년대까지 유엔민사원조사령부(UNCACK)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급성전염병의 현황 파악과 방역 활동, 보건소 확충사업도 좋은 성과와 별개로 늘 예산 문제로 허덕였고, 이러한 원조 자체도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1961년에 들어선 군사정부도 같은 상황에 직면했고, 1962년 9월에 보건소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보건소 설치와 운영을 각 지방 행정기관으로 위임하는 등 중앙정부의 부담을 분산하고자 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리버티 뉴스 이번 호는 이런 배경 속에서도 지자체나 민간 언론사가 해외의 선교 및 아동구호단체 등의 계속되는 지원에 힘입어 지역 의료 활동을 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639-02. 수출되는 가발 가발은 1950년대부터 패션 아이템으로 재발견되어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고, 백인의 인모(人毛)보다 저렴했던 중국 등 아시아인의 인모 수출이 급증하면서 아시아에서 가발산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국도 유교적 관념의 거부 정서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1963년 서울통상을 시작으로 가발공장들이 생겨났고, 이내 가발 산업은 1960년대 한국 경공업의 총아로 성장하게 된다. 본 영상이 공개된 1965년은 가발 수출액이 전년도의 8배 이상 성장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해로서, 아직은 ‘괴상하기도 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가발산업은 1970년에 이르러서는 한국 총 수출액의 11%를 차지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영상에서 ‘금년은 작년의 17배 이상의 외화 수익을 기대한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가발 수출의 성장 이면에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파병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상황이 있었다. 미국은 1965년 11월, 그러니까 이 바로 이 영상이 촬영된 시점에 즈음하여 대중국 무역제재의 일환으로 중국 인모로 생산한 가발 제품의 수입을 사실상 금지했고, 중국 인모를 사용하던 중국, 일본, 홍콩의 가발산업이 타격을 입은 대신 한국이 새로운 가발 생산국으로 떠오르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합성섬유로 제조하는 인조모 가발이 유행하게 됐고, 1970년 이후 소위 데탕트 시대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대중 무역제재가 해제되고 가발 시장이 소량 다품종 환경으로 변모하자, 소품종 대량 생산의 염가 전략으로 유지되던 한국의 가발산업은 급격히 쇠락하게 된다.

    정진우, 유현목, 김기영 감독이 참여한 1968년의 옴니버스 컬러 영화 <여(女)>가 이야기들을 엮는 도구이자 매개체로 ‘가발'을 사용한 것도 이러한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발공장은 당시 6대 가발 업체 중 하나였던 한독산업의 제2공장인데, 실제로 한독산업은 1968년 후반에 인조모 가발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한 여인의 인모로 만든 가발이 중요한 요소로 다뤄진다.

    639-03. 미국 가극단 내한공연 1965년 10월 27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헬로 돌리!>(Hello, Dolly!) 공연팀의 내한공연 소식이다. 1964년에 초연됐던 브로드웨이 뮤지컬 <헬로 돌리!>는 그 해 토니상을 휩쓸고 이듬해인 1965년에는 ‘뮤지컬의 여왕' 메리 마틴을 주연으로 하여 한국, 일본, 베트남 등 해외 미군 대상의 위문공연 성격의 순회공연을 통해 아시아 일부 지역에 선보였다. 한국에서 뮤지컬은 주로 1940~1950년대의 영화를 통해 소개되다가, 한국전쟁 이후에는 주로 미국 대학 연극부의 주한미군 위문을 겸한 내한 공연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프로페셔널 배우와 공연기술자들이 선보인 <헬로 돌리!>의 내한 공연은 뮤지컬에 대한 한국 공연계의 관심을 증폭시켰고, 1966년 정부주도 문화예술단체 ‘제2차 예그린 악단'이 창단되고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제작하는 데에 어느 정도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639-04. 꽃꽂이 전시 임화공 꽃꽂이 동호회가 한국신문회관에서 제7회 꽃꽂이 전시회를 개최했다는 내용. 임화공은 한국 제 1호 화예가(플로리스트)이자 ‘꽃꽂이' 용어를 대중화한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639-05. 스포오쓰 연고전(또는 고연전, 이하 연고전으로 지칭)은 연세대/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연희전문학교 시절부터 계속된 대학 스포츠 대항전 행사로서, 영상에 나오는 1965년 10월의 연고전은 5.16.군사정변 이후 5년만에 재개되는 것이었으며 이 해는 이후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5개 종목 형태를 처음 시작한 해로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 02. 리버티 뉴스 제624호 , 1965
    ¶ 1965년 7월 넷째 주 소식
    624-01. 수해 서울, 경기도, 강원도 일대에 발생한 ‘40년 만의 큰 수해’로 약 8억 여 원의 재산피해와 전국 19만명 이상의 수재민이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미8군 헬리콥터의 수재민 대피 지원이 있었다고 하지만, 영상에서 언급한 최대 수해 지역이 한강 유역의 문산, 동두천, 화천 등 소위 전방 부대 주둔지였으니 군부대 입장에서도 꽤나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미군이 촬영한 다른 기록 푸티지들 중에는 1952년 여름에 임진강의 작전교량이 떠내려가는 광경도 있다) 그런데 이 1965년의 수해 영상은 앞서 공개된 <리버티 뉴스> VOD 기획전(1차)의 “순천 수해" 영상(리버티 뉴스 제 474호)과 달리 미국의 구호 자금이나 물자 지원에 관한 언급이 없고, 대신 정부 당국이 수해지역을 피해지구로 지정하고 복구작업 예산을 배정했다고 알려주고 있어, 한국의 재난 대응 체계와 재정 여건이 과거에 비해 개선됐음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624-02. 「호닉」박사 산업계 시찰 존슨 미국 대통령의 과학고문인 도널드 호닉 박사가 사절단을 이끌고 1965년 7월 8일 방한하여 한국의 과학 및 산업 시설을 방문한 모습을 담았다. 이는 5월 18일에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립에 관한 공동성명” 중 ‘응용과학연구소 설립’에 대한 상호 협의 내용에 따른 것이었다. 이 공동성명은 한미 양국의 이해관계와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복잡한 변수들이 맞물려 있던 협상의 결과였다. 미국은 냉전 상황에서 베트남전 확대, 한일협정 등 민주주의 진영 결속 강화, 체제간 과학기술 경쟁 우위 전략의 측면에서, 한국은 산업화와 경제개발을 위한 응용과학 연구 진흥 기반을 마련하고 주한미군의 감축을 저지하며 대한 원조 채널을 유지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 응용과학연구소 설립 및 기술원조 사안을 바라보았다.

    원자폭탄을 개발했던 맨하탄 프로젝트의 일원이기도 했던 호닉 박사는 이후 과학기술이 전 세계의 환경과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쳤던 인물이다. 그는 내한 기간 동안 주한 미국대사, 주한미국경제협조처(USOM/Korea) 처장, 박정희 대통령 등을 접견하여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 현황을 확인하고 경제기획원실에서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에 관한 두 차례의 한미공동회의에 참석한 후 15일에 출국한다. 호닉 박사가 8월에 존슨 대통령에 제출한 보고서는 산업적 토대 마련을 위해 과학기술연구소가 특별법에의해 소요 예산을 보장받는 비영리 독립 운영 기관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과 아울러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통한 연구소 설립 지원 및 USAID 지정 연구기관과의 용역계약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이에 따라 이듬해 2월 10일에 과학기술연구소(현 KIST)가 발족되고 10월에는 홍릉 부지에서 기공식(관련 대한뉴스 보기)이 열리는 등 후속 절차가 신속히 진행됐다.

    624-03. 국민미술전 1965년 7월 10일부터 24일까지 부산 동아대 공대 강당에서 부산미술협회의 주관으로 열린 제1회 한국 국민 미술전 소식이다. 동양화, 서양화, 조소, 공예, 서예의 5개 부문으로 치뤄졌다. 해방 후 한국의 미술계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즉 국전(國展)의 심사위원 선정, 경쟁 부문의 구성 등을 놓고 서로 대립했다. 국전은 특히 조선총독부가 주관했던 조선미술전람회 - 약칭, 선전(鮮展) -의 체제와 규정을 답습한 관 주도 전시회, 즉 관전(官展)이라는 비판이 계속 나왔다. 이에 따라 민간 주도의 민전(民展)을 주최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영상의 내레이션도 그런 맥락에서 주최측이 ‘순수한 개인단체’라고 설명하고 있고, 당시 신문기사에서도 ‘항간의 추측과는 달리 국전과 대립하려는 목적은 아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국전은 계속 문교부가 주관하다가 1981년 제 30회를 끝으로 종료했다. 이후로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이 새롭게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주관으로 운영되다가 1986년부터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가 운영을 넘겨받으면서부터 바야흐로 민전의 시기가 도래했다.

  • 03. 리버티 뉴스 제653호 , 1966
    ¶ 1966년 2월 둘째 주 소식
    653-01. 박 대통령 동남아 향발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지아, 태국, 대만 공식방문을 위해 출국했다는 소식.

    653-02. 과학기술연구소 발족 미국으로부터 원조자금을 제공받아 한국에 과학기술연구소가 설치될 예정이며, 초대 소장으로 최형섭 박사가 임명되었다는 소식이다. 배경 상황은 이전 영상(624호 두 번째 소식) 설명을 참고하기 바란다.

    653-03. 늘어나는 나라살림 밀수 단속을 위해 부산의 대선조선회사에서 다섯 척의 세관 감시선을 진수시켰다는 소식. 경북 점촌과 예촌을 잇는 경북선 철로가 개통되었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653-04. 부녀사업관 서울의 부녀사업회관에서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에게 자립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해 재단, 자수, 미용, 타자, 육아 등의 4~6개월짜리 기술 교육을 실시하고 취업까지 연결해 주고 있다는 내용.

    653-05. 절도범 체포 창원의 리버티 프로덕션 상남영화제작소에서 머지 않은 진해에 자리잡은 미 해군 고문단에서 5인조 PX 절도범 일당을 체포했다는 소식이다. ‘철조망에 걸려 남아 있던 옷조각과 실오라기를 단서로 한 과학수사’의 개가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절도범들이 범행 과정을 재현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신상옥 감독의 1958년작 <지옥화> 중에 나오는 미군부대 절도 시퀀스가 연상되는데, 비록 픽션이긴 하나 이후 8년이 지난 1966년에도 PX 절도가 시도됐고 이것이 미 공보원의 뉴스릴을 통해 한국인에게 상영됐으리라는 것은, 이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우리가 보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대목이다. 

  • 04. 리버틔 늬우스 제098호 , 1955
    ¶ 1955년 1월 상반기 소식 (음향 유실)
    98-01. 래드포드 제독 방한 1955년 1월 2일에 미합동참모본부의장 아서 W. 래드포드 부부가 특별기를 통해 여의도 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다. 당시는 미국이 공산권, 특히 중국을 의식한 극동방위전략으로 동북아 3개국(대만-한국-일본) 집단 방위 체제를 구상,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는 실상 일본을 재무장화하여 중심 축으로 삼고자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일본 재무장을 반대하여, 일본은 중국-대만 관계에 연루되는 것과 군비 문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반면, 대만은 1954년 금문도에 대한 중국의 무력시위, 이른바 1차 대만해협 위기에 따른 안보 위협에 놓여 있었기에 한일관계의 정리 및 집단안보체제 구축을 촉구했다. 이에 래드포드 합참의장은 1954년 12월 30일, 대만을 방문해 장개석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한일 양국이 대만과 협의하여 동북아세아방위조약 체결을 성사시키기를 조심스럽게 촉구하는 발언을 했고, 이어 1955년 1월에 내한한 것이었다. 1958년에 이르면 2차 대만해협 위기 사태가 발생하고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등의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래드포드와 같은 강경론자의 주장이 점차 힘을 잃게 된다.

    98-02. 영사기 작동 주한미공보원(USIS-Korea) 소유의 이동식 16mm 필름 영사기 (Victor 16mm Animatophone) 작동법을 교육시키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음향이 유실되어 정확한 정황은 파악할 수 없으나,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군복을 입은 교육생들이 아마도 순회영사를 위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 군복으로 추정되는 복식에 대한 식별과 1947년에 미502부대가 미 국무부 산하의 주한미공보원에 편입된 이후의 편제, 한국인 순회영사반의 운영 형태 등 당시 정황에 대한 연구가 더 진행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속단하기 어렵다. 아울러 국방부 정훈국이 각 부대 순회영사를 실시하기도 했으므로 파견교육의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할 듯 하다.

  • 05. 리버틔 늬우스 제222호 , 1957
    ¶ 1957년 8월 셋째 주 소식으로 추정 (음향 유실)
    222-01. 전역하는 해군 장성 1957년 8월 20일에 진해 해군신병훈련소에서 거행된 박옥규 중장(대한민국 해군 제 2대 참모총장)의 전역식 장면이다. 당시 제 3대 참모총장을 맡고 있던 정긍모 중장의 모습도 함께 보인다.

    222-02. 삼척의 발전상 미국과 관계된 여러 원조를 통해서 삼척이 공업도시로 새출발한 모습을 그려냈다. 삼척화력발전소는 미국 경제협조처(ECA)의 원조로 1956년 6월에 준공되어 1년간 시공사인 미국의 벡텔사(Pacific Bechtel Co.)의 책임운영기간을 거쳤다.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는 삼척시멘트(1938년 일본 오노다(小野田)시멘트회사가 세운 삼척공장이 전신)를 해방 후 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지원으로 보수한 것을 1956년에 동양그룹이 인수, 이듬해 새로운 이름으로 변경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원 1주년을 맞은 미 공보원 삼척문화관(1956년 8월 10일 개원)에서 지역민들에게 리버티 뉴스를 보여주고 있다. 등장하는 뉴스는 1957년 7월 5일에 미 공군 T-33 제트기 9대 인수 소식이 담겼던 <리버티 뉴스 제 216호>이다.

    222-03. 방적공장 합작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대명’의 합작으로 건립한 방적 공장의 모습. 합작의 범위에는 기술전수도 포함됐음을 알 수 있다.

    222-04. 경찰 어린이 여름학교 1957년 여름방학 기간에 전라남도 경찰국의 주최로 진행된 경찰어린이여름학교 소식이다. 뒤에 늘어선 기마경찰의 모습이 이채롭다.

  • 06. 리버티 뉴스 제327호 , 1959
    ¶ 1959년 10월 다섯째 주 소식으로 추정 (음향 유실)
    327-01. 코울터 장군 동상 제막식 한국전쟁기에 제8군 부사령관을 역임했던 존 B. 콜터 중장의 동상 제막식이 1959년 10월 16일, 서울 이태원에서 열렸다는 소식. 콜터 중장은 한국전쟁기의 미군 사령관으로서, 퇴임 후 1958년까지는 유엔한국재건단(UNKRA) 사무총장으로서 한국의 재건에 힘쓴 공로로 외국인으로서도, 생존 중인 사람으로서도 드물게 자신의 동상이 세워지는 영광을 얻었다.

    327-02. 영국군 사절단장 이승만 대통령 예방 영국군 사절단장이 교체됨에 따라 타르 전 영국군 사절단장과 스테어즈 신임 영국군 사절단장이 경무대로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했다.

    327-03. 김포수원지 준공 미국의 원조를 통해 1959년 10월 20일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신당리에 위치한 김포수원지가 3년 만에 완공되어 김포-인천간의 통수식이 거행됐다는 소식이다.

    327-04. 제 1회 영화의 날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10월 21일을 영화의 날로 제정하고 1959년 10월 21일 서울 소공동 국제그릴에서 제1회 영화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하면서 영화인들에게 표창 메달과 상품을 수여했다.

    327-05. 패션쇼 1959년 10월 17일, 반도호텔에서 열린 제7회 노라노 패션쇼 소식이다. 한국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로 일컬어지는 노라노가 당대 여배우 및 전속 모델들과 함께 그 해 파리 패션 경향을 반영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영화배우 엄앵란, 최지희도 참여했다고 하며, 영상에는 조미령이 노라노의 대표작, 양단 아리랑 드레스를 입고 워킹하는 모습이 나온다.
  • 07. 리버티 뉴스 제364호 , 1960
    ¶ 1960년 7월 다섯째 주 소식 (음향 유실)
    364-01. 학술원상 시상식 1960년 7월 17일 서울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학술원상 시상식에 수여자로 참석한 이병도 문교부장관이 박종홍, 조복성, 이병기, 이종륜 씨 등에게 상을 전달하는 장면과 더불어 시상식에 내빈으로 참석한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가 축사를 낭독하고 수상자와 악수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고 있다.

    364-02. 미 해군 세인트폴 호 내한 1960년 7월 14일 인천항을 방문한 미 제7함대 소속 세인트폴 호를 방문한 매카나기 주한미국대사와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 한국 시민들이 세인트폴 호에 승선하여 군함의 여러 시설을 구경하는 모습, 한국 해군과 미 해군 군악대원들이 합동연주를 하는 장면 등을 보여주고 있다.

    364-03. 경찰전문학교 졸업식 1960년 7월 15일 열린 경찰전문학교 본과 12기생의 졸업식에 참석한 이호 내무부장관 등의 정부 인사들이 경찰관들의 경례를 받는 장면, 졸업식에 임한 경찰전문학교 졸업생 및 재학생들, 단상에서 연설하는 허정 국무총리의 모습 등을 보여주고 있다.

    364-04. 미 국방부 영화 제작 한국인 및 미국인 배우들과 미국인 제작진들이 안양촬영소 및 야외 계곡에서 주한 미 공보원과 미8군이 협력 제작 중인 기록영화 시리즈 “The Big Picture” 중 <Korea and You>를 촬영하는 모습을 전한다.

    364-05. 선거로 강화되는 한국 민주주의 여러 시민들이 선거유세장에 운집하여 후보의 연설을 듣는 모습, 거리에 붙은 선거 현수막과 포스터, 그리고 1960년 7월 19일 전국여성계몽대회에 참여한 전국여성단체임시연합회 회원들이 여러 현수막과 팻말을 들고 서울 시내를 행진하는 장면 등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 08. 리버티 뉴스 제452호 , 1962
    ¶ 1962년 4월 첫째 주 소식
    452-01. 박의장 외교사절 접견 박정희 의장 내외가 박정희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 이후 처음으로 청와대에 주한 외교사절단을 초청하고 접견했다. 이 자리에는 송요찬 내각 수반과 최덕신 내무부장관도 함께 했다.

    452-02. 건설소식 영주의 수해복구 공사가 완료되어 육군 공병단 장병들과 주민들이 함께 기뻐하고 있는 모습. 또한 서울 근처에서는 원자력 연구소가 지어져 첫 가동식 행사를 개최했다는 내용이다. 

    452-03. 건전지 공장 체신부와 교통부를 비롯해 민간까지 건전지 수요 대부분을 충당하고 있는 조흥 건전지 공장을 소개하고 있다.

    452-04. 합동 결혼식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합동 결혼식 및 피로연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452-05. 대종영화상 1962년 3월 30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제 1회 대종상 시상식이 열렸다. 부문별로 시상이 진행됐으며 특별 장려상은 아역배우 전영선이 수상했다. 이 시상식은 5월에 있을 아세아영화제를 앞두고 개최된 것이었다.

    452-06. 데이비스 컵 정구 데이비스 컵 테니스 대회에서 단식과 복식 모두 한국 대 일본의 대결이 이뤄졌으나 두 경기 모두 일본이 승리했다는 소식.

  • 09. 리버티 뉴스 제498호 , 1963
    ¶ 1963년 2월 넷째 주 소식
    498-01. 재건호 탈선 서울과 부산을 왕래하는 재건호 특급열차가 안양역 내에서 탈선하여 철도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현장에서 파괴된 객차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98-02. 찾아온 손님들 아프리카의 두 외교관이 내한하였다. 차드 공화국의 외교관 아담 말리크 소우와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의 외교관 미첼 갈린 두아테가 김현철 내각 수반을 방문하였다. 이들은 일등 수교 훈장을 받은 후 김현철 내각수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498-03. 영어교사 강습회 문교부가 사범학교 및 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동계 영어교육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한국인 및 외국인 강사들이 교사들에게 영어교수법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98-04. 농화 학교 한미재단의 후원을 받아 서울에 한국농화학교가 설립되었다. 한국농화학교 준공식에는 여러 국내외 인사들이 참가하였다. 국내외 인사들이 준공식에서 치사를 하고 있다. 한편 교실에서 농아 어린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율동을 하는 장면과 최병문 교장이 농아 어린이들에게 발성지도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498-05. 영화상 1963년 2월 15일 미 육군 영화 제작에 공이 많은 한국 영화인들을 표창하는 시상식이 주한미공보원 문화관에서 열렸다는 소식. 윌리엄 휘프스 부원장이 한국 영화인들에게 감사장을 전달하고 있다. 아울러 주한 미 공보원과 미8군이 협력 제작한 <빅 픽처 시리즈> 기록영화, <Korea and You>(1962) 중 김지미, 최무룡 등 한국 배우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촬영 장면은 앞서 소개한 <리버티 뉴스 제 364호>의 네 번째 소식에 수록됐다.

    498-06. 한일 배구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일친선 남녀배구대회 소식. 한국은 두 경기 모두 패했다.

  • 10. 리버티 뉴스 제596호 , 1964
    ¶ 1965년 1월 둘째 주 소식
    596-01. 대한 뉴우스 500호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들고 있는 대한뉴스가 500호를 제작했다는 소식.

    596-02. 독립문화상과 미국훈장 잡지 ‘사상계’에서 수여하는 독립문화상 시상식 장면들과 주요 수상자들의 모습. 미국 정부에서 고(故) 홍정의 소령에 대해 훈장을 수여하고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596-03. 포항에 해군병원 경북 포항에 새로 지어진 해군병원의 주요 모습 및 기념행사 소식

    596-04. 한.미 권투 서울 장충체육관 열린 한국과 미국 선수들의 권투경기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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