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화살(The Flame and the Arrow)

해제

현재통용제명: 불과 화살
수입개봉명: 快傑 다루도
원제: The Flame and the Arrow
제작년도: 1950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 / 미국
감독: 자크 투르니에(Jacques Tourneur)
출연진: 버트 랭카스터(Burt Lancaster), 버지니아 메이요(Virginia Mayo), 닉 크라밧(Nick Cravat)
수입사: 한국문화사  
개봉극장: 중앙극장
개봉일: 1956.10.20.


전단지 구성 및 특이사항 
장방형의 전지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앞면에는 칼라 인쇄로, 주연 배우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가운데에 크게 배치하고 왼쪽에 표제를 넣었다. 오른쪽 상단부에서부터 “압정에 폭발하는 이태리 남아의 분노! 질풍신뢰(疾風迅雷)! 바람과 같이 일어나는 검극(劍戟)의 수라장!”이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뒷면에는 갈색 단색조로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 영화 해설, 영화 줄거리를 수록하였다. 


줄거리
때는 12세기 말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레데릭 바르바로사의 치세 시절의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난봉꾼에 모험가 귀족인 다르도 바르톨리(버트 랭카스터)는 한때는 친구였지만 자신의 부인과 바람을 피워 거리가 소원해진 폭군 울리히 백작(프랭크 앨런비)을 만나기 위해 아들 루디(고든 게버트)와 함께 울리히의 영지로 찾아온다. 다르도는 울리히의 값비싼 사냥 매를 활로 잡아 궁수로서의 실력을 과시한다. 화가 난 백작은 다르도의 아들을 성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한다. 다르도는 루디와 함께 도망치다가 화살에 맞고, 루디는 아버지가 해를 입지 못하도록 일부러 붙잡힌다. 

한편 몰락한 귀족인 알레산드로 후작(로버트 더글라스)은 정략적인 이유로 울리히의 조카딸인 안느 (버지니아 메이요)와 결혼하라는 울리히의 압력을 거부하고 울리히에게 내야 할 세금의 납부까지 거부한다. 울리히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그를 체포하고 그의 땅과 재산을 몰수할 것을 명령한다. 알레산드로는 옥에 갇히지만, 아들을 찾으러 온 다르도에 의해 구출된 뒤 다르도의 무법자 무리에 합류하기로 한다. 여전히 옥에 갇혀있는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다르도는 울리히의 성에 잠입하지만 구출은 성공하지 못했고, 이때 갑자기 나타난 안느를 대신 인질로 잡아간다. 다르도는 백작에게 안느와 아들을 교환하자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울리히는 안느가 석방되지 않으면 바르톨리를 처형하겠다고 위협한다. 이에 다르도와 다른 사람들은 마을로 달려가지만, 울리히가 다르도의 삼촌 파파 바르톨리(프랜시스 피엘롯)을 비롯한 죄없는 사람들을 잡아가 매일 다섯 명씩 교수형에 처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르도는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수하고 울리히는 그를 교수형에 처한다. 

다르도의 무법자 패거리들 사이에서 함께 붙잡힌 알레산드로 후작은 울리히의 꾀임에 넘어가 다르도가 죽지 않았고 다음날 다시 공격해 올 것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삼촌의 사악함에 질린 안느는 성을 뛰쳐나와 다르도와 그의 부하들에게 조심하라며 경고한다. 다르도는 곡예사 행세를 하며 성에 한 사람씩 잠입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다르도의 계략은 성공하고, 성안에서는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진다. 난장판이 벌어지는 동안, 안느는 다르도에게 울리히가 그의 아들을 다시 붙잡아 도망쳤다고 알려준다. 마차를 타고 도망치는 울리히 일당을 따라잡은 다르도는 그와 최후의 결투를 벌인다. 울리히는 루디를 칼로 찔러 죽이려 하지만, 그의 칼날 앞에 루디의 어머니이자 다르도의 옛 부인인 프란체스카(린 배게트)가 달려들어 대신 칼에 맞아 죽는다. 울리히는 루디의 목에 칼을 댄 채 뒷걸음질치며 도망치지만, 다르도가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전투에서 승리한 다르도는 그의 아들과 안느를 함께 껴안는다. (출처: IMDb 바탕으로 재작성)


NOTE 
이 영화는 곡예사 출신이었던 버트 랭카스터의 뛰어난 몸놀림을 최대한 활용한 영화를 제작해보겠다는 워너 브라더스 사 제작자들의 요구에 의해 기획된 것으로, 당시 비평가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플롯과 이야기 구조를 문제삼아 혹평을 퍼부었으나 관객들에게는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그 해 워너 브라더스 사의 최대 흥행작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1956년 10월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뒤, 12월 성남극장, 이듬해 1957년 1월 평화극장, 2월 명동극장, 3월 경보극장, 자유극장 등에서 상영되며 다소 저조한 흥행성적을 보였으나, 이후 1964년 4월 재수입되어 스카라극장에서 재개봉된 뒤에는 1965년 2월까지 서울 시내의 주요 재개봉관을 두루 거치며 크게 흥행하였다. 
석지훈(영화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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