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영화제] 전설이 살아돌아오다 <홍길동>의 발견 경위와 역사적 의의

by.김준양(애니메이션연구자) 2008-05-04조회 1,967

20세기 내셔널 시네마의 역사 기술 방식은 한 국가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에 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왔다. 프랑스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양치기 소녀와 굴뚝 청소부>(1952), 영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동물 농장>(1954),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백사전>(1958)…. 그리고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1967)은 한국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그러나 이 불과(라고는 해도 해방 후의 굴곡 많은 한국사에서는 결코 짧다고도 할 수 없는) 40여 년 전의 작품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한국 사회가 비로소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필름프린트가 보존되어 있지 않아 정작 <홍길동>은 다시 보려 해도 볼 수 없는 전설이 되어 있었다. 이는 이제까지 한국 애니메이션이 아무리 애써도 감출 수 없는 애석한 역사적 진실이었다. 말하자면, 한국 애니메이션이 스스로의 이렇다 할 역사를 허둥지둥 끄집어내려는 순간, 그 역사가 오랫동안 망각되거나 폐기된 상태였다는 역설적인 역사의 귀환(그런데 누구에 의해?). 그 뒤를 잇는 30여 년 전의 또 다른 전설이 2005년 영화진흥위원회에 의해 복원된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역사가 아닌 미학의 측면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체면’을 세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논쟁적으로 남아 있다.

물론 당연히 <로보트태권V>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홍길동>의 전설적인 필름 프린트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근래의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하나의 주요한 화두였다. 최근의 시도는  일본까지 향했었고 그러한 과정은 TV 프로그램으로 방송되기도 하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시청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필름프린트가 발견되기를 개인적으로 조용히 기원하고 있었을 뿐, 자신이 그 소재지의 첫 번째 제보자가 되리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홍길동>의 필름프린트의 소재지를 내가 알게 된 것은 정확히 작년 2007년 11월 3일이었다. 그 무렵에 나는 국내의 어느 대학원 측 요청으로 애니메이션 분야의 해외 연구자 특강을 위한 추천 및 섭외 작업을 진행 중에 있었다. 초청 예정자는 전전 시기의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일본의 한 젊은 연구자*였다. 초청을 위한 사전 연락 과정에서 그는 모처럼의 공식적인 한국 방문을 기회로 서울애니메이션센터 같은 공공기관을 조사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고, 그래서 나는 더 나아가 한국문화컨텐츠진흥원, 한국애니메이션제작스튜디오, 한국영상자료원을 소개해 주면서 자료원에 소장되어 있는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몇몇 한국 애니메이션의 관람을 권하는 가운데 강태웅 감독의 <흥부와 놀부>(1967), 그리고 행방불명된 <홍길동>을 대신하는 의미에서 속편인 <호피와 차돌바위>를 추천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의 그 애니메이션 연구자는 지난달에 자신이 <홍길동>을 이미 필름으로 봤다는 답신을 보내왔고 친절하게 그 소재지*까지도 알려줬는데, 놀랍게도 그곳은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한 책을 쓰고 있었을 때에 이미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곳이었다.

<홍길동>의 필름 프린트를 찾아내려는 시도들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관련된 바가 전혀 없었던 나로서는 처음에 그것의 소재지를 알게 되었을 때에 약간 의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 소재지는 누구나 금방 알 수 있고 접근 가능하도록 이미 공개되어 있는 장소(하지만 동시에 어디까지나 개인 사유 재산이기도 한)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내에서 이미 <홍길동>의 필름프린트를 찾아낸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몇몇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해 봤다. 금시초문인 듯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나는 일본의 소장자께 이메일을 띄웠다. 16밀리 필름이라는 답신이 왔다.

정보 제공에 관한 허락을 소장자로부터 받은 후, 국내에서 이 사안을 가장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곧 한국영상자료원과의 접촉으로 이어졌다. 자료원은 이미 필름프린트의 수집, 복원 사업에 전문성을 추구해 왔었고 마침 영화박물관도 기획하고 있었다. <홍길동>의 소재지를 확인한 직후에 운 좋게도 나는 자료원 자체의 견학 프로그램을 통해 그 현장을 직접 엿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가진 바 있었다. 또한 운영의 전문성과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가 반드시 ‘필름=영화’로서 수용, 관리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작용하였다. 그 원작이 만화라는 사실은 물론 존중받아야 하지만, 본래 그리고 결국 셀룰로이드 필름의 몸으로 존재하는 <홍길동>이 대중과 만나는 것은 영화관의 스크린 위에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름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현재의 시점에서 <홍길동>을 보게 될 우리의 입장은 이미 40여 년 전과 똑같을 리가 없다. 영화를 보며 1967년을 추억할 수 있다면 이는 개봉 당시 극장에서 <홍길동>을 봤던 세대만의 작은 특권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고 해서 특별히 부러워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노스탤지어라는 함정 없이 1960년대라는 시대의 공기로부터 자유롭게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나름대로 특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홍길동>을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 속에 가둬 둔 채 단지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만 보고 이해하는 것은, 그러한 특권을 한층 특권답게 살리는 길에서 멀리 벗어나 보인다. 오히려 1960년대에는 거의 불가능했던, 즉 이념과 체제와 국가의 틀을 넘어 시야를 수평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가능해진 오늘날, <홍길동>을 당시의 아시아 인근 국가들에서 생산, 수용된 애니메이션 텍스트들과의 관계 속에 적극적으로 배치하고 새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작업과 경험이 절실히 요청된다.

마침 작년 하반기 동안 나는 아시아 애니메이션 역사에 관한 연구 및 집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1950년대 말 이래로 일본, 중국, 한국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기존의 아버지적 질서에서 밀려나 있(는 한편, 서로 다른 벡터의 욕망을 지니고 있)는 인물 - 즉, 고아 소년(1959년 일본의 사루토비 사스케), 유인원(1960년 일본의, 그리고 1961/1964년 중국의 손오공), 서자(홍길동) - 의 영웅 신화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영웅들과 그들 각각의 아버지들의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미학적 실체를 밝혀내는 일은, 앞으로 계속 아시아에서 애니메이션을 생산해 갈 뜻이 있다면 그런 우리들이 결국 껴안고 가지 않으면 안 될 하나의 유의미한 과제일 것이다. 그러려면 동시에 이제까지 별로 이야기되지 않았던 방식으로 동아시아의 ‘전후’도 새롭게 조망되어야 할지 모른다. 아마 이때 ‘전후’란 반드시 제2차 세계대전만을 함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15년 전쟁, 그리고 중국의 국공 내전.

더 나아가 각 작품 뒤에 나타난 애니메이션의 역사적 전개 또한 몹시 흥미롭고 중요한 과제를 던진다. 중국의 장편 애니메이션에서는 20세기 말까지 특정 시기에 손오공이 계속 그려졌는데 그는 대개 늘 모택동의 은유였다. 반면, 일본에서는 영화관 은막 위의 인간 소년과 원숭이 영웅들을 텔레비전의 인조인간들(1963년의 아톰)이 순식간에 대체해 버리고 테크노 유인원의 시대를 열었다. 그렇다면 한국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어땠을까? 서자 홍길동은 과연 누구에 의해 계승되거나 대체되었는가? 가령, 홍길동의 스크린 데뷔로부터 9년 뒤에 출현한 로보트태권V는 그의 대체물이었을까, 아니면 변주였을까? 물론 중국의 손오공처럼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홍길동은 계속 그려져 왔다. 1983년, 1995년, 그리고…?

<홍길동>이 필름프린트로서 돌아온 만큼 우리들은 이와 같은 질문들을 시작하고 답할 수 있는 본격적인 지점에 도달한 듯하다. 기념비적 가치만을 중시하고 숭배하는 태도는 기껏 귀환해 온 <홍길동>을 무미건조한 박제로 만들 뿐이다. 한 예술 작품의 생명은 늘 그것이 자신의 동시대와 호흡하며 수용될 때, 다시 말해 작품이 결코 훼손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둘러싼 불완전한 사회적 세상에 열려 있을 때 유지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제작 현장의 예술가들만이 아니라 스크린 앞의 관객에게도 주어지는 능동적 활동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 모두가 애니메이터(=생명을 불어넣는 자)인 셈이다.

* 당사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상세를 밝히지는 않는다.
** 이후 논문으로 완성되어 2012년 '애니메이션 사전'(アニメーションの事典) 서적에 수록 및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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