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 10월의 영화 Ⅱ 신상옥, 1961

by.송효정(영화평론가) 2020-10-16조회 1,585
우리는 이미 안다(고 생각한다). 심훈의 <상록수>는 식민지시대 대표 농촌계몽소설이며, 영화 <상록수>는 1960년대 계몽적 문예영화다. 대중의 상식에서 문예영화는 문학작품의 충실한 재현이다. 신상옥의 <상록수>는 사실 이러한 문예영화적 충실성에서 벗어나는데, 오늘날 우리가 <상록수>를 발견의 영화로 재고해야 한다면 신상옥만의 각색과 연출의 특이성에 놓여있을 것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신상옥의 대표 문예영화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다. 하지만 1961년 명보극장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이어 선보인 영화가 <상록수>였음을 기억하는 자는 드물다. <상록수>는 <동심초>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이어지는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신상옥 영화의 고유한 아름다움, 즉 풍경을 정서로 이어가는 로케이션 촬영의 형식적인 특징을 잇고 있다. 다른 한편 <로맨스 빠빠> 및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이어지는 한국적 교양의 보편적 지평을 넓히는 영화로 과잉과 신파성을 배제한 담백한 연출도 <상록수>로 이어진다.   

영화 <상록수>는 식민지 영화인 심훈의 이루지 못한 영화의 꿈이었다. 소설가,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심훈은 영화 <장한몽>(1926)의 주연 배우, 영화소설 <탈춤>(1926)을 비롯한 다수의 시나리오 작가, 영화 <먼동이 틀 때>(1927)의 감독이자 1920년대 중반 이후 중요한 글들을 남긴 영화평론가였다. 스스로도 “처음부터 문필로써 미염(米鹽)의 대를 얻으려 함이 본망(本望)이 아니었”으며 벽촌에 은거할 때조차 생활이 단조로울수록 “‘인’이 박힌 것처럼 영화”를 애착했던 시네필이었다.1) 심훈의 영화 <상록수>는 당시 신문연재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고려영화사에서 감독 심훈, 촬영 양세웅, 주연 강흥식에다 총 출연 2000명이 넘는 대규모 발성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시나리오만 남긴 채 심훈은 36세의 나이에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좌측부터 영화 <상록수>의 각본 심훈, 주연 강홍식, 촬영 양세웅, 제공 이창용(동아일보,1936.3.18.)

소설 <상록수>는 잘 알려져 있듯 1961년 신상옥 감독에 의해, 1978년 임권택 감독에 의해 2차례 영화화되었다. 신상옥의 <상록수>는 원작 및 심훈(의 시나리오)과 임권택의 동명 영화와 상당히 다른 전개를 보인다. 소설 <상록수>는 동혁의 시점에서 시작해 서신 왕래라는 장치를 통해 자연스럽게 동혁과 영신의 시점을 오가다 최후에는 동혁의 시점에서 끝난다. 심훈의 남겨진 시나리오도 남주인공 ‘동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임권택의 영화 <상록수> 역시 동혁과 그의 고향마을 농우회를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지며 영신의 야학활동은 영신의 전언을 통해 플래시백 장면으로 에피소드화 된다.
 
반면 신상옥의 <상록수>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여성인물 영신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깊은 산골마을에 버스가 도착하고 짐을 싸매고 온 아가씨가 버스에서 내려 깊은 산골의 호젓한 길을 걸어간다. 배경으로 놓인 눈 덮인 산맥은 그녀가 겪을 인생에 대한 인유적 풍경인 양 놓여있다. 마치 2차례 영화화 된 <무정>이 원작소설처럼 근대적 지식인 이형식을 중심으로 한 계몽과 각성의 서사가 아니라 구여성 영채를 중심으로 한 ‘영채전’의 멜로드라마로 소비되었듯, 대다수 한국인들의 관람의 무의식 속에서 (영화와 소설을 포괄한 서사체로서의) ‘상록수’는 헌신적인 여선생 채영신의 이야기로 기억되는데, 그 기억의 원형을 제공한 영화가 신상옥의 <상록수>인 것이다. 
 

‘상록수’에 대한 원형적인 서사로 기억되면서도 오랜 기간 동안 신상옥의 <상록수>가 저평가된 까닭은 무엇일까. <상록수>가 2차례 영화화된 시기는 1961년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최고회의)시절부터 1978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 말기에 이르는 시기다. 그런 탓인지 영화화 된 <상록수>는 박정희 정권기 문화정치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계몽영화로 알려져 있다. 

<상록수>가 개봉한 것은 1961년 9월 20일이었다. 같은 해 10월 11일, 유달영 재건국민운동본부장은 농촌계몽을 소재로 한 영화 <상록수>를 국민에게 추천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한다. 이듬해인 1962년 1월 19일 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은 젊은 지식인들이 농촌진흥을 위해 삶을 바친 소재를 다룬 심훈 원작의 영화에 깊은 감명을 받아 <상록수>와 같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 농촌으로 보내도록 지시한다. 박정희가 <상록수>를 좋아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화이며, 유달영 재건국민운동본부장은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모델인 ‘최용신’의 전기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일련의 과정은 <상록수>라는 영화가 자체의 작품성을 떠나 5.16 군사 쿠데타와 군부정권에 의해 ‘사후적’으로 정권의 계몽영화의 상징이 된 과정을 보여준다. 이렇듯 전형적 농촌 계몽영화라는 표지는 영화 <상록수>를 정권홍보용 문화정치 영화라는 관념으로 둘러쌓아 두었던 것은 아닐까. <상록수>가 신상옥에 의해 영화화 되면서 1960년대식 개발주의 영웅서사로 자리매김했다는 역사학의 평가는 영화 자체가 의도하지 않았던 역사적 우연들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는 아닐까. 
 

신상옥의 <상록수>는 시작부터 영신의 시골행을 보여주며 맑고 깨끗한 여성 주도적 서사를 분명히 했다. 소설의 전개과정과 달리 영화는 영신이 청석골에 들어가 야학을 일구고 농촌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과정을 덤덤히 보여준다. 그저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고학으로 학문을 익혔고 이념과 생활이 일치했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의 입장도 분명했다. 영화 속 동혁과의 만남은 과거회상으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영신 중심 시점은 임권택의 <상록수>가 동혁과 농우회 즉 남성 영웅과 남성 집단성을 강조한 경우와 반대가 된다. 신상옥과 임권택의 두 영화의 각본은 김강윤으로 동일하므로 이 차이는 연출의 차이임이 분명하다.  

“여자가 배우면 생지랄이야”라며 딸 교육을 홀대하는 시골 어른들을 설득해서 여자도 배우면 판사도 하고 변호사도 한다고 부드럽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품성,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독립적인 면모,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일도 중요한 굳건하고 부드러운 성격. 영신이 이끌어가는 여성 중심적 서사는 신상옥 감독이 1950년대 후반부터 만들어온 멜로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인물에 대한 섬세한 연출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구시대적이며 내성적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달리 진취적이며 자립적인 여성 영신을 선보인 <상록수>가 신상옥 감독의 연이은 문예물이며 주연배우 또한 최은희라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1) 심훈, 「다시금 본질을 구명하고 영화의 상도에로」, <조선일보> 1935.7.13.
 

연관영화 : 상록수 (신상옥 , 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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