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성
Kim Chil-seong / 金七星 / 1918  ~  1973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50, 1960, 197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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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네버엔딩 스토리 (정용주, 2012) 악사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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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박노식, 1972) 칠공소주인
섬개구리 만세 (정진우, 1972) 덕보(사공)
판사부인 (강대선, 1972) 두목
며느리 (이성구, 1972) 국진(순이 부)
서산대사 (전조명, 1972) 일몽
인왕산 호랑이 (장일호, 1972) 마름쇠
향전 (김묵, 1972) 허생
새남터의 북소리 (최하원, 1972) 강포교

주요경력

1938년 극단 예우극장(藝友劇場) 창립동인
1951년 아랑극단 창단
1952년 극예술협의회(劇藝術協議會) 단원
1953년 자유극회(自由劇會) 단원
1964년 극단 현대극장(現代劇場) 단원
1972년 한국영화인협회 연기분과위원회 이사

기타정보

주요기타작품
연극 1938년 <청어(鯖魚)>
수상내역(기타)
1938년 동아일보 주최 제2회 연극경연대회 단체상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8년 평양 출생으로, 1937년 하얼빈 기선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강원도 통천을 기반으로 한 극단 예우극장(藝友劇場)의 창립 동인으로 연극활동을 시작했으며(조선일보), 1938년 동아일보 주최 제2회 연극경연대회에서 단체상을 받은 작품 <청어(鯖魚)>의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동아일보a). 해방 후에는 1949년 무렵부터 평양에서 북한 교통성 극단 단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전쟁으로 남하하여 서울 공연을 할 당시 탈출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1951년 부산에서 아랑극단을 창단했다고 한다(문화예술). 또 이 기간 동안 충북지구에서 계몽문화공작대장으로 반공활동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조선일보). 이후 1952년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 1953년 자유극회(自由劇會) 등에서 활동하던 중, 1956년 이만흥 감독의 <구원의 정화>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다(동아일보b). <심청전>(1956), <무영탑>(1957), <나는 고발한다>(1959), <카인의 후예>(1968) 등에서 악역을 비롯한 성격파 연기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약 20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한 것으로 보이며, 1964년에 복혜숙, 정민 등과 결성한 극단 현대극장(現代劇場) 등을 통해 연극 활동도 지속했다(서울신문). 1973년 4월,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별세했다(조선일보).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9년 3월 7일자 2면
동아일보b 1973년 4월 23일자 8면
서울신문 1964년 4월 11일자 8면
조선일보 1973년 4월 22일자 8면
전예출, 분장미술의 현대적 개척자(서연호), 『월간 문화예술』통권 191호(1995년 6월 발행)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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