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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이장호
Lee Jang-ho / 李長鎬 / 1945 ~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별들의 고향 1974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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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이장호
이장호
아드리아노 아프라 집행위원장 방문(영화진흥위원회 초청)
필모그래피 (
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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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시선
(이장호, 2013)
괴로우나 아름다워
(이장호, 2011)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
(이장호,이두용,박철수,정지영, 2011)
천재선언
(이장호, 1995)
명자 아끼꼬 쏘냐
(이장호, 1992)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이장호, 1989)
Y STORY(와이의 체험)
(이장호, 1987)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장호, 1987)
이장호의 외인구단
(이장호, 1986)
어우동
(이장호, 1985)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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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회 대종상 영화제(1974)
:
신인상(
별들의 고향
)
제 11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1975)
:
영화부문 신인상(
별들의 고향
)
제 19회 대종상 영화제(1980)
:
감독상(
바람불어 좋은날
)
주요경력
1965년~1973년 신필름 조감독
1971년~1972년 민족극단 단원
1984년~1985년 이장호워크숍 설립 및 운영
1986년~ 판영화 설립, 대표이사
1986년~2000. 8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부교수
1996년 중부대학교 예술학부 연극영화학전공 부교수
1996년~2000년 8월 한국영화연구소 이사
1996년 12월 아트센터 영화학교 공동설립, 사무총장 운영위원
1997년~ 부천시 영상도시화 Project 연구원
1997년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1999년 창작오페라 <황진이> 연출
2000년 9월 전주대학교 영상콘텐츠학부 영화영상전공 교수
2002년 11월 서울시 문화상
2003년 10월 옥관문화훈장
2006년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2010년 2월~ 제3대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
2011년 4월 2011 경기국제항공전 홍보대사
2011년 7월 2012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 홍보대사
2013년 4월 12일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前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하 한예진) 부학장으로 취임
2022년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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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영화 검열관이셨던 아버지께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고 당시 영화인들과 많은 교류가 있던 아버지의 소개로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 연출부로 입사하여 감독 데뷔 때까지 있었다.
주요 영화작품
별들의 고향(1974,이장호)
어제 내린 비(1974,이장호)
너 또한 별이 되어(1975,이장호)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1976,이장호)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이장호)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1981,이장호)
어둠의 자식들, 제1부 카수영애(1981,이장호)
낮은데로 임하소서(1981,이장호)
일송정 푸른솔은(1983,이장호)
바보선언(1983,이장호)
과부춤(1983,이장호)
무릎과 무릎사이(1984,이장호)
어우동(1985,이장호)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이장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이장호)
와이의 체험(1987,이장호)
미스코뿔소 미스터코란도(1989,이장호)
명자 아끼꼬 쏘냐(1992,이장호)
천재선언(1995,이장호)
주요기타작품
■ 오페라
1999년 황진이
2009년 내 잔이 넘치나이다-페펙트 27
애착작품 및 사유
어느 감독도 그렇겠지만 의도대로 100%의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완성도가 낮은 작품이 사람들에게 보여지게 된다. 흥행에 성공했음에도 평론가들은 작품평가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작품도 있었다. 작품 중에서 <과부춤>은 관객과 평론가들이 외면했지만 오히려 일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이고 <바보선언>은 비판과 풍자의 실험성이 강한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도 역시 외국에서 인정을 받은 경우이다. 또한 <무릎과 무릎사이>는 작품 속에 담겨진 내용보다는 한낱 포르노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 작품으로 꼽는다.
영화속 명소
<어우동>-단양 8경의 계곡 : 왕과 어우동이 계곡에서 밀회를 즐기는 장면,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강원도 인제와 고성 : 주인공이 눈길을 걸어가는 장면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한국 영화가 오랜 전통과 역사가 있지만 급변하는 한국 사회변화에 따라 그 시대 감각에 맞추는 것에도 급급할 뿐더러 제작여건이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작품에 있어서도 일정한 스타일과 같은 소재의 영화를 만들 수 없었고 흥행의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소재의 영화를 개척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감독이 아닌가한다. 만일 한 장르의 영화만 고집했다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쉽게 잊혀지는 감독이 됐을 것이다.
저술내역
「모두 주고 싶다」(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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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이장호는 홍익대 건축과 재학 당시, 공보처 영화검열관이었던 아버지의 소개로 신필름 연출부에 들어갔다. <천년호>(1969), <이조 여인잔혹사>(1969), <만종>(1970) 등에서 조감독으로 일한 뒤 1974년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했다. 1970년대 한국영화계의 깊은 불황 속에서도 이장호의 데뷔작은 46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원작자인 최인호는 이장호와 서울고등학교 동창으로 절친한 친구사이였으며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이장희는 후배였다. 20대의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한 이 영화는 1970년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별들의 고향>으로 그해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두 번째 연출작인 <어제 내린 비>(1974)까지 16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장호는 충무로의 촉망 받는 신인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이 시기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4년간 영화 활동을 정지당하기도 했다.
1979년 12월 활동 정지가 풀리자 최일남의 소설 『우리들의 넝쿨』을 각색한 <바람불어 좋은날>(1980)로 영화계에 복귀했다. 이 영화는 이전에 이장호가 만든 네 편의 전작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영화에는 사회를 통찰하는 이장호의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리얼리즘 영화의 첫 시작이었다. <바람불어 좋은날>은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이장호는 재기에 성공했다. <바람불어 좋은날>이 시대를 고발하는 영화였다면, <바보선언>(1983)은 시대에 저항하는 영화였다. <바보선언>은 모든 영화적 관습을 파괴하면서, 사회를 비판하는 블랙코미디였다. 이 영화는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지만 이장호는 당대 정권으로부터 문제인물로 낙인찍혀 영화연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시기 이장호는 생계를 위해 문화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상업영화를 주로 연출했다.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이 연이어 흥행하면서 이장호는 흥행감독으로 변신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주대학교 영화영상전공 교수,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 등의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네이버캐스트, 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korean/movieperson/222)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1884&keyword=이장호)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45년 서울 출생. 홍익대학 건축 미술과. 이장호는 홍익대 건축과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을 거듭했다. 그러자 당시 공보처 영화검열관이었던 아버지가 학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들을 배우로 키우기 위해 신상옥 감독에게 데려갔다. 그러나 이장호는 신상옥 감독과 마주한 그 자리에서 영화감독에 매력에 사로잡혀 신필름의 연출부로 들어가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게 된다.
1974년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한 이장호는 일약 스타 감독으로 혜성처럼 떠올랐다. 암울하고 정체된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45만이라는 놀라운 관객을 동원한 <별들의 고향>은 한국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별들의 고향>에서 티없이 맑고 순수한 여주인공 경아(안인숙)는 진실한 사랑을 찾고자 여러 남자들을 만나지만 점차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져 간다. 도시의 비인간적이고 동물적인 탐욕스러움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따뜻함을 간직하고자 했던 경아는 결국 눈 내리는 겨울 아침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가난하지만 꿋꿋이 살아가려 했던 경아가 사회적인 편견과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좌절과 슬픔을 겪게 되는 모습은 당시 젊은이들의 아픔을 진솔하게 반영했다는 평을 들었다. 여주인공 경아역의 안인숙의 청순한 연기는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장호와 최인호는 서울고등학교 동창으로 절친한 친구사이였으며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이장희는 후배였다. 이 젊은 세 친구가 모여 만들어낸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영상은 한국영화계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1970년대의 한국영화는 검열과 정치적인 탄압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암흑기였다. 주목할 만한 감독도 작품도 부재하던 시대 이장호의 출현은 충무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장호는 <별들의 고향>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역시 최인호의 단편소설 3개를 엮어 만든 애절한 사랑이야기인 <어제 내린 비>(1975)와 공포영화 <너 또한 별이 되어>(1975),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1976)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였지만 검열과 표절시비로 얼룩져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어려움을 겪다가 그 즈음 대마초사건에 연루되어 영화 활동을 정지 당하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이장호는 이 공백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사회와 역사에 대해 고민하고 영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룬 시기라고 고백한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깊어진 그는 최일남 원작의 「우리들의 넝쿨」을 각색한 <바람불어 좋은날>로 다시 돌아온다.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은 제 17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대상, 작품상과 제 19회 대종상 감독상, 편집상, 제 33회 아.태영화제 최우수미술상을 수상하며 4년여의 공백기가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며 이장호의 재기를 성공으로 이끈 작품이다. 농사를 포기하고 무작정 도시로 상경한 세 청년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서울이라는 낯설고 차가운 도시에서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이들은 늘 무시와 천대의 대상이 되지만 서로 위로하며 끈끈한 우정을 나눈다. 각박한 도시에서 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세 청년들의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그린 이 작품은 리얼리즘을 살린 이장호의 역작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다음 작품 <어둠의 자식들>(1981)은 사창가로 내몰린 밑바닥인생의 인물들을 그리고 있으며, 같은 해 60년 구로동 강도사건의 실제사건을 소재로 한 <그들의 태양을 쏘았다>, 82년 <낮은 데로 임하소서>로 다시 한번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한다. 80년대 최대의 문제작인 <바보선언>은 리얼리즘에 치중했던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모더니즘 계열의 난해하고 파격적인 구성을 취한 작품으로 모순과 부조리로 점철된 사회의 모습을 신랄하게 조롱한 블랙코미디이다. 대담한 발상과 실험성이 당시 영화인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영화작가로서 이장호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리얼리즘 영화작가로 입지를 굳힌 그는 80년대 중반부터 상업적인 오락영화를 다수 연출하는 변화를 보인다. 당시 검열과 문공부의 위험인물로 요주의 대상이 되면서 심한 시달림을 벗어나고자 현실과 타협한 결과였다. 1985년 성인취향의 에로물 <무릎과 무릎사이>, 조선시대 기생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시대물 <어우동>으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후 1986년 예술성과 오락성을 추구한다는 기치아래 ‘판 영화사’를 설립한 그는 첫 작품으로 인기만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선택한다. 최재성을 비롯한 인물들이 원작 만화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온 듯하며 정수라가 부른 주제곡 ‘난 네게’까지 청소년의 감성과 기호를 정확히 파악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큰 히트를 기록했다. 주인공 까치역은 인기 스타 최재성이 맡았고 엄지 이보희,기인코치에 안성기가 출연했다. 이 영화로 그는 흥행 귀재의 자리를 확고히 굳힌다. 흥행의 부담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그는 심각한 주제를 다룬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를 통해 <바보선언>에서 보여주었던 실험적이고 진지한 정신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이후
(1987),<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1989)의 계속된 참패와 제작에 참여했던 <깜동>,<외인구단 속편>이 모두 실패를 거듭하며 깊은 슬럼프에 빠진다. 그의 작품세계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초기 <별들의 고향>같은 청춘영화와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 계열의 <바람불어 좋은 날>,일련의 흥행작<무릎과 무릎사이>,<이장호의 외인구단>,사회적이며 비찬적인 시각을 강조한 <바보선언>과 <과부춤>,<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명자,아끼꼬,소냐>등의 각기 다른 영화를 한데 묶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는 한국영화가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그 시대감각에 맞추는 것도 급급할 뿐더러 제작여건의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정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는 답답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7,80년대 정체되었던 한국영화계에 활력을 불어일으키며 여러 장르에 대한 실험과 도전,다양한 소재를 개척한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바보선언>의 뒤를 잇는 <천재선언>(1995)은 인재로 비롯된 잇단 대형사고,부패와 비리로 점철된 정치계,퇴폐와 불신으로 혼란에 빠진 90년대 한국사회를 신랄한 비난과 풍자로 풀어내려고 했으나 80년대를 가로지르던 감독의 명쾌한 시선은 90년대에까지 이르지 못한 채 외면을 당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를 거쳐 전주대학교 영상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1997년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집행위원장과 1998년 판 엔터프라이즈 대표, 1999년 창작오페라 <황진이>를 연출하기도 했다. 오는 2004년 <별들의 고향>의 30주년을 기념해 원작자 최인호와 의기투합하여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다듬은 <별들의 고향>을 뮤지컬로 리메이크할 야심찬 계획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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