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일
Choe Seung-il / 崔承一
출생·사망
1901 ~
대표분야
제작/기획
활동년대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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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지원병 (안석영, 1941)

주요경력

1920년 도쿄에서 극단체 '극예술협회' 창립
1922년 귀국 후 '염군사(焰群社)' 결성에 참여
1925년 8월 '카프' 결성에 참여
1927년 경성방송국 근무, 방송극 연출
조선무전방송국 방송극 연출
1930년 '신흥극장' 문예부에서 활동
1948년 3월 네 자식과 함께 월북

기타정보

기타이름
추곡
주요기타작품
연극, 1930년 <산>
저술내역
소설 <안해>, <떠나가는 날>, <봉희> 등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01년생이다. 서울 출생설과 강원도 홍천 출생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강원일보, 친일인명사전). 배제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니혼(日本)대학 미학과에서 수학했다(친일인명사전). 1920년 유학생 중심의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 창립에 참여했으며 1922년에는 최초의 프로문학 단체인 염군사(焰群社)에 가담(손정수), 1925년부터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방송극에도 관여하여 1927년 개국 때부터 1936년까지 경성방송국에서 연출을 맡았다(친일인명사전). 1930년 심영(沈影), 나운규(羅雲奎), 석금성(石金星)을 주연으로 종로 사정목의 미나도좌(港座)에서 <산>을 연출했고(동아일보a), 1933년에는 박승희(朴勝喜)와 함께 극단 태양극장(太陽劇場)을 이끌고 도쿄, 오사카 순회공연을 하는 등(매일신보a) 신극 활동도 활발히 했다. 1939년에 동아영화제작소(東亞映畵製作所)를 창립한 그는 1941년 박영희(朴英熙) 원작, 안석영(安夕影) 감독으로 영화 <지원병>을 제작했다(동아일보b). 아나운서 마현경(馬賢卿)과 이혼한 후 배우 석금성과 결혼했으며(삼천리), 둘 사이에서 낳은 4남매를 데리고 1946년 월북했다(동아일보c). 한국전쟁 발발 이후 실종되었다는 설과(손정수) 1966년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친일인명사전). 친동생인 무용가 최승희의 무용계 데뷔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매일신보b).

* 참고문헌
강원일보 2006년 10월 20일자 19면.
매일신보a 1933년 5월 31일자 2면.
매일신보b 1937년 2월 18일자 2면.
동아일보a 1930년 9월 19일자 5면.
동아일보b 1939년 10월 26일자 5면.
동아일보c 1995년 9월 5일자 30면.
離婚한 男子와 結婚할 境遇 民籍登錄에 對한 新女性의 態度, 『삼천리』 제3권 제11호(1931년 11월 발행).
손정수, 『한국근대문학사의 틈새』, 역락, 2005, 24쪽.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3』, 민족문제연구소, 2009, 733-737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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