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Jeong Byeong-jun / 鄭炳俊 / 1936  ~ 
대표분야
제작/기획
활동년대
196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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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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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어머니의 청춘 (유동일, 1965)
무관의 제왕 장보고 (안현철, 1965)
과부의 딸 (이성구, 1965)
모란등 (백호빈, 1964)
연락선은 떠난다 (김진섭,김화랑, 1964)
미녀와 도적 (이강천, 1964)
여장부 (조긍하, 1964)
오빠 (김동혁, 1964)
나는 속았다 (이강천, 1964)
육체의 고백 (조긍하, 1964)

주요경력

1963~1964년 영화제작업협회 이사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60년대 초반 안양촬영소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촬영소였던 만리동 촬영소를 소유하였던 동성영화공사의 대표로, 만리동 촬영소의 개소 당시인 1962년, 약관 26세의 나이에 '총건평 1천평에 ... A 스타디오 220평, B 스타디오 270평' 등 두 개 스튜디오를 보유하였고, 여기에 현상, 편집, 인화, 시사 시설 등을 갖추어 영화 제작 과정 전반을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장비한 스튜디오를 설립한다(경향신문a). 이후 <주유천하>(1962), <사명당>(1963), <광야의 왕자 대 징기스칸>(1963), <남자조종법>(1963), <소만국경>(1964), <육체의 고백>(1964) 등 많은 영화를 제작하고, 1964년에는 영화사 내에 연기자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연기학원을 개설하는 등(경향신문b)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의 설립과 운영의 측면에서 많은 시도를 한다. 그러나 1965년 경영란으로 부도를 내고 만다(경향신문c).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62년 3월 12일 석간 4면
경향신문b 1964년 4월 4일 5면
경향신문c 1965년 2월 5일 3면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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