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은 2012년부터 2년 간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와 함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소장 중인 ‘리버티 뉴스' 필름 624릴(총 620회차)을 수집, 보존 중이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하여 이 중에서 당대 흐름을 이해하기에 좋다고 판단되는 20회분을 선별하여 2차에 걸쳐 VOD 기획전으로 순차 공개한다.
(2차 바로가기)
뉴스릴과 '리버티 뉴스'에 관한 전반적인 배경을 알고 싶다면 아래 항목을 눌러 읽어보기 바란다. 이어지는 각 영상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관심 있는 개별 소식의 자세한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한미동맹 70년의 불가사의
국제관계에 관한 불변의 법칙. 국가는 국익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비난할 수 없다.‘국가 간의 우정’이라든지 ‘인도적인 원조’라는 다분히 전략적인 수사들은 대중이 이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단순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일 뿐, 국제관계의 비정함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적'인 정서가 개입되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10년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데, 복잡한 시계 장치처럼 수많은 요소와 변수가 맞물려 돌아가는 현대의 국제 정세 속에서 두 국가가 70년 동안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심지어 첫 30여 년 간 전방위적으로 지속된 미국의 대한원조는 한국이 회생 불능의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재건하여 소위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는 데에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매 순간 두 나라의 국익을 위해 결정하고 협력하다 벌써 70년 째 함께 하게 되었을 뿐, 결코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동맹관계는 양국 모두는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안겨다 주었으며 동북아시아의 안정에도 크게 기여했다.
뉴스릴, 세계를 설득하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자 했고 냉전의 형태로 최소한 45년 동안 치열하게 대립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제국주의의 잔재를 걷어내고 전쟁의 폐허에서 재건하는 것을 돕는 ‘선의의 주체’로서 세계 각지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어쩌면 이것은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였고 세계사에서 처음 있는 초대형 실험이었다. 문제는 제 아무리 미국이 경이로운 수준의 경제규모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상 최강대국이라고 해도 전 지구를 대상으로 국력을 쏟아붓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각종 구호, 원조, 차관은 해당 지역이 미국의 리더십과 비전에 동조하고 자국에 대한 개입과 관리를 수용하며 빠른 경제자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호응한다는 전제 하에 의미가 있었다. 이를 위해 미국 해외공보처(USIA)는 전 세계 76군데의 미국 공보원(USIS)을 통해 다각적인 홍보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홍보 수단이 바로 뉴스릴이었다.
‘리버티 뉴스’가 기록한 것들
주한 미 공보원(USIS-Korea) 산하 리버티 프로덕션은 1952년 5월 19일 <리버티 뉴스 제 1호>를 시작으로 1967년 5월 30일 721호까지 장장 15년 동안 ‘리버티 뉴스'를 제작했다. ‘리버티 뉴스' 시리즈는 한국전쟁 기간 중에는 보름 주기로, 전후에는 매 주마다 창원의 상남영화제작소에서 제작, 공개됐다. TV 방송의 영향력이 아직 미약하던 1960년대 중반 이전까지 ‘리버티 뉴스'는 지역 상영관, 문화원 및 미 공보원 영화과와 한국인 순회업자를 통해 남한 전역에 배급됐다. 보통 10여분 내외의 분량에 국내소식과 해외소식이 차례로 수록됐는데, 한미군사동맹의 굳건함이라든지 대한원조의 현황과 성과를 주로 다루면서도 노골적인 프로파간다를 지양하고 당시 한국인들에게 균형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구실을 했다. ‘리버티 뉴스'가 시대를 기록한 영상으로서 의미있는 점은 장기간 지속적으로 당대의 주요 핵심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리버티 뉴스’ 맛보기
리버티 뉴스'는 한미동맹과 그로 인해 전개됐던 구호, 원조 사업들을 다층적으로 확인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기에 매우 좋은 영상들이다. 아울러 조금 더 풍부한 맥락을 조사하고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감상자'들이라면 ‘리버티 뉴스'가 던져 주는 단서들이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특히 원조를 둘러싼 역학관계는 시혜자와 수혜자 간의 단순한 단방향 관계가 아니라 미국의 국방부, 국무부, 의회, 한국 정부 당국 및 기업가, 유엔의 원조 관련 조직들, 미국 및 국제 민간 원조 단체들은 저마다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두고 때론 줄다리기를 하고 때론 타협하는 복잡한 양상을 띄었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롭다. 물론 ‘리버티 뉴스'는 그런 복잡한 내막들을 매끈하게 봉합하여 짧은 단신으로 제공됐고,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요약본으로서 충분하다.
상영본에 관한 참고 사항
⚠‘리버티 뉴스'는 대체로 국내소식과 그에 이어지는 해외소식으로 구성됐다. 이번 기획전의 마지막 영상인 631호는 이례적으로 해외소식이 국내소식보다 앞에 삽입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뉴스릴의 경우 각 소식들의 한 회차 내 위치와 편집 흐름을 보존하기 위해 가능하면 소식별로 분할하지 않고 전체 영상으로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해외소식은 대체로 당시 USIS-Korea가 미국의 허스트 메트로톤 뉴스릴(Hearst Metrotone Newsreel)의 푸티지를 가져와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되므로 저작권 문제로 본 영상에서 제외했음을 알려드린다.
⚠ 한국영상자료원 보유 자료 기준으로 ‘리버티 뉴스'는 384호부터 721호까지 영상 도입부에 공개 시기에 대한 정보를 표기했다. 수록된 내용의 시점과 비교해 보면 이 정보의 표기 형식은 [월] [주] [연도 끝 자리]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 6 2 1-”은 “6월 / 둘째 주 (또는 두 번째 호) / 1961년"을 의미한다. 이 정보는 표기가 생략되기도 하고 순서나 형식이 일시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앞의 예에 적용한다면 “- 1 2 6 -” 또는 “66-6-1”)
⚠ 수집된 필름은 대체로 네거티브 필름이므로 색보정 작업이 되어 있지 않다. 일부 프린트 보유본을 확인해 보면 다양한 품질의 소스를 합본했다는 특수상황 또는 신속한 보도를 위한 짧은 작업기간 때문에 제작 당시 아예 색보정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화면이 어두워 촬영 시간대를 오해할 여지가 있거나 정보가 식별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원활한 감상을 위해 기초적인 색보정 작업을 거쳐 영상을 공개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어두운 경우는 실제 촬영 시간대가 야간 또는 새벽이었기 때문에 밝기를 그대로 두었음을 알려드린다.
상영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