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 ‘남석훈 귀국 제일회 야심작품 남석훈 감독의 <악명> (1974)

by.오승욱(영화감독) 2011-01-10조회 4,454
악명

1970년대 초 홍콩 쇼브라더스의 무협영화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흥미로운 악역이 있었다. 콧수염을 기르고 사악한 눈으로 주인공들을 노려보며 더러운 생각을 하는 사내. 그는 질투의 화신이었다. 그의 출세와 그의 사랑. 그의 욕망을 방해하는 자들은 언제나 홍콩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의협심이 강하고, 멋진 외모와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는 외모와 실력, 출신 성분, 그 어느 것으로도 멋진 주인공들을 능가할 수 없어 사랑하는 여자를 주인공들에게 빼앗기고, 아버지 또는 사부의 총애도 빼앗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사악하고 더러운 생각으로 음모를 꾸며 주인공들을 파멸에 빠뜨리는 일 뿐이다. 

내가 처음 그를 본 것은 장철의 <13인의 무사>였다. 아버지의 총애를 듬뿍 받고 잘난 척하며 으스대는 막내 동생 깡 따위를 질투해 적군의 사악한 악당 진성과 피를 나눈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의 자리마저 가로채려는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잔혹한 형을 연기를 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별로 없지만, 1970년대 초의 극장 안에서는 같은 영화를 대여섯 번이나 보고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영화의 코멘터리를 하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요새 극장에서 그런 짓을 하다가는 몰매를 맞을 일이지만, 옛날 변두리 극장에서는 종종 출몰하시던 분들인데, 그들은 주인공들 중 누가 배신할 것이라거나, 다음 장면에서 여배우가 옷을 벗으니 절대 화장실을 가면 안 된다거나, 주인공이 결국 죽는다는 것을 미리 말해주었고, 멋진 대사가 나오면 주인공과 혼연일체가 되어 따라서 중얼거렸다. 내가 <13인의 무사>를 보는 그 극장 안에도 코멘터리를 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의 코멘터리에 따르면 저 사악한 악당은 바로 한국 사람이며 그의 이름이 남석훈이라는 것이었다. 깡 따위가 그의 계략에 빠져 말꼬리에 머리와 두 팔, 두 다리가 묶여 산산조각으로 잘라지는 오체분시의 충격적인 살해 장면을 목격하고 나는 그 배우의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했다. 그것이 인연이었는지, 비슷한 시기에 본 <죽엄의 다섯 손가락. (철인)>에서 나는 남석훈과 또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 그의 욕망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너무너무 멋진 사내 로례였다. 사형인 남석훈은 사부의 총애와 사랑하는 여자를 사제인 주인공 로례에게 빼앗기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악한 음모를 꾸민다. 별것도 아닌 놈에게 내 모든 것을 빼앗겼다며 증오에 불타는 눈으로 주인공을 바라보는 남석훈의 이글거리는 눈을 잊을 수가 없다. 사형인 그는 사제인 주인공의 손을 망가뜨려 주인공이 철사장을 연마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한국인 배우가 홍콩 영화에서 악당으로 활약하는 것이 어린 마음에 안쓰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었는데 무엇보다도 그의 연기가 설득력이 있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어두운 구석에서 멋진 주인공을 노려보고 그의 파멸을 기원하는 좀 과장하자면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나 볼 것 같은 악당의 모습이었다. 이후 그는 내가 보는 홍콩 무협영화에서 지옥의 사자처럼 출몰하기 시작했다. <십사인의 여걸>에서 그는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무서운 채찍을 휘두르는 로례의 동생으로 출연하여 청룡도를 휘두르며 열네 명의 미녀를 괴롭히는 음흉하고 사악한 오랑캐 악당으로 출연했다. 제목에서부터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생사투>에서는 당당히 주인공으로 나와 정의로운 역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의 감상평은 “에이 남석훈은 악당일 때가 더 멋있어” 였다. 남석훈이 연기한 악역들은 홍콩 영화계의 이방인 입장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재미있어진다. 본바닥 인물들이 주연 자리를 꿰차고 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야만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는 중국 사람인 주인공들에게 열등감을 갖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키 위해서는 야비하고 비열한 방법밖에는 사용할 것이 없는 악역을 그럴듯하게 연기했던 것이다. 아마 설움도 있었을 것이다.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낯선 이들과 경쟁해야 했으니. 

하지만 그에게는 기회였다. 임권택 감독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해 청춘영화에서 조연으로 연기하던 그가 동남아시아를 석권한 화교들의 영화세계에 얼굴을 들이밀면서 더 큰 물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아시아의 톱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의 <십삼인의 무사>나 <십사인의 여걸><죽엄의 다섯손가락. (철인)> 같은 동남아시아를 휩쓴 흥행 대작에서 멋진 악역을 그럴듯하게 해냈으니 그는 성공한 것이다. 같은 시기에 쇼브라더스에 진출하여 연기를 했던 미남배우 진봉진의 경우 여러 편의 홍콩 무협영화에 출연했지만 인상적인 연기로 기억되는 것이 없고, 남석훈과 비슷하게 악역을 했던 김기주의 경우 악당의 복잡한 심리를 연기하지 못하는 단역에 가까운 배역으로 주로 무술연기만 하여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반면, 남석훈은 영화 속에서 인상 깊은 멋진 악역을 해낸 것이다. 자. 여기서 그는 이후에 해외에 진출하여 성공을 했던 한국 액션 배우들의 슬픈 몰락의 수순을 밟는다. 

남석훈 그가 돌아왔다. 금의환향! 홍콩 쇼브러더스의 대감독 장철, 정강. 정창화 밑에서 액션 연출을 배우고 돌아와 자신이 주연 감독을 한 영화를 만든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악명>. 얼마나 그의 명성에 걸맞은 영화 제목인가? 당시 영화의 신문광고를 보면 ‘남석훈 귀국 제일회 야심작품’ ‘새로운 연출 수법’이라 당당하게 쓰여 있다. 나는 서울역 뒤편. 그 옛날 서부역이라 불리던 역 광장 건너편 붉은 벽돌 창고들이 즐비한 을씨년스러운 골목에 있었던 봉래극장에서 기억이 안 나는 어떤 액션 영화가 시작되기 전 예고편으로 <악명>을 만났다. 1974년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호쾌한 액션이 예고편에 들어 있었는데, 넓은 호수를 가로지르던 수상 보트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멋지게 폭발하고, 홍콩 쇼브라더스 시대 때보다는 약간 살이 찐 얼굴의 남석훈은 콧수염을 그럴듯하게 길러 당시 최고의 액션 배우 찰스 브론슨을 연상케 하는 관록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음 주를 기다리고 기다려 봉래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보았다. 총이 등장하고, 흑인과 백인 악당들이 주인공 남석훈을 괴롭힌다. 예고편에서 보았던 호수를 가로지르는 보트 액션, 카 체이스 등등 온갖 액션이 난무하는 영화였다. 당시 1970년대 중반의 한국 액션영화로는 대단히 공을 들인 액션 장면들이었지만, 썩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특히 총을 쏠 때 마치 딱총을 터뜨리는 것 같은 화약연기와 궁색해 보이는 불꽃.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홍콩에서 멋진 악역을 연기하던 남석훈은 초라한 한국 액션영화계에 뭔가를 보여 줄 것으로 기대를 했었다. 너무 기대가 컸나? 하지만 나는 <악명> 이후 70년대가 끝나고 80년대가 될 때까지 <악명>만큼의 비정한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악명>은 당시 한국 액션영화들과는 좀 다른 면이 있었다. 사내들의 액션에서 남다른 냉혹함이 영화 전편에 깔려 있었다. 그런 점이 어린 나에게는 어렵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냉혹함은 이 영화가 심의를 받으며 당시 1974년에 심의를 받은 한국영화들 중 가장 많은 가위질을 당한 기록을 보유하게 만들었다. 화면 단축이 자그만치 11회나 되었다. 11 곳을 가위질한 것이다. 배우이자 감독 남석훈은 <악명> 이후 더 이상 독특한 명성을 날리지는 못한다. 오사원 감독의 <비밀객>에 악역으로 출연을 하고 한홍 합작영화의 관례에 따라 자신의 이름을 감독으로 올렸다. 

하얀 옷을 입은 주인공이 가슴에 유골상자를 안고 다리를 건너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시작한 이 영화에 그가 단순히 이름만 올렸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그가 연출한 장면들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그 이후에 만들어진 합작영화 <속 정무문>에서도 그의 연출이 있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한홍 합작영화 <소림 통천문>에 서는 정말로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다. 아! 홍콩 쇼브러더스에서 존재감 있는 악역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높이고 한국으로 돌아와 새롭고 멋진 액션영화를 만들려던 멋진 악역배우는 그렇게 사라져갔다. 그의 이런 행보는 그의 후배 배우들이 홍콩으로 가서 고군분투 다리에 불을 붙이며 연기하여 쌓아올린 명성을 충무로로 돌아와 날려버리는 슬픈 행보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의 첫 감독작 <악명>에는 홍콩에서 돌아온 사내의 생생한 박력과 패기가 담긴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었다. 물론 지금은 볼 수가 없다. 필름은 훼손정도가 너무 심해 상영 불가이고, 사운드 네거가 분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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