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네마테크KOFA 우리시대 시네아스트① ‘홍상수 감독전’ GV 현장 중계

by.민병현(한국영상자료원 경영기획부) 2010-03-11조회 1,063
잘 알지도 못하면서

흥행 여부를 떠나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물론 그의 영화가 해외영화제에서 꾸준히 관심거리가 되고 수상 성과를 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닮은 듯 닮지 않은 우리 일상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냉소적 시선과 풍자, 비틀린 유머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소재와 등장인물의 지독한 평범함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영화 관람을 망설이게 만드는, 동시에 한번 보게 되면 통쾌 혹은 불쾌한 느낌을 갖고 끝까지 보게 하는 이유다.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혹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쿨’한 척하는 ‘찌질’한 모습은 그렇게, 언제부터인지 하나의 장르로 정착된 ‘홍상수표’ 영화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지방의 어느 음식점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아는 여자의 외모와 닮아 느꼈던 감정을 시작으로 기획한 <해변의 여인>은 <서쪽에서 기인을 만나다> 등 (홍상수 감독의 표현을 빌려) ‘말도 안 되는’ 제목들을 놓고 고심하다가 촬영 직전에 지어진 제목이었다. <해변의 여인>은 영화배우 고현정의 컴백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가 되었는데, 시나리오 단계에서 고현정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고, 영화 준비를 하는 시점에 오정환 대표를 통해 소개받아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한다. 덧붙여 홍상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장소, 계절 등 영화의 여러 가지 요소가 최초 의도와 달라지면 결과물(영화)도 달라진다. 배우의 캐스팅 역시 당시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이 영화에서의 고현정의 역할과 연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말이 아닐 수 없다.

‘홍상수표’ 영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일상에서 혹은 영화 현장에서 보고 듣는 배우들의 실제 말투를 영화에 그대로 차용한다는 점이다. 보통 배우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는 이동진 씨의 질문에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유심히 본다.”는 재치 있는 말로 답하며 “대부분의 배우가 재미있어 한다. 특히 <오! 수정> 촬영 당시 문성근 씨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데 문이 잘 열리지 않자 스태프에게 ‘금고 따냐’라고 했는데 이것이 영화에 그대로 들어갔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홍상수 감독은 또한 영화의 결말을 열어두고 촬영에 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해변의 여인> 역시 촬영 과정에서 근사한 결과가 발견될 것이라 기대하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해변의 여인> 촬영을 1/5정도 남겨두고 결과에 대해 강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촬영 기간 중 하루 쉬는 날이 있었는데, 차를 몰고 가다가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일을 겪고 영화의 결말을 생각했다.”며 이어 “이와 함께 예전에 겪었던 일도 영화의 결말에 도움이 되었다. 종로3가 지하철역에서 누군가 내 뒤에서 팔을 때렸다. 뒤를 돌아보니 아기를 업은 어떤 여자분이 내 팔에 붙은 모기를 보고 나를 때린 것이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내가 피를 빨리고 있어서 때렸나보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호의를 베풀어 주는 것이 영화의 결말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어 <해변의 여인>을 포함한 홍상수 감독의 작업과 작품세계 전반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어떤 식으로 진행하느냐는 질문에 “투자를 받기 위해 첫 세 작품은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썼다. 나중에는 운이 좋아 트리트먼트만 가지고 투자를 받거나 배우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트리트먼트를 보지 않고 승낙하는 배우도 있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 배우들은 무대뽀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관객이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한 작품만으로 보길 원하는지, 혹은 지금까지 만든 다른 작품들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주길 바라는지 묻는 질문에는 “한 작품만으로 봐주길 원하지만 관객들은 이전 작품들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주는 것 같다.”고 답했다.

<해변의 여인>은 2006년 8월, 40개의 비교적 적은 스크린에서 개봉해 전국 관객 22만 5,388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동원했다. 관객통계가 말해주듯 그는 분명 제작자나 투자자가 좋아할 만한 감독은 아니다. 경제적 논리로 어느 순간 영화를 더 이상 찍을 수 없게 된다면 그는 독립영화, 그마저 안 된다면 홈비디오로라도 영화를 촬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창작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힘이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영화 창작은 나 자신을 믿으면서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며, 동시에 나의 영화는 내 생각들과 표현들이 어우러져 완결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관습, 문화가 내 창작활동에는 큰 상관이 없다. 둘 사이의 연결점을 찾아보려 했으나 아직은 내가 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홍상수 감독은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중이다. 홍상수 감독이 지금까지 보여준 일련의 작품 활동들은 분명 오늘의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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