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의시네마테크]쿠엔틴 타란티노 특별전: <재키 브라운> <장고: 분노의 추적자> 재키 브라운, 1997

by.채희숙(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2016-03-21조회 4,236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덕력자다. 그는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섭렵한 온갖 영화들을 자산으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쌓았는데, 다시 말해 정규교육의 도움 없이 오롯이 영화 그 자체만을 교재 삼아 스스로를 훈련시킨 씨네 키드인 것이다. 

일본이나 홍콩 등에서 도착한 액션 및 무협 영화나 미국 B급 영화들을 사랑했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세계는 수다스럽기 그지없고, 유혈 낭자한 폭력이 가득하며, 지나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인물들을 다수 포함한다. 또 그는 팝 음악으로 구성되는 OST를 비롯해 왕왕 대중문화에 대한 사랑과 논평을 표출하고, 씨네 키드답게 다른 영화의 장면을 인용해오고는 한다. 이와 함께 타란티노 월드를 지탱하는 한편에는, 초기 <저수지의 개들>이나 , <펄프 픽션>부터 시작된 비선형적 서사구조가 있다. 여기서 하나의 사건은 캐릭터들의 다양한 시점별로 자꾸 반복되며 시간 진행을 멈춘다. 다른 한편 <킬빌> 시리즈부터 복수를 테마로 다양한 변주들을 선보이고 있는 그는 여성, 흑인, 유대인 등 역사적으로 핍박받은 존재들을 불러들여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복수극을 완성한다. 

그중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재키 브라운>(1997)과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 이다. 두 영화는 좀 더 직접적으로 이전에 제작된 작품의 설정에 기반을 두거나 그에 대한 오마주를 포함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두 영화의 제목 모두 그가 열광했던 영화 및 그 주인공의 이름을 호명한다.
 
<폭시 브라운>(1974), <재키 브라운>(1997) 포스터의 동일한 제목 타이포
<폭시 브라운>(1974), <재키 브라운>(1997) 포스터의 동일한 제목 타이포

<재키 브라운>은 70년대 흑인 B무비에서 활약한 팸 그리어를 스크린으로 소환한다. 원작소설의 재키 버크가 영화로 오면서 재키 브라운으로 이름이 바뀐 이유는 팸 그리어가 70년대 분한 <폭시 브라운>(1974) 이란 영화 때문이며, <재키 브라운> 포스터의 글씨체도 그 영화에서 따온 것이다. 이러한 오마주와 관련해서 영화의 첫 장면은 단연 인상적인데, 수평 에스컬레이터를 탄 팸 그리어(재키 브라운 역)를 따라 트래킹으로 진행되는 롱테이크 장면은 그녀를 누구보다 당당하고 우아한 존재로 각인시킨다. 이 밖에도 명품 중년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70년대 분위기의 조화는 영화 전체가 마치 70년대 영화에 대한 오마주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가 유명세로 인해 부과된 짐을 뒤로하고 여기서 유유자적 자신의 영화 취향을 즐기고 있는 것도 같다. 영화를 정말 사랑하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던 그의 말처럼 감독의 사랑은 관객에게도 느긋하고 즐거운 시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경우 쿠엔틴 타란티노의 미국 최고 흥행작이기도 하다. 여기서 감독의 재기는 현상 수배범을 잡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에서 발휘된다. 상대방의 수를 읽고 이를 제압하는 능수능란한 전략전술은 시원스럽고 호탕하다. 한편 감독은 1966년 작 <장고>에서 장고가 홀로 적진에 둘러싸여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가 갑자기 엄청난 기관총을 꺼내 한 번에 적들을 무찌를 때의 통쾌함을, 노예 시대와 관련한 카타르시스로 연결 짓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서부극의 영웅 장고를 미국 남부 노예 시대의 풍경에 분연히 일어서는 영웅의 모습으로 재해석한다.
 
로버트 포스터(재키 브라운), 크리스토프 왈츠(장고: 분노의 추적자)
로버트 포스터(재키 브라운), 크리스토프 왈츠(장고: 분노의 추적자)

그런데 두 영화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각각의 영화에 등장하는 조력자 캐릭터다. 주인공보다 더 영화를 중심에서 이끈다 생각될 정도로 멋진 그 조력자들의 태도에는 어떤 기품이 흐른다. <재키 브라운>에서 로버트 포스터(맥스 체리 역)는 재키를 향한 열정과 연륜에서 비롯된 체념을 현명한 중년의 눈빛과 자태 속에 함께 녹여낸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품위는 어쩌면 로버트 포스터가 보여주는 그 자태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이끄는 조력자는 크리스토프 왈츠(닥터 킹 슐츠 역)이다. 장고가 개인적인 복수를 목표로 앞만 보고 달리는 인물이라면, 슐츠는 노예제도나 각종 부당함에 대한 분노와 환멸 및 조롱 등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전략가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노예제 사회 백인들을 역겹고 우스운 존재들로 만들어 비판을 대신하는데, 이런 정서를 표출하는 인물인 슐츠는 극의 절정에 달해 침착한 면모를 버리고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의 서문을 연다. 슐츠의 기품이 극 전체를 이끌며 노예제 사회에 대한 평가와 태도를 써 내려 가게 되는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우며 폭력적이든지 그것들은 통쾌한 감정적 해소 한방을 위해 발휘된다. 그 한방은 모순과 우연으로 점철된 치열한 인간사 및 그 폭력성에 대한 감정분출이다. 그는 B무비들이 펼쳐놓은 판타지를 이런 감정분출의 출구로서 재해석하고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이러한 판타지는 피로하고 짜증 나는 현실에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의 영화들과 함께 답답한 기분에 상상의 기관총을 난사해 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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