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Choi Young-chul / 崔永喆 / 1933  ~ 
대표분야
감독
데뷔작품
잉꼬부부 1963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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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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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백백교 (최영철, 1991)
목마부인 (최영철, 1989)
비내리는 영동교 (최영철, 1986)
삿갓쓴 장고 (최영철, 1985)
화야 (최영철, 1983)
괴도출마 (최영철, 1981)
여호신 (최영철, 1980)
대근이가 왔소 (최영철, 1979)
특명 8호 (최영철, 1978)
7호실 손님 (최영철, 1977)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촬영기사였던 매부 김영길의 소개로 영화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주요 영화작품
로맨스가족(1963,최영철)
잉꼬부부(1963,최영철)
낙인찍힌 사나이(1964,최영철)
저자를 쏴라(1964,최영철)
무명가의 지배자(1965,최영철)
나그네 밤거리(1965,최영철)
그늘진 삼남매(1966,최영철)
악인가(1967,최영철)
죽어도 좋아(1969,최영철)
여선장(1969,최영철)
암흑가의 지배자(1969,최영철)
사나이 중 사나이(1969,최영철)
홍콩의 마도로스(1970,최영철)
맨발로 왔다(1970,최영철)
홍콩의 단장잡이(1970,최영철)
맨주먹으로 왔다(1970,최영철)
동경의 호랑이(1971,최영철)
54번가의 마담(1971,최영철)
사나이 훈장(1973,최영철)
낙인(1974,최영철)
후계자(1974,최영철)
황금마담(1975,최영철)
천의 얼굴(1976,최영철)
거대한 음모(1976,최영철)
7호실의 손님(1977,최영철)
특명 8호(1978,최영철)
대근이가 왔소(1979,최영철)
여호신(1980,최영철)
괴도출마(1981,최영철)
화야(1983,최영철)
삿갓쓴 장고(1985,최영철)
비내리는 영동교(1986,최영철)
백백교(1992,최영철)
애착작품 및 사유
잉꼬부부-첫번째 데뷔작이기도 하며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이 좋다. 가족간의 사랑을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애착이 간다.
영화속 명소
'7호실의 손님'-제주도 바닷가 석양지는 모습-악당들을 잡는 장면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홈드라마와 액션물을 많이 찍긴 했지만 추리소설같은 미스테리물을 찍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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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최영철 - 감독 - 충무로 액션의 대가 1960년대와 70년대, 80년대 이어지는 한국영화의 역사는 다사다난하다. 영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정치적 환경, 제작 여건,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씨줄, 날줄로 얽히면서 어느 한 가지 시선이나 가치만으로 평가하기에는 참으로 많은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by.조희문(영화평론가, 상명대교수) 2008-11-1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최영철은 고등학교 시절 실력 있는 축구선수였다. 축구 특기생으로 국민대학교에 입학한 후, 축구 특기생으로 고려대학교에 편입하여 고려대학교 축구부에서 골키퍼를 했다. 축구에 재능은 있었으나 작은 키로 인해 선수로서 한계를 느낀 그는 축구를 그만두고 촬영기사였던 매부 김영길의 소개로 영화계에 입문했다(조희문, 한국영상자료원). 그는 <낙화유수>(1958)의 연출부로 영화를 시작해(한국영화감독사전), 1963년 <잉꼬부부>를 통해 감독 데뷔하였다. 이후 <낙인찍힌 사나이>(1964), <동경의 무정가>(1970), <낙인>(1974) 등 액션영화를 주로 연출하여,. 최영철은 1960~70년대 대표적인 액션영화 감독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했다.
1981년에는 영화진흥공사의 해외연수프로그램을 통해 촬영기사 정운교, 조명기사 마룡천, 녹음기사 김명수 등과 함께 일본 도에이 영화사 영화제작팀에 합류해 영화공부를 했다(경향신문a). 같은 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등과 함께 제작자유화를 위한 성명에도 동참하였다(동아일보). 6백여 명의 희생을 낳은 사교집단 사건을 영화화한 <백백교>(1991)의 연출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경향신문b).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81년 11월 16일자 12면.
경향신문b 1988년 5월 24일자 16면.
동아일보 1981년 8월 3일자 11면.
조희문
(http://cafe.naver.com/ghogumafilm.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894&에서 재인용)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3- , 서울시 중구 광희동 2가 157-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광희초등학교와 보성중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안현철의 <낙화유수>의 연출부 작업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을 하게 되었다. 1963년 <잉꼬부부>를 통해 감독에 데뷔하였다.
이후 작품은 <로맨스 가족>(1963), <낙인찍힌 사나이>(1964), <저 者를 쏴라>(1964), <무명가의 지배자>(1965), <나그네 밤거리>(1966), <그늘진 삼남매>(1966), <악인가>(1967), <사나이 중 사나이>(1969), <죽어도 좋아>(1969), <암흑가의 지배자>(1969), <동경의 무정가>(1970), <여선장>(1970), <홍콩의 마도로스>(1970), <홍콩의 단장잡이>(1970), <맨발로 왔다>(1971), <맨주먹으로 왔다>(1971), <54번가의 마담>(1971), <동경의 호랑이>(1972)가 있다.
1970년대 액션 영화인 <동경의 호랑이>(1971)는 당시의 액션배우 박노식과 김지미가 주연하였다. 히로시마 폭격으로 고아가 된 김종수는 일본의 조직폭력배가 된다. 그는 거기서 조총련인 박덕수에게 이용당해 경찰에 구속되게된다. 사전 전모를 애인 김진숙으로부터 전해들은 그는 탈출하여 덕수를 찾아내어 복수를 한다. 그는 일본을 떠나려 했으나 그만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그 이후에도 연출의 이력을 더해가면서 <사나이 훈장>(1973), <낙인>(1974), <후계자>(1974), <흑백대권>(1974),<검은 띠의 후계자>(1975), <황금마담>(1975), <천의 얼굴>(1975), <킹콩의 대역습>(1976), <거대한 음모>(1976), <7호실 손님>(1977), <특명 8호>(1978), <여호신>(1979), <대근이가 왔소>(1980), <괴도출마>(1981), <별명붙은 사나이>(1982), <화야>(1983), <돌아온 장고>(1984), <비내리는 영동교>(1985), <백백교>(1993)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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