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환
Cho Kyung-hwan / 曺景煥 / 1935  ~ 
대표분야
미술, 촬영, 시나리오
데뷔작품
사랑의 승부 1962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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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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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
고금소총 (지영호, 1988)
지옥의 링 (장영일, 1987)
산딸기 3 (김수형, 1987)
성리수일뎐 (이석기, 1987)
허튼소리 (김수용, 1986)
여자여자 (고영남, 1985)
비천괴수 (김정용, 1984) 특수미술
뜸부기 새벽에 날다 (김수형, 1984)
저 하늘에도 슬픔이 (김수용, 1984)
제4의 공포 (노진섭, 1984)

주요경력

1955 대구에서 동양극장 간판을 그리던 김모씨가 운영한 서울간판에서 1년간 일함
1956 상경. 을지로 6가에 있던 간판가게에서 1년간 일함.
1957 무대미술을 하던 장종선의 조수가 되어 무대미술 수련하다가 영화미술을 하던 갈이 준에게 스카웃되어 <인생화보>(이창근)의 미술부로 영화에 입문
1958 왕십리 광무극장 옆에 왕십리 촬영소를 조성
1959 김세라의 주선으로 신설동 스튜디오를 조성하고 <푸른 날개>(전택이)의 미술작업에 참여
1961 마포 촬영소를 조성
1962-64 만리동에 촬영소를 조성하고 최훈, 함완섭 제작, 최훈 감독의 <사랑의 승부>로 미술감독 데뷔. 조경환에 이어 홍성칠이 또한 만리동에 동성영화사의 촬영소를 조성하자 홍성칠 팀으로 흡수되어 <왕자 호동>(한형모)의 미술작업에 참여. 곧이어 홍성칠 팀의 안양촬영소 현장책임을 맡아 <지옥문>(이용민)과 <대심청전>(이형표)의 세트를 제작
1964-66 제일영화사(대표 홍성칠)와 합동영화사(대표 곽정환)가 함께 원효로 촬영소를 조성하자 그곳의 현장 책임을 맡음.
1967-70 합동영화사, 제일영화사, 연방영화사, 극동영화사가 뚝섬에 1,000평 규모의 촬영 소를 조성하면서 근거지를 뚝섬으로 옮겨 합동촬영소(400평), 제일촬영소(200평), 연방촬영소(200평)를 맡아 운영.
1970-71 뚝섬의 촬영소들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나자, 화양리 한양대학교의 창고를 얻어 임시 촬영소를 마련하고 보한산업주식회사의 작품을 맡음.
1971 강혁, 하휘룡, 이현진 등과 함께 ‘한타스클럽’을 조직하여 영화제작을 모색했으나 성사되지 못함.
1971-72 합동, 제일, 연방 영화사의 촬영소가 뚝섬에 다시 조성되자 이곳으로 돌아가 작업 재개. 고정 세트를 마련하여 제작비를 줄이자는 아이디어를 제출, 촬영소 에 한옥의 안채와 별채(합동 400평), 양옥의 거실과 법정, 일본집(연방 200평)을 고정 세트로 제작.
1972 고정 세트에 화재
1973 영화진흥공사의노인택 요청, <증언>(임권택)의 미니어처 작업으로 영화현장에 복귀
1974-88 연방영화사가 새로 조성한 불암동 촬영소와 대영영화사의 교문리 촬영소, 한진영화사의 호원동 촬영소 등을 운영하며 200여 편의 작품에서 영화미술을 담당. 특히 교문리 촬영소에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무협액션영화를 촬영하기 위한 고정 세트를 조성하여 운영하였다.
1983-97 약 2,000여 편의 광고미술을 담당.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어떤 뜻을 가지고 영화일을 시작했다기보다는 (공부한 적도 없고, 가르치는 곳도 없는 상태에서) 막연히 영화를 좋아해서 하루에 3~4편씩 보다보니 주변에서 미술하는 선배가 장종선씨(무대장치가)에게 소개해 준 이후에 영화쪽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애착작품 및 사유
<난중일기>-바닷가에 거북선을 직접 띄워서 촬영을 했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컸는데 무사히 넘어가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영화속 명소
<난중일기> 중 선소부락(여수)-이순신 장군이 당시 거북선을 건조한 곳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문화가 점차 서구화 되어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사극, 역사적인 작품을 많이 하게 되었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조경환은 경상북도 포항에서 아버지 조상순(曺相純)과 어머니 윤분학(尹分鶴) 사이의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대구에 있었던 ‘서울간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영화미술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무대미술가 장종선의 조수로 일하던 와중에 갈이준의 소개로 <인생화보>(1957)의 호리즌트(배경 풍경 그림) 작업에 투입되었다. 이후 <청실홍실>(1957), <검사와 여선생>(1958), <푸른 날개>(1959), <백백교>(1961) 등의 미술작업에 참여했다. <사랑의 승부>(1962)의 미술을 맡으면서 미술감독으로 데뷔했다.
조경환은 1967년 합동영화사, 제일영화사, 연방영화사, 극동영화사가 뚝섬에 조성한 1,000평 규모의 촬영소를 운영하면서 고정 세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1974년에는 연방영화사가 조성한 불암동 촬영소, 대영영화사의 교문리 촬영소, 한진영화사의 호원동 촬영소 등을 운영하면서 200여 편의 영화에서 영화미술을 담당했다. 특히 교문리 촬영소에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무협액션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고정 세트가 있었다. 1980년대부터는 광고미술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2,000여 편의 광고미술을 담당했다. 남양주 조안면에 광고미술을 위한 촬영소인 불암미술센터를 직접 조성하여 아들 조재우와 함께 운영하였다. 1997년 광고미술을 그만 두고 여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들 조재우가 촬영소와 광고미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05년 아들 조재우가 세트를 맡았던 <웰컴 투 동막골>(2005)의 세트 자문을 맡기도 했다(한국영상자료원).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구술사아카이브.
(http://www.koreafilm.or.kr/main/institute/gusul_view.asp?page=1&seq=38&FindCol=witness&FindTxt=)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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