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홍길동>(신동헌, 1967) 복원기

by.홍하늘(한국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 2022-06-14조회 2,934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존 중인 한국영화필름 중 최초의 국내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는 신동헌 화백의 <홍길동>(1967년 작)이다. 동생인 신동우 작가가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하였던 <풍운아 홍길동>을 원작으로 제작된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애니메이션 강국인 미국, 일본의 영향력 속에서도 <로보트 태권V>, <아기공룡 둘리>, <뽀롱뽀롱 뽀로로> 등 우리만의 특색과 아이디어를 지닌 다양한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 온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첫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애석하게도 <홍길동>의 필름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2008년 애니메이션 연구자 김준양 선생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극적으로 발굴됐다. 물론 이 필름은 일본어 제목과 일어 성우 더빙을 거친 현지 판본이기도 했고, 2008년 당시는 한국영상자료원의 필름 디지털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나 아직 경험과 기술을 쌓아 나가야 하던 시기이기도 했으므로, 디지털로 변환한 디지털시네마가 1차적으로 공개됐고 본격적인 디지털 심화복원 작업은 훗날로 미뤄졌다. 무엇보다도 한동안은 극영화 필름의 디지털복원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했으므로, 한국영상자료원은 2021년에 와서야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필름을 디지털복원 하게 됐고, 첫 작품은 당연히 <홍길동>이어야 했다. 
 
1960년대의 셀 애니메이션 필름은 극영화 필름과 달리 계조가 단순하고 색 면의 형태를 띠므로 디지털복원 작업도 비교적 수월하리라는 예상은 뜻밖에도 처음부터 어긋났다. 우리는 극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원본’의 범위가 전혀 다른 기준에서 정해져야 한다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혼란에 빠졌다. 극영화 필름의 얼룩과 잡티들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던 반면, 초기 애니메이션 제작에 쓰이던 재활용 셀에서 보이는 그것들은 그 자체로서 원본 특성의 일부로 볼 수도 있었다. 채색의 독특한 질감 또한 함부로 변형시키면 안 될 것이었고, 반면에 이 셀들이 필름에 인화된 후 필름 자체에서 발생한 얼룩과 흠집들은 어떤 면에서는 적절히 구분하여 제거할 필요도 있었다. 게다가 여러 레이어가 겹쳐진 컷에서 그 복잡도와 작업의 난이도는 훼손이 심한 극영화 필름 못지않았다. 아울러 여러 세대를 거쳐 인화되면서 그레인이 누적되고 먹선이 흐려진 필름 화면에서 셀화의 느낌을 최대한 되살리기 위해 수차례의 테스트와 시사도 필요했다.

또 다른 이슈는 일본 상영에 맞게 변형된 <홍길동> 필름으로부터 한국 국내 개봉 당시의 형태를 최대한 복원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한국영상자료원에는 <홍길동>의 한국어 음향 필름이 간직되어 있었으므로 일본판 필름이 발굴된 후에 대부분의 일어 성우 더빙 음향을 기존의 한국어 음향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타이틀, 오프닝 크레디트, ‘끝’ 자막이 모두 일본어로 삽입된 화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참고할 자료가 전무할 경우 유실된 부분을 최대한의 고증을 통해 제작, 재현하는 오늘날의 필름 아카이브의 관례에 따르기로 했다.
 


<일본판의 오프닝 타이틀과 엔딩 타이틀>
 

<포스터 이미지에서 추출하여 복원한 오프닝 타이틀>

 

<엔딩 타이틀>

오프닝 타이틀은 참고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 <홍길동> 포스터의 캘리그라피를 기준으로 디자인했다. 자모의 열린 구조와 역동적인 경사 형태를 살리기 위해 끝 선의 질감을 디테일하게 다듬어 화면의 제 위치에 합성했다. ‘끝’ 자막은 같은 감독이 같은 해에 연출한 작품이자 <홍길동>의 속편 격이라고 볼 수 있는 <호피와 차돌바위>의 경우를 참고하여 제작했다. 동시대 한국 애니메이션의 ‘끝’ 자막은 조금씩 다양한 디자인과 효과를 보이고 있었지만, 이 경우 정황상 기존의 제작 기조를 거의 변함없이 유지했으리라 판단하여, 장평이 다소 넓고 꽉 찬 사각형으로 육중한 느낌을 주는 <호피와 차돌바위>의 한글 ‘끝’자를 <홍길동>에 적용했다.    
 

<크레디트 자막 디자인>

어쩌면 가장 까다로울 수 있는 부분이 오프닝 크레디트였다. 일본판 필름은 한국 제작진 부분의 크레디트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었고 일본어 성우진의 크레디트가 장시간 이어지도록 편집돼 있었다. 국내 개봉판에 없었을 일본 성우들의 크레디트는 삭제하면 될 일이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우선 개봉 당시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분들의 기억에 의존한 구술과 기타 여러 정황을 미뤄볼 때, 한국 개봉판은 동일한 배경 화면에 동일한 한국 제작진이 한글로 표기됐으리라 추정할 수 있었다. 한편 <홍길동> 포스터에서 크레디트를 표기한 글씨체는 일본판 한자 글씨체와 공통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보였다. 넓은 장평과 하부, 획 끝을 둥글고 부드럽게 처리한 점, 활자 인쇄라기보다는 손으로 적은 느낌이 드는 획의 직선 부분 등이 그랬다. 따라서 일본판 크레디트의 글씨체가 지닌 색감, 번진 느낌의 음영을 동일하게 살리고 국내 포스터의 한글 글씨체 모양을 모사하여 크레디트 글씨체를 디자인했다. 재생 중인 필름 특유의 불규칙적인  그레인 변화와 미세한 배경 떨림, 음영 차이 등을 살리기 위해 일본판의 원색 크레디트 배경을 프레임단위로 수정하여 복원된 자막 뒤로 그대로 옮겨와 작업했다. 

장편 애니메이션 필름 <홍길동>을 제작하던 당시,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경험이 거의 없었으므로 신동헌 화백과 그의 스태프들이 열악한 여건 속에서 연구와 실험을 병행하면서 색감과 질감 표현에 대한 기준을 마련했다고 한다. 셀에 일일이 붓으로 쌓아올린 채색의 아름다움이 상당하다. 특히 어두운 밤중 길동이 야행을 하는 장면들에서 달빛에 어스름히 보일 듯 말 듯 한 어두움, 그 어둠속에서도 달빛 그림자가 주는 미세한 심야의 음영이 보여주는 색과 질감의 표현은 압권이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일반적인 시대지만 이런 셀 애니메이션만이 주는 미학과 풍부한 정서가 있다. 어쩌면 살아가며 경험하지 못했을지 모를, 고전 필름들의 영화적 체험과 감동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은 경기 파주 모처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글 홍하늘(영상복원팀)
편집 김기호(학예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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