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균
Shin Young-kyun / 申榮均 / 1928  ~ 
대표분야
배우, 제작/기획
데뷔작품
과부(조긍하감독)
활동년대
1940, 1960, 1970, 1980, 1990, 20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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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한국영화 100년을 돌아보다 내 인생의 한국영화 (김태영, 2020)
한국영화 위대한 100년 (이석기,김강숙, 2014)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은수, 1990) 회장
화조 (김수용, 1978)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임원식, 1977)
아라비아의 열풍 (김수용, 1976)
애수의 샌프란시스코 (정소영, 1975)
캐서린의 탈출 (데이빗 리치,장일호, 1973)
고향에 진달래 (이신명, 1973)
천사의 메아리 (김응천, 1973)

주요경력

■ 1962년 영화의 날 문화공보부 장관상
■ 1962년 서울시 문화상
■ 1971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 1981년 제15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 1987년 국민훈장 동백상
■ 1992년 SBS 프로덕션 회장
■ 1996년 제15대 신한국당 국회의원
■ 2000년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 2008년 3월 대한민국 국민원로회의 위원 한나라당 상임고문
■ 2009년 4월 한국지역민영방송협회 회장 제주방송 명예회장
■ 2010년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 2011년 6월 서강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
■ (사)한국영화인총연합회 명예회장

기타정보

기타이름
신일천
주요 영화작품
과부(1960,조긍하감독)
마부(1961,강대진감독)
상록수(1961,신상옥감독)
연산군(1961,신상옥감독)
상한 갈대를 꺾지마라(1962,강대진감독)
로맨스그레이(1963,신상옥감독)
쌀(1963,신상옥감독)
빨간 마후라(1964,신상옥감독)
잉여인간(1964,유현목감독)
월급봉투(1964,김수용감독)
남과 북(1965,김기덕감독)
갯마을(1965,김수용감독)
군번없는 용사(1966,이만희감독)
산불(1967,김수용감독)
애하(1967,이형표감독)
규방(1968,정소영감독)
대원군(1968,신상옥감독)
미워도 다시한번(1968,정소영감독)
당신(1969,이성구감독)
이조 여인잔혹사(1969,신상옥감독)
봄봄(1969,김수용감독)
육군 김일병(1969,신상옥감독)
엄마아빠 오래사세요(1970,이성구감독)
떠나야할 사람은(1970,정승문감독)
거북이(1970,이성구감독)
약속은 없었지만(1970,조문진감독)
결혼대작전(1970,최 훈감독)
무정의 네온가(1971,김시현감독)
빗속에 떠날 사람(1971,변장호감독)
궁녀(1972,신상옥감독)
헤어져도 사랑만은(1972,김기덕감독)
잡초(1973,임권택감독)
천사의 메아리(1973,김응천감독)
애수의 샌프란시스코(1975,정소영감독)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77,임원식감독)
화조(1978,김수용감독)
자기소개 및 취미
특기: 골프, 스키, 승마, 외국어(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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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8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부친을 여의고, 서울로 이주하여 자랐다. 교회 아동극을 보며 연기에 꿈을 품게 되었고, 한성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극단 청춘극장에 입단하여 1년간 연기활동을 하기도 한다. 극단에서 이동을 하던 중, 타고 가던 트럭이 전복되어 여러 단원들이 다친 것을 보고서 극단 활동을 접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한다. 치대 졸업 후에도 서울대 출신의 연극배우들인 박암, 이낙훈 등과 함께 연극을 하였고, 다시 1년 동안 의사고시를 준비하여 치과 의사로 개업하기도 한다(신동아). 그렇게 개업한 치과에는 연극계, 영화계 인사들이 많이 오갔고, 그러던 가운데 알게 된 조긍하 감독의 권유로 <과부>(1960)에 주인공인 머슴 역할로 출연하며 영화에 데뷔하게 된다. 그렇게 데뷔하게 된 영화에서의 이미지들은 멜로드라마나 청춘 영화 속 로맨스의 주인공 보다는 한 가정의 가장(<미워도 다시 한번>(1968)), 큰 아들(<로맨스 그레이>(1963)), 한 나라의 임금(<연산군>(1961)), 이름난 장수(<천년호>(1969)), 실천하는 지식인(<상록수>(1961)) 등 커다란 책임감을 지닌 동시에, 남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하였다. 1978년 <화조> 이후, 영화배우로서는 오랜 휴식을 취하며, 명보극장을 경영하고, 제주도에 신영영화박물관을 개설하였으며, 15대, 1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의정을 돌보기도 하였다. 2010년에는 한국영화계의 후진 양성을 위하여 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을 기부하기도 했다.

* 참고문헌
소박과 야심의 두 얼굴 신영균-"정치? 사업? 그래도 배우가 제일 좋았어요", 『신동아』 541호 (2004년 10월 1일)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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