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 최은희]신상옥 최은희를 추억하며 ③ 신상옥, 최은희 두 영화인을 추억하며

by.이장호(영화감독) 2013-06-12조회 1,117
이장호

신상옥 감독은 1952년 데뷔작부터 타계하실 때까지 평생 75편의 이야기를 연출했고, 신필름 등을 통해서 모두 250여 편의 이야기를 제작했다. 그리고 그 자신이 한국사회, 한국영화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며, 한국인으로서의 숙명적인 삶과 현대사의 풍운을 고통과 희열로 겪어야 했던 영화적 거인이었다. 그 초인적인 극복의 삶은 일제 식민치하와 광복, 그리고 동족상잔의 6・25전쟁과 분단조국, 남쪽의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1970년대의 경제 성장과 유신독재를 묵묵히 견디고 마침내 이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한반도의 양쪽 이념체제의 극과 극을 몸 전체로 받아들였던 대하드라마와 같은 유일무이한 영화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78년에 납북되어 1986년에 다시 탈출하기까지 북한이라는 낯선 역사 속에 직접 몸을 부딪는 갈등과 극복의 삶 자체가 그대로 생생한 드라마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생생한 드라마 속에 숙명적인 동반자 최은희 선생이 있다. 어떤 부부보다도 두 사람은 숙명적인 반려자로서 사랑 이상의 조건을 그 인생 속에 구축했다. 함께 영화를 만들어 기업을 일으키고 또 학교를 만들어 제자를 육성하고, 한때 이혼의 아픔을 겪었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게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최은희 선생이 북한에 납치되자 신상옥 감독은 홀린 것처럼 헤어진 아내를 찾아 여권 기한이 지난 무적자로 신분을 노출하며 홍콩을 헤매어 떠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도 납치되어 북한으로 갔다. 마치 연출한 것처럼 말이다. 어찌 보면 두 분의 일생은, 특히 신상옥 감독의 일생은 연출로 거의 다 이루어진 것 아닐까. 오스트리아를 통한 탈출까지도 그야말로 오랜 세월 인내심으로 면밀하게 계획한 스릴러 연출이 아니고서야 어찌 철의 장벽을 뚫는 성공이 가능하겠는가?

이제 사단법인 신상옥기념사업회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에 대한 미학적 평가와 신상옥이라는 이야기를 다양한 이해와 의견으로 많은 영화 후학들과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 그뿐만 아니라 신상옥-최은희 기념관 건립, 도서 출판, 국제 영화제 유치, 한국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후배 양성을 위한 많은 사업을 펼쳐야 그분이 일생을 이루어낸 길을 이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단지 고인을 기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한국영화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현실의 어려움과 싸워 이겨나가는 또 하나의 성공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두 분이 땅과 하늘에서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것을 감히 한국 영화감독으로서 민족의 소망이라고 이름 붙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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