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에게 와드 알-카테아브, 에드워드 왓츠, 2019

by.남동철(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2019-11-26조회 11,559
사마에게 스틸
시리아는 우리에게 낯선 나라다. 내전 중이고 폭격으로 도심이 폐허가 됐으며 일부 지역은 IS가 장악했다는 정도가 흔히 알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다. CNN이나 BBC의 국제 뉴스가 매주 전하는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그걸 보는 시청자는 가끔 이런 안도를 한다. 저런 지옥 같은 곳에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 라고.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전쟁과 테러로 안전한 일상이 불가능한 곳들이 있고 대부분 방송 카메라는 그곳의 참상을 전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오늘은 어디에서 테러가 났고 어제는 폭격으로 수 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들. 가해자를 비난하는 국제사회의 입장을 전하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는 일은 별로 없다. 정해진 질문과 답변만을 맴돌고 그 이상을 알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연히 이런 질문들은 설 자리가 없다. 저런 곳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을 느끼는가? 그들은 왜 이곳을 떠나지 않고 지키려 했는가? 죽음 앞에서도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사마에게>(와드 알-카테아브, 에드워드 왓츠, 2019)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한번도 떠올려보지 않았을 생각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이다.

시작엔 아랍의 봄이 있었다. 사람들이 연일 시위를 벌이고 규탄을 하면서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트리고자 했다. 시리아에서도 그랬다.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대학생 와드는 시리아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이 싹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와드의 할아버지가 10살 때 대통령을 하던 그 사람이 아직도 대통령이니, 사람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2011년 시리아, 1980년 광주가 그랬듯 정권은 잔인하게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을 진압했다.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했고 민주화 세력이 차지한 북부 도시 알레포는 포위된 채 폭격을 맞았다. 와드는 이곳에 남아서 시리아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람들을 찍었다.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던 의사 함자도 그중 하나다. 함자의 아내는 알레포를 떠났지만 함자는 이곳에 남아 환자를 돌봤다. 폭격은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사지가 찢긴 희생자를 만들어냈고, 턱없이 부족한 의료장비를 갖고도 그는 최선을 다해 부상자를 살렸다. 그러면서 함자는 와드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한다. 연일 계속되는 폭격과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그들은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사마. <사마에게>는 어머니 와드가 갓 태어난 딸인 사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의 형식에 맞춘 제목이다. 어머니는 딸에게 5년 동안 시리아의 도시 알레포에서 있었던 잊을 수 없는 일들을 들려준다. 
 

전쟁의 참상을 다룬 영화들은 많지만 <사마에게>의 관점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군인들의 시점이 아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지금 외신이 전하듯 시리아 내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가해자의 시점이나 가해자와 피해자를 중재하는 객관적 시점이 없고 액션과 리액션의 균형이 없다.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어떤 이유도 의지도 없이 그들은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는 사람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버티려는 사람들을 찍는다. 그들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언제 어디서 터질 지 모르는 폭탄의 공포에 휩싸인다. 폭탄이 터지는 굉음은 방송국 뉴스화면에서 보여주는 것과 달리 바로 옆에서 예고도 없이 터져 나온다. 이라크 전쟁을 중계하는 화면이 번쩍이는 불빛만으로 표현하던 그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린 소년들은 자다가 집과 부모를 잃고 숨을 멈춘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온다. 얼굴에 하얗게 흙먼지를 뒤집어 쓴 아이들은 겁에 질려 말문을 잃고 의사도 그냥 죽은 어린이를 시트로 감싸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어떤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안고 나오면서 반쯤 넋이 나가 아무도 아이에게 손을 못 대게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습이 이뤄지고 병원은 사방에 피를 흘리는 환자들로 아비규환이다. 정부군은 병원 마저 폭격의 타겟으로 삼는다. 알레포 동부의 9개 병원 가운데 8개가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함자는 정부군이 모르는 위치에 임시 병원을 차린다. 그들은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 애를 쓸 뿐이다.
   
잊을 수 없는 한 장면. 폭격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한 여자가 병원에 실려온다. 배 속엔 아이가 있고 여자는 의식이 없다. 의사들은 여자와 아이를 살리려 한다. 그대로 두면 아이가 함께 위험한 상황, 의사들은 아이를 꺼내 인공호흡을 한다. 숨을 쉬지 않는 아이, 저 아이는 과연 죽은 걸까? 함께 숨을 죽이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아이의 울음이 터져 나온다. 이것은 극적 재미를 위해 조작된 장면이 아니기에 진짜 기적을 목격한 느낌이 든다.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다룬 영화야 <사마에게> 외에도 많겠지만 이런 기적을 담은 영화는 또 없을 것이다. 
 

<사마에게>는 TV 뉴스에서 볼 수 없던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지만 고발 자체가 목적인 영화가 아니다. 딸에게 쓰는 어머니의 편지라는 형식은 이 영화에 시적인 아름다움을 더한다. 천진난만한 사마의 얼굴 자체가 이 잔인무도한 전쟁과 완벽한 대비를 이룬다. 어머니는 갓난 딸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의 얼굴을 찍는다. 아무 의식이 없을 아이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말에 반응하며 천사의 미소를 짓는다. 와드는 사마를 낳기까지 함자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랑을 했는지도 고백한다. 어린 아이를 수술하는 모습을 보며 울고 있던 와드에게 의사 함자는 “울지 말고 당장 수술실에서 나가라”고 야단을 쳤고 수술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당신을 사랑해, 나와 결혼해줘”라고. 그들은 새 집을 구하고 아이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현실은 잔인했지만 그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는 더 깊어갔다. 와드의 친구인 어느 부부의 이야기도 그런 면에서 인상 깊다. 포위로 인해 더 이상 채소나 과일을 구할 수 없던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감 하나를 선물한다. 세상 어떤 보석보다 값진 물건을 받은 듯한 아내의 표정은 이 영화가 담으려는 또다른 면모를 엿보게 한다. 일상이 무너진 곳에서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가 드러난다. 와드는 인터뷰를 통해 폭격으로 친구 한 명이 죽은 뒤에 이 모든 일의 기록을 남기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어제까지 함께 웃고 즐기던 친구가 죽자 그전에 그 친구를 찍은 장면을 다시 보게 됐고 영상을 촬영해 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5년간 찍은 수 많은 장면들을 와드는 알레포를 탈출한 뒤 공동감독 에드워드 왓츠와 함께 고르고 편집해 영화로 만들었다. 
 

<사마에게>의 엔딩은 알레포를 탈출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함자는 외신 인터뷰에 등장해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기에 정부군의 검문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알레포를 떠난다.  칸영화제 특별상영작으로 이 영화를 본 날, 와드와 함자 부부와 딸 사마까지 모두가 칸의 상영관을 방문했다. 관객 모두가 일어나서 그들의 생환을 축하하는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보며 나는 페이스북에 “2018년에 <가버나움>이 있었다면 2019년엔 <사마에게>가 있다”고 썼다. 물론 두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그만큼 화제가 될 영화라는 뜻이다. 미국의 SXSW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영화인데 칸영화제에서 특별상영을 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과연 그럴만한 영화였다. <사마에게>는 그 뒤로도 수많은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2019년의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지옥과 같은 시리아의 폐허 속에서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나리라 예상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P.S. 올해 북유럽과 동유럽 담당 프로그래머를 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한 작품들 가운데 <빈폴> <아이들을 주의하라> <성체축일> <올렉> 등을 사사로운 리스트에 올렸다. 리스트에 있으나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영화로 <아이- 다큐멘터리 오브 더 저널리스트>가 있는데 최근 도쿄국제영화제 저패니스 스플래쉬 섹션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신문기자>의 실제 주인공인 모츠즈키 이소코 기자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현재 일본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일목요연하게 꿰뚫는 영화다. 아베와 극우정권이 지배하는 일본이 지금 얼마나 암담한지 한눈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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