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일
O Yeong-il / 吳英一
출생·사망
1946 ~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원죄 1967
활동년대
1960, 1970

필모그래피 (50)

더보기
배우 :
아름다운 청춘 (김영걸, 1971)   
사랑은 당신만 (박옥상, 1971)   
광야의 표창잡이 (박문수, 1970)   
안개속에 가버린 사랑 (변장호, 1969)   
사녀 (신상옥, 1969)   
팔없는 검객 (임원식, 1969)   
만나지 않았다면 (오영근, 1969)   
자유부인 (강대진, 1969)   
사나이 유디티(U.D.T) (남태권, 1969)   
내일은 죽을지라도 (김효천, 1969)   

수상정보

더보기

기타정보

주요기타작품
1969년 녹슬은 단검, 섬마을 선생 (KBS)
1970년 햇빛 쏟아지는 거리 (KBS)
1971년 아버지(MBC)
수상내역(영화)
1967년 제2회 대일영화상 : 신인남우상, 제1회 남도영화제 : 신인상, 제5회 청룡영화제 : 신인특별상/
1968년 제4회 백상예술대상 : 신인상 (잃어버린 사람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46년에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7년 김기덕 감독의 <원죄>에서 주역인 오영일을 연기하며 영화계에 데뷔한다. 본명은 김복현이나, 데뷔작에서의 캐릭터를 자신의 예명으로 선택한다. <원죄> 이전에도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교육영화인 <산바람 강바람>(어약선 감독,1957)에서 주역 창수 역을 맡았고, <용사는 살아있다>(1965)에서 단역으로 잠깐 선보인 일이 있지만(동아일보), 본격 연기자 데뷔는 <원죄>부터이다. 데뷔하자마자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의젓한 귀공자 타잎'으로 '여느 청춘 스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력, 지성의 심취를' 풍긴다는 평(서울신문)을 들으며, 데뷔한 해와 그 이듬 해 대일영화제, 청룡영화제,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신인상을 수상한다. 이로서 1960년 접어들어 지속되고 있던 신성일의 '아성에 대한 도전자'(신아일보)로 영화계의 기대를 받는다. 데뷔작인 <원죄>는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양치는 언덕 ひつじが丘』을 영화화한 작품이며, 이어 작업한 정진우 감독의 <춘희>(1967)로 '파격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서서히 스타덤에의 발돋움을 시작"한다(대한일보). 그러나 그 우수에 찬 인텔리적 마스크가 오히려 인기의 폭을 넓히는 데는 장애요인이 되어 '박력이 없는 역들'을 주로 연기하며, '중고등학교 여학생들'로 그 팬덤을 한정시키며(주간경향) 대중적 흥행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갖는 배우가 된다. 데뷔 초기의 활발한 활동 이후, 1970년대에는 영화계에서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않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며, 1990년 계획되었던 '남북영화제'의 미주영화인 대표 중 한 명으로 활동하기도 한다(매일경제).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67년 2월 2일 5면
대한일보 1968년 1월 1일 6면
매일경제 1990년 9월 25일 11면
서울신문 1967년 2월 4일 5면
신아일보 1967년 2월 9일 5면

'오영일 은퇴설의 진상', 주간경향(1969년 7월 20일 발행)

[작성: 전민성]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