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용삐용B무비]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김정구, 1997

by.허경(정발산 영화거구) 2014-02-17조회 12,698

#1 자식 키우기
한 남자가 비스듬히 누워 포르노를 보고 있다. 엄마는 과일을 깎아 아들에게 가져온다. 포르노에 열중인 아들은 먹기 싫다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래도 하나 먹어보라는 엄마는 포크로 과일을 찍어 아들의 입에 가져간다. 귀찮다는데 왜 그러냐며 과일을 집어 던지는 아들. 엄마는 섭섭하다. 
#2 부쩍 커버린 아이
아들은 게이다. 남자친구와의 오럴섹스에 열중인 아들의 방을 훔치는 엄마. 행위에 열중인 아들과 친구에게 다리를 들어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 열심히 닦고 방을 나가자 본격적인 섹스가 시작된다.
#3 두 어른
엄마는 자해를 했다. 상의를 모두 벗어 가슴이 그대로 드러난 엄마의 상체에는 칼로 그은 큰 상처가 있다. 울고 있는 엄마에게 아들은 화를 낸다. 
#4 어린 엄마, 늙은 자식
자해로 인해 자리에 누운 엄마에게 아들은 과일을 깎아 준다. 이제야 기분이 좋아진 엄마. 자신만 먹기 미안했는지 아들에게 과일을 권한다. 그러자 아들은 화를 내며 과일을 집어 던진다.
 
위의 장면들
위의 장면들

1997년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알려진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의 내용은 상기에 적시한 그대로다. 달리 이 영화의 내용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저렇게 썼다. 이 영화는 아들이 포르노를 보고 남자친구(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남자다)와 오럴섹스를 하는 환경 속에 ‘엄마’를 끼워 넣는다. 아들의 기이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범한 엄마가 하듯 과일을 먹이려 하고, 방을 훔치는 엄마의 행동이 충돌을 일으켜 ‘대체 이게 뭐냐’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 혹은 갈 데까지 간 짓궂음. 이미지도 이러한데, 대사는 물론이거니와 앰비언스(환경음)까지 모두 삭제한 채 음악만이 흐르고 있어 관객에게 ‘이래도 견딜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 같다. 극한까지 몰아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단편 영화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연출자인 김정구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모성의 맹목성 중 한 단면을 단순 무지하게 증폭시켜 스케치해 보기로 하였다. 그것을 위해 모성의 반대말이라고 생각되는 포르노와 폭력의 이미지를 대비시키기로 했다. 나의 저급한 상상은 모성과 포르노를 한 공간에 몰아넣고, 어쩌면 그것이 서로 어울릴 수도 있으리라는 망상에까지 이르렀다.”라고 밝혔다. 모성과 포르노라는 단어가 한 문장에 있는 것도 어색하지만, 그것이 잘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 과격한 몽상가는 이 영화로 세간에 두각을 나타낸 ‘지하창작집단 파적’의 소속이었다. 김정구를 필두로 윤영호, 이진우, 김일안, 김유하, 조성제 등의 창작자가 속해있던 이 집단은 협업을 통해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서로서로가 어떨 땐 연출로, 어떨 땐 스태프 혹은 배우로 참여하며 <삼승할망>(윤영호 감독), < GOD >(이진우 감독), <피로 물든 세계지도>(김유하 감독) 등 20여 편이 넘는 왕성한 창작열을 보였던 그들은 ‘파적’. 즉 ‘적막을 깨트린다’는 뜻에 걸맞게 신, 섹스, 낙태 등 금기로 치부되었던 소재를 자유롭게 다뤘다. 다른 이야기지만, 김정구 감독이 ‘장난으로’ 쓴 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우연히 장선우 감독의 눈에 띄어 ‘한국 영화 사상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어떤 영화를 출현토록 하는 씨앗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하창작집단 파적
지하창작집단 파적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이후에도 김정구 감독은 <샴, 하드로맨스>라는 작품으로 근친상간과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남녀의 애절한 사랑의 기묘한 교차점을 선보였고, <사자성어>의 에피소드를 맡아 마치 인사하듯이 섹스가 대단치 않은 일인 농담 같은 세상을 그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파적의 멤버들과 함께 만든 옴니버스 <좀비처럼 걸어봐>는 그간의 작업을 정리라도 하는 듯 ‘파적필름’이라는 회사까지 차려 제작된 작품이었다. 파적의 주요 멤버인 김설우, 윤영호, 김정구, 김유하(이 김유하 감독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출한 유하 감독이라는 말이 있는데 확실한 자료를 찾지 못해 언급은 하지 않는다.) 네 명이 각자 하나씩 에피소드를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다. 그들은 이 영화 속에서 광기, 집착, 식인, 죽음 등 그간 탐구해왔던 소재들을 풀어내고 있다. 현재까지 김정구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은 OCN에서 제작한 스릴러 드라마 < COMA >의 <붉을 홍> 에피소드이다. (다른 멤버인 이진우 감독은 현재 활발한 활동 중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도 그랬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는 한국 독립영화계의 억눌린 상상력이 폭발하는 때였다. 당시 영화 산업의 자본주의적 잠재력에 시선이 쏠리고 이에 발맞춰 재능있는 감독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며 한국 영화에 희망적 기운이 만발하던 때였다. 각 지자체는 너도나도 영화제를 기획하기 바빴고 뜨고 지는 감독들도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영화를 제작하던 ‘지하창작집단 파적’은 현재 활동은 멈춰있지만(해산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확실한 자료가 없어 멈춰있다고 썼다.) 금기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영상 연출에 대해 한 번쯤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요즘 상업, 독립 영화를 합친 영화판을 기웃거리고 있으면 왠지, 다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그리운 기분이 든다. 요새는 모든 것이 계획되고 과정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이다. 모험가는 다시 나타날 것인가? 이미지로의 탐험은 이미 끝났는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임근아 ... 엄마
조성제 ... 아들
김일안 ... 아들의 애인

감독: 김정구
각본: 김정구
제작사: 지하창작 집단 '파적'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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