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거영
Pyeon Keo-young / 片巨影 / 1928  ~  2014
본명
편광우 (Pyun Kwang-woo)
대표분야
시나리오,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특전대 1965
활동년대
1960, 1970, 199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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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1991 신 팔도사나이 (편거영, 1991)
뜨거운 영광 (편거영, 1973)
바보같은 사나이 (편거영, 1971)
한국 제일의 사나이 (편거영, 1971)
원한의 팔도사나이 (편거영, 1970)
팔도가시나이 (편거영, 1970)
예비군 팔도 사나이 (편거영, 1970)
속 팔도사나이 (편거영, 1969)
돌아온 팔도사나이 (편거영, 1969)
위기 113 (편거영, 1966)

주요경력

1960년 무궁화 연구위원
1978~83년 새마음 봉사단 상임기획위원
1981년 소비자절약부분 대통령표창
1988~90년 통일여성안보회 상임이사
1990년~ 한국통일여성협의회 전문의원, 한국영화인협회 제주지부장
1997년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제주유치위원회 사무총장
2010년 제주영상위원회 이사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군생활(육군통신학교)를 마치고 국도신문 기자로 일하던 중 종합 예술지"씨네마팬"이 창간되어 편집장겸 주간을 맡으며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마침 지면에 여유가 있어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는데 제목은"비밀통로를 찾아라"였다.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동아흥행"의 이수희부장(현 사장)이 연락이 와서 시나리오를 사겠다고 했다. 그 당시 나의 월급이 10만원 정도인데 30만원을 이야기 했던 거 같다.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영화와 나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 이후 난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나 나의 시나리오가 작품화되면서 나의 의도와는 달리 틀리게 묘사된다는 것을 느끼고 직접 내 시나리오를 내가 감독해 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65년 "특전대"라는 작품을 가지고 시나리오는 물론 직접 감독으로서 입봉을 하였다.
주요 영화작품
특전대(1965,편거영)
위기 113(1966,편거영)
돌아온 팔도사나이(1969,편거영)
한국 제일의 사나이(1969,편거영)
원한의 팔도사나이(1970,편거영)
팔도가시나이(1970,편거영)
예비군 팔도 사나이(1970,편거영)
한국 제일의 사나이(1971,편거영)
바보같은 사나이(1971,편거영)
뜨거운 영광(1973,편거영)
신팔도사나이(1991,편거영)
애착작품 및 사유
1969년<감독,시나리오>:팔도 사나이-이 작품으로 주연배우인 박노식씨가 청룡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일이 인연이 되어 91년작품"신팔도사나이"에 박노식씨 아들 박준규씨를 등용하였다)흥행적으로도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당시 부도가 나서 의기소침한 중, 소, 경제인등이 이 영화를 보고 자신감을 가졌다는 말을 했는데 난 이영화가 많은 관객등에게"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데 일조를 하였다는데서 보다 큰 만족감을 느낀다.
영화속 명소
90년대에 우연히 휴식차 제주도에 놀러갔다. 제주도에 반해 그 이후 현재까지 제주도에 살게 되었다. 93년도에 제주도관광협회 후원하에"신혼관광제주"라는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 덕분에 제주도를 구석구석 돌아 다닐 기회가 있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포리 해벽은 정말 절경이다. 제주도에 오시면 꼭 한번 구경하시길 바란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충,효,예,지정신을 바탕으로 한 밝고 깨끗한 마음등이 정신을 표한하고 싶었다. 또한 나의 작품을 보고 사람이 마음 먹기에 따라 무엇이든지 해 낼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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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편거영 - 감독 1969년. 영화 <팔도 사나이>가 개봉된다.장동휘,박노식,독고성,황해,허장강,이대엽,오지명. 충무로 최고의 액션 배우들이 모두 총 출동한 것이다. 감독은김효천. 항해사 이력을 가진 마초. 부잣집 아들에 호남 형으로 생긴 이 사나이는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 by.오승욱(영화감독) 2015-05-13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편거영은 군대(육군통신학교)를 제대하고 국도신문 기자로 일했다. 이후 종합 예술지 《씨네팬》의 편집장 겸 주간으로 일했다. 그러는 동안 「비밀의 통로를 찾아라」라는 시나리오도 썼는데 동아흥행의 이수희가 그 시나리오를 30만원에 사게 되면서 시나리오 작가를 하게 되었다(한국영상자료원). <한석봉>(1963), <바다는 말이 없다>(1962), <비단장사 왕서방>(1961), <팔도사나이>(1969) 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1964년에는 극단 ‘현대극장’의 단원으로 활동했다(경향신문a).
편거영은 1965년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특전대>(1965)로 감독 데뷔하여, 제작까지 겸하며 다방면에 재능을 보였다(한국영화감독사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는 대중적인 액션장르 영화를 주로 연출하여 “재미난 오락물을 만드는 솜씨”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한국영화감독사전, 경향신문b). 각본을 직접 쓰고 직접 연출한 <팔도 사나이> 시리즈로 60년대 후반 액션영화의 전정기를 이끌었다(씨네21).
1991년,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가 풍광과 자연에 반해 제주도에 정착하였다. 이후 한국영화인협회 제주도지부를 설립하여 제주도를 ‘영화메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1997년 아시아태평양영화제를 제주도에 유치시켰다. 2003년에는 제주영상위원회 설립에도 일조하고, 제주영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영화촬영 유치와 제작지원을 위해 노력하였다(경향신문c).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64년 4월 11일자 5면.
경향신문b 1966년 4월 6일자 5면.
“편거영 감독 영상센터 건립 영화메카 조성 노력”, 경향신문, 2004/02/0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402031852021&code=100100)
“한국 액션영화 제1세대를 만난다, <팔도사나이>”, 씨네21, 2005/04/21.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3001001&article_id=29916)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본명 편광우(片匡宇). 1928년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 문봉리에서 출생하였다. 국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영화잡지인 월간 '씨네팬'의 편집장을 역임하였다. 영화계 입문은 <한석봉>, <바다는 말이 없다>, <비단장사 왕서방>, <8도사나이>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하였다. 1965년 <특전대>(1965)로 감독 데뷔하였다. <특전대(特戰隊)>(1965)는 남궁원이 주연한 1960년대 반공영화에 속하며 국군의 활약상을 주로 다루었다. 특전대원들은 특수 임무를 부여받고 적진에 진입하여 보급창고 폭파에 성공한다. 제 2의 목표는 적의 포로수용소에 수감 중인 미군 조종사를 구출하는 임무다. 그들은 한 여성의 도움으로 미군 조종사를 구하여 탈출을 시도하나 북한군에게 발각되어 총격전 끝에 대원들이 모두 전사하는 일이 발생한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초에 대중적인 액션장르 영화를 주로 연출하였다.
<한국 제일의 사나이>(1971)는 한국액션영화의 전형을 보여준 영화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당대의 액션 스타인 장동휘와 박노식의 주연으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항일 정신을 내세워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있다. 쌀배달하던 호는 암흑세계에서 싸움꾼으로 이름을 날린다. 그는 일본인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조직의 보스에 오른다. 해방 후 귀향한 부하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데리고 성경한다. 서울에서 새생활을 시작하려하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부하들은 다시 조직폭력배의 생활을 하려하지만 호는 그들을 선도하여 바른 삶을 살도록 조력한다. 호의 회갑잔치에 과거의 부하들이 국가를 위해 의미있게 살기로 결의를 다지면서 행복할 결말을 맺는다.
이밖에 <위기 113>(1966), <팔도사나이>(1968), <속 팔도사나이>(1968), <원한의 팔도사나이>(1969), <돌아온 팔도사나이>(1969), <팔도가시나이>(1970), <한국 제일의 사나이>(1970), <뜨거운 영광>(1973), <바보같은 사나이>(1971), <신팔도사나이>(1991)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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