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풍
Kim Gi-pung / 金基豊 / 1933  ~ 
대표분야
감독
데뷔작품
돌아오라 내 딸 금단아 1965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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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옥장의 집념 (김기풍, 1991)
외길을 가는 사람들 (김기풍, 1991)
한국의 조선산업 (김기풍, 1990)
서울, 1988년 (이광수,김기풍,김상연,김항원,도상선,박순구,이지완,이창호, 1989) 협동감독
문화유적을 따라서(전라북도편) (김기풍, 1988)
제주도 (김기풍, 1987)
북괴 금강산 댐 건설 (김기풍, 1986)
서울의 선물 (김기풍, 1986)
살풀이 (김기풍, 1985)
한국의 탈춤 (김기풍, 1984)

주요경력

1939 중국 연길에서 대화심상소학교 입학, 모친 별세
1940 부친과 단둘이 내몽고 장가구(張家口市)로 이주, 심상소학교 2학년 수학 중 내몽고 후화로 이주, 3학년 경에 중국 보정으로 이주하여 부친이 재혼하고 1년 정도 거주
1942 북경으로 이주, 동성국민학교 3학년부터 5학년까지 수학
1945 연길로 이주, 입학했던 대화국민학교에서 졸업. 해방이 되자 부친이 소련군에 의해 구속되었으나 부친의 학교 동기가 도와줘서 부친 홀로 월남
1946 가족과 월남, 경주까지 갔다가 서울에서 부친을 만나서 용산에 거주하면서 경동공립중학교(현 경동고등학교) 진학, 이윽고 부친은 서북청년단원으로 홀로 제주도로 이주
1950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5학년 중퇴, 9.28 수복 당시 미군 부대에서 통역을 하던 외삼촌을 따라 미군 위생중대에서 1년 정도 생활하면서 의정부에서 이북까지 갔다가 미군 부대를 나와서 부산으로 피난
1951 부산에서 가족과 재회하고 해군신병모집에 응시하여, 12월에 해군 21기로 진해 해군신병훈련소 입소
1952 3월에 22기로 훈련소 수료하고 퇴소하여 4월에 진해 해군군악학교 4기로 입학, 가을에 휴가 나왔다가 몸을 다쳐서 진해 해군병원에서 입원치료 받고 2개월 후에 퇴원하여 진해 해군신병훈련소에서 근무
1953 국방부 정훈국 보도하사관으로 선발되어, 서울 용산구 후암동 국방부 근무. 7월 27일 휴전이 되자, 이후 정훈국 보도과 검열계 검열요원으로 근무
1955 정치대학(1959년 건국대학교로 개명) 입학, 12월 31일 해군 제대
1957~ 외삼촌의 소개로 서울 중구 인현동 태양영화사에 근무하게 되어 <진주는 천리길>(정일택, 1958) 제작 심부름을 하면서 영화계 입문. 이후 태양영화사에서 제작한 <백진주>(김명제, 1959)와 <정>(이규환, 1962), 그리고 <반역자의 비애>(이원도, 제작 서울칼라라보, 1960)에서 연출부
1961 이만희의 감독 데뷔작 <주마등>에서 조감독, <불효자>(이만희)에서 조감독 도중 제작사인 대원영화사를 떠나 신필름으로 이동하여 <서울의 지붕밑>(이형표, 1961)에서부터 이형표 감독의 조감독 활동 시작
1962 이형표 감독의 <대심청전>, <아름다운 수의> 조감독
1963 이형표 감독의 <언니는 좋겠네>, <청색아파트>, <이주사>, <말띠여대생> 조감독
1964 <연애졸업반>(이형표), <총각김치>(장일호) 조감독
1965 <정사>(장일호) 조감독, <돌아오라 내 딸 금단아>로 감독 데뷔. <여자가 더 좋아>, <의형제> 감독
1966 <만져만 봅시다> 감독
1968 <철부지아씨> 제작 및 감독, <단벌신사> 감독
1969 <산울림 칠 때마다>, <명동삼총사>, <요절검객 팔도검풍> 감독. <암행어사와 흑두건> 제작 및 감독
1972 국립영화제작소 제작과 근무. 대한뉴스, 기록영화, 안보영화, 홍보영화, 문화영화 등을 감독
1994 국립영화제작소 퇴직

기타정보

수상내역(영화)
1988 PATA GOLD AWARD <신들의 섬, 제주도>(한국관광공사 제작)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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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영화걸작선]여자가 더 좋아: 12월의 영화Ⅰ <여자가 더 좋아>는 1965년 6월에 개봉하여 약 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국산영화 흥행 2위에 올랐던 코미디 영화다. 그러나 대중이 이와 같이 호응했음에도 이 영화에 대한 당시 저널리즘과 평단의 반응은 혹독했다. 이 영화에는 “C급 저속 넌센... by.박유희(영화평론가) 2020-12-0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0년생인 김기풍은 함경도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했다. 이형표 감독의 조감독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연출을 익혔고, <돌아오라 내 딸 금단아>(1965)로 감독 데뷔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북한 육상 기록 보유자 신금단 선수와 월남한 그녀의 아버지가 일본 도쿄에서 극적으로 상봉하게 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두 번째 연출작 <여자가 더 좋아>(1965)는 인기 개그맨 서영춘이 출연한 작품으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김기풍은 <만져만 봅시다>(1966), <철부지 아씨>(1968), <단벌신사>(1968), <요절검객 팔도검풍>(1969) 등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4956&keyword=김기풍)

* 金基豊-경향신문 1968년 3월 16일자 5면.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0년생. 함경도 출신. 6·25때 월남.
김감독은 원로 이형표 감독 밑에서 오랫동안 조감독 수업을 했다. 이감독님 회고에 의하면 북에서 단신 월남한 그는 고생을 많이 했단다. 그는 책임감이 강하고 뚝심 있는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후한 점수를 준다.
김감독은 1965년 <돌아오라 내딸 금단아>작품으로 데뷔했다. 1960년대 당시 북한의 육상 기록 보유자 신금단 선수와 월남한 아버지간의 일본 도꾜에서의 극적인 상봉을 바탕으로 만든 실화이다. 두 번째 작품 <여자가 더 좋아 65년>는 서영춘 최지희 남궁원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여장 남자로 분한 서영춘이 최전성기 때 힛트한 작품이다. 중성인 한 음악교사가 어떤 여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여자는 별 수 없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를 못잊어 그녀의 신혼 가정에 여장을 하고 식모로 쳐들어 간다. 그는 여러 가지로 그녀를 괴롭힌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여장한 남자임이 탄로되어 도망치던 길에 근처 정형외과로 뛰어 들어 간다. 거기서 서영춘은 성전환 수술, 남자로 변신한다.
김감독은 그 후 코미디 계열의 작품을 계속 만든다. <만져만 봅시다 66년> <철부지 아내 68년> <단벌 신사 68년> <요절검객 팔도검풍 69년> 그 후 김감독은 <산울림 칠때마다 69년> <명동 삼총사 69년> <암행어사 흑두건 69년> 등 총 10편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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