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주목 이 한편의 영화] 황동혁 - 감독

by.주성철(영화평론가) 2015-11-02조회 4,561

<수상한 그녀>(2014)는 <마이 파더>(2007), <도가니>(2011)에 이은 황동혁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이 작품은 2014년 1월 22일 개봉됐으며, 익숙한 소재를 빌려온 코미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구성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개봉 전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전국 누적 관객 865만 6417명(영진위 통합전산망 집계)을 동원했다. 이번 대담은 오래전 <도가니> 개봉 당시 황동혁 감독과 ‘지방 무대인사 파트너’로 인연을 맺은 <씨네21> 주성철 기자가 함께했다. 영화만큼 유쾌하고 진지했던 대담 현장으로 들어가보자.

무거운 사회드라마 <도가니> 이후 의외의 선택
주성철(이하 주) 두 번째 연출작 <도가니>(2011)는 실화인 동시에 사회성 강한 드라마였다. 묵직한 주제를 가진 <도가니> 이후 대중성이 강한 <수상한 그녀>를 연출한 것은 의외의 행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황동혁(이하 황) <도가니> 개봉 당시 여러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차기작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다음 작품은 장르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솔직히 무거운 주제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부터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도가니> 이후 SF 시나리오를 쓰다가 <수상한 그녀> 연출 제의가 들어왔다. 시나리오를 봤는데, 나와 잘 맞더라. 가볍고 밝은 코미디지만 그 속에 어머니와 할머니를 다루는 지점들이 마음에 들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살던 내 어린 시절 환경 때문에 영화의 정서가 잘 이해됐다. 하지만 이 영화를 차기작으로 선택하니 역시 주변에서 많이 놀라더라. 과연 이 감독이 코미디 영화를 잘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나타냈고,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재미없다는 스태프가 많았다. 특히 김지용 촬영감독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감독님이 <도가니>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같은 어두운 영화만 촬영해서 그렇지 이게 재미있는 시나리오다”라며 설득했다.(웃음)

사실 황동혁 감독은 사석에서 만났을 때 무척 유쾌하고 재밌는 분이다. 개인적으로 <마이 파더>나 <도가니>를 통해 느껴왔던 감독의 이미지가 깨지는 순간이 많았다.(웃음)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코미디 영화를 하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주변 사람들도 감독의 그런 성향을 알고 있었을 것 같다. 
맞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무척 심각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주변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내 모습을 많이 봐서 그렇지 않을 것이다.(일동 웃음)

심은경과 장광, 그리고 김수현의 캐스팅까지
<수상한 그녀>는 이야기의 성격상 오말순(나문희, 심은경 분)의 젊은 시절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의 폭이 무척 좁았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심은경을 기용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어떤 배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캐릭터는 물론 영화의 성격까지 달라졌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수지가 사진으로 세 번이나 등장하는데, 사실 시간차를 두고 등장하는 세 번째 컷은 굳이 삽입할 필요가 없었다. 혹시 애초에 수지를 캐스팅하려고 했는데 안 되어서 소심한 복수를 한 것이 아닌가?(일동 웃음)
남자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수지를 무척 좋아한다.(웃음) 감독으로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그 배우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 때문에 반복적으로 사진을 노출시켰다.(웃음)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심은경의 역할은 여성스러운 면이 강조된 캐릭터였다. 그 시나리오로 볼 때 심은경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심은경은 워낙 연기력이 뛰어나고, 개인적으로 그 배우를 아역 시절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무조건 잘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심은경이 확정된 후 시나리오에서 그녀의 캐릭터를 더 밝고 왈가닥스럽게 바꿨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는데, 심은경이 나오는 몇몇 장면에서 관객들이 자지러지게 웃더라. 아마도 영화가 심은경이 가진 특유의 매력과 만나면서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뿜어낸 것 같다.
아마 시나리오부터 심은경을 염두에 두고 쓴 장면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연기도 무척 잘했고, 그 배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캐스팅과 관련해 또 한 명이 눈에 들었다. <도가니>에서 교장으로 나온 장광이다. <수상한 그녀>에서는 이분이 천사 같은 역할을 맡았는데, 아마 영화를 본 많은 관객이 <도가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촬영 초반 나문희 선생도 이분을 보면 자꾸 <도가니>에서의 교장이 떠올라 섬뜩하다는 말씀을 하셨다.(웃음) 내가 <도가니>로 이분께 너무 무거운 이미지를 씌워드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비록 비중은 작지만 <수상한 그녀>에서 재밌고 따뜻한 역할을 맡겨 조금이나마 이미지를 바꿔드리고 싶었다. 장광 선생만 그런 게 아니다. <수상한 그녀>에서 오말순이 일하는 ‘실버 카페’에서 삼각관계로 나온 옥자 역을 맡은 박혜진 선생도 사실 <도가니>에서 공유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던, 교장 처 역할이었다.(일동 웃음)

엔딩 장면에서는 김수현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지난 10년 동안의 한국영화를 통틀어 최고의 카메오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그 엔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누가 적당한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처음에는 30대 배우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심은경으로 확정된 후 나이가 좀 더 어린배우가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1순위가 김수현이었는데, 흔쾌히 수락했다. 개봉 시기에 맞춰 김수현의 작품이 모두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 같다.

단순하게 스타를 카메오로 출연시키는 일종의 마케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장면과, 젊다는 것의 희열이 그대로 투영된 김수현의 이미지 모두 영화의 주제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개봉 전까지 김수현이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은 철저하게 비밀이었다. 마케팅이었다면 사전에 대대적으로 홍보했을 것이다.(웃음) 개인적으로 관객이 기분 좋게 영화관을 나갈 수 있게 하는 엔딩이 좋은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오말순의 과거, 우리들의 보편적 감정
<수상한 그녀>에서 플래시백으로 나오는 과거 장면들은 관객에게 친절하게 과다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사연일까’ 궁금함을 안고 가게 했던 것 같다. 오히려 감독의 그런 의도가 관객의 감정을 한결 잘 건드려준 게 아닐까?
동의한다.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모든 사연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기본적으로 코믹한 설정을 중심으로 회상 장면을 통해 단서를 던져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 선택이 관객에게 사뭇 슬픈 감정을 느끼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과거 회상 장면이 노래와 어우러지면서 감정이 증폭된 것이 아닐까한다. 이 부분에 대해 덧붙이자면, 관객의 공감을 얻은 것은 실제 나의 기억이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릴 때 할머니가 실제로 시장에서 콩비지를 파셨다. 이것은 나의 기억이지만 어려웠던 시절 많은 사람의 기억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영화는 판타지보다 실화적인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2014년 CJ엔터테인먼트 투자배급 영화의 시작과 끝을 <수상한 그녀>와 <국제시장>이 책임졌는데, 의미심장하게 두 영화 모두 1960~70년대 파독 광부가 등장한다. 그런 회상 장면에서 엄격한 비평적 잣대를 들이대자면 신파,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하면 ‘추억팔이’라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관객에게 몇 컷으로 살짝 던져줬기 때문에 한결 편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굳이 이 장면을 긴 시퀀스로 만들어서 구구절절하게 표현했다면 억지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시나리오 초고에는 조금 억지스러운 장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오말순이 과거 시장에서 일수를 하던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자식을 위해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오말순의 캐릭터와 크게 다르진 않지만 모든 관객이 (아무리 자식을 위해서라도) 그 직업을 이해하진 않았을 것이다. 파독 장면의 경우도 원래 과장된 신파로 설정됐지만, 그저 공항을 떠나는 뒷모습 정도로 마무리했다. 개인적으로도 눈물을 짜내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과장하지 않고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할 말만 하자’고 생각했다. 배우의 표정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수상한 그녀>, 편안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영화
<마이 파더>와 <도가니>가 그렇듯, 많은 관객이 황동혁 감독에게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기대한다고 생각한다. 코미디 영화이지만 <수상한 그녀> 곳곳에도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손자의 밴드가 부르는 ‘반지하 인생’ 노래 가사가 그렇고, 극의 구성상 없어도 되는 재개발 반대 플래카드도 눈에 띈다. 이전 작품들과의 연계점이라고 볼 수 있나?
맞다. 감독의 비판적 관점이 영화에 표현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지하 인생’ 가사는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내가직접 써서 넣었다. 내 의도와 취향이 들어가 있는 노래다. 반지하 밴드가 연습하는 폐건물 건너편의 재개발 반대 플래카드도 미술팀과 상의해서 일부러 넣은 것이다.

극 중 지하철에서 한PD(이진욱)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읽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주 잠깐이나마 그 장면 또한 어떤 의도가 반영된 것인가?
사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노인에 대한 내용은 아니지 않나.(일동 웃음) 큰 의도는 없었다. 제목이 주는 의미가 중의 적이기도 하고, 그냥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책을 선택했다. 당연히 잠깐 등장하는 것이지만 일부러 공식적인 허락을 받고 촬영한 것이다.

<수상한 그녀>를 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어른이 되는 <>(페니 마샬, 1988)의 기본 골격이 떠올랐다. 손자와 할머니 사이에 묘한 이성적 기류가 흐른다는 점에서, 과거로 돌아간 아들과 어머니 사이에서 그런 분위기를 풍겼던 <백 투 더 퓨쳐>(로버트 저메키스, 1985)의 멜로 코드 또한 떠올랐다. 옷가게에서는 <귀여운 여인>(게리 마샬, 1990)의 주제곡이 흐르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할리우드 키드 세대로서 친근한 할리우드 영화를 콜라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수상한 그녀>는 무엇보다 편안한 영화가 되길 원했다. 관객이 영화를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싶었고, 그렇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굳이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의 톰 행크스가 졸탄 기계 앞에서 소원을 빌어 훌쩍 크는 장면은 당연히 인상적이었고, 손자와의 관계에서 심은경이 연기했기에 그런 근친상간의 느낌이 다행히 덜했다. <백 투 더 퓨쳐>에서는 심지어 키스까지 하지 않나. 다만 그로 인해 한PD와의 멜로 코드가 약해진 것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웃음)

한편으로 이 영화는 음악영화다. 사실 많은 감독이 음악영화를 만드는 데 부담감을 느낀다. 창작곡이 히트하지 못했을 때 영화에 주는 영향이라든지, 많은 제작비가 드는 라이브 공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황 장르적으로 다르게 표현될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 음악영화가 맞다.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자세히 뜯어보면 주인공은 큰 목표나 욕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지거나 산만해질 수 있었는데 이러한 부분을 음악이 잘 잡아줬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젊은 여자로 돌아가 젊음을 즐기는 데 관객에게 그 감정을 가장 표현해주는 장치가 음악이었다. 그래서 음악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음악 작업은 무척 힘들었고, 사연이 많다.(웃음) 

중국에서 리메이크, 그리고 새로운 시작
<수상한 그녀>는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코미디 영화다. 감독 개인적인 평가는 어떤가?
지나고 보니 단점도 많이 보인다.(웃음) <수상한 그녀>는 애초 의도했던 것과 빗나간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잘된 부분이 더 많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비교적 잘 전달되었다고 본다. 제일 만족스러운 부분은 역시 캐스팅이다. <수상한 그녀>는 내 의도대로 완벽하게 캐스팅한 작품이었다. 심은경의 캐스팅도 만족스럽지만 다른 배우들도 누구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전부 다 인정받을 만한 배우들이다.

<20세여 다시 한 번>이라 제목으로 중국에서 리메이크된다. 진행 상황은?
지난 7월 중국 촬영장에 다녀왔다. 2015년 1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영화 본편을 보지는 못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뮤직비디오와 예고편을 봤는데, 이것만 봐도 명민하게 현지화를 잘 시킨 것 같다. 내용도 흡사하고 비슷한 장면도 많더라. 우리와 중국이 정서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사실 크게 바꿀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엔딩의 카메오 역할은 누가 했는지 나도 모른다. 개봉하면 가서 보려고 한다.(웃음)

데뷔작 이후 이른바 ‘삼세판’이랄까, 드디어 세 번째 작품을 끝냈다. 연출자로서 이후의 다짐은?
잘될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무엇을 해야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된다. 감독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사실 큰 의지가 있었다기보다 이야기를 만들고 무엇인가를 카메라로 찍는 것이 행복해서 선택한 것이다. 다만 나를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으면 자연스레 뛰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중국에서 영화를 기획 중이다. 중국 시장은 도전해볼 만한 곳이다. 가까운 미래에 중국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영화 시장이 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한국에서는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영화화해보려고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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