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Kim Seung-ho / 金勝鎬
출생·사망
1918 ~ 1968
대표분야
배우, 제작/기획
활동년대
1940, 1950, 1960, 1970

필모그래피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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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눈물의 연평도 (권혁진, )
족보 (고영남, 1971)
마법선 (이창근, 1969)
사화산 (고영남, 1969)
영원한 모정 (조긍하, 1968)
아네모네 마담 (김기덕, 1968)
내 목숨 다하도록 (안현철, 1968)
아빠 아빠 우리 아빠 (김기덕, 1968)
속 팔도강산 - 세계를 간다 (양종해, 1968)
풍운(임란야화) (권영순, 1968)

주요경력

1938년 극단 청춘좌(靑春座) 단원
1945년 자유극단 창립단원
1946년 <자유만세>로 영화 데뷔
1946년 극단 대지(大地) 단원
1950년 극단 신향(新鄕) 단원
신협(新劇協議會) 단원 등

기타정보

수상내역(영화)
1956년 문교부 국산우수영화 연기상/
1958년 제3회 국제영화상 주연남우상/
1958년 제1회 한국평론가협회 남자배우상/
1959년 서울시 문화상 영화부문/
1960년 제7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로맨스빠빠>)/
1961년 제8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박서방>)/
19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로맨스 그레이>)/
(+ KMDb 수상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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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8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해수(金海壽)다(김기제). 보성중학(普成中學)을 졸업한 후 1938년 동양극장 전속극단 청춘좌(靑春座)에 입단했다(김기제, 동아일보b). 해방 후에는 극단 대지(大地), 신향(新鄕) 등에서 활동하던 중 전쟁을 맞게 되었고, 이후 신협(新協) 소속으로 유치진의 <소>, 차범석의 <갈매기> 등에 출연했다(경향신문a, b, 한국역대인물). 1946년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에 독립운동가 ‘박’으로 출연하면서 영화에 데뷔했으나, 영화배우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 후 김기영의 <양산도>(1955)에 출연한 1955년부터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1956)에서의 ‘맹진사’ 역할은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후 김소동의 <돈>(1958), 신상옥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조긍하의 <육체의 길>, <곰>(1959) 등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연기색을 확고히 다졌고, 아시아영화제에서 제7회(<로맨스빠빠>), 제8회(<박서방>), 제10회(<로맨스 그레이>) 세 번에 걸쳐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비평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동아일보b). 주로 “사람 좋은 아버지 아니면 동네 이웃의 복덕방 영감 같은 친근한 사람들”을 연기하며 서민적인 매력으로 관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경향신문d). 1963년 극단 신협의 재건에 앞장서기도 했으며, 1966년 만학으로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는 등 노력파이기도 했다(경향신문a, 동아일보c). 1967년 반공영화 <돌무지> 제작에 가담하며 기획자로 변신을 꾀했으나, 이 과정에서 빚을 지게 되어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병을 얻어 집에서 쉬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1968년 12월 별세했다(경향신문d, 매일경제).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46년 11월 7일자 4면
경향신문b 1950년 5월 14일자 2면
경향신문c 1966년 2월 23일자 5면
경향신문d 1968년 12월 2일자 7면
동아일보a 1963년 4월 18일자 6면
동아일보b 1968년 12월 3일자 5면
매일경제 1968년 12월 2일자 3면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185쪽.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kr/index.aks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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