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는 70년대 '영상시대' 활동과 더불어 ‘청년영화의 기수’였으며 ‘최초의 스타감독’이라고 불린 시대적 문화 아이콘이었다. 특히 80년대는 이장호의 전성시대였다. ‘80년의 봄’, 4년여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
바람 불어 좋은 날>은 당시 청년 영화인들의 교과서였다. 당대 발표된 ‘80년대 한국영화 베스트 10’에는 그의 영화가 4편이나 선정되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보선언>,<
과부춤>과 더불어 그 목록에 포함된 영화가 바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다. 85년도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이제하의 단편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85년 영화제작 자율화 시행 이후 그가 설립한 판영화에서 제작하였는데, 87년 어렵게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을 했으나 관람 숫자는 미미했다. 당대의 지배적인 한국영화 관람 체험 속에서 이 영화는 낯설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는 편안한 관람 행위를 허하지 않는다. 수려하지만 그 수려함을 세피아톤으로 톤 다운시켜 놓은 강원도 산길을 익스트림 롱 쇼트의 롱테이크로 찍은 화표면은 마치 정지된 스틸의 그것 같다. 화면 왼쪽으로 원경에서부터 쭉 뻗은 길로 남자와 여자가, 그리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러나 화면 앞 가장 가까운 거리에 도달할 때 까지도 그들은 식별되지 않는다. 아울러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다른 내재적 사운드가 소거된 상태에서 마치 보이스오버처럼 원근감 없이 들려오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 소리는, 현재 그들이 나누는 대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미지와 비동조화된 사운드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인과법칙에 기초하지 않은 서사의 진행, 행위에 대한 동기와 설명의 희박함,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지우는 쇼트의 배열, 극적 흐름과 맥락을 단절시키는 몽타주 시퀀스들은 시공간적 통일성과 연속성의 감각을 흩뜨리면서, 샤머니즘적인 운명론적 세계관의 묘사와 맞물려, 종국에는 불가해한 재현의 지점에 다다른다. 영화는 크게 황토 빛 모노크롬과 푸른 빛 모노크롬으로 처리된 두 개의 의미 계열체로 구성되어 있다. 몇 개의 시간적 재배치가 있으며 간헐적으로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허무는 주관적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황토 빛 모노크롬의 세계는 대체로 3박 4일의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적 현재를 재현한다. 반면 그 황토 빛 시공간을 절단하고 틈입하는 푸른 빛 모노크롬의 의미 계열체는 인물들의 회상, 주관적 플래시백, 의식의 흐름, 운명적 암시 같은 현재 시제를 벗어나, 충돌하며 운동하는 이미지들의 배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